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15)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15화(15/246)
(주)로젠바움
카이저 빌헬름 2세의 통치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독일은 이제 대접받을 자격이 있어요>라고 할 수 있다.
제해권이 어떻고, 식민지를 통한 경제 발전이 어떻고··· 이런 사소한 논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바로 ‘독일은 이제 개쩌는 나라가 됐기 때문에 해도 된다’라는 사실.
“언제까지 세계를 영국과 프랑스가 마음대로 다루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가? 독일은 자격이 있다. 독일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함대를 건조할 자격이 있다. 독일은 국력에 걸맞은 식민지를 보유할 자격이 있다. 독일! 오, 독일이여!”
“카이저 만세!!”
“제국 만세!!”
이게 결국 모든 일의 핵심.
따라서 내 프레젠테이션 또한 비행기가 얼마나 위대한 업적이 되고 얼마나 타국에 과시할 만한 수단이 되는가, 였다.
나는 몇 날 며칠에 걸쳐서 정성껏 구연동화를 풀었다.
앞으로 비행기가 얼마나 더 발전할지, 이 발전한 비행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제공권을 잡기 위해 각국이 어떤 투자를 할지, 공대지, 공대함, 공대공 전투 등등···.
카이저는 HY헤드라인체와 견고딕이 조합된 내 완벽한 K-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에 넋이 나가 연신 물개박수를 쳤고, 어느새 ‘독일 황립 항공대’가 저 저주스러운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 왕궁을 불태우는 황홀한 상상에 빠졌다. 솔직히 나는 저 정도로 사기성 짙은 미래를 떠들진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턴 본인이 더 나서서 헛소리를 해대더라고.
아무튼 그렇게 시동이 걸린 카이저는 곧장 출격했고.
“짐이 가만 보건대, 앞으로 공중을 고려하지 않고는 결코 제국의 방위 태세가 만전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대독일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지금 항공 산업에 투자하야-”
“폐하. 비행기는 무척 재미있는 도구이긴 합니다만 아직 장난감의 영역에 불과합니다. 군은 저희에게 맡겨주시고 폐하께서는 더 큰 일에 힘쓰시옵소서.”
“제국 해군 육성을 위해 어마어마한 혈세가 투입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항공기라니요? 그 돈이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업을 할 수 있을지 아십니까?”
자신이 얼마나 개쩌는 걸 봤는지 남들에게 공유해주려다 면전에서 꼽이란 꼽은 다 당했다.
융커.
그리고 제국의회.
카이저 빌헬름의 행복 덕질을 막는 두 무리들이 나타난 것이다.
보통 저 둘은 견원지간이었는데 겨우 황제가 취미생활 좀 즐기는 꼴 못 보겠다고 저리 똘똘 뭉치니, 그 작태를 본 빌헬름의 분노가 터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내가 황제인데!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인데!! 이 빌어먹을 빨갱이들!!”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내 기필코 저 불경한 놈들을 언제고 다 쓸어내주리.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놈들!”
안 돼. 그런 소릴 할 거면 내가 없는 자리에서나 하라고 이 자식아.
우리 아버지가 읽고 있던 신문 한 켠에 <아르민 로젠바움, 황제 폐하의 총신인가? 아니면 일확천금을 노리는 간신인가?> 같은 사설이 실리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내가 찍힌 것이다. 아니, 시발. 뭐 받은 것도 없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내가 라스푸틴처럼 카이저 가족들에게 세뇌빔을 쏜 것도 아닌데.
솔직하게 말해, 나는 황제를 너무 고평가했다.
비행기라는 재밌는 장난감을 굴리기 위해 해군이든 아니면 다른 어디든 예산을 빼올 줄 알았건만, 제국의 황제께서는 ‘비행기 뽑게 돈 더 줘.’ 하며 배를 벅벅 긁었다. 제국의 주인은 참으로 통이 크지 않은가. 의원들이 눈을 까뒤집을 만도 하다.
“로젠바움.”
“예, 폐하.”
“그대가 앞장서야겠다.”
“소인은 한낱 미천한 대학생에 불과한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는지요?”
“항공기와 항공 전력이 제국군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 그대가 내게 말했듯 직접 저 꽉 막힌 군인들에게 설파해줘야겠다. 총리가 의회의 눈을 뜨게 만드는 동안 그대는 군인들을 설득할 방도를 찾으라.”
카이저는 자신이 융커들을 붙들고 일일이 설득하는 건 채신머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귀신같이 나를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이건 바로 내가 바라던 바였다.
일단 독일 군부가 비행기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내가 나랏돈을 빼먹을 수 있다. 모름지기 장사 중 최고의 장사는 나라 상대로 한 영업이고,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장사가 있다면 당연히 군납이지.
