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55)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55화(55/246)
1918년, 겨울 (3)
이 혼란스러운 시국에서, 돈만 있으면 신분 세탁하는 것쯤 일도 아니다.
협상군이 들어와 혼란스러운 라인란트 지방.
일가족이 떼몰살당한 어느 가정의 유일한 생존자로 마리아의 이름을 바꿔치기하고, 거기서 피난 온 아이를 입양한 것으로 처리하면서 서류상 문제는 모두 해결했다. 이제 저 아이는 사생아가 아니라 내 양녀인 마리아 로젠바움이었다.
막말로다가, 입 밖으로 냈다간 다음 날 내 아침 밥상에 무슨 꼴이 벌어질지 뻔히 예상되니까 다물고 있어야겠지만, 쟤가 진짜로 로젠바움 집안의 핏줄인지 아닌지 21세기처럼 유전자 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겠는가? 눈매야 우연히 닮을 수도 있는 거고.
그래. 이거다.
쟤는 나와 아무 혈연도 없다.
남이다. 완벽한 타인이다. 직원 자녀를 내가 몸소 부양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있는 거라고.
“여동생이요?”
“이리 와! 이 의자가 제일 좋아!”
“네, 네.”
“네, 라고 하지 말고 응이라고 해야지. 이제 가족인데.”
“혹시 비행기 좋아해?”
애들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조금 고민이었지만, 뜻밖에도 두 애들은 아무튼 귀여운 여동생이 생겼다는 것에만 신이 나서 집을 알려주겠다고 연신 난리.
이게 아닌가.
첫째 녀석은 대강 사정을 눈치챈 모양인지 애써 의젓한 모양새를 잡으려 용을 썼다. 신나서 날뛰는 건 둘째고.
얼굴이 퉁퉁 불어터진 브루노 씨는 해외로 발령 내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어려운 시국에 해외에서 식량이나 원자재를 사들여 오는 막중한 임무를 맡겼을 뿐, 절대 내가 꺼지라고 한 게 아니다. 베를린에 돌아오면 어떤 노인네처럼 그 몸으로 자유낙하 실험을 하게 될 거라고 윽박지르지도 않았고, 국외에서 헛짓거리했다간 소송 대신 히트맨을 만나게 될 거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열심히 고개를 조아리곤 헐레벌떡 떠났다.
이쯤 되면 정말 부자관계인지 아니면 사장과 부하직원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부모 둘 다 죽은 셈 치기로 하자.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아버지도 죽은 거다. 틀림없다.
애초에 내게 가족들이 있다면 회사 직원들이나 한 전장에 같이 섰던 전우들이지, 가족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이게 맞다.
– 나도 너만큼은 아니지만 가족이란 인간들이 딱히 도움이 된 적은 없거든?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가족이었던 놈들은 내 단물 빨아먹는 진딧물이었지만,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가족들은 나쁘지 않았어. 마음 좀 추슬러. 사람 인생, 다 직접 만드는 거야.
후. 그러길 바래야지.
내가 대강 마음을 정리했을 무렵이 되자, 하나둘씩 반가운 얼굴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사장님, 혹시 저 기억하십니-”
“슈미트! 세상에, 꼴이 이게 뭔가.”
“세상의 전쟁터란 전쟁터는 다 돌아다니고 왔습니다. 혹시 제 자리가 남아 있는지 여쭤봐도 될지 의견을 여쭙고자-”
“옷 갈아입고, 저기 공중 샤워실을 만들어 놨으니 씻고 나오게. 그리고 바로 사장실로 올라와. 오늘부터 자네 휴직은 끝이야.”
“휴직··· 입니까?”
“사직서 썼었나?”
“아뇨.”
“그럼 휴직이지. 혹시 다녀왔던 거 호봉 쳐달라고 이러나?”
“아닙니다! 바로 일하겠습니다!”
좀비인지 미라인지 잘 구분도 되지 않는 패잔병들.
“대령님. 제가 돌아왔습니다. 받아주시렵니까?”
“뵐케.”
“이제 ‘뵐케’라고 부르면 저 하나밖에 없습니다. 형제가 함께 오지 못했습니다만-”
“제기랄.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왔으면 됐지 무슨 소리야? 항공대는 전우를 버리지 않아.”
“리히트호펜 패거리는 귀족 나리라 그런가 군에 계속 있겠답니다. 나중에 만나면 배신자라고 저 대신 놀려주십쇼.”
오스발트 뵐케를 비롯한 항공대 멤버들 또한 베를린으로 왔다.
이곳으로 오는 이들의 행색은 가지각색이었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죽은 이들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살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의 ‘고향에서 정리할 것만 하고 오겠다’는 전언을 들고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뿌린 씨앗이 쭉정이는 아닌 모양이었다.
***
내 집안 사정 따위 사소한 일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베를린의 정국은 가면 갈수록 혼돈에 빠지고 있었다.
