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2)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2화(2/246)
개구리 소년
1893년.
독일제국, 프로이센, 베를린.
가정폭력범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바깥에서도 버러지이고 집안에서도 버러지인 종자. 이 경우엔 보통 가정폭력범이라기보단 ‘인간쓰레기’라는 더욱 정확하고 세분화된 타이틀이 있고, 가정폭력은 이 인간쓰레기가 저지르는 무수한 개짓거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문제는 두 번째.
바깥에서는 말짱한 사회인인 척 구는 인간이 집 문지방만 넘으면 여포가 되어 깽판을 치는 경우.
와장창!
“이 빌어먹을 집구석!”
“꺄아악!”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어! 너는 남편이 돈 벌어오는 동안 청소 하나 똑바로 안 했어? 내가 돈 갖다 바치는 물주로나 보이지? 응?!”
술에 떡이 된 채 집에 들어온 남자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부인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좋게 말해 평범하게 생긴 남자에 비해 부인은 길에 나가면 십중팔구는 돌아볼 만치 아름다웠는데, 오래전부터 끝없이 되풀이되어 온 폭력에 이제는 완전히 꺾여버려 잠자코 그 주먹을 맞기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상시와 약간 다른 점이 있었는데.
“아빠!! 아빠!!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제발 그만해주세요!”
“뭐야, 너도 꼴에 사내새끼라고 반항하냐! 그럼 질질 처울지나 말든가! 아가리 안 닫아?!”
취한 애비가 집안에 들어오면 항상 제 방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아들.
하지만 오늘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뛰쳐나와 애비를 말리기 위해 몸을 꽉 붙들었다.
하지만 그 처절한 모습은 오히려 술에 뇌가 쩔어버린 남자의 화만 돋우었고, 그 분노는 곧장 따귀가 되어 아이를 덮쳤다.
빠아아악!!
소년은 그 엄청난 충격에 몸이 붕 뜨며 그대로 벽까지 날아가 처박히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이 베를린에서도 흔한 이야기.
“아르민, 아르민? 얘야?!”
충격을 받은 아이가 곧장 게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으며 발작을 일으키자, 방금까지 몸을 공처럼 말고 폭력을 뒤집어쓰고 있던 어머니가 아이를 붙들었다.
“나, 나는. 훈육을.”
“빨리 마차 잡아요! 빨리!”
“나는 애 버릇을 고치려고 했을, 뿐이라고.”
“애 죽으면 당신 절대, 절대 가만 놔두지 않아. 알아?! 죽여버린다고! 당신도 나도 다 줄초상 치러버리기 전에 빨리 나가서 마차 잡으라고!!”
“그, 그, 그러지. 의사. 의사. 의사···.”
부성애가 알콜 기운을 내쫓아서일까, 아니면 ‘아들 죽인 애비’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사회적 명성이 파탄 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일까.
남자는 곧장 모자를 고쳐 쓰고 밖으로 뛰쳐나가 마차를 잡았다.
아이는 병원에 입원했고, 며칠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죄송합니다만,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더 실력이 좋은 의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눈을 까뒤집고 발작을 일으키길 수십 차례.
의사조차 이런저런 치료를 시도해봐도 딱히 수가 없었고, 생전 처음 보는 이 기이한 증상에 결국 ‘최대한 노력해보겠다’라거나 ‘마음의 준비’ 같은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늘이 이 가정을 버리지 않은 것일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느 순간 소년의 이러한 기이한 증세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잔잔한 강 같은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 기적 같은 회복에만 모두의 신경이 집중되어서였을까.
그날 이후 소년의 행동거지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은 얼마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
온몸이 쑤신다.
아파서가 아니다.
이 비좁은 병상에 하도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진짜 욕창 생기겠어.
나는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병원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아르민 로젠바움(Armin Rosenbaum).
술만 먹으면 휴먼에서 멍뭉이 뽀삐로 종족이 바뀌는 웨어울프 애비를 둔 어린애.
보통 사람이라면 뜬금없이 ‘나는 누구인가’ 같은 고민을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뭔가 철학적인 질문 같잖은가.
하지만 나는 지금 매우 진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십몇 년쯤 살아온, 그것도 그중 몇 년은 응애응애거리며 기어다닌 게 전부였던 소년의 뇌에 난데없이 반세기 이상 살아온 미래인의 지식과 기억이 처박혔으니까.
나는 머리가 으깨지는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며 긴 시간을 보냈고, 나라는 존재의 자아는 당연히 몇 배는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조 뭐시기 장군의 자아로 덮어씌워지는 듯했다.
펄펄 끓는 주전자에 던져진 각얼음 하나처럼, ‘나’라는 존재가 조 중장이라는 노인의 자아에 뒤덮였다.
1893년을 살아가던 소년의 인격이 소멸하고, 백여 년 전의 과거로 떨어진 한 장군만이 남으려는 그 순간.
갑자기 기적과도 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가 왜 조범석이어야 하는가?
그렇다.
실로 유레카였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를 외친 것처럼 거무튀튀하던 내 정신세계에 갑자기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이 피어오른 것이다.
조범석.
평생 일해서 남은 건 반역자라는 끔찍한 타이틀에, 가족도 없고, 나라도 망해 가고, 남길 무언가도 전혀 없고··· 그냥 실패자 아닌가?
발작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고찰해 본 결과, 내가 굳이 나 스스로를 ‘인생 참 알차게도 꼼꼼히 말아먹고 독방에서 약 먹고 자살한 노인네’로 정의 내리는 건 하등 쓸모없는 짓거리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잊을라치면 가정폭력이 벌어지는 개같은 집에서 사는 인생이라지만, 조 아무개에겐 없는 밝고 찬란한 ‘미래’라는 게 있잖은가.
