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36)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36화(36/246)
무인지대 (3)
“농담입니다. 농담.”
“무척··· 과격해서 농담으로 듣기 좀 그랬소.”
“아무리 그래도 제가 폐하께 입은 은혜가 있는데 무작정 제정을 폐하긴 좀 그렇지요. 오히려 사민당이 제정에 부정적일 줄 알았는데, 저야 입헌군주정이 오히려 더 좋습니다.”
에베르트는 로젠바움에게 손수건을 건네다 말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로젠바움 사장.”
“예.”
“···쿠데타는 진심이란 말처럼 들리는데.”
“에이, 그게 어떻게 그 말이 됩니까.”
“그렇지요?”
“제겐 실전 부대가 없어서 쿠데타를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하하. 아, 저는 진심으로 저 버러지 같은 융커들과 군부를 싹 소각하고 문민 정부를 출범시켜야 휴전 협상을 열 희망이 생긴다고 봅니다.”
대체 몇 번씩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냐!
에베르트가 숙련된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분노에 이성을 잃고 눈앞에 있는 놈의 멱살을 붙들었으리라. 아니면 그대로 죽빵을 날리든가.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혹시 군에서 우리 당을 좀 떠보라고 지시했습니까?”
“아니오.”
이거다.
이게 맞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시점에서 갑자기 쿠데타가 어쩌고를 떠들 이유가 없다.
그래, 역시! 단기에 종전할 거라고 큰소리 땅땅 치던 군부 놈들이 이제 슬슬 켕기니 충성심 테스트에 돌입한 게 틀림없었다. 비열한 놈들 같으니라고.
에베르트는 그 순간 똑똑한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 ‘하하! 내가 맞혔다! 네놈의 속내 따위 이 똑똑한 내가 간파해버렸다고!’ 시츄에이션에 빠지고 말았고, 무척이나 근엄하고 진지하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커피를 뒤집어쓴 사람을 빤히 보면서도, 그것도 자신이 뿌린 커피의 흔적을 보면서 이토록 진지한 자세를 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베르트의 정치 스킬은 S급이라 봐도 무방하리라.
“단언컨대 우리 사민당은 폭력 혁명 따위에 관심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조국의 승리를 염원하고 있고, 승리를 위해 약간의 고통을 분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전쟁의 마지막에 다다를 결론이 영광스러운 승리가 아니라 조국의 멸망뿐이래도 생각에 변함이 없으십니까?”
“대체 왜 자꾸 아까부터 진다고 노래를 부르시오.”
“아시다시피, 제가 조금 친구가 많습니다. 특히 사민당 같은 빨갱이들과는 상종도 안 하는 콧대 높은 친구들이 조금 많지요. 그들이 이르길··· 우리가 진답니다.”
“하. 그러시겠지요. 그래, 누굽니까?”
“총리와 육군참모총장입니다. 특히나 팔켄하인 총장은 이제 파리를 함락시키겠단 목표를 포기했고, 전투에서 좋은 전과를 뽑아내 어떻게든 유리한 협상 테이블로 적을 끌고 나오는 걸 새 목표로 삼았습니다.”
물론 사민당도 귀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들은 대놓고 융커들의 경계를 사는 불순분자들이었고, 이토록 내밀한 정보, 그것도 최고위층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가 제공하는 정보는 처음이었다.
에베르트는 슬슬 로젠바움이 정말 자신을 떠보는 게 맞는지 헷갈리고 있었다. 이제 그의 의심은 대충 반반싸움, 엄대엄이 되었다.
“그것과··· 당신이 말하는 ‘그것’이 무슨 관계입니까?”
“저는 전쟁터를 봤습니다. 그곳은 인세의 지옥이고, 사람이 마대자루처럼 취급받습니다. 사방에 굴러다니고 다 해지고 찢어졌단 점이 마대자루와 똑같지요.”
도대체.
도대체 최전방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로젠바움의 무덤덤한, 마치 감정이 거세당한 듯 차분하게 진술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그가 앞에서 말했던 그 모든 이야기보다 더 진솔해 보였고, 마지막 웃음기 한 방울마저 싹 날려보낼 힘이 있었다.
