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39)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39화(39/246)
제국의 충신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는 가끔 짬이 날 때마다 서로에게 하는 질문이 있었다.
“로젠바움 씨는 뭘 보고 우릴 믿은 걸까?”
“하늘을 날고 싶은 사람은 다 훌륭한 사람이라잖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게 말이 돼?”
물론 이들은 다른 지구에서 자신들이 비행기를 최초로 발명했단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지구에서 자신들이 몇십 년간 음해와 거짓과 배신과 소송에 시달린 끝에 한 명은 스트레스로 죽고 한 명은 비행기와 영영 이별한다는 사실도 모른다.
원 역사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아르민 로젠바움은 ‘내가 저들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해준 셈이니 오히려 내가 답례를 받아야 하지 않나?’라는 기적의 논리를 떠올렸지만, 적어도 이를 거울 속 아저씨 외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로젠바움이 최초의 비행기를 개발한 시점에서 라이트 형제가 단순히 자전거 가게로 먹고살던 평범한 자영업자였냐고 하면 절대 그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비행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었고, 국내의 스미소니언 같은 단체에서부터 해외 여러 저명인사에 이르기까지 서신을 통해 부지런히 교우해 왔기에 비행 연구자라면 라이트 형제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르민은 이들 형제를 이상하리만치 융숭하게 대접했고, 자신의 항공 관련 지식을 공유했으며, 라이센스와 돈을 대줄 테니 마음껏 사업해 보라고 밀어주기까지 했다. 형제의 가풍으로 보나 신앙으로 보나, 그들은 이 무조건적인 끝없는 호의에 도저히 뒤통수를 칠 위인들이 못 되었다.
– 어차피 독일에서 미국을 조종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영원불멸의 명성을 훔쳐 먹은 값을 지불한다 생각하자고.
“아무리 봐도 내가 돈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 넌 정말 양심에 털 났냐?
20세기 초에 대서양 반대편 회사를 원격으로 조종하는 건 거의 불가능.
어차피 1차 대전이 터지면 영국이 해상 봉쇄를 하기 때문에 미국과 교류 자체가 끊김.
게다가 몇 년 지나면 미국이 협상국 편으로 참전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적산(敵産)으로 분류되어 압류될지도 모름.
이런 미래를 뻔히 아는 로젠바움은 라이트 형제를 융숭히 대접하면서 ‘압류만 당하지 말자’를 모토로 신대륙 사업에 임했다.
결과적으로.
세계 최초의 항공기 개발사인 로젠바움사의 신대륙 지사, 아니, 이제 WR사로 개명한 이 독립법인(형제는 개전 이후 ‘로젠바움’이란 이름이 매출을 떨어트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은 신대륙의 거의 모든 매출을 독식했다.
그런 가운데, 1914년 7월경 독일에서 미국으로 두툼한 서류 뭉치가 도착했다.
사업상 기밀로 분류되다 못해 아예 본사 직원이 직접 인편으로 가져다준 이 물건은, 향후 전쟁 가능성과 전쟁이 터졌을 때 지사의 지침이 적혀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아르민 로젠바움의 이름을 지우고 독자적인 브랜드와 회사인 것처럼 움직일 것.영국, 프랑스, 미국의 전쟁 수행에 협조하고 적극적인 항공기 납품을 시도할 것.]
당연히 독일의 전쟁 수행에 협조하거나 혹은 친독일적인 광고라도 내걸라고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지시사항은 정반대.
형제는 이것이 사업가 특유의 ‘양쪽에 다 줄대기’ 전략이라고 이해했고, 로젠바움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협상군을 물리친다는 소릴 듣자 그제서야 깨달음을 얻었다.
“틀림없어. 전쟁이 끝나고 보복당할까 봐 이런 지시를 내린 거였어.”
“이긴다면 어차피 전쟁영웅이 될 테고, 우리 회사는 졌을 때를 대비한 보험인 셈이겠지.”
