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64)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64화(64/246)
금괴를 찾아서 (2)
1920년 2월.
베를린.
로젠바움사 항공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 부서장, 헤르만 괴링은 한차례 크게 심호흡한 뒤 문앞 초인종을 울렸다.
“아, 안녕하세요.”
“마리아구나. 회장님 뵈러 왔는데-”
“기다리고 계세요. 들어오세요.”
문을 열어준 작은 아이, 마리아 로젠바움을 본 괴링은 의식적으로 활짝 웃으며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너무 그렇게 억지로 안 웃으셔도 돼요.”
“응? 억지라니. 대원들을 거느리고 창공을 누비던 이 기사 중의 기사, 헤르만 괴링은 결코 억지로 웃지 않는단다. 음후핫-”
“바보 같애, 아저씨.”
푹 하고 칼날이 날아와 젊은 괴링의 심장을 염통 육회처럼 잘게 떠버렸다.
아저씨라니! 93년생 이팔 청춘 헤르만 괴링더러 아저씨라니!
“아저씨라니. 하하. 오빠라고 하렴, 오빠. 혹시 회장님이 그렇게 시켰니?”
“저랑 거의 스무 살은 차이 나는데 오빠라고 하긴 좀.”
아프다.
너무 아프다.
내가 아저씨라고 부를 때 이런 기분이었습니까, 회장님.
뇌진탕에 걸린 듯 어질어질했지만 용사 중의 용사 괴링은 이런 고통과 시련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다.
“여사님께선?”
“오빠들 데리고 옷 사러 나가셨어요.”
“안 따라갔니?”
“저는 괜찮아요. 지금도 옷 많아요. 오빠들은 하도 험하게 굴러다닌 탓에 다 찢어먹어서 그래요.”
기필코 아저씨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고 말리라.
여자애들은 모름지기 인형이랑 팔랑팔랑한 드레스를 좋아하는 법. 다음에 올 때 옷을 선물로 주면 틀림없이 이 아이도 마음의 빗장을 풀지 않겠나.
짧은 평생 내내 군바리들과 뒹군 빈곤한 상상력의 소유자 괴링이 그렇게 다짐하는 동안, 그들은 응접실에 도착했고 마리아는 커피를 내왔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아직 선객이 계세요.”
“선객?”
“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안 나오고 계시네요.”
“혹시 누군지 아니? 급한 건이면 다음에 다시 오마.”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던 마리아는 살짝 서재로 가 빼꼼 문을 열고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다시 돌아왔다.
“아저씨. 그냥 들어오시래요.”
“···그래.”
괴링은 완벽하게 각을 잡은 채 직각보행하며 서재로 발을 들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왔나? 앉게. 마침 소개를 해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선객이 있는데도 그냥 불렀네.”
늘 아르민이 앉는 자리 맞은편엔 척 봐도 깡마른 청년 한 명이 앉아 분주하게 노트에 무언가를 빼곡이 기록하고 있었다.
“헤르만 괴링이오.”
“파울 요제프 괴벨스입니다.”
악수를 나누며 괴링은 힐끗 뻗어나온 오른손을 바라봤다.
깡마른 체구에 비쩍 마른 상판대기, 굳은살이라곤 없는 하얗고 고운 손.
옷은 저렴해 보였지만 제법 패션에 신경 쓴 듯 태가 살아 있었고 손목엔 시계까지 하나 차고 있었다. 이 시국에도 패셔니스타시군.
“군대는 어디 나오셨습니까?”
“자원입대를 청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다리에 장애가 있어서 말이지요.”
“실례했소.”
“괜찮습니다. 다리가 이렇게 된 덕택에 로젠바움 회장님께 선택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요.”
“여기 괴벨스 군은 우리 회사 영화 파트에서 일하고 있네. 학업과 병행하면서 일하고 있으니 보통 대단한 게 아니지.”
“그렇군요.”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회장님, 혹시 다음에 또 찾아봬도 괜찮겠습니까?”
“업무에 필요하다면 그러도록 하지.”
“그럼. 실례했습니다.”
괴벨스라는 청년이 지팡이를 짚으며 물러난 후(혹시 회장님이 지팡이로 사람 패는 취미가 생겼나 싶었던 그는 내심 안심했다), 괴링은 냉큼 방금 그가 앉아 있었던 의자에 착석했다.
