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53)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53화(53/246)
1918년, 겨울 (1)
1918년의 가을이 저물어가는 와중.
나는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와 있었다.
“죄송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혼 없이 왕진을 온 의사에게 감사의 말 몇 마디를 하고, 말 몇 마디보다 더 감사의 의미를 확실히 전달해주는 지폐 몇 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런데 혹시··· 돈 말고 다른 것으로 받을 순 없겠습니까?”
“그러지요.”
난 찬장에서 통조림 몇 개를 꺼내 봉투에 담아줬다. 애써 표정을 관리했지만 의사의 입꼬리가 꿈틀대는 게 그대로 훤히 보였다.
범석이의 말에 따르면 훗날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릴 독감이 무수히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있었다.
보통 전염병이 퍼진다면 어린이와 노인이 가장 먼저 희생당하기 마련인데, 이 독감은 기이하게도 젊은 사람이 더 많이 죽고 있었다.
나이 많은 우리 브루노 씨는 하루 이틀 좀 앓다가 털고 일어났지만, 어머니는 이제 호흡조차 힘겨워하고 있다.
우리 집도 사정은 똑같아서, 체펠린 백작은 노환으로 시름시름 할지언정 독감에 걸리진 않았지만 첫째가 독감에 걸려 몸져누웠다. 에르나는 잠도 자지 않은 채 아이를 간호하고 있었다.
미래 지식이고 나발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페니실린인지 비아그라인지 머릿속에 지식이 있으면 뭐 어쩌란 말인가. 이 시대엔 존재하질 않는데.
내 그토록 물은 끓여 마시고 청결에 유의하고 항상 난방도 따뜻하게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과 교회에 자선이랍시고 다 퍼주다가 본인이 죽을병에 걸리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제 한 몸 건사할 줄 모르는 답답한 사람이었다.
나는 마스크를 쓰라는 조스비의 웅얼거림을 무시한 채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침실로 들어갔다.
“아들.”
“어머니.”
“···미안하다. 아들, 더 멋지고 늠름한 모습 보고 싶었는데. 내가 좀, 힘들구나.”
“······.”
“여기 더 있으면, 콜록! 너도 옮을라. 가보렴.”
나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체하고, 앙상하게 마른 손을 붙잡았다.
과거의 아름다움은 온데간데없었다.
말마따나, 이제 죽음을 맞이할 순간만 기다리는 병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시커먼 것이 울컥하고 솟아올랐다.
– 참아. 참아, 이 자식아. 아가리 그냥 꾹 다물고 있으라고!
“어머니는, 아버질 사랑하셨나요?”
“······물론이지.”
“그런데 왜. 어째서.”
– 너 제정신이냐? 곧 죽을 사람한테 그런 걸 묻고 싶어?
“그게 무슨 말이니.”
“그 의사 말입니다. 에펜슈타인.”
그녀는 잠시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고민하더니, 힘이 다 빠진 가운데도 눈을 크게 떴다.
“나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단다.”
“제가 다 들었어요. 전 그때 들었다고요.”
“그 사람이 내게 치근대긴 했지. 하지만 난 거절했어.”
머릿속이 루덴도르프 사무실처럼 엉망진창이 되어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고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그녀는 내 손과 맞닿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오. 아르민. 내 아들. 여태, 여태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고 있었니?”
“하지만 아버지는-”
“그 사람은 마음이 병든 사람이야. 내가 아무리 말해도 자격지심으로 가득 차서 혼자 멋대로 생각했다고. 들어보렴.”
“아버지는 어머니가 돈 때문에.”
“넌 정말, 네 아빠와 똑같구나.”
– 이런. 이런 빌어먹을.
어머닌 참으로 불쌍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돈 때문이었으면, 그이보다 훨씬 돈 많은 늙은이의 후처로 들어가지 않았겠니?”
“······!”
“네 아버지의 그런 면을, 콜록. 닮아선 안 돼. 사람은, 사람을 믿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불행해져. 사람 때문에 상처받겠지만 그래도 결코 남을 믿는 걸 포기해선 안 된단다.”
그녀는 이제 숫제 애원하듯 내 팔을 흔들어댔다.
힘이 쭉 빠진 내 몸은 그 앙탈과도 같은 흔들림에도 출렁출렁 이리로 저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네 아버질 보렴.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사회적 지위와 위신에 의지할 수밖에, 콜록, 없는 저 모습이, 네 미래가 돼선 안 돼.”
“어머니.”
“엄마는, 하늘에서 우리 아들을 지켜보고 있을게. 훌륭한 사람은 이미 되었으니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엄마? 엄마?”
그녀가 숨을 가파르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의사! 의사!!”