“그럼 로젠바움 사장의 구명을 위해선 지금부터 우리가 적극적으로 점수를 따야 한단 소리구만. 회사의 총력을 기울여서 협상군에 질 좋은 전투기를 판매하도록 해보자고!”
“그러다가 우리 비행기가 사장을 해치면?”
“그거야, 뭐. 그런 걸 다 감안하고 사장도 전쟁에 나섰겠지.”
거기까지 간다면 그건 운명 아니겠는가.
결론을 내린 형제는 최선을 다해 새로운 기체를 제작했고, 유럽으로 건너가 적극적인 세일즈를 시행했다.
형인 윌버가 영국으로 건너가기 직전, 원래 탑승하려고 했던 여객선 루시타니아(RMS Lusitania)호가 독일 U보트에 격침당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WR사? 여긴 로젠바움사잖소? 지금 농담하시오?”
“무슨 소리십니까. 우리 회사는 독일인의 투자를 받긴 했으나 미국인이 경영하고 미국인이 제작하는 미국 회사입니다.”
“으음. 카탈로그 성능은 분명 괜찮소만. 여기, 이 숫자가 정말이오? 이만큼을 공급할 수 있다고?”
“그렇습니다. 대량 발주해 주신다면 어마어마한 수량을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군 항공대 인사들은 그래도 로젠바움의 손길이 닿아 있단 사실을 찝찝해했지만, 세상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괴인도 있었다.
“다들 정신머리가 없나? 지금 우리 항공기가 저 빌어먹을 뻘건 놈들 때문에 씨가 마르고 있잖아! 로젠바움 미국 지사가 아니라 독일 본사라고 해도 우리한테 비행기를 판다고 하면 사야지!”
“하지만 처칠 청장님. 저들이 무슨 속내가 있을지-”
“속내가 있으면 더 좋지! 제리들이 음흉하게 미국 내에서 미국 기업 간판으로 위장해서 사보타주를 한다? 그런 좋은 소재가 쌓이고 쌓이면 미국을 참전시킬 수 있잖아!”
판매한 항공기에 문제가 없다면 아주 좋다.
문제가 있다면 이걸 외교적 문제로 키워 미국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처칠의 생각대로 되었다.
훗날 명성을 떨칠 신대륙의 끝없는 물량.
독일의 압도적인 에이스 파일럿들에 맞서서, 영국은 그냥 엄청난 숫자를 퍼붓는 것으로 이에 응하기로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프랑스까지 발주를 시작하면서, 북프랑스의 하늘은 벌 떼처럼 쏟아지는 협상군의 항공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
1915년 겨울.
베를린.
“아르민 로젠바움! 제국의 위대한 발명가이자 에이스 파일럿이여!”
나는 무수한 군중들 앞에서 카이저를 마주하고 있었다.
저 군중들은 나를 보기 위해 모인 걸까, 아니면 카이저를 보기 위해 모인 걸까.
내 입으로 말하긴 참으로 뻔뻔스럽지만··· 내가 멀쩡한 회사 두고 전쟁터로 뛰쳐나가 협상군 파일럿들을 하늘 위의 별똥별로 만드는 동안 카이저는 대체 뭘 했나. 어째 그동안 제국의 그늘 아래에서 꿀이란 꿀은 쭉쭉 잘만 빨던 융커 나리들보다 내가 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충실했던 것 같은데.
“-그대의 충절을 인정하는바, 이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수여하여 상찬하고자 한다!”
푸르 르 메리트.
프로이센 왕국 최고의 훈장 중 하나.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
“적들이 우리 독일을 침략하기 이전, 로젠바움은 제국의 젊은 기둥으로서 하늘을 우리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지금, 그는 홀홀단신으로 날아올라 우리의 하늘을 침범하려는 적들에 맞서 싸우고 있다! 아, 어찌 이 고결한 성품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
“와아아아아!!”
“로젠바움!! 로젠바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훈장과 군인을 대상으로 한 훈장 두 종류를 모두 다 수여받은 이는 프로이센의 역사를 통틀어서 단 두 명.
