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134)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134화(134/246)
로젠바움주의 윤리와 탈식민주의 정신 (4)
1936년 8월 9일 오후 3시.
섭씨 22도. 날씨는 맑고 화창.
남자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약 2시간쯤 뒤.
이변이 일어났다.
[일본, 선두로 일본의 키테이 손(孫基禎) 선수! 키테이 손 선수가 달려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키테이 손이 32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자발라를 완전히 젖힙니다! 자발라, 자발라 점점 뒤처지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거리 차이! 자발라 선수, 뒤로 크게 밀려납니다! 키테이 손, 라스트 스퍼트를 달립니다! 압도적인 선두! 2위 자리를 놓고 영국의 어니스트 하퍼 선수와 일본의 쇼류 난(南昇龍) 선수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손! 머나먼 아시아에서 온 한국계 대학생이 강철과도 같은 힘과 기술로 전 세계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쳤습니다!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주에서! 최고기록! 신기록! 2시간 30분, 인간이 감히 닿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마의 벽을 뚫고! 2시간 29분 19.2초!
이곳 위대한 로젠바움주의의 땅, 자유와 평등, 기회의 땅 베를린에서 인류는 전인미답의 영역에 새로이 발을 디딥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독일인들, 그리고 유럽인들에겐 참으로 낯선 광경이었다.
육상의 꽃과도 같은 마라톤 경기 우승자를 위해 휘날리는 거대한 일장기.
하지만 승리자를 위해 그들의 국가,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동안.
금메달과 동메달을 받은 두 아시아인은 시종일관 침울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국가를 제창하지도 않았다.
“잠깐 이리로 와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이신지요?”
“로젠바움 총통께서 우승자를 치하하고자 하십니다.”
키테이 손이라는 이름으로밖에 불리지 못한 손기정은 서둘러 몸을 닦은 뒤, 귀빈석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엔 독일의 신과도 같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풍채는 실로 강건하여 제복으로도 그 근육이 숨겨지지 않아 바위나 강철에 비견될 만했고, 서양인들 특유의 새파란 눈엔 어딘지 모를 귀기마저 서려 있는 듯했다.
옆에는 일본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깡마르고 안경까지 낀 그와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니 마치 삼손과 블레셋인을 같이 보는 것만 같았다.
기정이 자리로 올라오자 총통이 독일어로 무어라 옆에 떠들더니 곧장 통역이 옆에 따라붙었다.
“이리 앉으시오, 인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챔피언!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아르민 로젠바움, 이 나라 독일민족혁명공화국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대는 자신의 두 발과 근육만으로 세계만방에 올림픽 정신을 선보였습니다. 오늘만큼은 당신이 바로 세계의 왕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연신 자리에 앉기를 강권하기에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더니, 이번엔 옆에 앉은 일본인과 무어라 떠든 로젠바움이 그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이분은 일본제국 천황의 동생, 야스히토 친왕입니다.”
천황의 동생!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가슴속은 더욱 알 수 없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친왕 전하. 귀국의 위대한 마라토너를 위해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크흠. 제국의 영광을 위해 이토록 분골쇄신하니 참으로 감명 깊었습니다.”
“감···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귀하의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키테이 손이라고-”
“아니, 아니. 잠깐. 그건 일본식 아니오. 혹시 코레아는 별도의 언어가 없습니까?”
“손기정입니다.”
낯선 총통의 입에서 코레아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그는 통역이 입을 열기도 전에 거의 발작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외쳤다. 희미하게 일그러지는 친왕의 얼굴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손기정! 손기정. 손기정. 이 발음이 맞나?”
“정확하십니다, 총통 각하.”
“손기정 선수. 조금 전까지 나와 야스히토 친왕은 일본제국의 식민지 통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친왕의 보좌관들께서는 코레아니쉬들이 일본의 통치에 대단히 행복해하고 있으며,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준 일본을 위해 헌신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 정도까지로는-”
“그래서 말입니다, 코레아니쉬들은 정말 만족스럽습니까? 제국의 일원으로 함께하기를 희망합니까?”
운명의 시간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야스히토 친왕의 눈엔 당혹감이 역력했으며, 그의 곁에 있는 보좌진들은 당장이라도 손기정 그를 난도질할 것만 같이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뭐라고 해야 하는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어째서 그는 1등을 해서 행복했는가.
월계수 묘목으로 이 빌어먹을 가슴팍 일장기를 가렸기에 행복하지 않았던가.
이 선택이 그의 운명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지 뻔히 알면서도.
그는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총통 각하. 조선인, 코레아니쉬는 일제의 끔찍한 학정과 공포 정치에 억눌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반만년 역사에 단 한 번도 오롯이 서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그 누구도 일본의 보호와 지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천만 조선민족 모두의 총의입니다.”
저질렀다.
