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59)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59화(59/246)
베르사유로 가는 길 (1)
카이저 빌헬름 2세는 끝났다.
“날 멋대로 퇴위시키겠다고! 누구 맘대로! 짐은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 폭도들 따위가 어찌 신성한 왕권을 건드리느냐!”
라고 위풍당당하게 외치던 그는.
“짐의 신민들이 고통받는 것을 목도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도다. 그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짐은 기꺼이 퇴위하겠다. 그런데··· 혹시··· 독일 제국 카이저의 자리는 내려놓더라도 500년간 우리 가문의 자리였던 프로이센 국왕 자리만큼은 남겨 주면 안 될지···?”
순식간에 추해졌다.
독일 제국을 이루는 수십여 개의 영방국 중 프로이센의 비중은 단독으로 약 2/3.
빌헬름의 어처구니없는 희망사항은 단칼에 거부당했고, 그는 네덜란드로 망명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빌헬름은 아직 부스러기 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폭도들의 기세가 등등하니 설령 복위의 뜻을 품은 이들이 있더라 하더라도 나서기에 적절한 때는 아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우리 가문이 나라를 다스린 지가 얼마나 되었는데 충신과 열사들이 없겠습니까? 그들이 반드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움직일 겁니다.”
그의 자식들 또한 마찬가지.
하루아침에 제국의 황족에서 평민 신분으로 전락하고 재산마저 독일의 폭도 손에 떨어졌으니 딱히 정신이 멀쩡하긴 어려웠다.
“충신이라. 충신··· 대체 누가 충신일꼬.”
“힌덴부르크 장군이 있잖습니까?”
“그 늙은이가 어딜 봐서 충신이야.”
“로젠바움, 아르민 로젠바움은 충신 아닙니까?”
막내의 말에 빌헬름은 잠시 고민하다 아주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게 베를린을 떠나지 말라고 간언을 올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힌덴부르크의 말에 따라 벨기에로 옮겨 가고 말았지. 지금 돌이켜본다면, 로젠바움의 말이 옳았다. 폭도들의 손에 사지가 찢어질지언정 궁을 지켰다면 왕통은 지켰을지도 모르지.”
“아버지!”
“로젠바움이야말로 충신이 틀림없습니다!”
“무슨 헛소리야! 로젠바움 그자야말로 아버지를 홀린 간신배 아닙니까! 이 신문 보십쇼. 그놈이 사민당을 전적으로 지지했다지 않습니까!”
“공산당의 발호를 막은 것도 로젠바움입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시세에 따라 판단한 것이지, 결코 황가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을 위인이 아닙니다!”
자식 놈들이 투닥대는 꼴을 멀거니 바라보던 빌헬름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언젠가는 때가 올 것이다. 우린 기다리자꾸나.”
결코 빌헬름은 꿈에 교수대가 아른거린다는 말 따위는 꺼내지 않았다.
왕관이고 뭐고, 제발 저 비열한 영국과 프랑스가 그를 재판정에 끌어내지만 않았으면.
‘살려만 다오.’
***
한편 카이저가 사라진 뒤 군부의 움직임은 조금 미묘했다.
휴전 협상 결과 벨기에에서 즉시 물러나와야 했던 군부는 새롭게 독일 국내 카셀(Kassel)이란 도시에 총사령부를 설치했고, 여전히 참모총장직에 남아 있는 힌덴부르크가 군권을 휘둘렀다.
루덴도르프 또한 카셀로 가 총사령부에 합류하려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이는 불발.
그는 가짜 수염을 달고 파란색 안경까지 쓰면서 가짜 신분으로 노르웨이를 거쳐 스웨덴으로 도망쳤다. 지은 죄가 워낙 많았으니 처형장이 아른거릴 만도 했다.
탄넨베르크의 영웅이라는 압도적 성과와 군부가 전쟁 후기 내내 행했던 프로파간다와 신격화가 결합되었다.
