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60)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60화(60/246)
베르사유로 가는 길 (2)
1919년 1월 18일.
파리에 당도한 각국 외교관들의 평화 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기나긴 협상이 시작되었다.
1월 18일이라는 날짜 선정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1871년 1월 18일,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군의 뚝배기를 깬 프로이센이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의 탄생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자존심 회복을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집념 그 자체였다.
일반적인 평화 협상과 달리, 이 회담에선 독일은 어떠한 자리도 배정받지 못했다. 독일 외교관들이 이곳 저곳을 찝쩍거리며 연합국을 갈라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위한 자리 또한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누구도 난데없이 튀어나온 데다가 제멋대로 독일에 항복해버린 빨갱이들을 파리에 초청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현재 내전 중인 ‘백군’의 대표가 참석하긴 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대단히 제한되어 있었다.
이제 세계 각국 외교관들은 더 이상 하나로 뭉쳐 움직이던 연합군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들고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번 전쟁에서 명백히 밝혀진 사실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이제 우리 프랑스는 절대 독일과 싸워 승리할 수 없단 사실입니다.”
북부 국토가 짓밟힌 프랑스는 청년 인구의 1/4이 죽었다.
단순히 인구로만 놓고 보더라도 저출산에 시달리는 프랑스의 인구는 독일에 비해 한참 아래.
갈기갈기 찢어버려야 한다.
토막을 내든 뭘 하든 아무튼 독일을 병신으로 만들어버려야 한다.
<독일을 찢자>라는 간명한 논리에 마찬가지로 독일군에게 짓밟힌 벨기에가 동참했고, 이들은 조약이 최대한 독일에게 가혹해지길 주장하는 강경파가 되었다.
반면 미국, 특히 윌슨 대통령은 가장 온건파에 속했다.
“각 민족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식민지는 적절한 지도를 통해 자립할 기회를 가져야 하며, 유럽 또한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 재건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복수는 결국 다음 전쟁을 부를 뿐입니다!”
물론 미국이 정말 선량하기만 해서 이런 멘트를 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큰 소비 시장은 유럽이다.’
‘유럽이 재건되어야 저들이 우리에게 진 빚도 갚을 것 아닌가?’
물론 그는 진심으로 평화를 원했다.
하지만 그 평화가 국익에 합치된다는 계산 또한 분명 있었다.
윌슨이 제창하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평화>에 대해서 돌아오는 답변은.
“배상금을 받지 말자고요?”
“그렇습니다.”
“배상금을 받아야 당신네 나라에 진 빚을 갚는데, 미국이 통 크게 부채를 다 탕감해 주면 뭐, 한번 고민이나 해보겠습니다!”
“윌슨 대통령. 우리 영국 또한 그 고결한 의지는 높이 삽니다만··· 선거 기간 동안 우리 시민들에게 반드시 배상금을 그득그득 뜯어내서 복수하겠다고 떠들었습니다. 귀국이 배상금에 준하는 액수를 탕감해주지 않는 이상 좀···.”
빚은 무서웠다.
거액의 배상금이 독일의 분노를 자극하리란 사실은 모두가 다 알았지만, 지금 당장 내 집에 빚이 한가득인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영국은 프랑스와 미국의 중간쯤 되는 스탠스였다.
“협상 못 해먹겠다. 나는 예수님과 나폴레옹 사이에 끼어 있다.”
“독일이 병신이 되면 옛날처럼 프랑스가 유럽 패왕이 되겠네? 혹시 나폴레옹이 그리우신가?”
영국 또한 폭발해버린 유족연금 지급 청구서를 보고 반쯤 넋이 나가버리긴 했지만, 독일의 배를 째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왜 영국이 이 전쟁에 뛰어들었는가?
독일이 유럽 대륙의 정복자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 아니었는가.
영국인의 DNA를 구성하는 이중 나선 한 줄기에는 <대륙을 갈라친다>가 적혀 있고, 다른 한 줄기엔 <1인자를 줘패고 본다>라는 격언이 적혀 있다.
