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132)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132화(132/246)
로젠바움주의 윤리와 탈식민주의 정신 (2)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독일 주재 미국 대사를 기다리며 홀로 기나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르민 로젠바움.’
첫 번째로 만났을 땐 대형사고를 친 부통령 후보, 그리고 전쟁영웅이자 유명한 발명가인 사업가로서였다.
하지만 두 번째로 만났을 땐 미합중국 대통령과 독일 총통이 되어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여기까지는 개인의 감상.
위정자로서, 독일의 부활과 경제적 번영에 미국의 역할이 다대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미국의 기업과 금융가들은 독일 기업들이 저평가 우량주라고 확신하고 말 그대로 달러를 미친놈처럼 쏴 갈겨서 무제한적으로 매입했었고, 미국의 저명인사들은 그가 집권하기 한참 전부터 로젠바움과의 친분을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 났었다. <창공의 지배자>의 다른 칭호는 <기적의 투자자>이기도 했으니까.
‘독일은 합리적입니다.’
‘괜히 콧대 세우면서 자존심 세우려 드는 놈들 상대하느니, 차라리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독일 주도로 유럽 경제권이 통일되면 미국에도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각하께서도 로젠바움사의 많은 조력을 받으셨잖습니까. 우리에게 표를 주는 노동자들은 로젠바움에게도 제법 호의적입니다. 그냥 친독 이미지로 계속 밀고 가시죠.’
‘선거운동도 해야 하는데, 로젠바움이랑 손잡고 악수 한번 하시는 게 어떨지?’
잘 안다.
이게 편한 길이다.
저위험 고수익이 보장된 주식이 있는데 이걸 사지 않으면 병신이다.
하지만.
루즈벨트는 바로 이 베를린에 발을 디디면서 친독이 답이 아니라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충성, 단결, 승리!>
<로젠바움주의의 이름으로 부활의 그날까지!>
<독일민족혁명공화국이여, 영원하라!>
그 끝없는 구호.
저 무한한 열기.
독재자의 관대함은 있었지만 자유는 없었다.
충성경쟁은 있었지만 민주주의는 없었다.
확신했다.
독일이 독재 국가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리스크가 뒤에 숨겨져 있다.
만약 미국이 고립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독일의 유럽 패권 장악을 방치한다고 가정해 보자.
갑자기 배가 부른 독일이 ‘신대륙 촌놈들이 돈 빨아가는 거 배가 아프네요. 이제 유럽 시장 닫습니다 수고용’을 외쳤을 때 시발시발 욕하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있나? 전쟁? 아무 친구도 교두보도 없이 단일 유럽과 전쟁을 한다고?
로젠바움은 그런 비합리적인 짓을 하지 않는다? 그걸 어떻게 믿는가.
그 본인은 그렇다 쳐도, 후임 총통은? 독재의 특성상 치적이 필요한 후임자가 비합리적인 행위를 결단한다면?
침략전쟁은 독재 국가만의 특권이다.
가면 갈수록 온 유럽에 독재의 시꺼먼 구정물이 퍼져나가는 지금.
영국과 프랑스가 아직 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금.
루즈벨트는 오직 지금만이 행동이 아니라 말 한두 마디만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고 확신했다.
‘여기서 만족합시다, 로젠바움 씨. 서로 돈이나 벌고 경제나 발전시키면 결국 독일이 유럽의 1위 국가로 우뚝 서는 건 시간문제잖아?’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군.”
루즈벨트는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을 버리지 않기 위해 서둘러 펜을 잡았다.
재무장을 중단하고··· 벨기에, 폴란드와 다시 한번 부전(不戰) 조약을 명문화. 이 정도면 시한폭탄처럼 초조하게 타들어 가는 유럽의 심지에서 불을 끌 수 있으리.
독일에겐 당연히 그만한 당근을 줘야겠지만, 혼자 줄 것도 아니고 당연히 영국과 프랑스도 호주머니를 털어야 하지 않겠나. 셋이서 분담하면 평화를 구입하는 비용치곤 굉장히 저렴할 듯했다. 적어도 군비 증강에 들어갈 돈보단 쌀 게 확실하잖은가.
정말 로젠바움에게 공존공영의 의사가 있다면 수락하겠지.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대사가 도착했다.
