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20)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20화(20/246)
보이지 않는 손
황화론은 이 시대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카이저 빌헬름 2세 폐하께는 조금 예외적이다.
왜냐면 황화론 그거.
카이저가 일부러 만들어서 뿌린 거니까.
‘여러분, 불쌍한 독일에 어그로 끌리지 마시고 눈 째진 아시안을 혐오해주세요’라는 임금으로서의 공익.
거기에 ‘처음부터 나는 잽스가 싫었어’라는 레이시스트적 사익의 합치라니.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절대 멍청할 리가 없다. 이 사람은 똑똑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조물주께서는 카이저에게 1티어의 두뇌를 내리셨지만 주둥이가 뇌와 연결되는 대신 척수와 연결되게 잘못 이어주셨다.
카이저의 필터링 없는 네츄럴 주둥아리는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독일의 외교를 시궁창에 처넣었고, 그 업보는 차곡차곡 적립된다.
지금 이 순간처럼.
“폐하, 자중을···.”
“그게 무슨 소리인가? 독일의 기상을 드높인 최후의 십자군에게 그 어떠한 훈장을 줘도 모자라건만?”
“아니 되옵나이다!!”
나는 카이저가 칼같이 나를 손절하고 ‘쟤가 멋대로 내 이름 팔아치워서 폭주했음. 만주에 간 건 내가 모르는 일임’이라고 딱 잘라버릴 줄 알았다.
그렇게 되면 불쌍한 아르민은 얼른 눈물 좀 찍어 바르면서 ‘그렇습니다. 사실 카이저 폐하께선 오히려 이로 인해 평화를 해칠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전부 관심받고 싶었던 제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해주고, 대중의 관심이 좀 사그라든 뒤 그 거짓말의 깽값을 받는다.
대가로 뭘 받겠는가? 당연히 내 군생활에 끝없는 어둠만을 가져다주려 하는 융커 새끼들을 좀 얌전히 진정시키는 거지. 이미 나는 이번 기회에 평온한 군생활을 보증받기로 계산 다 해놓고 황궁에 나왔었다.
그러니까.
절대로.
나를 ‘태양의 용사 로젠바움’이나 ‘그 어떤 게르만보다 용맹한 20세기 아르미니우스’ 같은 끔찍한 프로파간다로 만들려는 시도 따위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딴 걸 저질러버리는 순간 정말 융커들이 나를 훈련 중 사고사 처리해버리고 싶을걸?
“폐하. 소인의 가슴은 이미 폐하와 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만으로 가득 차 있으니 훈장을 달 구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부디 거두어주시옵소서.”
“오오···!”
궁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릴 정도의 원색적인 아부지만, 빌헬름은 그동안 품격 있는 아부만 들어서인가 이런 낯 뜨거운 말에 오히려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젠 저 사람, 진짜 내 아부 좋아하는지도 의심스러운데.
“보아라!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잘도 지껄여댔었다. 짐과 독일엔 로젠바움이 있고, 그 어떠한 식민지와도 바꿀 생각이 없다!”
참고로 독일 식민지는 하나같이 채산성 없는 치킨 목뼈 꼬라지고, 그중 하나인 나미비아는 원주민 반란이 일어나서 난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말을 한 점 부끄럼 없이 맨정신으로 하는 걸 보니 내 아부가 약발이 도는 게 맞는 것 같다. 저게 가식이라면 내가 져야지. 응. 그렇고말고.
나는 결국 어마어마한 명예만을 손에 쥔 채 알현을 마쳤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카이저가 무언가를 추가로 요구하진 않았단 점 정도인가.
“이리로 오십시오.”
“여기는 나가는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렇습니다. 다른 분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귀가 대신 시종들의 안내를 받은 나는 굽이굽이 황궁 어디론가로 끌려간 끝에 새로운 방에 발을 들이밀었다.
“자네가 로젠바움이군. 반갑네.”
“처음 뵙겠습니다. 아르민 로젠바움입니다.”
황궁의 방 한 칸을 빌릴 수 있는 나이 지긋한 정복 차림의 사람.
누군지 정확히 몰라도 보자마자 즉시 폴더 인사 접는 것이 바로 숙련된 사회인 아닐까.
하지만 살짝 고개를 들고 훈장이 박힌 저 해군 제복을 확인하니, 나는 곧장 그의 정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듣던 대로 인사성이 좋구만. 해군청(Reichsmarineamt)을 맡고 있는 폰 티르피츠(Alfred von Tirpitz)일세.”
***
누군가 미래인이 나타나 ‘프로이센은 원래부터 외교가 병신이었나요? 그게 밸런스를 위한 종족특성이에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교묘한 외교 수완으로 독일의 통일을 이끌었고, 통일 이후에도 수십 년간 총리로 재임하며 독일의 외교 대전략을 제시했다.
