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3)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3화(3/246)
가화만사성
미래 지식을 얻게 된 건 그야말로 좋은 일이지만, 그 덕분에 몇 가지 부작용이 생겼다.
예를 들자면, 내 머릿속의 ‘상식’이라는 게 19세기 독일과 20세기, 21세기 대한민국 그 가운데 어딘가쯤에서 엉망진창으로 엉켜버린 것 같은 일 말이다.
당장 조 중장의 기억엔 12월 25일에 웃긴 허연 수염을 붙인 채 병사들에게 휴가증을 뿌리던(그리고 며칠간 재림예수로 숭배받았던) 일화가 남아 있지만, 1893년의 독일에서 굴뚝을 통해 침투하는 남파공작원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톨릭교도들은 12월 6일에 성 니콜라스 축일을 기념하면서 애들한테 선물을 주기도 하고, 독일제 산타가 루돌프 사슴코 대신 망태 할아버지 악마 졸개들을 끌고 다니기도 하며, 크리스트킨트(Christkind)라고 아기 예수께서 천사 날개를 달고 선물을 주기도 한다.
이놈의 산타 이야기만 보더라도 대강 짐작 가지 않나? 독일이라는 나라는 같은 것도 많지만 다른 것도 무척 많은 수십 수백 개의 나라를 누덕누덕 기워놓은 거대한 누더기다.
1871년에야 겨우 ‘통일’된 나라.
프로이센의 주도하에 통일되어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독일 제국이라는 나라가 성립되기는 했지만, 제국의 허울 아래엔 온갖 왕국과 대공국과 공국과 후국, 거기에 자유도시와 제국령 알자스로렌까지··· 잡탕 그 자체. 오스트리아는 여기보다 더 복잡하다던데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93년 지금.
제국의 심장 베를린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기세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도시는 나날이 커져 베를린 끝에서 끝으로 가려면 도시철도를 타야 했고, 조만간 지하철을 착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었다.
젊은 남녀들은 주말만 되면 자전거를 타고 교외로 나갔고, 도로 곳곳에서는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한다는 무한한 자신감.
우리는 오직 성공을 향해 달린다는 끝없는 도전정신.
나는 아직 지구상에 나타난 적 없는, 고도성장기 대한민국의 모습이 이 베를린에 겹쳐 보이는 듯했다. 독일제국과 대한민국. 어쩐지 ‘ㄷ’ 자도 겹치고 ‘국’ 자도 겹친다 했다. 너무나 비슷하다.
그러니 이 도전정신을 살려 비행기 개발에 나서는 건 실로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저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발명하고 싶습니다!’
‘허허, 그렇구나. 우리 삼대독자 아르민이 하늘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구나! 그래, 이 아빠가 뭐든 다 지원해 주마!’
···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참 잘도 저렇게 풀리겠다.
아무리 우리 아버지가 나를 직접 때린 일은 없다고 해도, 저렇게 훈훈한 일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는다. 곤란하구먼.
이 격동의 시대, 19세기 말 20세기 초.
많고 많은 발명과 발견이 줄을 잇지만 내가 하필 비행기에 꽂힌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하늘’이라는 게 어마어마하게 상징적이라는 점. 그리고 파급효과가 광범위하다는 점.
모두가 0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아이디어와 단순한 발상, 미래 지식으로 크나큰 성취를 거둘 수 있는 분야라는 점.
막말로 내가 페니실린을 개발할 수 있나, 아니면 무선전신을 개발할 수 있나? 택도 없다. 설사 내가 미래에서 관련 기술자였다고 해도 과연 19세기의 기술을 이용해 ‘최초’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
탱크라거나 윤형 철조망 같은 건 어찌어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누이 말하지만 이 나라는 독일제국. 귀족이 군인이고 군인이 귀족인 나라. 그런 나라에서 군납 무기의 이권이 얼마나 까다롭다 못해 위험한 도전인지 감이 오는가? 애초에 든든한 뒷배 없이는 도전할 엄두도 안 난다.
그러니 비행기.
이런 번지르르한 이유 다 때려치우고, 그냥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 중 그나마 실현 가능성 있는 게 항공기 개발이었다. 조범석 그 인간, 비행기를 꽤 좋아했던 모양이거든. 마지막까지 육사와 공사 중 갈등하다 육사를 갔었는데, 공사를 갔다면 약 먹고 뒤질 일도 없지 않았을까?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하기까지 앞으로 10년.
10년 내에 자본을 확보하고.
나 자신의 기술적 능력도 확보해야 하고.
머릿속 미래 지식이 진짜 맞는지 아닌지 검증도 해야 하고.
엔진이나 설계 등 내가 하는 것보다 남이 하는 게 더 나은 분야에 대해서는 협력자도 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길 조심하고.”
다시 학교부터 등교해야 했다.
아, 응애예요 응애.