“군대도 안 간 비실이를 뽑으셨습니까?”
“뭐, 어떤가? 팔 두 짝 다리 두 짝 전부 없는 사람이라도 능력만 좋으면 그만이지. 영화 각본을 쓰고 있는데,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요청해서 불렀네.”
아르민은 잠시 고민하더니 서재에 꽂혀 있던 파일 몇 개를 뒤적대기 시작했다.
“저 친구 어떤가?”
“얼굴만 봤는데 뭘 어떻긴 어떻습니까.”
“딱히 거부감은 없고?”
“으음. 아픈 사람더러 군대 안 갔다고 비난할 만큼 제가 쓰레긴 아닙니다.”
“잘됐군. 우리 푸르 르 메리트 수훈받은 전쟁영웅께서 저 친구를 좀 도와줘야겠어.”
아르민은 파일을 덮었다.
“저 친구에게 애인이 있는데 말야, 귀한 집 따님인 모양이더라고. 애인 쪽 집에서 어디서 비렁뱅이 같은 놈이랑 논다고 어지간히 펄펄 뛰는 모양이야.”
“···혹시 요즘 중매쟁이 노릇도 하십니까?”
“무슨 멍청한 소릴 하는 거야? 대충 내가 옆에서 부리는 전도유망한 청년이니 잘 좀 봐주십사 하고 편지 한 장 써줄 테니 내 대신 그 집에 가서 얼굴이나 비쳐. 대단한 노력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면 근로 의욕이 더 샘솟을 것 아닌가.”
“혹시 저 멀대보다 먼저, 전쟁터에서 돌아오니 파혼당해 있는 불쌍한 이 아우를 챙겨줘야겠단 생각은 안 드십니까?”
“내가 편지 써주면 그 집 식구들이 마음을 바꿔먹을 것 같나?”
“아니오.”
아르민은 대답 대신 표정으로 ‘알면서 왜 그딴 소릴 해.’라는 뚱한 시그널을 보냈다.
괴링은 더 이상 되도 않은 헛소리를 주워섬기는 대신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군부 놈들이 폭발할 것 같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그렇겠지.”
“돌격대, 다시 준비시킵니까? 우리가 작심하고 베를린을 지키기로 결정하면 반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만.”
아르민은 어김없이 입을 다물었다. 경애하는 형님의 저 표정은 대답해주기도 싫으니 멍청한 소리 자꾸 하지 말라는 뜻.
하지만 지금은 괴링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제가 맡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우린 충분히 해볼만합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기껏 형님이 몇 년씩 기름쳐놓은 사민당 정권이 날아가잖습니까? 이런 어마어마한 손해를 감수하느니 한판 쾅 붙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괴링.”
“예.”
“헤르만.”
“예, 형님.”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한 건 아주 좋은데, 사고의 폭을 좀 넓혀라.”
아르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찬장을 열고 술을 그대로 병째로 나발을 불었다.
“지금 군부가 왜 폭발하려고 하지?”
“그야, 빨갱이가 좆같으니까?”
“그건 원래 그랬잖아. 더 직접적인 이유.”
“베르사유 조약이지요.”
“베르사유 조약의 어느 부분?”
“<준군사조직 금지>겠지요. 자유군단을 해산시키라고 했더니 난리가 난 거잖습니까.”
독일군을 10만으로 제한하지만 그 밑에 준군사조직 100만이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베르사유 조약은 지금 독일에 판치는 유사-군부대도 싸그리 다 금지시켰다.
“그래서 지금, 돌격대로 반란을 막으면?”
“아.”
같이 해산당한다.
이길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연합국이 반군조차 때려잡는 막강한 준군사조직을 보고 넘길 리가 없네?
“그러면 이미 저번 빨갱이들 때려잡을 때 문제 삼을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내가 한사코 ‘직원들의 자발적 집단 봉기’라고 우겼잖아. 돌격대라는 건 공식적으로 절대 존재하지 않아. 퇴역군인들이라 좀 잘 싸웠을 뿐이지.”
아직 정치적 수 계산이 딸리는 괴링에게 친절히 해설을 늘어놓은 아르민은 다음 일거리를 던져줬다.
“베를린 하수도를 점검하고 입 무거운 마부나 운전기사들을 물색해 봐.”