‘방심하는 순간 프랑스는 보복한다. 우리가 살려면 반드시 프랑스를 고립시켜야 한다.’
프랑스를 친구 없는 왕따로 만들겠단 이 대불 정책이야말로 알파이자 오메가로, 이를 위해 비스마르크는 이른바 삼제동맹(三帝同盟)을 체결한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가 한 편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삼제동맹은 유감스럽게도 생각처럼 매끄럽게 굴러가지 못했다.
골수 왕당파 전제주의자였던 비스마르크는 ‘천날만날 정치싸움하는 공화정 국가들보다 전제군주정 국가가 훨씬 안정적이다. 프랑스가 국회에서 격투기 찍을 때 우린 발전하면 됨’이라고 믿었지만, 막상 까보니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야말로 전제군주정의 체제 모순으로 내부가 곪고 썩어 아주 암 환자가 따로 없었다. 캐릭터가 만렙이면 뭐 하나, 장비가 전부 쓰레기 녹파템인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발칸반도를 놓고 경쟁하던 숙명의 라이벌 관계. 이들은 순순히 독일을 위해 자신들의 국가적 목표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 두 나라가 손을 잡게 만든 게 비스마르크의 능력이라지만, 지금 외교부 사람들은 비스마르크라고 하면 치를 떤다.
독일이 치킨을 반반무마니 주문한다고 치자.
오스트리아에겐 ‘치킨 오면 다리는 전부 너 줄게.’라고 말했다.
러시아에겐 ‘치킨 오면 양념은 전부 너 줄게.’라고 말했다.
그렇게 셋이서 닭을 뜯다가, 그래서 양념 발린 다리는 누구 거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
비스마르크는 이걸 어영부영 사기와 사탕발림으로 ‘대강’ 넘긴다는 방법을 택했다. 그거 외엔 사실 답이 없거든.
그렇게 몇십 년을 사기, 기만, 의뭉으로 때웠지만 1878년 베를린 회의에서 비스마르크는 러시아 대신 오스트리아에게 양념 발린 다리를 넘겨줬다. 그가 해임당한 이후 독일 외교관들이 “애초에 러시아와 동맹을 유지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저게 사기지 외교냐? 네놈이 신용 다 깎아먹은 건 어떻게 메꾸냐 이 개같은 놈아.”라고 저주를 토하게 된 것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입으로는 ‘외교란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는 것’ 같은 그럴듯한 명언을 남기며 폼을 잡았던 사람이지만, 이 인간이 하던 짓을 보면 러시아와 동맹을 유지할 생각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그의 진짜 통수는 바로 관세에 있다.
재임 중 몇 차례씩이나 러시아의 핵심 수출품인 밀을 비롯한 농축산물 관세를 어마어마하게 올렸기 때문이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저는 대한민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외교 목표입니다’라고 말하는 외국 수장이 재임 기간 동안 UN에서 번번이 일본 편을 들고, 자동차와 반도체 관세를 따따따블로 올려댔다고 해석하면 된다. 이러고도 본인 재임 중엔 독러 동맹이 유지됐던 게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그럼 여기서 진짜 문제.
비스마르크는 자유무역 하겠다고 관세 동맹 체결해서 독일 통일을 주도했으면서, 친러 정책을 펴겠다고 했으면서 왜 러시아의 코털도 뽑고 국내 자본가들 코털도 뽑는 관세장벽 정책을 폈을까?
왜긴 왜야.
‘농산물 값 떨어지면 우리 다 죽는다!!’
‘관세법 통과 안 시키면 비스마르크는 사퇴하라!!’
또 융커다.
광대한 농장에서의 수익으로 먹고사는 토지 귀족들.
이들은 자유무역을 싫어했다. 저렴한 러시아산 농산물 유입되면 수익 줄어든다고.
이들은 공정한 선거를 싫어했다. 평등선거 시행하면 의회에서 자기네 의원 숫자가 줄어드니까.
이들은 산업화도 싫어했다. 농장 인부들 다 도시로 간다고. 실제로 융커들 농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죄다 독일인이 아니라 임금 저렴한 폴란드인이었다.
우리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직면한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 적폐 새끼들을 가만히 두자니 이놈들은 수꼴 탈레반 그 자체라 도무지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전제군주정과 황가를 지지하고 지탱하는 근간이 바로 저 수구꼴통 융커들이다. ‘구국의 결단’을 일으킨 우리 범석이 형조차 융커들의 시각에서 보면 <온건 좌파> 타이틀을 단다니까? 나 진짜 어지러워.
당연히 이 거대한 똥덩어리 같은 융커들에게 불만을 느끼는 이들은 독일 곳곳에 수두룩빽빽했고.
