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187)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187화(187/246)
187화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4)
나의 옛 주군이자 벗, 애증의 대상 카이저 빌헬름 2세 aka 팔병신.
늙고 병들어 이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준비에 분주한 노인네를 보니 어째··· 내 인생을 매조지을 준비도 슬슬 갖춰야겠단 생각이 든다.
– ···그건 또 맞는 말이지.
내가 몇 년을 더 살까?
시가를 마르고 닳도록 피워대고 브랜디를 물처럼 들이켜대는 삶을 살았으니, 이러고도 오래 살 생각을 하면 그건 양심 없는 소리.
환갑에는 슬슬 내려와야 한다.
조지 워싱턴처럼 8년만 하고 물러나기엔 이미 늦었지만, 최소한 이 총통이라는 자리가 종신직으로 인식되면 안 된다는 확신은 있다.
근데 문제는···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단 말이지.
괴링이든 슈미트든, 과연 나만큼 잘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까?
유럽의 정복자라는 이 휘황찬란한 타이틀이 사라지면 그만큼 독일을 향한 군사적 압력이 더 커지진 않을까?
아르민 로젠바움이라는 영웅에 대한 광신적 지지와 압도적 믿음이 사라진다면 정치판은 얼마나 더 혼란스러워질까?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참극에 진저리를 치던 국민들은 과연 차기 총통직을 놓고 벌어질 암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 모든 지도자는 ‘나 아니면 안 돼’ 증후군에 시달리지. 그래서 워싱턴이 위대한 인물로 거론되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 깔끔하게 소련과 전면 핵전쟁 어떠냐? 모스크바의 정복자가 된다면 역사에 영원히 네 이름을 각인하고 칭기즈 칸을 뛰어넘은 전설로 남을 수 있- 캬아아악!!
전쟁 못 해서 걸신이라도 들렸나 진짜. 치킨호크 같은 말을 하는 네게 닭벼슬을 달아주마.
괴링이든 슈미트든, 둘 다 군사적 재능이나 경륜이 풍부한 건 아니다.
누가 계승을 하든 군부는 일단 한번 으깨줘야 한단 뜻. 그러지 않으면 프로이센의 전통에 따라 ‘군대가 나라를 가지는 게 독일의 섭리 아닌가?’ 하면서 구국의 결단 같은 헛꿈을 꿀 종자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내 죄책감은 팔병신의 아들들과 만나면서 금방 사그라들었다.
***
빌헬름 2세 슬하엔 현재 다섯 아들과 딸 하나가 살아 있다.
장남 빌헬름.
차남 아이텔 프리드리히.
삼남 아달베르트.
사남 아우구스트 빌헬름.
오남 오스카.
고명딸 빅토리아 루이제.
– 이름만 들어도 헷갈리는데? 이놈의 집안은 어째 전부 다 프리드리히 아니면 빌헬름이야.
호엔촐레른 집안이 원래 좀 작명 센스가 구리지.
조부 빌헬름 1세 – 부친 프리드리히 3세 – 팔병신 빌헬름 2세 – 황태자 빌헬름이다. 이쯤 되면 나도 빌슈타트 붕괴 오네.
당연한 말이지만 저 집안에서 왕정복고를 희망하고 사민당 빨갱이를 저주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 삼남 아달베르트를 빼곤 모조리 철모단이니 국민당이니 하는 극우 반동 군국주의 보수 단체에 가입해 음으로 양으로 활동했고, 나와 칫솔수염의 운명적 대결이 벌어졌던 1932년 대선 때는 당연히 히틀러를 지지했었다.
– 내가 알기로 왕가 놈들이 그 정도로 열성적인 히틀러 지지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로 인해 역사가 바뀌었단 거겠지.
네덜란드로 쫓겨난 카이저를 위해 가끔 안부 편지나 용돈을 조금 부쳐주긴 했지만, 나는 사민당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고 범-좌익 세력을 결집해 선거운동에 나섰었다. 반면 히틀러는 범-우익 세력을 모조리 끌어모았고.
아달베르트는 다른 빌헬름의 자식들이 모조리 육군으로 간 것과 달리 해군 장교로 입대했었고, 몸도 허약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어 집안과도 거의 연을 끊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개입할 즈음엔 스위스로 완전히 이주해 지금은 이름조차 숨기고 살고 있다.
반면··· 우리 황태자 나으리는?
“로젠바움 총통의 충심에 아바마마께서 너무나 기뻐하셨소. 고맙소. 정말 고맙소.”
