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6)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6화(6/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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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는 프랑스 김나지움 베를린(Französisches Gymnasium Berlin)이라는 이름의 학교가 있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이름이 ‘서울미국고등학교’인 셈.
언뜻 들으면 이상할 수도 있지만, 이 학교는 무려 1689년에 개교한 유서 깊은 학교. 애초에 이곳 베를린으로 초청한 프랑스 개신교도들, 일명 ‘위그노’들을 위해 지은 학교이기 때문에 이름이 이렇게 붙었다.
이 학교는 프랑스어를 굉장히 중시하고, 프로이센답지 않게 제법 자유로운 학풍이 강했다. 학생들도 아무래도 군국주의 냄새 풀풀 나는 군사 귀족들보단 외교관, 사업가 등 자유주의 기조 강한 이들이 많고, 특히 유대인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의 유서 깊은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을 기이한 학생은 이미 학교의 명물이자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삐약이들. 혹시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절대 따라가지 말고-”
“네에에.”
“오고 있어. 그놈이야!”
“신입생들! 저 괴인에게 홀리면 안 됩니다!”
다리가 길쭉길쭉한 한 학생이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모양새가 사람인지 퓨마인지 참으로 의심스러웠다.
이윽고 도착한 그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사람을 무슨 마귀나 악령처럼 묘사하지 말라고.”
“훠이! 훠이!”
괴인, 아르민 로젠바움 등장.
이번에도 어김없이 신입생들의 간을 빼먹기 위해 저 괴인이 기웃대기 시작하자 선배 학생들의 긴장은 최고 수위에 이르렀다.
저놈은 갓 입학한 5학년일 때부터 졸졸 브라우히치(Walther von Brauchitsch) 선배를 따라다닌 탓에 멘탈이 붕괴된 선배가 결국 포츠담의 유년 군사학교로 도망쳤다는 전설을 써내렸다. 그 이후부터, 학교 선생들을 붙잡고 몇날 며칠, 아니 몇 달 동안 집요하게 그놈의 비행이 어쩌고를 늘어놨다거나-
“아니, 얘들아. 너무 그러지 말고 진정해봐. 나는 어디까지나 과학 발전의 최선두에 앞장서는 <항공역학연구회>의 회장으로서 신입생들에게 우리 회 홍보를 하고 싶을 뿐이야.”
“지랄.”
입만 다물고 있으면 로젠바움은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한시도 입을 다무는 일이 없어서 그렇지.
놈은 참으로 매력적인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멋도 모르는 신입생들이 잘생겼다며 속닥댔지만, 아서라. 저 면상에 속아넘어가 피 본 놈들이 대체 몇인가 말이다.
“내가 무슨 나쁜 일 하겠다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
“네가 만들었던 기구에 신입생을 강제로 태우고 베를린 교외까지 날려버렸다고 들었는데···.”
“그건 비행의 참재미를 깨우쳐주려고-”
“애들 삥 뜯는 건?”
“삥이라니! 그냥 항공 발전에 기부 좀 해줄 수 없냐고-”
“그게 삥이야, 이 자식아!”
“들어봐. 지금 단돈 1마르크면 내가 만들 사상 최초의 비행기 날개에 네 이름을 적어줄 거라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대가가 단돈 1마르크야. 엄청나지 않아?”
참으로 슬프게도, 로젠바움은 똑똑했다.
밥 먹고 하는 짓은 휴먼의 상식과 조금 거리가 있는 괴생물체였지만, 적어도 거침없이 월반을 해가며 남는 시간에 항상 뭔가를 뚝딱거리는 저 에너지만큼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저 나이에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 편지 한 뭉텅이를 보내는 놈이 어쨌거나 크게 될 놈이 틀림없다는 덴 다들 이의가 없었다.
“3마르크 98페니히. 놀라운 가격! 3마르크 98페니히면 지금 당신도 곧장 항공의 새로운 역사를-”
“안 돼. 돌아가.”
“독일의 미래 여러분! 우리는 이성을 가진 문명인입니다! 야만스러운 러시아인들이 땅을, 음흉한 영국인들이 바다를 차지했다면 우리 독일인은 하늘을 손에 넣어야만 합니다! 인간은 날 수 있습니다! 하늘이 우리의 것이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도전정신과 용기, 불굴의 인내심을 가진 젊은이들은 나와 함께-”
“돌아가라니까!”
마침내 아르민은 입을 삐죽이며 사라졌다.
“저분은 누구예요?”