카이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다른 곳에서 해답을 찾았다.
바로 융커들의 본진 육군 대신.
해군에 힘을 실어주는 것.
그런 점에서 티르피츠 제독은 거대하고 위엄찬 함대를 만들고 싶은 독일인들의 꿈과 희망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십 년에 걸쳐서 독일 해군 건설에 매진한 삶.
살아 있는 전설.
그가 황궁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어째서 카이저가 별말 없이 칭찬만 실컷 하고 물러났는지 깨닫게 되었다. 본론은 딴 사람이 말할 예정이었으니 그토록 미련 없이 빠졌지.
“앉게나.”
“제가 어찌 독일 해군의 영웅 앞에서-”
“오늘은 내가 좀 아쉬운 소리를 하러 여기에 왔거든. 그냥 편히 앉으시게. 허허.”
나는 더 군말하지 않고 얼른 앉았다.
티르피츠가 이렇게 나섰다면 당연히 해군 건이겠지. 그중에서도-
“그대가 개발한 그 비행기란 물건 말일세.”
“예, 제독님.”
“어허. 편히 말하래도. 괜히 각 잡고 있을 필요도 없고. 아무튼, 그 비행기가 실전에 투입되었단 이야기를 들었네.”
“그렇습니다. 제가 군인은 아니지만 많은 분들께 자문을 구했으며, 직접 만주로 가서 그 효용성을 검증했습니다. 현재의 기술로 아직 적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기엔 역부족이지만 정찰 분야에서는 매우 유용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듣던 중 정말 기쁜 이야기군. 혹 아는지 모르겠지만, 육전보다 해전에서 훨씬 더 정찰은 지대한 중요성을 가진다네. 적을 먼저 발견할 수만 있다면 압승도 불가능하지 않지.”
나는 그의 뒷말을 듣지 않아도 무얼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내가 무얼 얻을 수 있냐는 건데.
“이거, 제독님을 뵈니 자꾸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군요. 커피 한 잔만 마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 여기 커피 두 잔 부탁하네.”
내가 제독에게서 간략한 해전학개론 강의를 듣는 동안 시종이 와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자, 나만의 AI 비서 조스비. 대답 좀 해보라고.
– 항공모함은 무리 같은데. 1차 대전까지 실용화에 도전해볼 만한 건 역시 수상기겠고. 만약 항공어뢰 개발에 성공한다면 함선 타격을 노리는 뇌격기도 개발할 수 있겠지만, 항공어뢰는 우리 영역이 아냐.
커피잔에 둥둥 떠서 흑인이 된 조범석은 혀를 차며 말했다.
– 그런데. 우리의 목표를 위해서는 제국이 패배해 멸망해야 하지 않겠나? 유틀란트 해전에서 독일이 승리하고 영국 해군이 몰락한다면 역사가 어떻게 변할진 아무도 몰라.
“-그래서, 해군이 항공기를 써먹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혁신이 일어날걸세.”
“제독님의 말씀을 들으니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하고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습니다.”
나는 곧장 품에서 수첩과 만년필을 꺼내 박스 비슷하게 생긴 배를 그려 그에게 보여주었다.
“바다에서 비행기를 운용하려면 이런 식의 배가 필요할 겁니다. 저는 이 배를 ‘항공모함’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떠다니는 비행장인가? 전투 능력은 기대할 수 없겠군.”
“그렇습니다. 일종의 함대 보조 역할을 하겠지요. 이런 배가 있어야만 항공기를 날릴 수 있지 않을까요?”
제독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실험적으로 한 척 정도를 개발할 순 있겠지만, 아마 곧장 도입하긴 힘들 것 같군. 무엇보다, 이런 짐을 떠안고 싸우기엔 우리 해군의 형편이 그리 좋지가 못해. 다른 방법은 없겠나?”
나는 꼭 미래에 지구로 올 어떤 소행성 왕자님을 상대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 수염 부숭부숭한 제독님께서 ‘양 한 마리만 그려줘’라고 말을-
“조금 더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혹, 용역을 발주해 주신다면 즉시 저를 포함한 저희 회사 최고의 인재들이 해상에서 항공기를 운용할 방법을 고안해 보겠습니다.”
“어렵다는 말은 하지 않는군! 고맙네!”
– 내 말 못 들었나? 독일은 전쟁에서 져야 한다고! 독일제 뇌격기가 영국 함대를 찢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간 융커들의 천년제국이 건설되고도 남아!
나는 커피를 쭈욱 들이켠 뒤 제독의 억센 손을 부여잡았다. 일거리를 주신다는 분께는 당연히 최고의 대접을 해드려야지.
어차피 개발에 성공하면, 영국에도 팔아먹으면 해결인데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