브리튼 섬의 안녕은 언제나 유럽에 달려 있었다.
대영제국은 세계 1위의 강국이었지만 절대적인 패권국은 아니었고, 대륙을 정복한 패왕은 항상 자신의 대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을 무너뜨리고자 시도했다.
카이사르에서 나폴레옹까지.
이 명제는 언제나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프랑스가 유럽을 호령하던 시절, 영국은 언제나 반프랑스 동맹을 결집시켰다.
그래서 러시아가 몸을 일으켜 그 앞발을 휘두르려 하자, 영국은 ‘그레이트 게임’을 벌여 백 년에 걸쳐 러시아의 확장을 앞장 서서 저지해 왔다.
독일 또한 마찬가지.
한때 프로이센은 영국의 우방이었지만, 프랑스와 러시아가 쓰러지고 독일이 패권을 추구하던 이상 영국과는 절대로 한배를 탈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 독일도 패망했다.
그럼 이제 다음 견제 대상은 누가 되겠는가?
“독일을 막자고 전쟁까지 불사했는데, 프랑스가 독일을 예쁘게 찢어버린다면 이제 대륙에서 프랑스를 막을 수 있는 나라는 없게 됩니다.”
“저놈들도 목숨줄은 붙어 있어야 배상금을 갚지 않겠습니까? 석탄 지대, 광산 지대 전부 다 뜯어 가면 독일이 무슨 수로 빚을 갚습니까?”
영국의 겐세이 본능이 오랜 숙적 프랑스를 상대로 기지개를 켰다.
서로 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이탈리아는 약속받았던 고토를 돌려받아야겠소.”
“우리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자치령은 어마어마한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 우리가 단순히 영국의 일부라는 이유로 발언권이 없는 건 불합리하지 않을까요?”
“아일랜드도 할 말이 있습-”
“우리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반드시 전 인종이 평등하다는 선언이 있어야만 진정한 민족의 자결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침략자에 불과합니다!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해 중국에서의 제국주의도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발칸의 평화를 위해선 그리스가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르비아인들은 복수를 원합니다!”
“우리 루마니아더러 참전하라고 그리 난리를 쳤잖소. 이제 슬슬 대가를 지불해 주셔야 하는데요.”
아수라장.
수십 개의 안건.
수십 개의 지역.
이 정신 사나운 대혼란 속에서도, 이른바 <빅 4>로 불리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정상들이 으르렁대는 동안에도 실무자들은 수십 개의 위원회를 만들고 무수히 많은 안건들에 대해 하나씩 협의를 뚫어나갔다.
그러니까.
“독일의 정부 수반과 군부의 수장이 이곳으로 와서 서명하게 하죠.”
“그랬다간 신생 공화국에 어마어마한 부담이 갈 것 같습니다만.”
“아니면 한번 넌지시 운이나 떼어 보는 게 어떨까요?”
그리고 며칠 뒤.
[연합국, 힌덴부르크 원수에게 서명을 강요하다!!] [늙은 영웅을 핍박하기 위해 추잡한 술수를 부리는 연합국!] [전쟁!! 다시 전쟁!!]독일이 불타올랐다.
***
슬그머니 한 번 찔러본 것에 불과했지만, 독일 국내 반응은 그야말로 주유소 폭발하듯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들이 아무리 승리자라지만 어찌 조국을 위해 힘껏 싸운 죄밖에 없는 힌덴부르크 각하를 끌어내려 한단 말입니까!”
“프랑스인들의 음침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각하를 바칠 순 없습니다!”
“독일 국민들이여! 일어납시다!!”
울고 싶은 참에 뺨 맞았다.
독일 우파들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야말로 당장 나라 망할 것 같은 기세로 떠들어댔다.