군부가 ‘비행기? 그게 뭔데 씹덕아’ 같은 마인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 아르민 로젠바움은 아무 가치 없는 대학생 병역 자원 1에 불과하다. 그의 미래는 당연히 어두컴컴한 흙 파먹는 이등병. 군대에 처박혀 있는 동안 사회에 있는 경쟁자들은 열심히 비행기를 개발하고 사업을 일구겠지.
하지만 군부가 비행기를 미래 핵심 전력으로 인식한다면, 그제서야 아르민 로젠바움은 지금 헐값으로 부릴 수 있는 최고의 인재로 거듭나는 셈!
“제게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군부의 높으신 분들께 항공기의 필요성을 역설하겠습니다.”
“좋네.”
“하지만 현재로서는 다소 항공기의 성능이 아쉽다고 사료됩니다. 그들 또한 폐하를 위한 충심에서 우러나온 충언을 바쳤을진대, 제가 어찌 함부로 움직이겠나이까.”
나는 살살 돌려서 ‘군부에서 옛끼 이놈 하면서 죽빵 날리면 나는 곧장 끔살이잖아. 죽긴 싫어요’라는 뜻을 전달했고, 평생을 황실에서 살아온 빌헬름이 이 미묘한 행간을 읽지 못할 리는 없었다.
당연히 그의 눈매가 살짝 날카로워지고 말투 또한 퉁명스러워졌다.
“그럼 그대에겐 다른 방안이 있는가?”
“군부 인사들이 고려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도록 더 좋은 성능과 더 나은 제조 가격이 나오도록 연구와 개발을 시행하겠습니다.”
“좋다. 하루빨리 개발에 전념해 짐의 혜안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라.”
뒤늦게 숟가락 올린 주제에 ‘짐의 혜안’이라니. 그··· 자꾸 그러시면 제 충성심이 똑똑 연필심처럼 깎여버려요.
“그리고···.”
“그리고?”
“타국에 제가 제작한 비행기를 수출하여도 괜찮겠나이까?”
“물론이다. 짐이 어찌 신민들의 자유로운 상행위를 막겠는가?”
“그것이 프랑스여도 괜찮겠습니까?”
카이저는 잠시 움찔하더니, 씨익 웃음을 지었다.
“당연한 말을 묻는구나. 그 개구리 놈들이 제발 팔아 달라고 비는 꼴을 보고 싶군.”
됐다.
카이저와 나는 석간 신문 헤드라인에 <자랑스러운 독일의 비행기, 프랑스 군부가 먼저 수입해 갔는데?> 같은 기사가 박히는 날을 상상하며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크헤헤헤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독일인의 마음을 건드는 덴 프랑스 수출만 한 게 없지.
그리고 나는 ‘2년 내로 실용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할 것’이란 특명을 받았다.
***
혹시 나는 전생에 세헤라자데였던 것일까?
성질 더러운 황제를 앞에 두고 김수한무거북이삼천갑자두루미 하면서 매일매일 아부 섞인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게 내가 태어난 목적일까?
– 미쳐버렸군. 헛생각할 시간에 차라리-
“생각해보니 전생의 업보가 보통 무거운 게 아니잖아. 왜 똥은 이상한 대머리 아저씨가 쌌는데 치우는 건 엉뚱한 놈이 치우지.”
– 내 경험과 지식을 날로 먹은 주제에 뻔뻔하긴. 네 인생을 짓누르고 있는 건 바로 전제군주제의 무게다. 내 업보가 아니라.
“아니, 독일 제국은 엄연히 입헌군주제라구요. 입헌. 저어기 야만인 러시아나 중국 황제 같은 전제군주랑 비비면 곤란한데.”
– 푸하하하핫!! 독일 카이저가 전제 군주가 아니라고? 우습군.
“조스비. 그만.”
21세기 공화정 국가랑 비교하고 자빠졌네, 거참. 애초에 거기서 카이저가 되려고 했던 놈은 입 털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나는 앞에 놓여 있던 물잔에 담긴 물을 모조리 마셔버렸고, 물에 비쳐 있던 우리 AI 비서 범석이는 으악 하는 비명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말끔히 내 식도로 넘어가버렸다.
이제 좀 조용하구만.
내 항공 제국의 건설이 이제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었다.
1. 카이저의 이름을 팔아 투자자와 기술자들을 데려온다.
2. 미래 지식을 비빔밥의 참기름처럼 살짝 첨가한다.
3. 개발 완료
4. 수출!
5. 이 실적을 근간으로 머리 딱딱하게 굳어버린 군부를 설득한다.
음. 완벽한 순서야. 그 어떤 프로이센인도 부정할 수 없을만치 완벽한 스케줄표다.
나는 빠른 개발을 위해선 선구자의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들이대며 카이저를 설득했고, 체펠린 백작의 ‘후원자’ 포지션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 빌헬름은 마지막까지 참 졸렬하게 굴었다.