“충성의 맹세가 어찌 이대로 사라지겠습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도리를 다한 것뿐입니다.”
“내 그대가 영웅인 줄은 진즉 알고 있었건만, 인품조차 하늘에 닿았을 줄이야!”
황태자 빌헬름.
“죽은 슐라이허가 입만 열면 귀하를 음해했었지. 그 반역도가 조국에 얼마나 크나큰 해악을 끼쳤는지를 알면 참 소름이 끼치오. 내가 그런 흉악무도한 작자와 잠깐이나마 친교를 맺었었다니!”
절친이 슐라이허. 그 새끼에게 시달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가 갈린다. 일단 여기서 감점.
근데 이제 그 죽은 절친을 깔아뭉개서 대화 소재로 삼고 있네. 감점 또 추가.
– 뭐야. 그럼 뭐 어쩌란 말이야?
만약 어깨 쫙 펴고 ‘슐라이허 그놈이 그래도 마지막 남은 황실의 충신이었다. 걔와 함께 왕정복고를 꾀했지만 실패해서 아쉬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면, 나는 황태자를 최후의 호엔촐레른이자 피우지 못한 왕재(王才)로 대우해줬을지도 모른다.
그럴 기개와 배짱이 없다면, 아예 한없이 납작 엎드려 명예고 나발이고 다 내팽개친 채 살려만 달라고 기었어야지. 무솔리니처럼.
황태자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내 앞에서 저 미묘한 화법은 뭐란 말인가. 여전히 본인이 더 높은 신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그러면 왜 뒈진 슐라이허를 팔아가며 내게 아부하려 하는가?
내가 좋지 않게 생각하던 팔병신의 재위 시절 버릇, <잘못은 신하에게 떠넘기며 면피하기>를 그대로 물려받은 꼬락서니 아닌가.
불쾌함만 차올랐고, 그 덕분에 망설임도 끝났다.
“실은 폐하께서는 전하께 적당히 황실의 명예를 보전할 만한 직책을 맡겨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국립 호엔촐레른 미술관 관장 같은.”
“으음··· 내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실무를 하고 싶으시다면, 보훈청장 자리도 생각해 두었습니다. 의전을 행할 일도 많고 적당한 자리지요. 이번 전쟁에서 그래도 가족을 잃거나 상이군인이 된 자들이 제법 있으니 그들을 돕는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황태자 빌헬름은 여전히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 좋다. 아주 좋아.
“하지만 정녕 대업을 꿈꾸신다면, 밑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밑에서라 함은?”
“지금 이 나라는 민족혁명당 일당이 통치하는 국가입니다. 대성하고 싶으면 마땅히 당무(黨務)를 맡아야지요. 제 측근들 또한 민족혁명당의 크고작은 직책을 맡음으로써 비로소 커리어를 시작했다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지막 기회다, 아들 빌헬름.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이고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 된다.
자, 어떡하고 싶지?
“나는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소. 그것이 내게 주어진 책무라고 믿지 않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네.”
“그렇다면 입당 선서를 하셔야 합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물론. 국민을 섬기고자 하는 의지에 어찌 차등이 있을까?”
실은 이 황태자는 1920년대, 힌덴부르크가 출마했던 그 선거 때 대통령 출마를 검토한 적이 있었다. 대통령이 된 뒤 왕정을 부활시키겠단 참으로 간 큰 계획이었다.
하지만 카이저가 이를 강력하게 뜯어말려 계획을 실현에 옮기진 못했는데, 팔병신이 이를 말린 이유는 ‘대통령에 취임하면 공화국에 충성하겠다고 서약해야 하는데 그러고 나서 왕정을 복고하면 맹세를 어기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엔 맹세의 중대함보단 낙선했을 때의 개망신이 더 큰 것 같지만.
아무튼 민족혁명당 입당 또한 충성 맹세를 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인데도, 그는 어떠한 거리낌 없이 입당을 선택했다.
이렇게 기회를 잔뜩 주는데도 결국 독배를 들다니.
이 순간 그의 운명은 확정되었다.
누가 봐도 내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처럼 초고속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다가.
물로켓처럼 고꾸라져 들판에 처박히는 것.
연신 눈을 반짝이며 떠들어대는 황태자는 이미 내 눈엔 영정사진으로 보이고 있었다.
***
체코슬로바키아는 이즈음 국가 탄생 이래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크, 크어어어!!”
“여기 맥주 한 잔 주소!”