***
“아르민, 세상에, 성적이! 어머어머, 열심히 공부했구나!”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닌데요.”
“장하다. 역시 내 아들다워. 나는 네가 한다면 할 줄 아는 독일남아라고 믿고 있었다.”
“네에.”
“너는 복 받은 줄 알아야 해. 아침마다 흰빵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지. 똑바로 공부 안 하면 저 공장일 하는 사람들처럼 비참해지는 거야.”
“네에.”
“그러니 이번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해서-”
아빠는 나보다 더 설치면서 ‘우리 애가 아무래도 천재인 것 같으니 월반시켜서 학군 좋은 김나지움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접을 떨어댔다.
엄마는 한참 그렇게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아빠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나를 꽉 껴안고 도무지 놔주질 않았다. 아들 숨 막혀 골로 갈 뻔했습니다. 거, 앞으로 계속 전교 1등만 할 텐데 너무 그렇게 기뻐하면 어떡해.
내가 전교 1등을 척척 따내자 마침내 로젠바움가에 평화가 깃들았다.
아니, 내 짧은 인생을 통틀어 참으로 오래간만에 ‘웃음’과 ‘행복’이라는 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놀 랍 다 ! 고마워요 미래 지식!
전교 1등을 찍고 나서 한껏 거만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다시금 반추해보자니, 어린이의 삶이란 참으로 평화로웠다.
학교 가고, 공부하고, 놀고, 먹고 자면 끝.
다른 집 애들은 전부 이런 평화와 행복을 누렸던 거냐고. 배 아프게시리.
물론 10대 때는 저걸 ‘평화로운 꿀보직 라이프’라기보다는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명단에’로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지만, 나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특이 케이스. 아마 전 세계에 이런 케이스는 나밖에 없지 않을까.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초등학교는 그야말로 시시했다. 하아, 고리타분.
애들이란 참으로 귀찮았다.
힘은 펄펄 넘쳐서 갓 발사된 총알처럼 힘껏 싸돌아다니고, 목청은 어찌나 좋은지 갓 뽑은 만드라고라나 하늘을 나는 익룡이라도 되는지 온몸을 펄떡펄떡대며 끼에에엑거린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장막을 걷고 미래를 엿보고 온 이 몸이 국가 중대사나 세계 평화 같은 막중한 문제에 끼어들긴커녕 코딱지만 한 책걸상에 앉아 애들이랑 같이 산수나 하고 있어야 한다니. 이러니까 프로이센이 망하는 거 아닐까.
나 정도면 팍팍 월반해도 괜찮지 않을까? 솔직히 내가 전교 1등을 하는 건 양민학살이다. 프로 축구 선수가 조기축구회 나온 격 아닌가.
하지만 내 원대한 야망은 생각도 못 한 암초를 만나 표류하게 되었는데.
“야, 아르민! 뽈 차자!”
“공놀이?”
감히 군대스리가의 패왕, 모세의 기적, 계룡대 마라도나라고 불리던 내게 꼬꼬마들이 도전하려 하다니. 참으로 가엾고 딱하지 않은가.
“헥, 헥, 헥!!”
“이 자식, 요즘 맨날 책벌레처럼 책상에서 공부만 하더니 순 약골 다 됐네?”
“니들이, 힘이, 넘치, 헥, 잖아!”
“응 아냐- 네가 약해진 거야-”
“아르민··· 좆밥··· 축구 개못해···.”
하지만 틀린 건 나였고요.
프로이센이 어떤 나라?
군대가 국가를 보유한, 군대에 미친 나라.
훌륭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 교육 시스템을 만든 나라.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나라에서 ‘비실비실한 책벌레’ 같은 타이틀을 달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내 원대한 월반 계획은 약간 연기되었다. 전생이 직업군인이었던 내가 비실이가 되면 되겠는가?
그렇지만 고작 약간 연기되었을 뿐, 내가 월반을 안 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었는데.
“뭐? 월반을 안 해?”
“네.”
“어째서냐?”
내 아버지, 브루노 로젠바움 씨는 퇴근하자마자 나를 마주 보며 시가를 입에 물었다.
겨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칠렐레팔렐레하면서 우리 집에 신동이 났다고 깨춤을 추던 양반이, 지금은 언제 당장이라도 죽빵을 날릴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싸이코인가.
“월반이 무서워?”
“아뇨.”
“그럼. 네 동무들이랑 다른 반이 되는 게 싫어?”
“딱히 그것도요.”
“그런데 왜 월반을 안 하겠단 거냐.”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으니, 제가 괜히 월반해서 무리하다가 또 몸에 탈 날까 봐 걱정이 돼서요.”
“그래···?”
“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잖은가?
하지만 그는 무척이나··· 이상한 눈으로 나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꼭 엑스파일에 나오는 외계인이나 바야바라도 보는 것처럼. 그 눈빛은 내가 당신에게 보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그렇게 하거라. 너는 우리 집안을 이어나가야 할 몸이니, 체력을 기르면 당연히 좋은 일이지.”