[카이저와 힌덴부르크를 비롯한 800명을 전쟁범죄자라는 명목으로 영원히 감옥에 가둬 두려 한다] [힌덴부르크를 러시아에 팔아버린다더라] [붙잡은 뒤 이런저런 죄목을 갖다붙여 총살시키려 한다더라] [각하가 없어지면 곧장 다시 침공을 재개해서 독일을 식민지로 만들려 한다더라!]우익 융커들과 자본가들의 지지를 받는 독일민족당(German National People’s Party. DNVP).
전쟁 이전부터 이들 우익은 가면 갈수록 표심을 잃고 있었고, 전쟁이 끝난 지금은 간신히 10%대의 득표를 했을 뿐.
이대로 간다면 빨갱이들 나라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완전히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이들은, 이번 이슈를 절대 쉽게 끝내줄 생각이 없었다.
“독일민족이여! 일어납시다!!”
“우리는 전선에서 패하지 않았습니다! 좌파들의 음모가 아니었다면 이리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겁니다!”
스웨덴으로 도망쳤던 루덴도르프는 불타는 독일 국내 분위기를 보고 스리슬쩍 국내로 귀환했다. 이번 귀환 때는 가짜 여권과 신분증도, 추한 변장도 하지 않았다.
이 반응에 당혹한 연합국은 즉시 진화 작업에 들어갔다.
“뭘 망설이십니까? 평화 협상을 거절한다면 휴전이 파기되는 셈 아닙니까. 당장 베를린까지 가지요. 독일인을 다 죽여도 평화가 오는 건 똑같습니다.”
“베를린까지 가기 전에 전역이 미뤄진 병사들이 우릴 전부 쏴 죽일 게 뻔하잖소?”
이제 와서 다시 전쟁 재개를 선언하는 것도 웃기는 노릇이었으니 연합국은 슬그머니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로 간보기를 끝내려 했다.
한 명 빼고.
“이래선 안 됩니다. 어째서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전부 다 빠져나간단 말입니까?”
“···예?”
“여러분들은 지금 문민정부의 수장을 불러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게 독일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너무나도 명백함에도 표를 의식해서 그런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우드로 ‘지저스’ 윌슨.
그는 너무나도 고결했다.
“지금 독일 민중은 군부를 수호하기 위해서 나선 것이 아닙니다. 오직 힌덴부르크라는 개인에 대해서만 저런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데려와야 한단 말씀이십니까?”
“물론입니다! 프로이센 군부의 팽창 욕구를 확실하게 거세해야만 이 전쟁에 비로소 정의가 다시 설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연합국도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 힌덴부르크 빼고 최고 레벨 군인 하나만 세우자. 우리도 봐줄 만큼 봐줬다.
그리고 카셀의 총사령부에선 고함이 터져나왔다.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보게, 루덴도르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해.”
“내가!! 내가!! 내가 이 전쟁을 이끌었소! 내가 파국을 늦췄다고!”
“그렇지. 내가 위임한 권한으로 말일세.”
카셀로 호출된 루덴도르프는 힌덴부르크가 자신에게 대업을 맡기리라는 기대, 역시 자신이 있어야만 이 나라가 돌아간다는 확신을 가진 채 힌덴부르크 앞으로 나아갔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독이 든 성배도 아니고 그냥 독배였다.
힌덴부르크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내가 가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파리로 가겠네.”
“가야지! 저들은 당신을 부른 것 아니오!”
“하지만, 내가 간다면 우리 가련한 독일의 신민들은 섬기던 황제에 이어 믿을 만한 인물조차 잃게 되겠지.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사라진다면, 저 볼셰비키들과 사회주의자들에게 맞서는 이들의 구심점 될 만한 이가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
충분히 정치적인 인간인 루덴도르프의 귀에, 힌덴부르크의 말은 ‘그럼 내가 가랴? 너 뒷감당 가능해?’로 통역되어 들렸다.
루덴도르프는 숫제 주저앉듯 무릎을 꿇었다.