아마 죽겠지.
그럼에도 후회는 없었다.
손기정은 눈을 감았다.
***
아아.
저질러버렸다.
어이, 조스비.
– 무슨··· 일이십니까··· 총통 각하···.
어허.
내가 귀신 소원도 다 들어줬잖아. 조금 더 존경심을 담아 나를 숭배하라고.
– 진짜··· 해? 진짜로?
그럼, 진짜지.
– 하일 로젠바움!
푸하하하하!!! 푸하하하핫!!!
나는 거울을 보다가 배를 잡고 그대로 발라당 뒤집어져 미친 듯이 박장대소했다.
범석이가 푸들푸들대며 얼굴이 장미처럼 새빨개졌다. 반질반질한 꼭대기 부분까지 시뻘게지니 꼭 삶은 낙지나 문어를 보는 듯해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래. 이 총통께서 일본과의 관계를 순식간에 시궁창에 처박는 영단을 내렸는데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노이라트가 집무실에 틀어박혀 울었다는 소문까지 들리는데, 뷔르템베르크 사나이의 눈물을 흘리게 한 대가치고는 너무 저렴하지 않은가.
물론 내가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일본과의 관계가 멋지게 곱창나버렸다는 소식과 동시에, 중화민국과 영국과 프랑스와 미국의 접견 요청이 쇄도했다.
– 근데··· 뒷감당은 어쩌려고?
시발. 니가 그걸 말하면 어떡해. 너 때문이잖아.
– 거 본인도 충분히 각 재고 있었으면서 꼭 나를 위해 그런 것처럼 말하네.
시꺼. 귀신 흠향하는 셈 치고 좀 세게 지른 거니까 감사히나 여기라고.
친왕은 체면 때문인지 뭔지 차마 직접 내게 뭔가를 말하진 않았지만, 그가 데려온 떨거지들은 말 그대로 난리도 이만저만 난리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미 내 교시를 전달받은 외무부, 그리고 리벤트로프 일당의 태도는 참으로 올곧았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로젠바움주의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면서도 세계 전 민족 해방의 대의는 거부하는가? 이래서야 단순한 이단자가 아닌가?] [일찍이 모세와 붓다, 예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옳은 말을 설교했으나 세상이 바뀌진 않았다. 옳은 말을 실천하는 것은 당연히 너무나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념과 사상에서 듣기 좋은 말만 빼먹는다면 그는 사이비에 불과하다!]일본인들은 처음엔 은연중에 단교까지 거론하면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중화민국 대표단과 정식으로 회동하고, 그 자리에서 중국인들이 ‘중화민국이야말로 진정한 로젠바움주의 공화국. 일본은 침략 근성에 찌든 삼류 제국주의 국가에 불과’ 같은 이야기를 떠들었단 말이 새어나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로젠바움 만만세를 떼창했다. 알기 쉬운 놈들 같으니.
한편 두 마라토너, 손과 남은 귀국을 포기하고 독일의 보호를 받길 희망했다.
공화국 수비대는 베를린에 있는 일본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긴급 경호에 나섰고, 조선인들은 당분간 베를린에서 가장 출세한 조선인 사업가의 자택에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되었다.
– 가끔··· 세상이 너무 대충대충 설정이 짜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 나는 항상 드는데.
– 이 만리타향 베를린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조선인이 있는데 그 사람이 안중근 사촌이라고? 이게 소설 설정이 아니라 진짜라고? 허 참.
그럴 수도 있지. 우리 범석이는 본인이 성불 못 한 귀신이나 잔류사념 비슷한 무언가인 주제에 너무 상식적이라니까.
이 머나먼 독일까지 와서 좆될 순 없었던 야스히토 친왕은 ‘조선의 자치권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진짜로 지킬지 아닐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로젠바움주의의 대의가 마침내 역사적인 1승을 거뒀다는 사실.
영국놈들은 머리가 좀 아플 거야. 탈식민주의의 일 보 전진으로 보고 발작을 해야 할지, 아니면 일본에 치명타를 날린 것으로 보고 흡족해해야 할지 머리털이 쏙쏙 뽑혀나가지 않을까?
나의 독일이.
마침내 세계 경영이라는 거대한 판에 족적을 남겼다.
“루즈벨트 대통령께서 귀국하기 전 나를 다시 한번 보고자 한다, 라.”
“그렇습니다, 각하.”
“그 앉은뱅이가 낚시에 환장한댔지? 가기 전에 오붓하게 낚시나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전하십쇼.”
슈미트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난 뒤, 나는 다시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빌어먹을 앉은뱅이 새끼.”
– 그러다 말실수할라. 미국은 미국이야. 천조국이라고. 저 민주주의의 병기창이 벌떡 일어나서 이글펀치 한방 갈기면 우린 곧장 이승 하직이다. 어휴. 너도 귀신 체험 한번 해볼래?