그 결과 군부는 비난받을지언정 힌덴부르크 개인은 여전히 콘크리트 같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패전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혈안이 된 군부는 더더욱 힌덴부르크에게 매달렸고, 도리어 그의 위상은 올라가기만 했다. 군부, 나아가 융커들의 지지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가운데 독야청청한 건 그뿐이었으니.
물론 힌덴부르크가 지지를 얻는다 한들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일단 겉으로는 공화국 정부에 충성하기로 서약했지만, 행보는 극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각하. 빨갱이들이 베를린 곳곳을 장악하고 당장이라도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킬 기세입니다. 에베르트 총리가 군의 동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럴 순 없지.”
이미 국민적 증오를 받고 있는 군인데, 아무리 빨갱이라고 하지만 그들을 때려죽였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규군은 절대 움직이지 마시오. 어디까지나 우국충정의 뜻을 가진 민간인이 행동에 나서야 하니.”
“알겠습니다. 자유군단이 토벌전에 나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힌덴부르크도, 그 아래의 융커들도.
그들에게 공화국 정부란 멋대로 샘솟은 잡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무언가.
이 독일의 정당한 정부는 오직 카이저가 다스리는 제국이며 융커들은 그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 선택받은 군사 귀족이었다.
그런데 공화국이 수립되면, 그들은 무엇이 된단 말인가?
“시대가 바뀌었으니 우리의 역할도 바뀌어야겠지. 우리 독일군은 빨갱이들에 맞서서 독일을, 그리고 나아가 서구 기독교 문명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야 하오. 그래야만 영국과 프랑스가 우리 독일에 대한 공세 수위를 조금이라도 낮추겠지.”
“베를린의 정부 또한 해당 입장에 대해 지지의 뜻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은 서부 전선에서는 전면적인 철수를 신속하게 단행했지만, 동부에서는 곱게 물러나는 대신 최대한 미적거리며 심지어는 교전까지 서슴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영국이고 프랑스고 미국이고, 전부 소련에 대한 개입을 검토 중이지 않은가? 연합국이었던 나라는 어디까지나 ‘러시아 제국’이지 저 정체 모를 시뻘건 나라가 아니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그냥 이 자리에서 물러나 훌훌 털고 싶지만,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
홀로 집무실에 남은 힌덴부르크는 서랍을 열고 한 꾸러미의 서류를 매만졌다.
농장.
받아먹긴 했지만 그 실물은 구경도 해보지 못한 농장.
은퇴하기도 전에 이 집무실에서 생을 마감하긴 싫었다.
파울 폰 힌덴부르크.
최고의 전쟁영웅이고 명장이고 상관없이.
그도 전역하고 예비역이 되었다가 도로 끌려나온 한 명의 인간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었다.
진짜로.
그랬기에 더더욱.
베르사유에서 들리는 소식을 들었을 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독일의 항복을 받고 그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묻기만 해선 안 됩니다. 대체 누가 책임이 있는지를 엄격하게 따져야만 합니다!”
“그야 당연히 현 독일 정부 아니겠습니까?”
“아닙니다! 지금 공화국을 선언한 이들은 전쟁이 시작되었을 무렵엔 단순히 카이저와 융커들을 위한 거수기, 장식품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이 책임을 져야지요!”
유럽에 발을 디딘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날카롭게 외쳤다.
“카이저 빌헬름 2세! 그리고 무수한 인명을 살상하고 침략 전쟁을 일으킨 독일의 군부 대표 힌덴부르크! 이 두 사람이야말로 반드시 심판받아야 할 이들입니다!”
“당신 미쳤소?!”
“영원한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파란은 예고되어 있었다.
***
1919년 1월 19일.
공화국 최초의 선거가 시행되었다.
이 선거는 여러모로 세계 역사적인 의미에서도 혁신적이었다.
[완전 비례대표제. 인물이 아닌 정당에 투표한다.] [투표 연령 20세 이상.] [여성 참정권 허용.]그야말로 파격과 혁신.
21세기의 민주정 기준과 비교했을 때도 그다지 꿀릴 부분이 없었다.