“네에.”
이 아버지란 사람의 생각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아빠보다 몇십 년은 더 사회 경험이 풍부한데 무슨 생각인지 꿰뚫어볼 수가 없다니.
이 몸은 여전히 술 취한 아버지의 죽빵이 두렵다. 꿈에도 나온다. 수십 년에 달하는 미래 기억이 있는데도 아빠가 주먹을 쥐면 저절로 호흡이 가빠진다. 이건 진짜 불가항력이다··· 이게 그 트라우마란 거겠지.
그런데 또 막상 생각해 보면, ‘그날’ 딱 한 번을 빼고 내가 직접적으로 처맞은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엄마를 때리거나 집기를 때려부수긴 하는데, 그냥 그렇다고.
“아르민.”
“네.”
“내 아들.”
“네.”
“많이 기대하고 있다. 너는 꼭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
“월반은 다음에 또 하면 된다. 그래. 쉬어라.”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그랬지만, 어째 미래 지식을 얻어도 이 아버지란 사람은 참···.
짐작하기 너무 힘들었다.
***
나는 20세기 체력단련 루틴에 따라 충실히 운동을 했고, 성장기 특유의 왕성한 에너지에 힘입어 충실히 벌크업을 해나갔다.
<미래 치트로 문무겸비 최강 초딩>으로 소설 한 편은 뽑을 만한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느냐.”
“예에.”
“그래. 학교 잘 다니고. 나는 2주 뒤에 돌아오마.”
더더욱 집안 분위기가 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겨우 몇 달.
1년도, 2년도 아니다.
잠깐 반짝하고 나도 ‘정상 가정’으로 돌아가나 했는데, 겨우 몇 달 만에 도로 집안 분위기가 이따위로 변해버렸다.
뭐 경제가 어렵네, 미국이 망했네, 영국이 흔들리네 하는 건 아빠가 보고 있는 신문이나 서류를 힐끗 보면 알 수 있다. 도이체방크에서 일하는 아빠가 그래서 심심하면 출장을 나가는 걸 테고.
하지만 날 이상하게 바라보기 시작한 시점은 불황이 닥치기 이전.
정확히 언제부터? 월반 미루고 운동 좀 하겠다고 한 뒤부터.
그렇게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를 떠안은 채 집과 학교를 왕복하길 몇 달.
그리고 어느 평범한 저녁.
내가 대강 식사를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쾅!!
“끅, 어우, 야!! 신발을 왜 이따구로 정리해놨어!! 딸꾹!”
“집으로 바로 안 오고 또 마셨어요? 이 사람 좀 봐. 냄새··· 잠시만 있어봐요, 외투부터 벗고-”
“이 오라질 년이 어디서 눈깔을 그따구로 뜨고 남편을 꼬나봐!! 야!! 이번엔 또 누구랑 붙어먹었어!”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만하세요.”
“뭐?”
“그만하시라고요! 대체 왜 맨날 엄마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애비가 밤낮으로 일해서 벌어다준 돈으로 먹고사는 주제에 어딜 후레자식처럼-”
휙 하고 주먹이 날아왔다.
나는 그의 오른 팔목을 붙들었다.
“어, 어?”
“그만하세요. 제발요.”
“이, 이 자식이!”
이번엔 왼팔을 휘둘렀지만, 나는 그 팔마저 붙잡았다.
생각보다 내 아버지는 약했다.
고작 몇 달 운동 좀 한 초딩··· 물론 내 발육이 꽤 좋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붙들릴 정도로.
이렇게 약한 사람이 그토록 집구석에서 패악을 떨어댔단 말인가.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나는 양팔에 꽉 준 힘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거 놔라.”
“술 많이 드셨잖아요. 못 놔요.”
“말로 하자. 놔라!”
이내 그의 눈빛에 감돌던 분노가 최근 종종 보던 그 낯선 감정의 진흙탕으로 바뀌었다.
이제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두려움.
자기 아들에게 완력으로 제압당한 이의 두려움.
하지만 두려움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섞인 것 같은데-
“술 깼다. 때리지 않으마. 이 손 놓아다오.”
“정말이죠?”
“그래.”
“아버지는 신사니까, 믿을게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자존심을 슬며시 자극하고 팔을 놓았다.
여전히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고.
나는 온몸이 땀 범벅이 되었고.
아버지는 조용히 서재로 향했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서재로 따라 들어갔다.
“아버지.”
“그렇게 부르지 마라! 너, 너는!!”
그는 무엇인가 토해내듯 외치려다 스스로 입을 콱 다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외치지 못한 말을 유추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저건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뒷말이 포함된 거 아닌가.
출생의 비밀이라니.
내 인생··· 내 인생 꼬락서니 좀 보라지.
어.
어어··· 그래. 그거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나는 조범석이 맞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