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178)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178화(178/246)
178화 옛 질서의 종말 (1)
1939년 9월 25일.
포성이 멎었다.
평화조약이나 휴전 협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귀청을 찢어놓을 듯한 대포 소리는 울려 퍼지지 않았다.
하늘을 수놓는 항공기들의 치열한 공중전도 벌어지지 않았다.
돌격을 알리는 외침과 기관총 갈겨대는 소리도 전혀 없었다.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일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포위망이 말끔하게 봉합되었고, 그 안에 갇혀 있던 모든 연합군 장병은 기진맥진한 채 항복해 순순히 무기를 내려놓은 뒤 포로수용소로 향했다.
영불해협의 제해권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던 지중해함대는 런던의 명령에 따라 뱃머리를 돌렸다.
백만 대군의 포위섬멸이라는 대업을 이룬 독일군 장병들은 천천히 걸어 내려가 파리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최후의 방어선 근처까지 진격했고,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참호를 파 그곳에 주저앉았다.
마찬가지로 프랑스군 또한 강 건너에 진을 친 독일군을 응시하긴 하되, 새로운 전투를 열기 위한 포격을 개시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 이탈리아의 경계 또한 고요히 산새 지저귀는 소리와 염소 울음소리만이 들릴 뿐.
끝났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쟁은 끝났다.’
이 전쟁에 휘말린 모든 국가의 모든 장병들이 그렇게 무심결에 생각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전의로 불타는 장군이나 정치인이라 한들, 여기서 이 기묘한 평화를 깨고 새로이 불꽃에 장작을 던질 용기가 샘솟지는 못했다.
누가 여기서 감히 더 많은 희생, 더 많은 죽음을 부르짖으랴?
차라리 독일이 승기를 몰아 계속해서 진격해 온다면 침략자에 맞서야 한다고 외치기라도 하련만.
베를린과 빈, 프라하의 모든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외치고 국기를 휘날리며 기적적인 대승리에 열광하고 있을 때.
런던과 파리, 로마는 끔찍한 고요함에 휘감겨 있었다.
정부와 군을 저주하는 시위대도 없었다.
복수를 부르짖으며 끝까지 싸우자는 열변도 없었다.
그 고요함의 의미가.
위정자들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
대영제국.
런던.
“왜 그렇게 조용한가?”
“왜냐니.”
“불독처럼 맹렬히 짖을 줄 알았는데.”
자택에서 노동당의 애틀리와 만난 처칠은 나이트 가운 차림으로 터덜터덜 몸을 이끌며 술잔에 얼음 몇 개를 때려넣고 물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짖고 싶지.”
“그런데?”
“지금 짖었다간 제명에 못 죽을 것 같거든.”
확신했다.
독일에겐 더 이상 남은 원자폭탄이 없다.
있더라도 런던에 던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했고, 육군 장관인 그는 모든 육군을 대륙에서 날려먹었다.
“모두가 원자폭탄에 가루가 될 각오를 하고 최후까지 항전해야 합니다. 저들은 결코 바다를 건너지 못합니다. 하늘에서, 해변에서, 사막에서 우리는 적과 맞서서 최후의 승리를 거머쥐어야 합니다··· 라고 외치고 싶은데.”
“그런데?”
“버텨도 이길 방도가 보이지 않아. 졌어.”
땡그랑.
잔에 홀로 남은 얼음만이 처칠의 마음을 대변하듯 휑뎅그렁한 소리를 내뱉었다.
“소련 대사가 폴란드와의 평화 협정이 파기되었음을 통보했네.”
“소련이 선전포고했다고?”
“아니. 폴란드가 군사행동을 일으켰으니 기존의 전쟁이 재개되었다고.”
소련은 공을 그들에게 넘겼다.
여기서 연합국이 동맹인 폴란드를 위해 소련에게도 선전포고문을 날릴 것인가, 아니면 ‘저건 지난 전쟁의 연장선상이니 우리 전쟁은 아님’이라고 발을 뺄 것인가.