“아.”
괴링은 신속히 자리를 떠났고, 홀로 남은 아르민은 계속해서 입에 술을 때려넣었다.
힌덴부르크가 물러나 행복의 농장으로 떠나자마자 바로 군부에서도 특히나 미쳐버린 놈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 나는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뭐가?”
– 아니. 문민통제는 개 밥그릇으로나 여기는 건 둘째치자고. 그래서 저놈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면 뭐 어쩔 건가? 쿠데타로 집권해서 그다음은 어쩌게. 자유군단 존치? 독일을 죽여버리고 싶어서 안달 난 프랑스에게 명분을 만들어준다고?
아르민은 거울을 마주 보고 섰다.
“문민통제가 뭐지? 먹는 건가?”
– 지금 농담할-
“농담이 아냐. 처음부터 이 나라에 그런 건 없었다고. 군부는 카이저를 섬겼을 뿐, 단 한 번도 국민의 대표인 의회에 복종한 적이 없잖아.”
의회가 명령하면 군이 복종하는 게 아니다..
의회와 군은 동격이었고, 그 머리 위에 카이저가 있었다.
카이저가 쫓겨나고 그 자리에 의회가 올라간다고 하면 한때 동격이었던 군부가 아이고 그러십쇼 하겠는가?
그는 서랍을 열고 따로 보관하고 있던 편지를 꺼냈다. 선물받은 농장으로 룰루랄라 떠난 힌덴부르크가 보낸 물건이었다.
“힌덴부르크가 범석이 네놈보단 재테크를 더 잘하는 것 같은데.”
– 빌어먹을.
힌덴부르크는 선물받은 농장을 자기 이름으로 등기 치는 대신 놀랍게도 편지를 보내 ‘그거 내 아들 이름으로 올려주라’라는 요청을 해왔다.
나이 많은 영감이 뇌물 받았으면 만족 좀 할 것이지, 상속세도 내기 싫다는 저 심보에 아르민과 조범석은 정신이 아득해졌었다.
[로젠바움에게. 나는 선하신 카이저 폐하께 이 나라의 대통령직에 출마해도 될지 여쭤봤고 폐하의 허락을 득했네. 다가오는 1920년 6월 대선에 출마해 이 혼란스러운 나라를 바로잡고 사회주의자들의 준동을 저지할 참일세.]하지만 내가 봤을 때 힌덴부르크는 이번에 출마하지 않을 것 같았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시국에 전쟁영웅 대통령이라니. 낙선하는 개망신을 당할 바에 이 자기 좆될 것 같은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노인네는 ‘내가? 출마를? 왜요?’ 하면서 모르쇠하리라.
며칠 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체펠린 백작이 살던 뷔르템베르크로 단체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1920년 3월.
쿠데타가 일어났다.
***
<카프 폭동>은 시시하게 끝났다.
에베르트는 자유군단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놈들을 진압하라고 군부에 명령을 내렸지만.
[독일군은 독일군을 쏘지 않는다.]‘난 나보다 약한 자의 말은 듣지 않는다’도 아니고, 군부는 진압을 거부했다.
쿠데타군이 베를린 시내로 진입하자 에베르트와 정부 각료들은 허겁지겁 도망쳤고, 나는 이들을 계란 바구니처럼 척척 담아 내가 머무르고 있던 뷔르템베르크로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
“제길. 미친놈들. 고맙소, 로젠바움. 이번엔 정말 목숨 빚을 졌소.”
“청구서는 제법 길게 끊을 테니 그렇게 아십쇼.”
“그러지. 그러고말고. 뭐든 주겠네.”
군부는 한 가지 계산에서 빼먹은 부분이 있었다.
이 나라 시민 중 군바리들을 좋아하는 놈은 이제 정말 한 줌밖에 안 남았다는 것.
“전국민 총파업으로 군바리들에게 본때를 보여줍시다!!”
“화물을 멈춰 세상을 바꾸자!!”
“아직도 19세기인 줄 아느냐, 이 빌어먹을 놈들아!”
“나라 말아먹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어디서 권력을 탐해!”
1,200만 명.
전국적으로 천만 명이 넘는 이들이 총파업에 나섰고, 쿠데타군은 자기네 집무실에서 짜장면 한 그릇도 못 시켜먹는 처지로 전락했다.