아무리 지금은 정치인이라지만 태생이 노동운동가였던 에베르트는 이런 비언어적 태도와 감수성에 약했다.
“우리가 전쟁에서 조금 손해를 본다고 해서 패배를 인정할 린 없을 겁니다.”
“그렇··· 겠지요.”
“그러니 프랑스와 영국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최후의 한 명까지 싸울 것이고, 독일은 그들을 최후의 한 명까지 모조리 죽일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전쟁은 집니다.”
“어째서 지는 쪽이 우리가 되는 게요, 로젠바움?”
“그야 우리는 바다를 잃었으니까요.”
바다를 잃었으니 어떠한 물자도 수입할 수 없다.
바다를 잃었으니 영국 본토를 공격할 수도 없다.
그는 무심코 동의했다. 정확히 말해 아르민의 저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태도에 마음을 아주 살짝 열고 말았다.
“그래서 꺼낸 게··· 나라를 엎자고요?”
“지금 당장 하자는 게 아닙니다. 지금 저질렀다간 우리가 모든 걸 망친 대역죄인이 될 테니까요. 제 말은···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최적의 타이밍을 놓친단 뜻입니다. 무저갱에 떨어져 같이 죽기 전에 융커들의 손을 먼저 놔야만 합니다.”
에베르트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발언이 무척 과격하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문제는 될지언정 아까보단 훨씬 낫지 않은가. 결국 정리하자면 패전을 대비한 출구전략의 중요성을 역설한 수준이니.
“혼자서 무거운 고민을 안고 계셨구려. 걱정 마시오. 전쟁에서 승리하면 가장 좋겠지만, 설사 잘못된다 한들 나라가 망하진 않소. 당장 프랑스조차 보불전쟁에서 패했었잖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융커들이 승산 없는 전쟁으로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우리 사민당은 결코 좌시하지 않겠소.”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진짜 이유를 듣고 싶소. 권력을 잡고 싶다고 하기엔 우린 딱히 힘도 없고 도움을 줄 것도 없소만?”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아르민은 대뜸 탁자를 내려치며 호통을 쳤다.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당신들은 원내 제1당이에요. 아무리 제국의회가 장식품이라지만 이 나라 독일에서 가장 많은 시민의 표를 받아먹은 게 당신들이란 말입니다.”
“······.”
“융커들이 이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다음으로 정권을 잡아야 하는 건 대체 누구일까요? 기호 1번, 얼마 전까지 공장 돌리던 에이스 파일럿. 기호 2번, 전국민적,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원내 제1당.”
실로 멍청한 질문이었다. 부끄러움마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눈곱만큼도 권력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당연히 사민당이 다음 타자가 되어야 한다고 ‘민주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두 배 가까이 나이 먹은 정치가가 더욱 비민주적이라니,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권력 욕심이 들지 않으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저, 이제 갓 서른입니다. 최소한 쉰은 넘겨야 그런 험한 물건에 관심을 가지든가 하지요.”
“이해했소. 그대는 진정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뿐이었군···.”
현실적으로도 30대 권력자는 말이 안 된다.
그러니 다음 타자로 가장 유력한 곳과 친분을 도모.
단순히 애국심이 아니라 권력을 향한 기민한 움직임이라 치더라도, 적어도 그 근저에 깔린 사상엔 에베르트는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데 말이오. 대체 무슨 깡으로 그런 위험한 말을 외치셨소? 내가 곧장 고발하면 어쩌려고?”
무릇 약점이 노출되었는데 물어뜯지 않으면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아직 어린 이 전쟁영웅에게 세상에 대한 경각심을 살짝 일깨워주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말조심을 좀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아르민은 아무 대꾸도 없이 눈썹만 살포시 움직여 웃음 지을 뿐이었다.
“로젠바움 사장?”
“아, 죄송합니다. 조금 웃긴 이야길 들어서. 빨갱이가 전쟁영웅 자본가의 쿠데타 음모를 고발하면 그걸 누가 믿어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빌어먹을 자식.”
귀여운 맛이라곤 없었다.
애늙은이 같으니.
