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22)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22화(22/246)
파종
독일 사회민주당.
21세기 민주 국가들의 경우 ‘사민주의’란 흔히 온건 진보 좌파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되지만, 당장 이 당의 예전 당명은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
당규에 당당하게 ‘마르크스주의’를 박아 넣은 극좌 정당이었다.
다만 이들이 노동자 농민의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종교적 교리를 갖고 있는 것과 별개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에베르트는 그런 꿈속 이야기보단 현실을 개선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 그리고 미래에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이 될 사람이지. 침 바르는 솜씨 좀 봐라.
어허. 나쁜 말 금지. 나랑은 딱히 연고도 없는 브레멘이 텃밭인 사람을 그런 미래 때문 아니면 왜 만나겠냐고.
유명인사긴 하지만 아직은 미래 대통령이 될 만한 입지까지는 아닌 에베르트는 내 친절 가득 대답에도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노동 조건을 개선하시겠다니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입장에선 참으로 듣기 좋은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저희 당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또 무슨 말입니까. 이것부터 사실 이해하기 어렵군요. 개선이야 그냥 하시면 될 일 아닙니까.”
“단순히 개선만으로 끝나면 제가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하거든요. 생각해 보십쇼. 크루프(Krupp)사가 복지로 유명하다지만 그래서 파급력이 있었습니까?”
“제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걸 전제하고 말하자면, 그걸 복지라고 부르기엔 좀 뭣하군요.”
평생을 노동운동에 바친 사람답게, 에베르트는 경쾌하기까지 한 어조로 스리슬쩍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크루프가 있는 에센(Essen)은 대충 도시 인구의 절반이 크루프 임직원과 그 가족이죠. 좋습니다. 복지가 어마어마한 것도 인정합니다. 병원도, 교육도, 집도, 퇴직 후 노후도 전부 회사가 도와주니까요.”
“그렇습니다. 저도 우리 회사가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 대신 크루프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회사에 충성 맹세를 해야 하고, 정치나 종교에 개입하지 않아야 합니다. 파업은 당연히 불가능. 회사 사택에 사는 사람들은 감독관이 찾아오면 반드시 집 문을 열어줘야만 하죠. 다 떠나서, 일하다 화장실 한 번 갈 때도 서면 허가를 얻어야 하는 게 정상입니까? 융커들 목장의 소도 이것보단 자유로워요.”
– 이래서 난 빨갱이들이 싫어. 꼬우면 북에나 갈 것이지. 복지는 받아 처먹고 싶어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치르기 싫어한다고. 이 말법세계같은 20세기에 저 정도면 예수와 동기동창 아냐?
조스비. 그만해. 나까지 감정 전이되잖아. 그리고 이 시대엔 아직 북한이 없어요, 이 멍청한 망령아.
나는 커피잔에 힘을 주곤 에베르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허허허··· 물론 조금 과도하긴 하지요. 하지만 노동자들에겐 이직의 자유가 있잖습니까? 그 제약이 싫다면 이직하면 되지 않을지?”
“자본가 입장에선 불편한 말이겠지요. 이렇게 해줘도 불만이냐고 주장하신다면 전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크루프사 직원들이 저 복지를 받는 대가로 자신들의 중요한 권리를 침해받고 있는 건 분명 문제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생각하기 힘든 점들을 오늘 에베르트 씨에게서 전해 듣고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더 올바른’ 방식의 경영과 복지 환경 조성을 여러분들에게 듣고 싶은 겁니다.”
에베르트는 잠깐 무슨 소리인가, 하다가 그제서야 깨달았다.
본인이 실컷 떠든 이야기가 고스란히 내가 사민당과 협력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여세를 몰아 계속해서 그에게 달라붙었다.
“경영자의 목표는 이윤 추구이지 자선 사업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저 또한 사람으로서 착한 일을 하고 싶단 욕구가 있지요. 기왕이라면 회사의 이윤과 직원의 행복 모두를 잡아 최고의 효율을 뽑고 싶단 의도가 있습니다.”
“으으으음···.”
“왜 고민하십니까? 여러분들은 항상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외쳤잖습니까. 지금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는데도 거부할 생각이신지요?”
“이 제안에 대체 어떤 저의가 있는지 고민 중입니다.”
이 사람들. 모든 자본가를 뿔 달린 사탄쯤으로 생각하는 건가. 저는 정말 선의만으로 가득 찬 착한 사람이라니까요.
“저의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군요. 전 그저 우리 직원들이 이직하지 않고 오래오래 일하길 바랄 뿐입니다. 굳이 이유를 더 추가하자면··· 저는 가장 많이 돈을 버는 회사보단 가장 사랑받는 회사를 갖고 싶습니다.”