[사회민주당 대승리!] [시민들은 사민당을 원한다!] [투표율 83%. 민주주의를 향한 전 시민의 열망]그리고 이 선거에서, 사민당은 단독으로 약 40%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시민들의 민의가 명확하게 사민당을 가리킨 것이다.
– 봤나?
봤지, 그럼.
조범석이 비쳐 보이는 대형 거울은 낙하산 영감쟁이의 창고에서 찾아낸 것이 아니었다.
사장실의 모습을 기억하던 이들은 그의 집 한켠에 아주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이 거울을 발견했고, 남의 집을 약탈하는 게 아닌가 하는 최후의 죄책감마저 기쁜 마음으로 훌렁훌렁 벗어던졌었다.
그렇게 되찾은 거울속에서 왠지 모르게 으스대고 있는 조스비를 보니 절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왜 사민당의 승리를 그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사민당이 이겼으니 내가 청구서를 두툼하게 내밀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긴 하다만.
– 그딴 거 말고. 저게 시민들의 힘이다. 풀뿌리 민초들의 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저 열기를 보라고!
지금 뭐라는 거야. 쿠데타 실패자가. 누가 들으면 민주 투사 납신 줄 알겠네.
내 텔레파시를 전해 들은 조스비는 똥 씹은 면상이 되고 말았지만, 이내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 이제부터 단 한 발짝이라도 헛디디는 순간, 우린 죽는다.
그리고 지금, 조범석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한 나라의 헌정을 파괴하려 책동하던 시절로 돌아와 있었다.
“우리가 아니지. 나야. 두 번 죽는 사람도 있던가?”
– 그러고 보니 약관을 똑바로 안 읽어서 그런가, 네가 뒈져버리면 내가 어찌 되는지도 모르는군. 영원히 이 망할 세상을 떠도는 망령이 되려나.
그는 피식 웃었다.
– 보다시피, 바이마르 공화국은 절대 가냘픈 온실 속 화초 따위가 아니야. 저 무수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독재 추종자로 바뀌었겠나? 많은 이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지.
“그치만 졌잖아? 자, 쓰레기죠?”
– 네놈은 최소한 적수에 대한 예의라는 걸 좀.
“안다. 알고말고. 아니까 더 이러지. 한 나라를 통째로 먹어버리는데 인생을 거는 미친 짓을 하려니까 이러는 거지.”
범석이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공화국의 적.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저 봉기를 계기로 영원한 원수지간이 된 공산당.
연합국이 결코 카이저 복위를 허용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차선책으로 공화국을 택한 왕당파.
공화국의 정국을 장악해 자신들을 위한 나라로 만들고 싶었던 보수 우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치당까지.
사실상 그냥 전부 아닌가.
첫 번째를 뺀 2와 3이 4를 지지하게 되면서 칫솔수염의 나치 독일이 마침내 그 막을 올리게 된다. 여기까진 나도 알고 있다.
– 공화국을 주도하던 사민당은 조만간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하고, 우파는 <내부중상설>을 주장하며 항상 사민당의 정당성을 흔들었다. 게다가 이 공화국은 공화정을 부정하는 이들에게도 피선거권을 인정하고 있지. 공산당과 나치당은 수십 년간 끊임없이 정국을 뒤흔든다.
하지만 결정타는 역시 세계 대공황. 경제가 무너지면서 민심이 요동친 것이 결정적이었지.
나는 손을 깍지 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베르사유 조약.
대공황.
이 두 가지는 요컨대, 들이켜는 순간 무조건 병신이 되는 독이 든 성배.
아직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도 하지 않은 지금부터 대공황이 터지기 전까지, 나는 정권을 탈취할 힘을 기르면서도 동시에 결코 정권을 장악해선 안 된다. 저 독약을 원샷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사민당이어야만 했다.
– 공화국을 무너뜨린 건 히틀러지만, 그놈은 어디까지나 마지막 일격을 날린 데 불과해.
“그러면?”