***
에베르트를 보낸 뒤, 커피로 얼룩덜룩해진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예상대로야.”
– 그래. 예상대로긴 하지.
지금 중요한 건 쿠데타 따위가 아니다. 어차피 숨만 쉬고 기다리면 분노한 민중들이 황제를 끌어내릴 텐데.
– 정말 권력엔 관심이 없나?
“관심이 넘치니까 이렇게 한 다리 건너는 것 아닙니까, 실패자 양반. 이래 봬도 난 똑똑한 학생이거든요.”
한참 고민했었다.
육군 내의 사조직을 만들고 로젠바움사 직원들, 사민당원들을 무장시켜 베를린을 점거한다든가, 협상국의 지원을 받아 황제를 억류한다든가 하는 쿠데타 방안을 조범석과 함께 몇 차례고 구상했었다.
하지만 다 글렀다. 이런 멍청한 짓은 융커들이나 좋아할 발상 아닌가.
뭔가 엄청난 지략과 음모, 치밀한 준비를 통해 정권을 거머쥐었다고 가정해보자.
그거, 유지할 수 있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고, 황제든 의회든 제압해봤자 어쩌란 말인가.
저 머나먼 동부전선에 힌덴부르크가 있는데.
‘국내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니 회군해서 나라를 지킨다’
위화도 회군 한 번 하는 순간 힌덴부르크 왕조가 세워지겠지. 그러니 남 좋은 일만 시켜줄 적극적인 액션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대관절 나는 왜 에베르트를 붙들고 이상한 이야길 했는가?
왜긴. 점수 따려고지. 내가 이만큼 민주주의와 헌정에 진심이고 반전 사상을 갖고 있다고 어필하고 있잖아. 나는 정말 무해하다고.
게다가 에베르트의 귀에 ‘여차하면 나라를 엎어야 한다’라고 독을 슬며시 주입했다. 그의 결단 시점이 빨라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겠지.
– 영악한 새끼.
사민당? 정권 잡으라고 해라.
카이저를 밀어내고 바이마르 공화국 세우라고 해라.
나는 사민당과 친하게 지내되, 결코 사민당에 입당하진 않을 것이다.
사민당에 입당하면 순식간에 거물이 되고 그 이후에 대통령이나 총리 자리도 도전할 수 있겠지만, 고작 그런 걸 먹고 싶었으면 애초에 이 지랄을 떨지도 않았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잖은가.
일반적인 상황에선 민주주의는 ‘가장 덜 나쁜’ 선택지지만, 나처럼 특별한 사람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란 발목 잡는 사슬에 불과하다.
압도적인 권력.
카이저보다도 강력한 권력.
이 나라와 세상을 완전히 뜯어고칠 힘.
그리고 미래 지식에 의하면, 그 힘을 얻게 되는 건 어떤 칫솔수염 정신병자다.
그런 새끼도 차지했던 힘을 어째서 내가 못 가질쏘냐.
사민당을 밀어준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고 정치와 거리를 둔다.
미래에 찾아올 대재앙 – ‘세계 대공황’의 책임을 모조리 사민당에 떠넘기고 도축해버릴 바로 그 날까지.
천재적인 사업가이자, 전쟁영웅이자, 심지어 사민당의 지지자이기까지 하던 젊은 신인이 다시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독일인들을 구원해주는 것이다!
완벽하다.
어째서 하필 내가 받은 미래 지식이 항공에 관심이 많은 육군 장성, 그것도 쿠데타 경력자의 지식이었겠나?
신이 있다면.
그는 내가 독일인을 다스리길 원하신다.
범석이는 민주주의가 마치 절대적인 선(善)인 것처럼 여기지만, 글쎄. 독일인들에게 영국과 프랑스의 발명품에 불과한 민주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사회주의도 마찬가지고. 70년 만에 유통기한 끝나 망해버릴 체제엔 관심 없다.
독일인들은 강인한 지도자를 원한다.
‘독일식 민주주의’를 이룩해줄 인물.
에베르트도, 힌덴부르크도, 히틀러도 아닌.
영도자(Fuhrer) 로젠바움.
이 미친 전쟁을 두 번씩이나 하지 않게 해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