바로 독일 통일의 주역인 비스마르크와 대(大) 몰트케.
물론 명분이 없는 건 아니다.
전 독일인의 자긍심이자 자존심이었던 항공기의 발명가가 여지껏 민사 푸르 르 메리트를 서훈받지 못했던 게 도리어 이상한 일. 실제로 시민들 중에선 ‘뭐? 로젠바움이 이제야 민사 훈장을 받는다고?’라며 어리둥절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민사 서훈자가 전쟁터에 나가 용맹을 뽐내 군사 훈장을 서훈받는다고 하면 전혀 어색할 바가 아니지만, 두 훈장을 모두 받았던 이들의 이름값이 하나같이 휘황찬란한 탓에 이를 적절치 않다고 여기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기껏해야 날틀 좀 날린 놈이 비스마르크 총리나 대 몰트케의 위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전쟁의 승리를 이끈 것과 고작 비행기 몇 대 격추한 게 동일선상이라니. 말세군.’
하지만 이와 똑같은 이유에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들 또한 있었다.
‘마침내 서민의 아들이 저들과 동격에 섰도다!’
‘이 나라가 드디어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을 인정해주는구나!’
휘몰아치는 이 미묘한 갈등 구도.
생각한 대로 되고 있다.
나는 이름에 폰 자 붙지 않은 평범한 시민의 대표가 되어야만 한다.
이제 와서 내가 그깟 귀족 작위 좀 받는다고 해서 융커들과 하하호호 지낼 수 있을성싶은가? 저들과의 타협은 오직 단 하나, 내가 우위에 섰을 때만 가능하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내가 두 훈장을 패용한 뒤 군중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올림으로써 이 한바탕 푸닥거리가 끝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맨입으로 이런 잔치를 벌였을 리가 없다.
이건 일종의 거래였으니까.
“로젠바움.”
“예, 폐하.”
“팔켄하인 참모총장을 지지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군.”
“소인은 군무에는 문외한이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릅니다. 하지만 군권을 포함해 이 나라의 모든 것은 결국 폐하의 판단에 달려 있으니, 전 폐하께서 그를 지지하는 한 끝까지 그를 지지할 것입니다.”
나는 팔켄하인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네가 그걸 원하니 지지해주고 있을 뿐.
카이저는 내 말의 뜻을 잘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빌헬름 2세.
바보병신해삼말미잘팔병신스불재사고뭉치고집불통.
그는 사실상의 전제군주였지만, 그는 언제나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위험천만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그는 나를 하나의 손패 정도로 봤지만, 한낱 평민에 불과했던 나는 그의 후원이 없었다면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온갖 병신짓과 이해 불가능한 머저리짓으로 외교적 자충수를 뒀지만, 얼마든지 해프닝쯤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 이토록 세계구급 평지풍파로 확대된 까닭은 독일이 근본적으로 전 세계의 어그로를 끌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그에게 일말의 동정심과 불쌍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대와 같은 충신이 있어 내 말라비틀어져 가는 마음에 한 줄기 물기가 적셔지는 것 같군. 목숨으로 나를 받들겠다고 맹세한 이들, 자네가 비열한 아부쟁이 간신에 불과하다고 비방하던 이들은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제멋대로 굴고 있고, 그토록 간신이라고 경멸받던 자네는 지금 이 순간까지 내게 충성을 바치고 있지! 아, 세상이여!”
빌헬름은 자신이 꼭 비련의 오페라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나긴 탄식을 토했다.
역시.
군주정, 그것도 전제군주제는 이렇게 권력자마저 피폐하게 만든다.
빌헬름은 순전히 호엔촐레른이라는 비범한 피를 타고 태어난 탓에 저토록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야 했다. 인간 빌헬름의 의지와 역량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를 조금 도와줘야겠다.
“걱정 마시옵소서. 신은 폐하의 안녕을 위해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그렇고말고.
몇 년만 참고 기다리자, 빌헬름.
그럼 더 이상 왕관의 무게로 고통받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무겁고 힘겨운 의무는, 나처럼 준비된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