“예?”
“빨리! 다시 들어오시오, 빨리!”
막 대문을 나서고 있던 의사의 멱살을 붙들어 내팽개치다시피 했지만.
“죄송합니다. 환자분께선···.”
그녀를 지상에 붙들어 둘 순 없었다.
***
한 시대, 세계를 호령하던 독일 제국조차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니 사람 하나의 죽음쯤은 충분히 덧없고도 남음이 있었다.
살아 돌아온 군인들의 숫자만큼 이 베를린의 인구를 원래대로 돌리고 싶은 균형이 존재하기라도 하는지, 날이면 날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시체가 되어 땅에 파묻혔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구려.”
“총리님께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셨는데, 제가 어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에베르트를 비롯해 많은 정치가들이 장례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리저리 안면 있던 기업가들과 사회적 명망 있는 인사들, 그리고 군인들에 이르기까지 나와 얼굴을 대면하고픈 자들은 모두 장례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저런 이들을 상대하는 건 내게 익숙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물론이고, 괴링이 이리저리 수소문해 데려온 항공대 전우들도 베를린에 당도하자마자 가장 먼저 장례에 달려와 날 위로해주었다.
이 정도면 최소한 어머니의 유언은 달성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장례를 끝내고, 아버지는 남부의 공장 상태를 확인하고 시설의 통제를 확보하기 위해 뷔르템베르크로 떠났다.
나는 장례에 찾아온 인사들에게 답례를 하고, 귀환한 이들을 맞이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썼다.
괴링은 전투 경험이 있는 이들만을 따로 추려 별도의 사설 무장 조직을 결성했고, 유사시에 ‘적’을 상대로 실전을 치를 수도 있다는 데 동의한 이들만이 이 ‘돌격대’의 멤버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이다음부터였다.
나는 이놈의 로젠바움가가 얼마나 개막장인지 잠시 잊고 있던 게 틀림없었다.
“어? 집에 있었니?”
“어머니 유품 정리해야지요.”
“그, 그건 내가 어련히 할 텐데 뭘.”
비어 있어야 정상인 집에 내가 있자, 아버진 당황해하는 기색이었다.
“회사로 먼저 오실 줄 알았는데.”
“시, 시간이 늦었잖니. 내일 출근할까 했다. 너도 퇴근했을 것 같고.”
“예. 뭐. 그야 그렇죠. 같이 정리나 하시죠 그러면.”
이상하리만치 아버지, 브루노 씨는 쭈뼛거리고 있었다.
– 그럼 저러는 게 정상 아니냐? 평소의 행실을 좀 돌이켜 봐라. 아들이란 놈이 아빠를 발로 툭툭 치질 않나, 눈앞에서 사람을 죽이질 않나.
아니. 그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잖아. AI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제 사람의 마음도 잊어먹은 거냐?
내가 패륜에 관심이 있었다면 진즉 브루노 씨는 세상 하직했다. 회사를 되찾은 뒤 장부를 탈탈 털어 봤는데, 그 낙하산 퇴물 놈과 함께 신나는 횡령 라이프를 즐기신 모양이더라고.
애초에 재무 담당자가 한패가 아니면 삥땅도 불가능하고, 한패가 되길 거절했으면 당연히 잘렸겠지. 사실 내가 암묵적으로 묵인한 거나 마찬가지인 만큼, 브루노 씨가 슈킹한 건 그냥 효자의 용돈인 셈 치기로 마음먹었다. 보고 계십니까, 어머니. 전 효자가 맞습니다···.
“그. 아르민. 내가 소개해 줄 사람이 있는데.”
“네?”
“얘야. 이리 와 보렴.”
뷔르템베르크에서 돌아온 아버진 혼자가 아니었다.
낡아빠진 인형 하나를 끌어안은 자그마한 여자아이 한 명이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내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마리아 바우어라고 해요.”
“어? 그래. 반갑다. 아르민 로젠바움이란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엄마가 엄청 멋지고 훌륭한 분이라고 하셨어요.”
딱 봐도 둘째 오토보다 어려 보이는데도 똘망똘망했다. 내가 혹시 애들을 제대로 교육 못 시키고 있나?
“그래서, 이 아이는 누구입니까?”
“어? 응. 뷔르템베르크 지사 쪽 임직원 아이. 기억할지 모르겠네. 바우어 씨 말이다. 바우어 씨야 전쟁 전에 진작 죽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애 엄마도 가버렸지 뭐니. 천애고아가 됐길래 내, 내가 데려왔다. 내가 너도 키우고, 헤르만도 다 키웠잖냐.”