– 힌덴부르크. 공화국을 파괴한 건 실질적으로 바로 그 영감이다. 내가 쿠데타를 일으킨 건 사실이지만, 이미 대통령이 대한민국 제6공화국을 반쯤 무너뜨린 것과 똑같지.
농장 받아 간 그 늙은이에게 그만한 야심이 보이진 않았는데.
아니지. 이미 한번 최고권력자의 지위를 맛봤던 사람이다. 의회제 소꿉놀이가 얼마나 가당찮아 보였겠나.
– 전국적 조직을 확보한 히틀러조차 힌덴부르크의 간택을 받아서야 비로소 권력을 쥘 수 있었다. 알겠나? 한 나라를 먹어치운다면 우린 조직부터 만들고 정치적 정당성을 얻어야 해. 한 줌 돌격대 따위론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라를 차지할 순 없다!
조스비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요컨대 나는 이름 있는 연예기획사 사장쯤에 불과하다.
돈도 많고, 명성은 하늘을 찌르며, 전 세계적인 호감도 가득한 데다가 부릴 수 있는 건달패도 많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나라를 얻는다? 무리지.
하지만 범석이의 말엔 어폐가 있었다.
“그러니까,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 그 진흙탕에 기어들어가서 놀았다간 향후 벌어질 이벤트에 대한 책임도 같이 부담하게 되니까.”
– 그래.
“그렇지만 동시에 정치적인 조직을 일구고 영향력을 얻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권을 얻을 수 없으니까.”
– 잘 이해했네.
“뛰면 죽는데 뛰어야 한다고? 혹시 군인이 아니라 소피스트셨나?”
어이가 없어서 정말.
– 그러니 내가 사민당 입당하자고 말했잖나.
그건 기각. 사민당 당 조직을 내가 장악한들, 그들이 절대권력자를 옹립하는 데 도움을 줄 리가 없다.
역설적이지만, 내가 칫솔수염에 비해 유리한 입지라는 점이 현 시점에서 창당이란 선택지를 가로막고 있었다.
일개 상병따리가 차린 나치당은 집권 직전까지도 광대나 머저리 취급을 받기 일쑤였고, 모두가 그를 우습게 여긴 탓에 칫솔수염은 본색을 드러내기 직전에 다른 정적들의 협조와 도움을 받아냈다.
– 그래. 히틀러와 넌 완전히 처지가 다르다. 네가 극단주의 정당을 창당하는 순간 공화국과 사민당은 널 제거하기 위해 움직일 게 틀림없어.
이거도 안 된다, 저거도 안 된다.
그렇게 신나게 떠들었으면 이제 대안을 제시하셔야지.
조범석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팔짱 낀 양손에 힘을 바짝 주며 고민하더니, 결국 탄식 한 번을 내뱉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네녀석이 봤던 대한민국 대통령, 기억하나?
“그 산낙지 씹어먹던 사람?”
– 그래. 그자, 한준현은 일반적인 정치가의 궤적을 밟지 않았다. 그가 당선되기까진 꽤 복잡한 정치적 이벤트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네 처지와 꽤 비슷하긴 하군. 벤치마킹해보자고.
“비슷하다, 라.”
–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젊은 사업가였지. ‘아름다운 청년’ 같은 수식어가 붙었던 시절도 있었고.
“비슷하긴 하네. 그래서, 그 사업가가 정치하기 전에 뭘 했길래?”
– 시민단체.
***
얼마 뒤.
나는 <독일중흥민족각성운동>이라는 길고 아름다운 명칭의 단체를 창설했다.
“로젠바움 사장님! 아니, 이제 사장님도 아니시군요. 이 단체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하. 일전에 어쩌다 보니 연설에서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제 목표는 간단합니다. 이 나라의 모든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죠.”
“구호단체입니까?”
“조금 다릅니다. 저소득층과 여성의 교육. 양질의 일자리 알선. 전쟁으로 황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의 안정 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를 주는 대신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겠단 말씀이시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장님 같은 분이 이 세상에 더 많아지셔야 할 텐데요.”
뭐, 지금은 그렇지.
회원수가 수백만쯤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