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27)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27화(27/246)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기 전에 (3)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하지만,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백주대낮에 총 맞아 죽었다고 해서 즉시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지는 않았다.
전 유럽의 모든 외교관들은 일제히 하던 모든 걸 중단하고 이 전대미문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 철야에 들어갔고, 국제우편과 전신국 또한 마찬가지로 쏟아지는 일벼락에 끝없이 갈려나가기 시작했다.
저 높은 곳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다 대 다 핑퐁 게임에 대해 나도, 조범석도 정확히 아는 바는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폐하를 찾아뵙고 싶습니다.”
“죄송하지만, 폐하께선 휴가를 떠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안심하십시오.”
“지금 상황에서 휴가라니요.”
그동안 나와 제법 안면을 트고 내 ‘성의’도 많이 받아먹은 시종은 날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폐하께선 신하들을 소집해 비밀 회의를 여셨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권리는 보장될 것이고,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로젠바움 사장도 이제 그만 여름 휴가를 떠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휴가 시즌은 짧다구요.”
“···감사합니다.”
카이저 빌헬름은 황실 요트를 타고 20일간의 노르웨이 유람 여행을 떠났다.
시종의 말마따나,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라는 과시를 위해서라면 이 휴가는 카이저의 뛰어난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린 다 알다시피, 전쟁은 일어났다.
역시 팔병신은 바보 병신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전쟁은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수백만 인구를 자랑하는 대도시 베를린은 점차 무럭무럭 커나가는 불안감에 깔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환락을 즐기기 위해 술집과 홍등가로 떠나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그 대신 잘 차려입은 신사와 부르주아들이 혹시나 무언가 소식이 없나 주워듣기 위해 카페와 클럽으로 향했다.
“전쟁해야지! 세상에, 한 나라의 황태자가 암살을 당했는데 그걸 가만히 봐줘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러시아가 세르비아의 뒷배를 봐주고 있잖소.”
“지금 그깟 러시아 놈들을 두려워해서 게르만 형제국인 오스트리아를 모른 척해야 한단 말입니까! 슬라브 놈들에 맞서 우리의 권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 러시아의 뒷배는 또 프랑스잖아.”
“세상에, 개구리 새끼들한테 쫀다고?”
“러시아와 프랑스를 동시에 상대할 순 없어!”
술과 담배가 섞인 대화는 대개 대동소이했다.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한 보수파들은 차라리 전쟁이 일어나서 ‘전국민 총단결’이 이루어지길 원했다.
“전쟁이 나면 빨갱이 새끼들은 숨도 못 쉬겠지.”
“그놈들은 조국도 부정하는 악질들인데 무슨.”
“아니지. 전시에도 그따위로 굴면 전부 대갈통에 총알을 박아줄 수 있잖아. 이번 기회에 전쟁 한번 크게 터뜨려서 러시아도 프랑스도 빨갱이도 전부 싹 정리하는 거야.”
“크. 말만 들어도 속이 뻥 뚫리는군.”
이 혼란의 와중.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암살당한 6월 28일로부터 정확히 한 달이 지난 7월 28일.
마침내 대전쟁의 서막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사장님. 전쟁입니다.”
“그렇군요.”
내 사무실에서 다시 에베르트와 회동했다.
“잠시 후부터 우리 사민당은 당의 모든 총력을 기울여 반전과 평화를 외치는 시위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혹 연단에 올라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로젠바움 사장님과 같이 폐하의 총애까지 받는 저명한 분이 평화를 호소한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잔뜩 초췌해진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탄식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보고서는 쓰레기가 되었군요. 전쟁이 터진다면 노동자의 권리는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애국의 이름하에 모든 것이 옛날로 돌아가겠지요.”
에베르트를 위시해 나와 친한 사민당 일부 인사들은 대대적인 노동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단순히 노동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게 아니라, ‘양질의 노동 환경이 더 나은 생산성을 보장한다’라는 걸 보여주는 일종의 캠페인이었고 거기에 주로 언급되는 예시가 바로 우리 회사였다.