‘너 지금 결혼하려는 거 귀천상혼인 거 알지? 제국의 황제인 내가 도덕이 무너지는 꼴을 두고 봐야 해?’
‘내가 너그러운 황제니까 봐주는 거야. 딴놈이 황제였으면 너 큰일 났어.’
‘나는 절대 백작을 가리켜 멍청하다고 한 적이 없어. 우직한 사람이랬는데 주변의 간신배들이 멋대로 곡해한 듯?’
폐하··· 황제라는 양반이 어쩜 이렇게··· 밴댕이 소갈딱지 같습니까···.
“그래서, 기어이 이 늙은이를 부려먹겠다 이 말인가.”
“당연하지요. 앞으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시면서 황제 폐하의 은덕을 칭송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결혼하는 거 봐주겠대요.”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서 봐준다 함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다. 황제가 뭔가 힘을 써줘 도와준다는 게 아니라 그냥 생트집을 잡지 않겠다는 뜻. 참 뭐 같지만 어쩌겠어. 꼬우면 내가 총리든 총통이든 뭐라도 해먹어야지.
“이 내가 딸내미 평민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말년에 죽어라 일해야 하는 날이 오다니.”
“그래서, 싫으세요?”
“흐흐. 싫을 리가 있나. 마음 씀씀이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우리 폐하께서 한 입으로 두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그것만 생각하면 군침이 싹 돌고 입맛이 살아난다니까.”
아. 역시 백작도 쌓인 게 많았나 보다.
우리는 대대적으로 투자금을 끌어모으고, 베를린과 뷔르템베르크 근교에 각각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체펠린 비행선 회사>는 여전히 실용적인 비행선 제작을 목표로 운행.
그리고 이번에 새로 설립된 <(주)로젠바움 항공기 제조 회사>가 저 회사의 지분 상당수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비행선을 버리지 않겠단 의지를 표명한 셈.
슬슬 백작과 나의 힘의 균형이 뒤바뀌자, 나는 곧바로 범석이를 본받아 쿠데타에 나섰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린가?”
“말 그대로요. 제가 만든 비행기를 제가 몰지 않는다면 누가 신뢰하겠습니까?”
“지금 내 딸 결혼도 하기 전에 과부로 만들 심산이야?!”
“에이. 무슨 소립니까. 제가 만든 비행기가 왜 추락을 하겠어요. 혹시 못 믿으십니까?”
“이, 이, 이 개같은 놈···.”
죄송합니다. 개같은 집안에서 자라난 놈이라 그 정도 말로는 타격이 없어요. 노 데미지.
***
시간은 미친 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인재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매일같이 미친 듯이 비행기를 날려대며 미래 지식을 검토하고.
타이어 제조업체, 엔진 제조업체, 비행기 날개의 재료인 캔버스 제조업체, 비행선에 쓰일 알루미늄 가공업체 등등과 지속적으로 제휴를 맺어 품질을 끌어올리고.
이렇게 되자, 1년 만에 우리는 어마어마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전 세계적으로 촉발된 항공기 개발 경쟁에서 단연 선두를 장악할 수 있었다.
다만 유럽권은 어찌어찌 컨트롤할 수 있었지만, 대서양 건너 신대륙 같은 경우엔 우리가 낸 특허를 존중하는지 아님 찜쪄먹는지 전혀 알 방도가 없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인이 딴 특허 중 탐나는 게 있으면 나라도 일단 베끼고 본다. 훔치면 되는데 왜 돈을 줘야 하지?
내가 훔치는 건 의적 행위지만 내가 털리는 건 자본주의를 무시한 더러운 행위인 관계로, 내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믿을 만한 사냥개를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니까, 저희에게 신대륙에서의 독점적 라이센스를 부여해주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봐 왔지만, 여러분들만큼 비행에 대한 열의와 순수한 마음을 지킨 사람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로젠바움 씨의 항공학 개론은 저희의 눈을 뜨이게 했습니다. 그렇게 너무 추켜세워주시면 감격에 몸을 가눌 수가 없게 됩니다!”
“저는 진심입니다. 만약 원하신다면, 로젠바움 항공제조사의 미국 지사를 맡길 수도 있습니다만-”
“하게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대서양 횡단 여객선 삼등칸을 타고 꾸역꾸역 미국에서 독일까지 찾아온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
나는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직함과 권능, 그리고 변호사 군단을 맡겨 도로 미국으로 돌려보내는 선에서 신대륙에 대한 고민을 끝냈다.
그렇게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이제 때가 된 것 같군. 슬슬 군부와 논의해 보는 게 어떻겠나?”
“알겠습니다.”
나는 비로소 독일 군부와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돈 벌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