“알면 다치는 미치광이예요. 곧 졸업할 사람이니까 신입생 여러분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저놈이 저리 근엄하게 폼을 잡는 게 보통이고 아주 극히 촐싹댔다면 저놈의 <연구회> 회원이 아마 수십 배는 더 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비행기 제작 같은 거 때려치우고 사이비 교주라거나 레전드급 약장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독일제국의 미래를 고려해 주님께선 아르민에게 위엄이라는 걸 뺀 게 틀림없었다.
***
몇 년 전.
내가 김나지움에 입학할 때였다.
“친구들 많이 사귀고. 좋은 인맥 잘 잡고.”
“너무 노골적인데요.”
“너는 다 알아듣잖니.”
초딩 아들에게 무력으로 제압당해버린 이 시대의 슬픈 하남자 아버지.
솔직히 말해, 나는 이제 더 이상 생각하는 걸 포기했다. 막말로 불륜이 먼전지 폭력이 먼전지도 나 모르잖아. 그냥 이 주제에 더해 더 이상 깊게 파고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필 저 학교예요?”
“문제 있니?”
“아빠 쥬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왜? 유대인 중에서도 좋은 사람은 많단다. 유대인 싫어하면 은행 일은 어떻게 하겠니.”
오. 차별의식이 없는 드문-
“당장 에펜슈타인 박사님만 해도 훌륭한 분이잖니.”
병신··· 그저 병신···.
나는 얄팍한 살얼음 같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내 해탈을 뭔가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아버지는 어느 순간 나를 아들이라기보단 반쯤··· 친구? 친구까진 또 아니고, 아무튼 준-동등한 관계쯤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 비정한 게르만 가부장 사회에선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가끔 출장에서 돌아와 시간이 날 때면 경제나 금융 방면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설명하곤 했는데, 나는 얌전히 그걸 받아 들으며 나름대로 지식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내가 자리만 잡고 나면 진짜 우리 가족 싹 다 손절하든가··· 아니지, 후레자식은 독일에서도 제대로 대접 못 받는다. 효도는 결코 조선만의 아이덴티티가 아니거든.
“당신 미쳤어요?!”
“아, 아니. 남자들끼리는 원래 다 술을 통해서 어른이 되는 거니까, 아비로서, 그.”
“우리 집에 주정뱅이는 당신 하나면 충분해! 죽어! 죽어!! 제발 어디 강물에라도 빠져 죽어어!!!”
“내가 하다 하다 여편네한테까지 맞고 살, 악! 악!! 잠깐, 거긴, 악!”
어느새 아버지는 맛이 들렸는지 내게 먼저 대작을 제안하곤 했는데, 그 꼴을 본 어머니는 순식간에 삼두육비의 괴물로 변신해 피의 폭풍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로 우리 둘의 대작은 오직 맥주로 한정되었다. 암. 독일에서 맥주는 술이 아니라 음료수지.
그래. 이 정도면 딱 됐다.
집안 꼬라지가 개판이든 뭐든 알 게 뭔가. 19세기다, 19세기. 21세기의 따뜻한 가정을 바라는 건 그야말로 사치 중의 사치.
생각해보면 그 21세기에서조차 ‘쇼윈도 부부’라는 말이 통용되고, 조범석 씨 어린 시절만 해도 두 집 살림이니 첩이니 하는 말이 통용되었다. 조선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아무튼 장막 뒤편의 개판을 잊은 채, 나는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그리고 나는.
입학 후 첫날부터 바로 이미지 메이킹에 돌입했다.
“아르민 로젠바움입니다. 저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와아.”
“바본가? 그게 돼?”
“저는 10년 내로 제 손으로 직접 비행기를 만들겠습니다. 혹시 자본이나 기술이나 아니면 널찍한 창고라도 빌려주실 분이 있다면-”
“아르민? 여긴 네 투자설명회가 아니란다!”
“하하하하!!”
네? 그게 무슨 소리죠?
그거 아니면 여기 입학한 이유가 없는데.
인맥을 헌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내가 대관절 왜 이 학교에 입학하겠는가. 프랑스어 배우려고?
사실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부터 프랑스, 다시 말해 연합국 쪽에 끈을 댈 수 있는 미약한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여기 오는 게 맞다.
독일은 어차피 전쟁에서 져서 잿더미가 된다.
1914년 이후에 이 나라는 폐허가 되고, 패전국이 되어 연합국 앞에서 숨도 못 쉬고 사는 게 이 나라란 말이다.
그러니 미리미리 프랑스에 친한 사람들이라도 만들어 두고, 특히 유사시에 돈이나 사업을 독일 국외로 반출해 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성실하게 학창 생활을 영위했다. 정말이다. 미래의 육군 원수 중 한 명, 브라우히치가 나 때문에 학교를 도망쳐 군대로 튀었다는 건 어디까지나 음해에 불과하다.