내 말을 들은 에베르트는 오늘 본 것 중 가장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가장 사랑받는 회사, 라. 그것참.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시는군요. ‘요리를 잘하는 영국인’ 같은 말처럼 참 입 안에서 까끌거리는데··· 참 듣기엔 좋은 말입니다.”
그는 잠시 혼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좋습니다. 당에 안건을 제출해서 당론을 수렴해보지요. 만약 당에서 거절한다면 제 개인적인 의견이라도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혹시 기자들 인터뷰에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시든지요.”
기자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가 다시 정치인의 눈으로 돌아갔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잠잠해졌다.
– 얼굴엔 ‘그럼 그렇지’라고 쓰여 있구만.
에이. 기자 좀 불러서 떠드는 것쯤은 당연히 양해해 줘야지. 오히려 내가 호기롭게 기자까지 불러서 떠들었는데 복지 개판이면 내 무덤 내가 파는 꼴이잖아. 나는 그만큼 진심이란 셀프 증명인 셈.
그래서 직원과 대중의 사랑을 받아서 뭘 할 거냐?
신분제와 군주제가 무너지고, 패전국의 굴레가 독일을 깔아뭉개는 시대가 오면 이 나라가 어떤 꼬락서니일진 차마 상상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그때.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사람 중 한 명으로 내 이름이 오르내린다면.
정점으로 향하는 길은 훨씬 더 쾌적해지겠지.
그냥 사랑받아선 안 된다.
오직 나만이 평온한 일상을 지켜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함께 사랑받아야 한다.
내가 출마하면 직원과 그 가족과 그 이웃들마저 모두 내게 표를 던질 정도로.
내 직원들이 나를 지키기 위해 총이라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
나는 자뻑이나 왕자병, 자아도취와는 전혀 인연이 없다.
그러니까, 이 아르민 로젠바움이 세계구급 유명인사라는 건 정말 눈곱만큼의 과장도 없는 확고한 진실.
“창공의 지배자시여! 좋은 아침입니다!”
“하하하. 아침부터 낯 뜨겁게 왜 그러세요.”
“부인 애 가졌다면서요? 오늘 과일이 상태 좋아. 파이 해먹으면 딱일 것 같은데.”
10대에 비행기를 발명하고 스물이 되기 전에 세계 최초의 폭격수가 되었다. 내 존재 자체가 독일은 위대하고 독일인은 잘났다는 일종의 인증 마크 아닌가? 당연히 나는 대중들의 무수한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독일의 아이돌 중 한 명이다.
그런 내가 위풍당당하게 내 이름 박고 기사까지 찍었다.
<로젠바움-체펠린 항공기 제조 유한회사는 앞으로 노동자와 함께할 것>
다시 한번 독일 전역에 내 이름이 회자되는 건 실로 당연한 일.
러일 전쟁에 이어 ‘모로코 위기’ 등 끊임없이 외교 관계 악화와 전쟁 위기설이 피어오르는 이 시국에, 듣기 좋고 편안한 말을 해주니 얼마나 이뻐 보이겠나.
나날이 사업은 순항 중.
과감하게 선진적인 복지 혜택을 내걸어 이직을 방지하고 숙련공 비율을 끌어올린다.
비행기라는 게 다들 알다시피 워낙 조립하는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중요하다 보니 다른 공장과 달리 숙련공의 중요성이 훨씬 크고, 전 세계의 기술을 선도하는 입장이니 산업스파이나 암묵지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복지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나는 여기서 사민당을 끌어들여 스피커를 추가했다.
내가 비록 의견을 듣겠다고 하긴 했지만, 빨갱이라고 프로이센에 탄압당해 단 한 번도 정권을 잡아본 적도 없는 사민당 친구들이다. 백날 자기들끼리 골머리 싸매봐야 무수한 석학과 경영자, 노조가 피를 쌓아 올리며 정착시킨 21세기 기업 복리후생제도보다 더 나은 아이디어를 제시할 순 없다.
그러니까 사민당 친구들의 역할은 요컨대··· 얼굴마담이었다.
‘아아. 이건 복지포인트라는 거다. 우리 회사와 계약한 상점에서 포인트를 차감해 상품을 구매할 수 있지.’
‘세상에! 이런 걸 도입하다니! 로젠바움사는 혹시 신의 직장인 것입니까?’
‘사민당에게 감사를 표하십시오. 그들이 이 놀라운 복지 제도를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그랬었나?’
갑자기 내가 짠하고 복리후생이 어쩌고 하면 빨갱이 아니냔 소리 듣잖아. 당장 내 최고의 뒷배가 카이저인데 그런 소리 들었다간 총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당하게 대놓고 “네. 파업 일어나는 꼴 보기 싫어서 사민당 애들에게 자문 구했어요. 그래서 납기일 잘 지켜지잖아요?”라고 해버리면 시비 걸 말이 없다. 의문의 득점으로 주가가 올라간 사민당은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할 리가 없고.