얼마 전까지 사민당을 배신자라고 비난하던 공산당이 사민당 편을 들었고, 전국 모든 빨갱이와 서민의 힘을 결집한 총파업으로 <독일인은 군부 정권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라는 국민의 의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쿠데타 정권은 1주일 만에 무너졌다.
– ······.
그리고 범석이는 창문에 들러붙어 며칠째 오직 저 파업과 시위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뭐. 말을 좀 하라고.
– 내가 죽기 전에도 저 물결에 버금가는 시민들의 물결이 있었지.
나는 오랜만에 AI 비서의 신세한탄을 들어주기로 결심했고, 내가 팔짱 낀 채 그의 말을 듣거나 말거나 그는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 전 국민이 출근하지 않았다. 청소하는 아줌마에서 여의도 증권맨에 이르기까지 단 한 명도 일터에 나가지 않았고 그 대신 거리로 뛰쳐나왔지.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라고 하지 않았나?”
– 누가 나보고 그러더군. 그걸 왜 당신이 결정하냐고. 나라가 망하건 말건 국민이 결정해야지 어디서 머리카락도 없는 군바리 새끼들 몇이 쑥덕거리고 멋대로 결정하냐고.
“······.”
– 그렇게 끝났다. 어깨에 별과 말똥을 주렁주렁 달고 있던 영감들이 솜털 보송보송한 병사들에게 붙들려 개처럼 처맞으면서 끝났다. 병의 주적은 간부라더니, 주적을 훌륭하게 물리친 셈이지.
“그렇구만.”
– 그랬던 내가, 또 이딴 짓을 하고 있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저리 멍청하게 총칼로 권력을 먹으려고 덤벼들지 않으려고 지금 바닥부터 기반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고 있는데. 두뇌 수준이 괴링급이잖아.
무장한 장정들 수백 수천 거느리고 베를린을 먹어봤자 부질없다는 게 지금 증명되었다.
분노한 민중들이 공화국을 저주하고 내 이름을 연호하게 만들어야 성공적인 집권이지, 저딴 촌스러운 방식의 정권 탈취는 전혀 내 관심사가 아니다.
지금 내 관심사는 굳이 따지자면 돈 벌고 풀뿌리 조직을 갖춰나가는 거지. 10년 뒤를 위한 투자라고.
– 10년 뒤를 본다는 놈이 돈을 길바닥에 버리고 있나?
범석이가 진지하게 물어본다. 뭐가?
– 네 대출 말이다! 그건 돈 아니냐? 인플레이션이 온다면 돈 빌린 사람은 휴지 한 장으로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데, 사실상 돈 날려먹는 셈 아냐?
쯧쯧. 크게 봐야지, 크게.
내가 미래 지식을 대강 본 바로,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핵심은 <소액 대출>과 <무담보>다. 담보가 있으면 애초에 일반 금융권도 대출해준다고.
그럼 대관절 미래의 저 업체들은 어떻게 빚을 돌려받았는가?
“아직도 이 독일을 보면서도 견적이 안 나와?”
– 모르겠는데.
“가오. 체면. 위신.”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어떻게 상환율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아무리 가진 것 없는 하층민, 서민일지라도 친척과 이웃은 있다. 아니, 가진 게 없을수록 인적 네트워크는 그나마 유일하게 가진 무언가다. 빈민가 한가운데에서 평판 잃은 집은 농담이 아니라 밤에 강도가 찾아와도 보호를 못 받을 수준이니까.
그러니 안 갚아도 된다.
괜히 복잡하게 약관을 추가하거나 할 필요 없다.
‘아, 안 갚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저희가 너무 손해를 크게 입어서 더 이상 저리 대출을 해드리기가 어려워서 사업을 접을 것 같아요.’
<내 주변 이웃들이 좋은 조건으로 자녀 학비를 빌릴 기회를 뺏어간 사람>이란 타이틀을 감수하기만 한다면 말이지.
장담컨대.
이 독일이란 나라에서 고추 달고 다니는 새끼들이면 안 갚아도 된다 해도 제발 갚게 해달라고 할 거다.
그리고 이걸 더 조직적으로, 대중적으로, 효과적으로 부추기고 온 언론을 동원해 떠들면.
<금모으기 운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