시대의 흐름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우민들이 무어라 투덜대거나 말거나.
내 모든 준비는 아주 착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2년 빠르게 월반해 김나지움을 졸업할 예정이 된 순간, 이미 내 이름은 알음알음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
시간은 쏜살처럼 흘러간다.
“아들아. 정말 비행기 개발, 가능한 거 맞니?”
“아. 좀 믿으시라니까?!”
“그치만··· 사람들이 나보고 슬슬 자식사랑에 미쳐서 돌아버린 거 아니냐고 손가락질한단 말이다.”
“아, 됐고. 1천 마르크만 더 대줘요.”
절대 내가 호로자식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진짜다. 믿어 달라. 개발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고 나는 비행기를 발명할 수 있다. 진짜로. 엄마 이름 걸 수도 있다.
이 시대에 비행기 개발에 인생을 건 사람들은 수두룩 빽빽했고, 대개 ‘제정신이 아닌 인간들’ 취급을 받았다. 21세기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무한동력을 개발하려는 사람들 같은 느낌이라 보면 되려나.
하지만 나는 좀 이야기가 다르다.
예를 들자면, 나는 교외의 입지 괜찮은 곳에다 풍동(風洞)을 지었다. 이게 뭐냐면 한마디로 모형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조범석의 기억이 맞다면 라이트 형제도 이 풍동을 지어서 실험을 했다고 하는데, 그들은 작은 모형일 때와 실제 크기일 때 오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몰라 꽤 고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제법 득점했다고 볼 수 있지.
게다가 내연기관이 발달하고 독일 곳곳에서 가솔린 엔진이 상용화되면서 내가 써먹을 여지도 늘어났다.
쌍발 엔진은 지금 좀 무리 같지만, 최소한 ‘기체 중간에 프로펠러를 달고 거기에 엔진을 물리자’라는 아이디어만으로도 나는 또 크게 점수를 딴 셈. 괜히 비행기로 인생의 승부수를 던진 게 아니다.
다만 내 원대한 계획에 방점을 찍자니 조오금, 정말 아주 야아아악간, 약간 돈이 쪼들렸다. 마음 같아선 집이라도 팔아버리고 싶은데.
그래서 나는 과감히 승부수를 던졌다.
후원자를 찾기로.
그리고 이 당시 독일에서 내가 떠올릴 만한 인물 최상위엔, 한 유명인이 존재했다.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한 학생이로군. 자네를 꼭 만나야 한다는 추천서가 대관절 몇 장이 날아왔는지 모르겠네.”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늘을 개척해온 선구자를 뵙고 싶어 제가 주변인들에게 통사정을 했습니다. 뵐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말은 번지르르하구만. 미친 늙은이라고 욕만 먹고 있는데 말이지.”
“그럼 저도 이제 미친 젊은이 하지요, 뭐.”
“흐하하하하!!”
내 눈앞의 노인은 박장대소하다가도 웃음을 뚝 그쳤다.
“그래. 뭘 원하는가?”
“모든 걸 원합니다.”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Ferdinand Adolf Heinrich August Graf von Zeppelin).
체펠린 백작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나는 구구절절 떠드는 대신 곧장 설계도면과 그동안의 실험일지를 책상에 꺼냈다.
“시제기 제작은 거의 다 끝났습니다. 심장이 되어 줄 전용 엔진이 필요합니다.”
“가벼워야 하니 알루미늄 소재여야겠군.”
“오직 의지 하나만으로 경식 비행선을 개발 중이신 백작님이 아니라면 제가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겠습니까?”
“자네의 이··· 비행기가 개발되면, 나는 뭐가 되겠나? 평생 비행선에만 매달린 나는?”
“보잘것없는 젊은이를 후원해 마침내 하늘을 정복한 위대한 인물이 되시겠지요.”
체펠린 백작은 내게 대답하는 대신 내가 내민 두툼한 서류 묶음을 묵묵히 읽어나갔다.
“오늘은 묵고 가게.”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오늘은 하루 종일 이걸 읽어봐야겠으니 하루 묵고 가게. 괜찮나?”
“물론입니다!”
솔직히 말해 백작을 설득하리란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비행기가 개발되면 비행선은 헛짓거리가 되는 셈일 테니. 나더러 꺼지라고 해도 당연히 납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을 보건대.
“자네. 잠깐. 일어나지 말고.”
“예.”
“이거, 프로펠러. 왜 이런 형태로 만들었지?”
“어-”
“그리고 날개는 왜 이렇게 만들었지? 목재는 왜 이걸 채택했고?”
틀림없이 자고 가라 했던 이 사람은 나를 아침까지 침실로 보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