“혹시, 로젠바움 씨.”
“예.”
“평소 사회주의에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굉장히 복지 관련해서 연구를 많이 하신 듯한데.”
“죄송하지만 저는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면 목이 잘릴 위치여서요. 저는 그저 제 직원들이 행복하길 바랄 뿐입니다.”
말은 이렇게 쌀쌀맞게 하면서도 코트 안쪽에 슬며시 두툼한 봉투 하나쯤 쥐여주면 아무리 얼굴 딱딱하게 굳어 있던 빨갱이들이라 하더라도 다들 웃게 되어 있다. 아, 금일봉은 못 참지.
이런 내 친-노동자적 노선을 고깝게 보는 이들이 당연히 없지는 않았다.
굳이 이제 말하기도 입 아프지만, 나는 동프로이센 소똥 냄새가 풀풀 나는 육군 소굴로 들어와 바로 그 고까운 이들의 투정을 들어줘야만 했다.
“로젠바움. 혹시 지금 반항기인가?”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습니다, 몰트케 장군님.”
“어떻게 프랑스에 비행기를 팔아먹을 생각을 하나!! 이건 명백히 반역이야!”
어디서 개가 짖는지 원.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일본에도 팔아먹는 마당에 프랑스가 어때서 그래.
“독일 육군에 납품하려고 했는데 그만 실패해버려서 말이지요. 독일군이 거부한 불량품을 프랑스에 팔아먹는 데 성공했으니 이건 반역이 아니라··· 애국 아닐까요?”
“이 자식이 어디서 눈깔을 그따위로 희번덕-”
“아. 그리고 폐하께서 해군을 위한 항공기를 개발하라고 특별히 저와 티르피츠 제독님께 명을 내리셨습니다. 육군에 항공기를 제공하기엔 아직 부족하니 더 갈고닦으라는 뜻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몰트케는 막 고함을 버럭 지르려다 말고 뚫어지라 나를 응시했다.
해군과 사민당에 ‘선물’을 주고 그들을 유사시 끌어들일 뒷배로 삼은 나는 얼마 전과 달리,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몰트케의 개같은 눈깔을 마주 보았다.
“뭘 원하나.”
“미천한 소인이 대체 무얼 원하겠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빌어먹을. 그냥 닥치게. 그 정찰기라는 거, 우리도 구입하지. 그리고 공중전을 상정한 군용 항공기도 개발 완료되는 대로 구입하겠네. 이러면 네놈이 원하는 건 다 얻지 않았나?”
“죄송합니다만, 저희 공장이 제작할 수 있는 비행기 수량에 한계가 있어 당분간은 어렵습니다.”
“언제쯤 인도가 가능하지?”
“제 생각엔 3년 정도-”
“마지막으로 묻지. 뭘 원하나?”
나는 내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 군복무에 그 어떠한 터치도 하지 마시죠.”
한 달 뒤.
나는 입대했다.
로열 젤리가 질질 흐르는 군생활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참고)
어제 편에서 나온 괴링 집안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문의가 들어왔네요.
– 아빠 괴링이 몰락함
– 에펜슈타인이 괴링의 다섯 자녀 모두에게 대부가 되어주고 이들 일가에게 집과 성, 자금지원을 해줌
– 괴링 여사와 에펜슈타인은 15년간 공공연한 애인 관계
는 모두 사실입니다. 이후 괴링 여사와 에펜슈타인의 관계가 끝난 직후 괴링 씨가 사망하고, 에펜슈타인은 훨씬 젊은 여자에게 장가를 갑니다.
작중 ‘삼류 포르노’라고 평한 괴링가의 막장스토리는 Roger Manvell과 Heinrich Fraenkel이 공저한 괴링 평전에 주로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라 굳이 따지면 영화계 관계자였으며, 2차대전 때는 영국군 정보부에서 나치 고관들을 타겟으로 한 프로파간다 제작을 맡았었습니다. 전후 그때의 자료를 기반으로 괴링, 힘러, 히틀러 등의 평전을 저술합니다만 출처가 아리송한 매콤한 이야기도 좀 많습니다. 하지만 딱히 거짓이라는 물증도 찾지 못해 그냥 작중에서도 써먹었습니다.
동생 괴링, 알베르트 괴링은 에펜슈타인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국내 웹에서 준-정설로 떠돌아 다닙니다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알베르트 괴링이 잉태되었을 시점, 괴링 부인은 아이티에 있었기 때문에 에펜슈타인이 괴링 부인을 임신시키는 것은 임신광선 또는 슈뢰딩거의 정자 외엔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