“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가 있는 이상, 결코 혁명은 없습니다! 나는 법과 질서의 수호자가 될 것이며, 모든 독일 국민 여러분에게 소중한 일상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에베르트 당신, 권력을 잡더니 돌아버렸군! 독일 인민은 혁명을 원해! 모든 걸 갈아엎어버리길 원한다고!”
“웃기는 소리! 국민이 원하는 건 더 나은 노동환경, 더 나은 오늘, 그리고 더 나은 미래입니다. 러시아식 혁명을 원하는 이들은 당신네 혁명 나부랭이뿐이고!”
“에베르트가 야합했다! 융커 놈들과 붙어먹어 권력을 손에 넣으려 한다!!”
사민당과 공산당은 연정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현안에서 무섭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에베르트를 위시한 사민당 주류는 공화정 선언으로 1단계가 끝났다고 보았고, 이제 의회 정치에 따라 현실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면 된다고 보았다.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리프크네히트 등을 위시한 공산당은 ‘부르주아 혁명’이 마무리된 지금,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그 뒤를 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들 내부에서도 의견은 갈렸다.
지금 당장이냐, 조금 더 실력을 쌓아야 하느냐.
군부를 위시한 보수파들의 눈엔 사민당이든 공산당이든 전부 카이저의 정당한 자리를 약탈한 빨갱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조리 죽창을 꽂아버리겠단 공산당에 비하면 그나마 그들이 교섭할 만한 대상은 오직 사민당뿐.
루덴도르프의 빈자리를 맡은 그뢰너(Wilhelm Groener) 참모차장은 <에베르트-그뢰너 협정>을 체결했다.
[1. 군부는 공화국에 충성한다.2. 에베르트는 볼셰비키의 그 어떠한 종류의 국가 전복 시도도 허용하지 않는다. 군부는 현 체제 유지에 협력한다.
3. 군 지휘권은 군부 장교단이 자체적으로 가지며, 이를 뒤엎기 위한 시도를 막는다.]
이 밀약을 통해 군부는 과거 프로이센 시절과 마찬가지로 ‘국가 안의 국가’로서 따로 놀 권리를 갖게 되었다.
에베르트도 군부에 언젠가 칼질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사민당 정부는 군부를 수술할 역량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도, 저들 수구파들도 반란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것은 매한가지.
극좌 반란과 극우 쿠데타라는 양면 전선에 봉착한 에베르트는 일단 군부와 손을 잡고 공산당과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1918년 12월.
독일 각 지방에서 보낸 대의원들이 베를린에 모여 이 나라의 앞날과 정부 구성 방안에 대한 중대한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사민당은 공산당에 대해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공산당이 제안한 안건들 상당수는 쓰레기통에 들어갔고, 독일인들은 모든 것을 뒤엎는 미개한 ‘러시아식’ 혁명 대신 적당한 수준의 개혁을 바란다는 사민당의 노선이 받아들여진 듯 보였다.
하지만 혁명의 불꽃이 완전히 꺼지지도 않았다.
프로이센 융커 냄새 풀풀 나는 기존 독일군 대신 계급도, 상하도 없는 <인민군>의 창설을 지지하는 안건이 통과되자 에베르트와 군부는 경악하고 말았다.
“에베르트 총리. 지금 폭도들이 원하는 건 볼셰비키 혁명입니다!”
“······.”
“군부는 힘을 빌려줄 준비가 되어 있소. 말만 하시오. 싹 쓸어버릴 테니.”
공산당의 이름하에, 혹은 그들과 관계없이 도시 곳곳에 자칭 <적위대>라는 이름의 무장 집단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공산당의 영향이 짙어 보이는 이른바 <인민해병> 부대 – 킬 군항에서 반란을 일으킨 뒤 베를린으로 상경한 수병 집단 1천여 명은 무장한 채 베를린 궁궐을 점거하고 있었다.
이에 대응이라도 하듯, <자유군단>으로 통칭되는 우익 보수 민병대 또한 연일 기세를 올리며 직장 잃은 귀환병들을 자신들의 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터져도 뭔가 터질 예정이었다.
***
<인민해병대>는 베를린의 무장 단체 중 가장 전투력이 충만해 보였고, 혁명의 일등공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겨우 한 달이 지나자 이들의 거취 문제가 점점 삐그덕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저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저들은 정부에 충성하기보단 공산당에 충성하고 있습니다.”
“궁전에 있던 미술품 중 상당수가 사라졌습니다. 보나 마나 멋대로 약탈한 듯합니다만···.”
“규모를 1천 명에서 6백 명으로 축소하고, 제멋대로 눌러앉은 궁궐 대신 베를린 외곽에 새로 주둔하라고 하지.”
정부의 요구를 이들은 단호히 거부했다.
대신 그동안 밀린 급여를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베를린 대로를 위풍당당하게 행진했다.
“이렇게 합시다. 궁전 열쇠를 정부에 반납하고 퇴거한다면 밀린 임금 8만 마르크를 지급하겠소.”