그리고 영프의 머리에 우동사리가 들어찬 게 아닌 이상, 여기서 소련과의 전쟁을 열어젖힐 미친놈은 없었다.
스탈린의 교묘한 액션은 연합국에게 여러 두통거리를 제공했고, 사실상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영국이 <최후의 승리>를 거머쥐려면 세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미국의 참전.
식민지의 안전.
원자폭탄 개발.
“일본이 동남아를 노리고 소련이 인도로 남하한다면 우리는 버틸 재간이 없어. 우리가 지금부터 원폭 개발에 전념한다 하더라도 독일은 그사이 몇 발을 더 만들어 쟁여둘지 짐작도 안 되고.”
결국 처칠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꺾이고 말았다.
윈스턴 처칠은 망집에 사로잡혀 헛소리나 지껄이는 제국주의자가 아니다. 제국주의자도 맞고 헛소리도 하지만 단순한 극렬 호전광은 아니라는 뜻.
그는 호걸은 호걸을 알아보듯 진짜배기 미치광이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세계 정세의 흐름을 꿰뚫어볼 통찰력 또한 탑재했고, 어떻게 해야 궁극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도 능했다.
다만 모험주의적 성향과 화려한 쇼맨십, ‘안 되면 되게 하라’식 오더가 그를 똥볼의 대명사로 만들었을 뿐.
<참호를 돌파할 육상전함을 만들자>는 또라이 같은 아이디어를 적극 후원해 전차 개발로 이어지게 한 이도 처칠이지만, <유보트가 날뛰니 빙산으로 항공모함을 만들자>는 또라이 같은 아이디어 또한 적극 후원했다가 실패의 쓴맛을 본 이도 처칠.
그 어떠한 절망적 난국 속에서도 실낱같은 승산을 찾아내 이리 같은 집요함으로 승리를 부르짖는 천하의 처칠조차 지금 상황에서 승리의 단서는 전혀 찾아내지 못했고.
제국의 종말을 맨정신으로 직시할 수 없었던 그에게 남은 건 맛 좋은 알코올뿐이었다.
숫제 병나발을 부는 듯한 처칠의 작태를 본 애틀리는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총리께서는 좀 어떠신가?”
“죽어가고 있네. 그분에게 남은 건 이제 책임감뿐이야.”
앙상하게 껍데기만 남아버린 체임벌린은 오로지 의무감과 책임감 하나만으로 목숨줄을 부여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서 굴욕적인 협상문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는 것.
자신의 거대한 과오를 다른 이에게 전가하지 않는 것.
그것이 당장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체임벌린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우는 마지막 이유였다.
체임벌린에 대한 원한이나 불만이 결코 없지 않은 두 사람이었지만, 가시 면류관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그 모습을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덜컥 죽어버리면 그들이 총리가 되어 협상장으로 끌려갈 판이었으니까.
“총리를 위해.”
“총리를 위해.”
잔이 부딪히고, 두 사람은 다시금 술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우리는 패전의 책임을 져야 하니··· 협상이 끝나면 내각에서 물러나야겠지. 역시 제1야당인 노동당이 다음 정권을 인수해야 하지 않을까?”
“농담이라고 들으리다. 우리더러 30인 참주(Thirty Tyrants)가 되라고? 이번 기회에 다 뒈져라?”
“어허. 로젠바움이 아마 그걸 요구하지 않겠나 싶은데.”
“로젠바움은 그 결말도 뻔히 짐작하지 않을까 싶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 제국을 격파하고 새롭게 패권을 잡은 스파르타는 패배한 아테네에게 민주정을 포기하고 자신들과 같은 과두정 국가로 체제를 바꿀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렇게 성립된 30인 참주정은 고작 1년 만에 내란과 쿠데타로 무너졌다.