저리 가, 이 대머리야.
역시 답은 미국 참전 전에 모든 걸 끝내는 것뿐인가? 저 미친 앉은뱅이가 진짜 내게 소소한 정치적 약점 하나 잡혔다고 저런 비이성적인 증오를 내뿜는데?
기분이 꿀꿀해진 나는 책상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였다.
– 시작됐나.
그럼.
시베리아 모처에 우라늄이 반입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올림픽 정신이지.
모두 평등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뻐끔.
뻐뻐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멍하니 응시하던 루즈벨트는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숨이 턱 막힌다.
오래전 추락 사고 때부터 고질병처럼 들러붙은 고혈압과 흉통, 신경통, 각종 후유증이 그를 괴롭혔지만, 육신의 고통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고통이 더욱 그를 피곤하게 했다.
영불미 삼국이 하나 되어 독일과 반영구적인 부전 조약을 맺는 게 어떻겠냐는 그의 아이디어는 당장 같은 집 식구들인 민주당 사람들에게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꾸 헛짓했다간 유럽의 분란에 우리가 빨려들어갈지도 모릅니다.’
‘당장 지난 대전쟁 때 소시민들의 핏값으로 군수기업만 배를 불렸다는 여론이 강한데,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선입니다.’
‘프랑스가 무솔리니와 친하게 굴고 있는데, 시민들은 어째서 더 지독한 전쟁광과 손을 잡아가면서까지 독일을 견제해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혹시나 싶어 영국과 프랑스에도 슬며시 이야기를 해봤지만, 둘 다 완강한 반대.
저들은 독일의 패권은 물론, 독일이 유럽 제1의 부국이 되는 것을 허락해준다는 발상 자체에 몸서리를 쳤다. 사실 미국만 좋은 날강도 같은 아이디어긴 했지만··· 그래도 전쟁보단 나을 텐데?
루즈벨트는 조만간 있을 총통과의 두 번째 대담을 준비하며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로젠바움의 두 가지 제안, 미-독 자유무역협정과 탈식민주의.
확신했다.
둘 다 기만에 불과하다.
독일이 얌전히 자국의 문을 활짝 열고 두 팔 벌려 미국의 빨대가 꽂히게 둔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총통이 조지 워싱턴 귀신이라도 들려서 미국에 나라를 팔아먹기로 작심하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다.
탈식민주의.
식민지 하나 없는 독일이나 소련이야 어깨춤을 추면서 ‘우리 다 함께 민족 해방 외쳐 보아요’를 외치겠지만, 미국 입장에선 전혀 동의하기 어려웠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큰 시장은 영국과 프랑스를 위시한 서유럽.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동작하는 곳 또한 서유럽.
서유럽 시장이야말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핵심 지역이다. 식민지는 미래의 먹거리가 될진 모르겠지만, 서유럽은 지금 당장 황금알을 낳는 곳이니.
물론 이런 망상을 해볼 순 있다.
정말 독일에 나폴레옹급 군신이 나타나 영국과 프랑스가 모조리 으스러지고 민주주의를 지킬 나라가 오직 미국밖에 없다면.
저 거대한 열강들이 도저히 식민지를 유지할 여력이 없어지고 제국주의의 패망이 확실해진다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미국도 세계 각지에 자유와 민주를 선사하기 위해 안면몰수하고 탈식민주의를 외치겠지.
바로 이 부분에서.
루즈벨트는 로젠바움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열강의 시대가 공고한 이상 탈식민주의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열강을 모조리 군사적으로 파괴하지 않는 이상 탈식민주의는 그냥 좋은 말에 불과하다.’
따라서 탈식민주의 아젠다는 독일 정부가 자국민들의 팽창 욕구를 억누르고 도덕적 만족감을 충전해주는 통치 도구에 불과하다.
이것이 로젠바움 정권의 논리였다.
하지만 저 논리를 살짝만 비틀면 새로운 명제가 나온다.
‘탈식민주의의 시대가 오려면 영국과 프랑스가 몰락해야만 한다.’
‘유럽을 군사적으로 제패할 수 있다면 탈식민주의는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는 핵심 이념이 된다.’
“두 번째 세계대전을 꿈꿉니까, 로젠바움?”
대답이 돌아올 리 없다.
하지만 그의 귓전엔 상상 속 로젠바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없다.
미국인들은 고립을 원한다.
아가리로 엄포나 놓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개입 같은 걸 할 수 있었으면 일본제국의 면상에 싸커킥부터 갈겼지 여기 앉아서 올림픽 구경이나 하고 있겠나?
세상이 피로 물들려 하는데도 그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루즈벨트는 지독한 무력감을, 꼼짝도 하지 않는 하반신과도 같은 갑갑함을 느꼈다.
일단 선거부터 이기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