참으로 유감스럽지만, 나는 올해 말 발표가 예정되어 있던 그 자료가 캐비닛 깊숙한 곳에서 잠들 신세라는 걸 이미 진작 알고 있었다.
사민당에 빚을 지우고 동지의식까지 만드는데, 내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상 날로 먹는 장사.
사민당이 훗날 이 나라의 여당이 되고 에베르트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는 걸 고려한다면 순이익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입꼬리를 내리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의원님께서 직접 언급하셨다시피 저는 폐하의 은혜를 입은 몸입니다. 폐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지금, 저는 감히 제멋대로 입을 놀릴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게 있습니다. 사장님은 돈에 미친 수전노도, 전쟁광도 아니잖습니까! 스스로 마음에 품고 있는 바를 말씀하시죠!”
“아니오. 제가 연단에 선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제 뜻이 아닌 폐하의 복심이라고 해석할 겁니다.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운동가이기에 앞서 정치인이 된 그는 납득했다.
잠시 술만 연신 들이켜며 각자 생각을 정리하길 잠시,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이번에도 에베르트였다.
“염치가 없는 건 알지만 하나 더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무엇입니까? 부담되지 않는 선이라면 우리의 우정을 위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듣고 판단해 주시죠. 사민당 금고를 스위스로 옮기려고 합니다.”
나는 잠깐 이게 무슨 소리인가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어째서입니까?”
“이 나라의 높으신 분들이 얼마나 우리들을 미워합니까. 겨우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법적으로 금지된 정당이었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불법단체로 지정당한다면 해외에서 활동을 준비해야겠지요.”
“당을 포기할 생각은 없으신가 보군요.”
“물론입니다.”
나는 스위스 은행 수표책을 꺼내 몇 장을 뜯었다.
“얼마쯤 있으십니까? 적당한 밤에 우리 회사로 돈을 옮기시고, 그 대신 로젠바움사와 제 소유 계좌에서 인출할 수 있게 수표를 끊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훨씬 수고를 덜었군요.”
“고작 이 정도 도움만으로 은혜를 팔 수 있다면 남는 장사지요. 만약 전쟁이 터진다면 사민당은 어떻게 할 작정이십니까?”
“당론을 모아봐야지요. 하지만.”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혁명보다는 그래도 민족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무언가, 다 내려놓은 듯한 어조였다.
***
<설마 전쟁이 나겠어?>와 <이번 기회에 전쟁 한번 하자!!>.
불안감과 공포와는 별개로, 아직 총력전이란 개념이 없는 이 시대 유럽인들 중에선 막연한 낙관주의와 막연한 승리에 대한 열망 또한 깔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직원들을 무자비하게 채찍질해가며 다가올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전쟁이 터진다면 적국의 영토에 있게 될 지사들의 처리가 가장 급선무.
[독일인 직원은 전부 철수하고 현지 지사는 별도의 법인으로 재편이요? 그러면 잃는 게 꽤 많을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전쟁이요?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죽은 거 가지고 전쟁까지야 벌어지겠습니까?] [이곳 파리에선 딱히 별말 없습니다. 앙리에트 카이요(Henriette Caillaux) 부인 재판 결과가 훨씬 더 난리입니다. 무죄 판결이 떴거든요.]정열과 꿀잼의 나라 프랑스는 외국 황태자의 암살보단 ‘전 총리 부인이 백주대낮에 권총으로 기레기 편집장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린’ 사건에 더 열광하고 있었다. 역시 영안실 관광이나 다니는 개구리 놈들에게 정신머리를 기대한 내가 또 잘못했다.
이미 물잔은 쏟아졌고 세상은 전쟁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선전포고 소식을 접한 러시아가 부분 동원령을 내리고 예비군을 소집하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전쟁을 향한 8부 능선을 넘고야 말았다.
“전쟁 반대!! 누구를 위해 전쟁터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우리는 권력자들의 노리개가 아니다!!”
“결코 전쟁!! 게르만 민족을 슬라브로부터 수호하자!!”