여전히 그들은 믿기지가 않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되새김질해도 왜 졌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냥··· 로젠바움이 나폴레옹이었을 뿐이야. 그게 다야.”
혁명의 깃발을 들고 일어선 독재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군사의 천재.
사기도박에 휘말려 어어 하는 사이 전 재산을 날려버린 호구처럼.
그들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연신 술만 축냈다.
승자의 요구조건을 듣기 전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로젠바움은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모든 연합국에 휴전 협상을 제안했다.
***
연합국 내부의 의견 조율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우리 영국 정부는 패전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자신들 본국의 안전만 믿고 호전성을 불태우던 천하의 대영제국이 꼬리를 내렸다.
영국이라는 최고의 물주이자 후원자가 무너지자, 페탱이 아무리 일갈하며 그들의 자긍심과 민족주의에 호소해도 프랑스의 정치가들 또한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이 머저리들! 중요한 건 의지요! 결코 꺾이지 않는 투쟁심!”
“그래서 저 원자폭탄이 머리 위에 떨어질 때의 해법이 있습니까?”
“우린 다 끝났습니다. 간신히 회복시킨 경제를 모조리 잿더미로 돌리고, 무수한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승리를 거머쥔다? 가능합니까? 이기면 대체 뭘 얻습니까?”
군부 또한 사정은 비슷했다.
아르덴 고원이 뚫렸을 때부터 이미 프랑스 군부는 끔찍한 무기력증과 허탈감에 잠식당해 있었다. 페탱은 정치인들보다도 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부하들을 보며 눈물만 흘렸다.
영국과 프랑스가 손을 털기로 결심한 이상 이탈리아엔 선택권이 없었다.
“폐하. 우리의 동맹이라는 자들이 모두 포기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승산이 있기나 한가?”
“······없습니다.”
“무솔리니. 그자가 결국 이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었구나!”
국가 파시스트당과 국왕은 그 무솔리니에게 권력을 쥐여준 게 누구인지는 쏙 빼먹고 놀랍도록 빠르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로젠바움과 무솔리니의 악연과 끝없는 충돌을 모르는 이는 이 세상에 없었고, 무솔리니는 모든 군권을 빼앗긴 채 자신이 세운 당인 파시스트당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에게 총리직이나마 남아 있는 이유는 체임벌린과 똑같았다. 도장 찍고 책임을 져야 하니까.
애초에 이해득실을 따져 모인 조원들인 영프이가 다른 사람 성적표에 F가 뜨든 말든 관심 가져줄 일은 없었다.
그들은 머릿속에서 폴란드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재빨리 잊었고, 벨기에 – 네덜란드 – 룩셈부르크 3국 또한 스리슬쩍 버렸다. 독일이 저 나라들을 탈탈 털어먹어 배가 부르면 자신들을 덜 족치지 않을까?
그렇게 10월 1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연합국의 정치 지도자와 군사 관계자들이 베를린으로 왔다.
무수한 국가가 이전투구를 벌이며 평화협상 문건의 자구 하나하나를 아귀 떼처럼 따지던 1919년과 달리, 1939년의 전쟁은 독일의 통지를 받아들이냐 마냐가 전부였다.
그러나.
독일의 제안은 그들의 예상 바깥이었다.
***
필리프 페탱 원수는 이번 휴전 조약 체결을 끝으로 영원히 세상과 담을 쌓을 작정이었다.
프랑스군은 나태한 나무늘보로 퇴화해버렸다.
더 이상 이놈들에겐 명예도 규율도 자긍심도 없었다.
20년 만에 패배해 모든 것을 잃으려고 대전쟁에서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렸단 말인가?
5년 동안 인세에 지옥을 불러오면서 얻은 승리의 대가가 고작 한 달 만에 도로아미타불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지금··· 조금 많이 당황스러웠다.
“대전쟁의 영웅, 페탱 장군을 이렇게 뵙게 되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나폴레옹의 재림.