“들은 거랑은 이야기가 다른데? 우린 공산당하고만 협상하겠소. 거기랑 협의했단 말이오.”
“우린 처음 듣는 말이오. 열쇠를 돌려주지 않겠다면 급여 지급도 없소.”
“이 새끼들이 말을 바꾸네? 야! 우리가 우스워?!”
분노한 수병들은 협상을 진행하던 사민당 중진을 붙잡아 인질로 삼은 채 다시 한번 거리로 뛰쳐나왔다.
“어떻게 협상을 위해 파견된 이를 억류한단 말입니까?”
“더 이상 저 망동을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군부는 저들 빨갱이들이 베를린에 설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지··· 진압하시오.”
크리스마스를 앞둔 1918년 12월 24일.
베를린 한가운데에서 기관총과 대포가 동원된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혁명 만세!!”
“사민당은 꺼져라!”
“사민당은 개소리 그만 늘어놓고 즉각 급여를 지급해라!”
“와하하! 수구 놈들의 졸개들이 도망치는구나!!”
이 교전에서 정부군은 패배했다.
전쟁도 다 끝났는데 베를린에서 총질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정부군 측은 사기가 바닥을 기었고, 군부가 베를린까지 끌고 온 수천 병력은 모래알처럼 녹아버렸다.
어찌어찌 전투를 벌여 양측 모두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이들 인민해병대를 끝장내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박살나고 말았다.
“룩셈부르크 동지! 군부와 결탁한 에베르트 놈들의 정권은 허약해 빠졌습니다!”
“지금 당장 결단합시다! 혁명입니다, 혁명!”
“여러분. 진정해 주세요. 베를린은 몰라도, 아직 우린 독일 전역에 혁명을 전파할 역량이-”
“결코 다시 혁명! 결코 다시 혁명!”
“전부 죽이자!!”
생각보다 군부가 허약하다는 걸 깨달은 공산당 안에선 ‘지금 당장 다 뒤엎어버리자’라는 강경파가 대세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공산당 지도부는 통제력을 잃고 있었다.
이제 공산당은 사민당의 진압 시도를 맹렬히 비난하고 사민당 정부가 합법적인 임시 정부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공산당의 저 선언을 사민당 정부는 ‘조만간 혁명을 일으키겠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베를린은 피를 원했다.
***
온몸으로 중력의 신비를 체험한 전 사장이 사라진 뒤, 그놈의 집을 뒤졌지만 집에서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놈이 임대해 둔 창고의 부동산 서류를 입수했고, 그곳을 까보니 세상에 이럴 수가. 내 수집품들은 물론 각종 식량과 무기가 그득한 게 아닌가.
수천 수만 로젠바움사 임직원이 다 쓰기엔 언 발에 오줌 누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이걸 내 개인 소유물을 ‘임대’해준 이자소득인 셈 치고 전부 가져왔다. 그놈 가족? 살려준 걸 감지덕지하게 여겨야지.
성탄절 연휴.
나는 로젠바움사 사장실에서 에베르트와 다시 만남을 갖고 있었다.
“협력해 주시오.”
“무얼 말입니까?”
“무장 집단.”
으음.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나. 권력을 잡고 난 뒤 피에 취하기라도 한 건가.
“각하께선 원리원칙을 따지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소.”
“저는 절대 비정규 사설 무장 조직 따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법을 준수하고-”
“말장난할 시간 없소.”
원리원칙을 부르짖던 그는 지금 자신이 원칙을 파괴하고 있단 사실에서 슬며시 눈을 돌렸다.
“군부는 자신들 눈에 거슬리는 빨갱이들 따위 전부 쳐죽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건 순 공갈이었소. 군은 볼셰비키 혁명을 진압할 역량이 없소.”
“으음···.”
“그리고 귀하도 눈과 귀가 있다면 알겠지만, 공산당의 반란이 목전에 있소. 당신이 말한 대로, 그들이 이 나라를 장악한다면 가장 먼저 당신 같은 자본가부터 낫으로 찍어 죽일 게요.”
“총리님도 굳이 따지자면 빨갱이 아니셨습니까?”
“나는 눈곱만큼도 혁명에 관심 없소. 전쟁이 이제야 끝났는데 여기서 좌파 우파 나눠서 내전을 치르자고?”
에베르트는 진심으로 질색했다.
“군대 대신 당신이 보유한 무력으로 빨갱이들의 혁명 시도를 막는다면, 그에 합당한 보답을 하리다.”
“죄송합니다만 빨갱이들과 목숨을 건 적이 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대금은 지급하기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정중히 그의 제안을 사양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보시오.”
“그리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별도의 무장 조직을 거느리고 있지 않습니다. 제 직원들이 총을 들고 베를린으로 가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걸 날조했다가 걸리는 날엔 제가 끝장납니다.”
“그럼 다른 질문을 하지. 명분이 있다면, 개입하겠소?”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명분을 만드는 건 이제 에베르트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