“반갑소이다, 대사.”
“대통령 각하. 가장 먼저 시급히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창백한 낯빛의 대사는 마치 레코드판이 얹어진 축음기처럼 미리 준비해 둔 대사를 토해냈다.
“독일과 일본이 자유무역협정 논의에 들어갔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잠깐, 그게 무슨-”
“소문에 따르면 오전에 총통 명령으로 해당 논의를 진전시킬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각하. 혹시 어젯밤 회담에서 무언가 문제가 있었습니까? 문제가 있었다면 저희에게도 공유해주셔야 합니다!”
루즈벨트는 순간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듯한 기분을 맛봤다.
하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티를 내는 대신 더욱더 활짝 웃음을 지었다.
“허. 이상한 일이군요. 나는 아르민의 절친한 친구입니다. 우리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잽스가 중국 시장에서 우리를 비롯한 모든 경쟁자를 내쫓는다면 독일이 뜬금없이 최후의 승자가 되어버립니다. 각하. 로젠바움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셔야 할 듯합니다.”
친구 사이에 뻐큐 한번 했다고 뺨을 갈기다니.
이래서 독재가 싫다니까.
루즈벨트는 휠체어에 몸을 더욱 기댔다.
피곤했다.
***
프랑스가 눈앞에 다가온 전략적 패배에 고통받고 미국이 끼어들까 말까 간을 보는 사이.
영국은 생각이 달랐다.
“짐은 독일을 자극해 유럽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소.”
“······저희 또한, 독일과는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볼드윈 총리는 이 새로운 국왕이 혹시 로젠바움에게 세뇌당한 간첩이 아닐까 하는 불경한 생각을 아주 잠시 했다가 서둘러 머릿속에서 지웠다.
현재 영국 정계엔 몇 가지 컨센서스가 있었다.
<국민들은 재무장에 예산을 쓰는 걸 꺼린다.>
<국민들은 로젠바움보다는 국제연맹을 대놓고 엿먹인 무솔리니에 대한 반감이 훨씬 강하다.>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서 동시에 군사적 위협이 커지고 있다.>
<새 국왕은 대놓고 친독이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셋 다를 대적할 수는 없다.
“독일이 결국 핵심이 될 것입니다.”
“동의하네.”
외무 장관 앤서니 이든(Robert Anthony Eden)의 말에 총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스 고관들은 연이어 찾아와서 ‘무솔리니와 연대해 로젠바움을 저지하자’라고 꽥꽥댔지만, 그, 빠게트 놈들은 자존심도 없나? 바로 직전에 영국과 프랑스를 조롱하다시피 하며 에티오피아를 짓밟은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어?
물론 이건 프랑스가 자존심이 없다기보단 그 자존심을 꺾을 만큼 독일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지만.
“무솔리니와 조약을 맺는 순간 우린 전부 짐 싸서 쫓겨나게 되겠지.”
“그렇습니다. 국민들은 결코 우리가 이탈리아와 친밀해지는 꼴을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프랑스와는 자연히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그, 독일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어떨까 싶네만. 다 함께 자유무역하면 좋지 않은가?”
“폐하. 국정은 부디 저희 내각에 일임하여 주시옵소서.”
“아니, 이것도 국정 문제라고? 자유무역은 우리 연합왕국의 대의 아니었소?”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모지리마저 옆에 끼고 있으니 총리의 체력과 심력은 실시간으로 깎여나갔다.
역시 답은 하나뿐이다.
독일을 어르고 달랜 뒤, 일본에게 적당히 좀 나대라고 독일이 따끔한 한마디 해달라고 청탁하는 것뿐이다.
물론 볼드윈과 이든이 대가리에 꽃 꽂은 순진무구한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이들은 올림픽에 오기 전부터 말 그대로 전쟁광처럼 공군력 강화에 막대한 예산을 처바르고 있었고, 올림픽 개막식을 본 뒤 즉각 예산을 늘릴 방안을 강구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하지만.
“저, 저게 뭐야.”
경기를 관람하러 나간 볼드윈 총리는 로젠바움의 상상을 초월한 행동을 보고 얼어붙었다.
“장관.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아닙니다.”