“다 내놔! 내가 다 처먹어버릴 거야!”
“느껴지나? 열강을 격파한 우리 군의 막강한 힘이?”
“아아··· 우리는 열강마저 격파해버린 위대한 체코슬로바키아다··· 유럽의 2인자··· 유럽의 중심···!”
“유럽의 뇌는 이제 베를린이다. 하지만 유럽의 심장은 바로 프라하다!”
하루아침에 베를린이 불타오르더니 정체불명의 괴상망측한 국가, 민족혁명공화국으로 독일이 변신했다.
그 뒤 주데텐란트 분쟁이 발발하며 전쟁 위협을 느낀 게 엊그제 같았는데, 오히려 전 세계에서 돈이 콸콸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지? 구석탱이 존재감 제로였던 우리가 알고 보니 전설의 용사?”
“로젠바움은 신이며 베네시 대통령은 신의 사도이다!”
“작별이다, 무솔리니··· 체코가 없는 시대에 태어났을 뿐인 범부여···.”
처음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땐 이 기분을 만끽하지 못했다.
체코는 승리자가 되었지만, 폴란드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유대인들이 독립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웃한 국가인 오스트리아가 한순간에 이탈리아의 손에 잔혹하게 짓밟히는 모습을 보았고, 영국과 프랑스가 이를 묵인하다 못해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 작태를 접한 그들은 자신들 또한 언제든 민족 문제를 빌미로 외세에 의해 찢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로젠바움 전쟁, 한 달 전쟁이 발발하며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조국을 지키자!”
“무솔리니의 코뼈를 으스러뜨리자!”
“체코슬로바키아의 아들딸들이여, 패배는 곧 멸망이며 노예가 되는 길이다! 우리의 자유를 위해 싸우자!”
건국 이래 미증유의 국난.
비록 독일에게 휘말려 끼어들게 된 전쟁이었지만, 무솔리니는 언제나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이용해 체코에 어깃장을 놓고 싶어 하던 극악무도한 독재자.
바로 그가 체코 멸망을 목표로 마침내 이빨을 내밀자, 체코슬로바키아를 구성하는 모든 민족들은 비로소 절박함과 함께 강렬한 애국심을 느꼈다.
위기 속에서 민족을 뛰어넘은 <체코 시민>이라는 무언가가 제련된 것이다.
체코라는 국가를 책임지는 고관들 또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열강이라고 으스대더니, 우리의 주먹 한 방에 엎어지는 허약한 놈들일 줄이야!”
“이제 우린 살았습니다. 아니, 살아난 것뿐입니까? 프라하가 바야흐로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독일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자유무역협정을 뛰어넘어서 모든 경제적 장벽을 허무는 게 어떻습니까?”
“다들 자중들 좀 하세요!”
베네시 대통령은 이들을 보며 목청을 높였다.
이 정도의 대승은 그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이래서야 독일의 패권과 국가의 명운이 일치되어버리지 않았는가? 독일이 패권을 잃는 날은 곧 체코 몰락의 시작이 되고 말 터.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독일은 우리의 혈맹이지만, 우리가 완전히 독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로젠바움주의를 받아들일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우리는 독일과 더욱 긴밀해지면서도 동시에 우리만의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유럽의 제2인자로 우뚝 선··· 우뚝··· 크하하하하!!”
애써 입 안의 생살을 씹어대며 웃음을 참던 베네시조차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다.
유럽의 2인자 체코슬로바키아!
압도적인 뽕맛에 결국 베네시조차 정신줄을 놓고 이 행복을 즐기기로 했다.
때는 바야흐로 1939년 12월.
체코 전역에 국부 마사리크, 베네시 대통령, 그리고 로젠바움 총통의 초거대 초상화가 좌악 깔리고 모두가 풍악을 울릴 무렵.
[국민 여러분! 지금 막 위대한 승리자, 로젠바움 총통 각하께서 전용 열차에서 내리고 계십니다!] [저 열차에 주목하십시오! 베를린에서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프라하역에 정차한 열차를! 앞으로 모든 독일과 체코 시민권자는 그 어떠한 비자도, 사전 신청도 없이 양국을 왕래할 수 있습니다!]“우아아아아악!!!”
“하일 로젠바움!!”
“총통 각하! 여기를 봐주세요!!”
“제 아들! 아들 손 한 번만 잡아주세요!!”
프라하로 전 유럽 국가 수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프라하 조약기구>를 위한 회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