“제게, 제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장군. 지난 14년부터 제가 장군을 얼마나 충실히 모셨습니까.”
“나의 친우 에리히여. 조국이, 이 나라가 그대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네.”
“이럴, 이럴 수는 없습니다.”
“내 반드시 그대를 도와주겠네.”
힌덴부르크를 팔아먹고 그를 파리로 보내봤자 그를 기다리는 건 암살범의 납탄뿐인 게 뻔하지 않는가.
루덴도르프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힌덴부르크는 똑같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
“서명은 루덴도르프가 하게 될 걸세.”
“그것참 안타까운 일이군요. 루덴도르프 참모차장은 조국을 위해 싸웠건만.”
힌덴부르크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눈앞의 남자, 아르민 로젠바움을 노려보았다.
“만족하나?”
“예?”
“자네와 루덴도르프의 관계는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힘들었지. 결과적으로 자네 의도대로 된 셈 아닌가?”
“참으로 죄송한 말이지만, 루덴도르프 장군 이외에 군부에서 산제물로 바칠 만한 인사가 있습니까?”
니들이 골라 놓고서 왜 나한테 이러느냐.
아르민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지난 2~3년간 사실상 독일의 독재자로 군림하던 루덴도르프.
주변엔 적이 넘쳐나는 데다 융커 출신도 아니었던 그가 그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힌덴부르크의 후광 덕분.
그러니.
힌덴부르크가 끌려나갈 시점에서 그를 대체할 만한 거물급 중량 인사 중 뒷배도 힘도 딸리고 증오만 사방에 가득한 인물.
루덴도르프, 낙찰.
“군부가 참는 이유는 단 하나. 자네가 알려준 조약의 뼈대 때문일세.”
“10만 안팎으로 독일군 감축. 모든 신무기 금지. 틀림없습니다. 지금 저들은 영토 문제에 대해서나 싸우고 있지, 독일의 팔다리를 영구히 잘라버리겠다는 덴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지요.”
“그래. 그렇군. 늙은이들은 전부 물러나고 싱싱한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맡기는 수밖에 없겠어. 10만이라니.”
힌덴부르크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로젠바움 또한 가만히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무려 30분간의 기묘한 침묵이 계속되고, 마침내 먼저 입을 연 것은 힌덴부르크였다.
“사민당을 지지하는 자네를 내가 왜 믿어야 하지?”
“제가 사민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 집권 능력이 되는 정당이면서 동시에 말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장군께선 설마 독일민족당이 멀쩡한 친구들로 보이십니까?”
“말이 조금 심하군.”
“제가 사민당을 지지하는 것과 별개로, 제가 만약 카이저 빌헬름 2세 폐하의 안녕에 어떠한 관심도 없다면 사람들은 절 가리켜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 비난할 겁니다. 그러니··· 사민당과 저의 의견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고, 장군과 군부와는 약간의 일치점이 있겠군요.”
힌덴부르크가 지금의 위대한 전설적 영웅이라면.
로젠바움은 10년, 20년 뒤 미래가 예약된 젊은 영웅이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은 절대 서로에게 칼을 겨눌 수 없었다.
차라리 소 닭 보듯 그냥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말지, 둘의 충돌은 이미 혼란하기 그지없는 독일을 다시 개판으로 만들 게 너무 명확하기 때문.
“좋네. 그럼 자네가 제안한 대로, 민간 항공사가 안착한다면 ‘공군’의 뼈대를 그곳에서 만들 수 있도록 협력하지.”
“제아무리 연합국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할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독일의 공군(Luftwaffe)은 다시금 유럽 하늘의 지배자가 될 겁니다.”
로젠바움은 따로 인사를 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가 앉아 있던 의자 옆엔 가방 하나가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힌덴부르크는 발소리가 저 멀리까지 사라지길 기다리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책상에 올려두고 열어보았다.
“······흠.”
이번에도 선물이 가득했다.
싸가지는 없지만 손이 크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