20세기 최고의 독재자, 국가 수반, 군사 지도자.
그가 지금 적국인 프랑스군의 수장을 향해 깍듯한 존경을 표하고 있었다.
“이 늙은이를 보자고 한 용건을 듣고 싶소만.”
“딱히 없습니다. 제 개인적 소망 성취가 전부입니다.”
“패배한 노장에게는 굴욕적인 말이구려.”
“장군께서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패한 건 프랑스지 장군이 아닙니다.”
“어째서요?”
“프랑스가 장군의 주장대로 최후까지 항전을 결의했다면 이 전쟁의 향방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졌을 겁니다. 루즈벨트와 스탈린은 유럽 정세에 개입할 시간을 벌었을 테고, 말 그대로 엄청나게 죽어나갈 프랑스인들의 절규는 참전 여론을 조성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프랑스는 마음이 먼저 꺾이고 말았습니다. 장군을 따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지요.”
우스운 일이었다.
조국 프랑스의 언론은 연신 그에게 패전의 책임을 씌우려 안간힘을 쓰는데, 적국의 수장이 그를 인정해주다니.
“이거,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앉으시지요. 장군의 군략을 보고 배운 후배가 한잔 내드리겠습니다.”
얼떨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강대한 독일의 수장이 그에게 이토록 사근사근하게 굴 이유가 없었다.
페탱은 끝없이 찬사와 존경을 표하는 위대한 승리자가 건네주는 술을 한 잔 두 잔 계속해서 마셨고, 웅혼한 와인의 풍미가 그의 목젖을 때릴 때마다 갈기갈기 찢어진 자존심이 봉합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몇 시간 동안 그들은 눈앞의 협상 대신 과거 이야기만을 떠들었다.
영광스러웠던 시절.
1914년 8월의 포성이 터져나오기 전,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던 시절.
한참 로젠바움이 첫 비행기를 만들 시절의 이야기를 떠들던 그때.
그는 화제를 돌렸다.
“결국 모든 것은 지도자의 역량, 그리고 국민이 얼마나 똘똘 뭉쳐 화합하느냐에 달렸습니다. 1914년을 생각해 보시죠. 카이저는 무능했고, 프랑스의 모든 이들은 승리를 위해 단결했습니다.”
“흐흐. 꼭 그렇지만도 않아. 그때도 프랑스는 개판이었거든.”
“독일보다 덜 개판이었으니 이긴 거 아닙니까. 조프르는 팔켄하인이나 루덴도르프에 비하면 명장이죠, 명장.”
“하하핫!!”
“평생 프랑스와의 우호선린을 가슴에 담고 있던 저로서는, 프랑스가 다시금 유럽의 강국으로 우뚝 서 세력 균형에 보탬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 프랑스를 뭉개놓고 잘도 지껄이는군!”
“저는 진심입니다?”
페탱은 로젠바움의 강렬한 시선을 느꼈다.
혼자 힘으로 유럽의 패권을 거머쥔 패왕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수십 개의 정당이 할거하고 전 국민이 이념과 사상 갈등으로 분열된 나라는 정상이 아닙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처럼요.”
“······.”
“민족혁명주의는 바로 그 어지럽던 바이마르 공화국에 평화와 영광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뚝심 있고 강력한 지도자 아래 총단결하는 국민! 독일의 재흥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뭘 원하나?”
“장군께서 나라를 바로잡으셔야죠.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뒤로하고 구국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명의(名醫)는 프랑스에 오직 한 사람, 필리프 페탱뿐입니다.”
술기운이 싹 가셨다.
놀랍도록 머리가 맑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페탱은 로젠바움의 면전에 침을 뱉고 자리를 뛰쳐나가지 못했다.
이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다.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오직 나.
나뿐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저 보나파르트가 말하고 있었다.
차갑게 식었던 페탱의 의무감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