“저, 저 자식이, 우리 제국을 산산조각 내고 싶단 건가 지금?”
“그건 아니겠지만-”
“당장, 당장 항의해야겠어.”
영국인들의 계산이 뒤틀리고 있었다.
볼드윈은 무심코 머릿속에서 전쟁이란 글자를 떠올리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
윗놈들이 머리를 맞대고 무슨 이야기를 떠들든 말든 상관 없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선수단들은 올림픽 정신을 기리며 최선을 다해 땀방울을 흘렸다.
“와아아아아!!!”
“독일, 그 무엇보다도 독일!!”
주최국으로서의 홈 어드밴티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나라처럼 다른 나라 선수단의 밥그릇에 설사약을 타지도, 응원단을 체포하지도, 살해 위협을 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아쉽게도 밀려 메달권 진입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렇게 명멸하는 무수한 스포츠 스타들 가운데.
한 흑인 육상선수가 있었다.
“세상에! 대체 몇 번째 금메달이야!”
“깜둥인데?”
“깜둥이라고 하지 마, 병신아. 다하우 가고 싶냐?”
결코 인종차별, 민족차별 같은 제국주의적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독일인들은 이 놀라운 체육인을 향해 끝없는 박수와 환호를 베풀어주었다.
그리고 경애하는 독일 민족의 영도자, 모든 국민의 어버이 아르민 로젠바움 총통 각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박수와 환호는 마치 확성기를 켠 듯 훨씬 더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내가 몇 번째로 귀하의 목에 이 찬란한 금빛 메달을 걸어주는지 모르겠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이리 오시겠습니까?”
그 순간.
가장 충성스럽다 못해 신심 깊은 로젠바움주의자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땀을 폭포수처럼 흘려대는 흑인 선수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간 총통께서, 그대로 그를 있는 힘껏 꽉 끌어안는 것이 아닌가.
“어, 저, 저기-”
“귀하의 승리는 세계 모든 유색인종의 승리, 차별받는 모든 민족의 승리입니다. 나 아르민 로젠바움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심장이 뛰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 놀라운 승리의 장면에 최대한의 찬사를 바쳐야 마땅할 것입니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번뜩이는 가운데.
로젠바움 총통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James Cleveland “Jesse” Owens)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그의 한 손을 붙들어 힘껏 위로 치켜들었다.
“와아아아아!!”
“보십시오! 우리는 또다시 진보했습니다! 우리는 차별과 증오, 혐오의 벽을 넘어서서 세계 평화와 인류애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가 다가왔고, 로젠바움은 그대로 그걸 붙잡고 포효했다.
“사랑하는 독일 국민 여러분, 그리고 이 경기를 지켜본 모든 세계 시민 여러분!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부리던 시대가 저물었듯,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선을 긋던 시대가 마침내 그 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끝의 시작을 목도하는 지금!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제시 오언스가 나타나기를 고대합니다. 더 많은 깃발, 더 많은 선수단이 올림픽의 기치 아래 하나 되어 화합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하일 로젠바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루즈벨트는 조용히 수행원을 불렀다.
“당장 이 자리를 떠야겠네.”
“각하?”
“빨리. 대충 내가 아프다고 둘러대. 저 망할 총통 각하께서 연설하는 동안 빨리 이 자리를 떠야 한다고.”
로젠바움이 저토록 인종 차별 타파가 어쩌고 떠든 이상, 루즈벨트는 싫어도 저 선수와 악수든 기념 촬영이든 뭐든 해야 할 판이다.
그리고 그런 짓을 했다간 장담컨대 표의 10%쯤은 순식간에 날려먹고 말 게 뻔하다.
수행원들이 휠체어를 쑥쑥 밀며 나아가는 동안, 그의 고민은 조금 더 깊어졌다.
‘어째서 하필 대선 직전에 올림픽이 열려서는.’
지금이 1936년이 아니라 1937년이기만 했어도 루즈벨트는 악수가 아니라 뽀뽀라도 해줄 용의가 충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혹시 공허한 말뿐인 공갈 좀 쳤다고 일부러 엿 먹이려고 이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애써 눌러 담으며 그는 자리를 떴다.
‘설마 고작 그거 가지고?’
설마 그 정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