“우리는 전쟁을 원한다!! 제국과 민족의 영광을 위해 적들을 모조리 때려잡자!!”
그리고 다음 날인 29일.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선포하고 병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풀리자마자 전쟁을 외치는 이들의 숫자가 확 불어났다. 이제 베를린 곳곳에선 두 거대한 시위대가 충돌하고 있었다.
“이 매국노, 배신자들!! 러시아 놈들이 동포를 힘으로 핍박하려 하는데 평화? 같은 민족이 슬라브의 배 아래 깔릴 판에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살자는 거야?!”
“이 개자식들아! 동포? 도오옹포오오? 푼돈 주고 노동자 농민 피 빨아먹는 돼지 새끼들 입에서 동포 타령이 나와! 야!! 베를린 빈민가부터 보고 동포 소리를 해!!”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세계 곳곳의 주식시장이 폐장을 선언했다.
전 유럽에 흩어져 있던 ‘유럽인’들은 제각기 조국으로 도망쳐야만 했고, 방대한 물류의 유통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백 년 동안 하나처럼 움직이던 유럽은.
국경과 철조망의 이름으로 거대한 절맥(絶脈)에 맞닥뜨렸다.
그리고 8월 1일 토요일.
“호외요, 호외!!”
“전쟁! 전쟁입니다!!”
“알립니다. 총동원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예비군 여러분들은 지정된 부대로 입소할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독일, 러시아에 선전포고.
독일, 총동원령 선포.
프랑스, 총동원령 선포.
“사장님! 계셨습니까!”
“당연히 나와야지.”
나는 내가 가꿔온 이 영지, 로젠바움사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소중한 영지민들인 직원들은 초조한 얼굴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자면, 20세기 독일이라는 이세계에서 토요일은 근무날. 주 40시간 근로제를 도입하려다가 카이저한테 빨갱이들 기 살려주지 말라고 한소리 들었다.
콘라드 슈미트는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왜 웃나? 전쟁이 터졌다는데.”
“저도 소집대상입니다.”
“뭐?”
전시근로 대상으로 지정돼 있을 텐데, 우리 회사. 비서는 공장 인원이 아니니 해당 사항이 없었나?
“내가 지금 바로 군에 말해놓지.”
“아닙니다, 사장님. 저는 가고 싶습니다. 부끄러운 인생을 살고 싶진 않습니다.”
콘라드의 말에 나는 신경질적으로 시가를 입에 물었다. 이미 큼지막한 공터에 소집 영장을 손에 쥔 이들이 바글바글 모이고 있었다.
“가면 못 볼 꼴이나 볼 거야. 이 전쟁에 영광이 있을 것 같나?”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무서운데요.”
“닥치고 그냥 여기 있게.”
“여자친구에게 약속했습니다.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인가. 하.
“그럼, 승리의 영광을 안고 겨울에 돌아오겠습니다!”
“사장님, 파리 찍고 돌아오겠습니다!!”
“갔다 올 테니 저희 자리 남겨주세요!!!”
안 돼.
가지 말라고.
가면 못 돌아온다고.
“직원 여러분. 몸 성히 돌아오십시오. 애국도 좋지만 몸이 먼저입니다.”
“······.”
“여러분들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8월 급여를 평시와 마찬가지로 지급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9월에는 정상적으로 출근을-”
“와아아아아아아아!!!”
“로젠바움!! 로젠바움!!”
“그는 신이야!! 그는 신이야!!”
그들은 웃으며 떠나갔다.
마치 소풍을 나가는 것처럼 싱글벙글.
한차례 폭풍이 쓸고 간 듯 휑해진 부지에 못 박힌 듯 서 있던 나는, 천천히 창고로 향했다.
“아, 사장님. 군에서 징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렇군. 내가 조만간 가서 이야기를 해보지. 비싸게 팔아먹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내가 따로 준비해 두라고 한 항공기들은 그대로 남아 있나? 그것들은 아직 징발 대상이 아닐 텐데?”
“맞습니다.”
“그렇군.”
나는 잠깐 고민했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모든 비행기를 장미처럼 붉은 색으로 도색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