“키운 건 어머니지 아버지가 아닐 텐데. 괴링 걔는 얼마 안 있어서 기숙학교 들어갔고···.”
갑자기 왜 이리 안 부리던 오지랖을 다 부리지, 이 양반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마저 유품을 정리하려던 그 순간.
나는 마리아라는 아이와 브루노 씨를 번갈아 바라보게 되었다.
닮았다.
저 눈매가 복사해서 붙여넣은 듯 똑같았다.
뜯어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너무 많았다.
– 저. 저저. 저!!
“아버지.”
“으, 응?”
“브루노 로젠바움 씨.”
“왜. 왜 갑자기 그러니.”
“저 애, 몇 살이야.”
“아들아. 잠깐만.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저는 1912년에 태어났어요.”
똘망똘망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애가 먼저 대답했다.
“바우어 씨, 언제 죽었어.”
“유, 육 년 전이던가?”
“7년 전. 1911년에 죽었잖아.”
벌떡 일어선 나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누구 애야.”
“말, 말했잖아. 바우어 씨-”
“누구 애냐고!! 야!!!”
“미, 미안하다! 하, 하지만 진정하고 들어봐다오! 여, 여, 여기엔 다 깊은 속사정이, 그, 여편네가 잘못했어! 가장을 존중할 줄도 모르고 바람이나 피우는-”
나는 그대로 그를 집어 던지며 있는 힘껏 걷어찼다.
수수깡 같은 브루노 씨가 붕 날아가 벽에 부딪혔고, 어머니가 그린 그림이 담긴 액자가 벽에서 툭 떨어져 모서리로 그의 머리통을 찍었다.
머리에 피가 쏠린다.
어처구니가 없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안주머니에 넣어 둔 권총을 뽑았다.
– 저, 저저 씹새끼. 저 육시럴 호로새끼를 봤나. 죽이지만 마. 총 집어넣고 주먹만 쓰자고. 아니. 손잡이로 패자. 그냥 손잡이로 강냉이 좀 추수하자고. 씨발, 내가 몸만 있었으면 저 새끼 귓방망이를 그냥 콱.
“사, 사, 사, 살려줘. 잘못했어. 내가,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다오. 용서해 다오.”
“네가 사람이냐? 유품도 정리하기 전에 사생아를 챙겨서 이 집에 데려와? 우리 엄마 흔적 남아 있는 이 집에 밖에서 싸지른 애를 데려와?! 이 개같은 새끼야!! 짐승도 너보단 나아!!”
퍽. 퍽. 퍽.
그의 안경이 깨져서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내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얼마나 있는 힘껏 팼을까.
이리저리 꿈틀거리던 그는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았고, 고된 육체 노동을 했더니 온몸에 축축하니 땀이 흥건해져 있었다.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따위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참고 또 참은 결과가 결국엔 패륜아 타이틀 엔딩인가? 도대체 로젠바움 성씨 달아서 얻은 게 뭐가 있다고 이런 줘도 안 먹을 개병신 집안 외아들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가능하기만 하다면 몸에 있는 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내서 차라리 장인네 집안 식구 피로 갈아 끼우고 싶다.
그렇게 끓어오르는 탄식 섞인 뜨거운 숨결을 내뿜고 있는데, 나는 문득 아이와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구타의 광경을 바로 옆에서 다 지켜본 아이의 푸른 눈엔 초점이라곤 없었고, 두려움보단 절망만이 가득해 보였다.
“사장님.”
“······미안하다. 못 볼 꼴을 보여줬구나.”
“저는 버리셔도 돼요.”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민폐 끼쳐서, 죄송해요. 돌려보내주세요. 고아원.”
“···어머니 쪽 친척은?”
“아무도 안 계세요.”
만약에 이걸 다 생각하고서 한 말이라면 참으로 영악한 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너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아니니까 이러지.
저런 말을 들었는데도 ‘그래. 괜찮은 고아원을 수배해 주마.’라고 할 만큼 인간 폐기물이 되려면 저기 널브러진 아저씨 정도로 푹 삭아야지.
나는 일어나서 바닥을 굴러다니는 액자를 다시 벽에 걸고, 마리아라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일단 여기보단 우리 집에 가자꾸나.”
“저는 괜찮아요.”
“아직 뭐라고 확답은 못 해주겠구나. 나보단 에르나, 내 부인 의사가 더 중요하거든.”
나는 브루노 씨의 발치에 가래침을 한번 뱉고는 집을 나섰다.
– 그래서 어쩔 거냐?
뭘 어쩌긴 어째.
집에 가서 에르나한테 빌어야지.
가족이 싼 똥 치우는 거, 새삼스럽지도 않다.
오토보다 어린 여동생이라니.
어지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