청춘 압수라니. 아무리 따져봐도 이건 좀 아니지.
설령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 “너는 사실 조 중장이 맞단다!”라고 말씀해 주실지라도 “아니오, 죄송한데 저는 그런 사람 아닌데요”라고 말해야 하리라··· 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독약 먹고 죽은 귀신의 영압이 사라지면서 비로소 발작 또한 멈추었다.
다 끝난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평화를 되찾았고, 팔다리가 묶인 채 병실 침대에서 몇 번이고 진찰인지 심문인지 헷갈리는 의사와의 대담을 나눠도 참으로 느긋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내가 겪은 이 놀라운 철학적 난제에 대해 한참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자아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그건 이제 의미 없다. 진실이 궁금한 게 아니니까.
지금 중요한 건 이 미래 지식.
그래, 갑자기 알게 된 이 미래.
산타 할아버지는 그동안 항상 착하게 지냈던 어린이인 내게 단 한 번도 선물을 주지 않았었는데, 밀린 선물의 이자까지 쳐서 미래 지식을 주실 줄은 몰랐다. 아주 행복했다. 옆집 한스가 그토록 자랑해대던 자전거는 이 끝내주는 선물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게 만약 틀렸다면··· 얌전히 정신병원에나 들어가야지. 아니면 콧수염 기르고 미대에 가든가.
이 기억을 믿자면 미래에는 두 차례의 거대한 대전쟁이 몰아닥치고, 독일은 두 번 모두 전쟁을 일으켜 두 번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만다.
꼬꼬마 어린이가 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고민이지만, 어쩌겠나. 수십 년 분량의 기억을 접한 시점에서 강제로 철이 들 수밖에 없는걸. 사춘기를 이렇게 건너뛰게 될 줄이야.
아무튼, 그냥 평범하게 자랐다면 미우나 고우나 아버지의 길을 따라 금융인의 길을 걸었을 것 같지만, 이 프로이센이란 나라가 아주 곱게 빻은 밀가루처럼 아작이 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 할 일을 태연스레 할 강심장은 못 되었다. 전쟁터 끌려가서 죽으면 어떡해?
게다가 조범석 씨가 들었다던 마지막 말.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역사를 완전히 뒤틀어버리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하면 그 보상으로 소원을 하나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들었던 그 어떤 옛날이야기에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다. 요술 램프를 문지르면 소원을 들어준다거나, 혹은 영혼을 팔아서 소원을 성취한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당연히··· 미국행.
미래에 미국이 그토록 막강해지고 세계의 패왕이 된다면, 이 악물고 돈 모아서 미국행 이민선 타고 미국에서 성공하면 될 일 아닌가? 이러면 전쟁이고 뭐고 없다.
하지만 미국에 간다고 했을 때 내가 저놈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미국은 역사의 승리자 아닌가. 굳이 ‘뒤튼다’라고 말한 걸 보면 미국행은 딱히 답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이 독일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아니, 구구절절 나 스스로에게 변명할 필요 없다.
나 혼자 몰래 미국으로 건너갈 수는 있을지라도 어머니와 함께 가긴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꼴에 애국심 같은 무언가가 이 나라를 뜬다는 선택지를 배제하고 있었다.
“엄마, 나 이제 퇴원해도 될 것 같은데.”
“좀만 더 있어 보자. 응? 기껏 퇴원했는데 또 문제 있으면 어떡하니.”
“아니, 나 진짜 괜찮다니까?”
말짱해진 지가 한참인데도 저렇게 걱정하시는 모습 좀 보라. 내가 미국으로 이민 가겠다고 하면 아마 졸도하실지도 모른다.
어찌어찌 퇴원한 뒤에도 달라지는 건 딱히 없었다.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다오.”
“아, 아빠···!”
나의 어깨를 꽉 쥔 채 조용히 읊조리던 아버지는.
“이 빌어먹을 집구석!! 이 망할 여편네!”
와장창!
접시 깨지는 소리 보소. 오늘도 집기가 남아나질 않는구나.
한 일주일 참더니 다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음주 복귀 사흘 만에 다시 개가 되었다.
또 시작됐다.
이불을 둘둘 말아 양쪽 귀를 가리게 세팅해 두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미국 이민이라는 선택지를 배제한다면, 독일에서 가장 빠른 출세 수단이라면 당연히 군인.
내 머릿속에 박혀버린 직업군인으로서의 오랜 경험과 지식을 쓴다면 출세하기는 쉽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신분제 국가.
귀족도 아닌데 군인으로 출세한다? 전쟁영웅이 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당장 미래에 나타날 <사막의 여우> 롬멜이 그 케이스 아닌가. 문제는 이 롬멜도 딱히 역사를 바꾼 위업을 달성하진 못했다는 것.
거기다 너무 늦다.
만약 여기가 미국 같은 개차반 나라라면 1차 대전 때 전쟁영웅이 돼서 고속 진급이 가능할지 몰라도, 독일제국이란 나라는 전공 좀 세운다고 해서 순식간에 별을 달 수가 없는 나라다. 다 늙어빠진 뒤에 별 달아서 뭐 하겠나. 미래 지식이고 나발이고, 진흙탕 참호 어딘가에서 죽을 확률은 일반 병졸보다 오히려 하급 장교가 더 높을걸?
도대체 뭘 해야 한다.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Der Vogelflug als Basis der Fliegekunst]비행 기초로서 새의 비행.
지은이, 오토 릴리엔탈.
이거다.
바로 이거다!
지금은 아직 19세기.
이 책의 저자, 릴리엔탈이 이제 글라이더로 비행에 도전하고 있는 시대.
라이트 형제 대신 내가 먼저 하늘을 정복하면 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