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70)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70화(70/246)
페르소나 논 그라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끔찍할 만큼 거대한 피로, 그리고 압도적인 스트레스에 파묻힐 때가 있다.
내 가장 소중한 보금자리인 집에 저런 익명의 서한이 날아왔는데 이 스트레스가 얼마나 거대하겠는가.
보통 사람이 스트레스가 심하면 입맛이 사라지고 두통 등의 통증, 갑갑함, 불면 증세 같은 것들이 온다고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거기에 더불어 다소 특이한 합병증도 따라왔다.
일 때문이건 스트레스 해소용이건 알콜과 니코틴으로 혈관을 떡칠하고 나면.
지금처럼.
21세기의 기억이 두툼한 인격의 장벽을 뚫고 새어나오는 것이다.
이번 꿈속에서 나는 한 저택을 보고 있었다.
척 봐도 고급스러움이 흘러넘치는 재벌가의 집. 21세기 서울에서 아파트가 아니라 이런 대저택을 가지려면 어지간한 재산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저택의 한가운데에.
조범석이 있었다.
“···이게 끝인가?”
“그렇습니다.”
고급스러운 향초로 은은한 향을 감돌게 세팅해 두었지만, 그깟 향은 훨씬 매캐한 화약 냄새에 파묻혔다.
그리고 화약 냄새는 피와 뇌수, 그리고 대소변 지린내에 묻혔다.
며칠 전.
한국에서도 제법 알짜 기업으로 취급되던 영원 그룹의 회장은 출장을 위해 전세기에 탑승했다가 항공 사고로 폭사했다.
영원 그룹 회장을 제외한 부인과 그 아들딸들은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전부 이 자리에서 시체가 되었다.
조범석은 무덤덤하게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구두에 묻은 핏방울을 닦았고, 피범벅이 된 손수건과 함께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권총을 옆 사람에게 넘겨줬다.
“이다음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아니, 대낮에 재벌집 일가족이 씨몰살당했는데 어떻게 처리하냐고.”
“궁금하십니까?”
“그래.”
원활한 쿠데타를 위해 대통령은 국정원과 기무사를 넘겨줬다.
군의 돌발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모든 안전장치가 국가원수의 힘으로 해제당했고, 도리어 그 힘을 거머쥔 반란 수괴는 그동안의 명망을 발휘해 많은 장성들을 쿠데타에 합류시켰다.
개중 일부는 진실을 알리고자 했지만, 한두 명이 의문의 사고사를 당하거나 여자 문제, 뇌물 문제 등으로 옷을 벗게 되자 더 이상 쿱을 막기 위해 한 몸 불태울 이들은 남지 않게 되었다.
“사고사로 꾸밀 예정입니다.”
“그게 되나?”
“걱정 마시지요. 저희도 프로입니다.”
그 대신.
한준현 대통령은 새로 출범할 군사정권의 섭정이자 상왕이 될 예정이었다.
대외적으로 그는 군부에 붙들려 도장 찍는 기계로 전락하겠지만, 실질적으로 민정을 컨트롤하는 것은 여전히 그.
오히려 그는 삼권분립과 헌정에 의해 제한되던 그 모든 행위를 마음껏 저지를 예정이었다.
‘사회에 버러지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걸 바라고 있었다.
법에 의해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이들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피 묻은 권력을.
민의에 따라 선출된 이가 대통령보단 총통, 황제, 수령 자리를 탐내고 있단 사실을 알아버렸음에도.
피웅덩이에 발 디디고 있는 조 중장은 전혀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착수금을 이리 두둑이 쳐줬으니 할 일은 해야겠지.”
“······.”
“걱정 말라고 하게.”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했다면.
내게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힘이 있다면.
1920년의 독일에서 누군가가 품고 있던 생각과.
완벽히 똑같은 생각이었다.
***
1920년.
미친 건 독일이 아니었다.
전 세계였다.
각국의 외교관, 정치가들은 베르사유 조약을 위시한 여러 평화 조약을 통해 유럽에 평화를 돌려주려고 했지만, 정작 그 조약과 민족자결주의를 통해 탄생한 국가들은 가장 먼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적백내전. 현재진행형.
연합군이 러시아 백군을 지원하기 위해 은근슬쩍 개입했고, 우크라이나, 카프카스, 발트 3국이 독립을 위해 불타올랐다.
동유럽의 깡패 폴란드는 독립하자마자 독일, 리투아니아, 체코, 소련과 물리적 충돌을 벌였고, 헝가리는 루마니아와 체코의 공격을 받고 무너졌다.
오스만 투르크의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선 터키는 국토를 지키기 위해 한 입만 달라고 덤벼드는 그리스와 전쟁.
영국은 아일랜드 독립전쟁, 제3차 아프간 전쟁.
프랑스는 시리아에서, 스페인은 모로코에서.
그런 점에서 독일은 이곳저곳에서 땅은 뜯길지언정, 적어도 전면적인 침공은 받고 있지 않고 있으니 차라리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독일이 침공을 받건 안 받건.
내 모가지에 위협이 느껴지기 시작했단 사실이 바뀌진 않았다.
가장 먼저 나는 경비 시스템부터 갈아엎었다.
돈을 처발라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집들을 싹 매수해 회사 간부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별도의 경호원들을 배치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서재에 접근이 가능한 내부인들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형님. 꼬리 잡았습니다.”
“누구지?”
“오래전부터 형님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 있잖습니까. 그 여자가 틀림없습니다.”
“증거는?”
“하나 있는 딸 부부가 빚을 지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갑자기 그 빚을 전부 현금으로 다 갚았답니다. 어디 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졌나 봅니다.”
나는 잠시 입을 꽉 다물고 창문만 바라봤다. 범석이조차 할 말을 잃었는지 묵묵부답.
– ···괜찮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진즉 예상했던 일 아니냐.
첫애 태어날 때부터 일했던 분이 배신을 하다니.
그놈의 돈. 돈! 돈이 뭐길래. 차라리 나한테 말을 했으면 도와주지 않았겠냔 말이다. 왜 내게는 말하지 않고 엉뚱한 놈들의 돈을 받아 처먹냐고.
나는 애들과 에르나를 잠시 다른 집에 보낸 후, 가정부와 면담의 시간을 가졌다.
“왜 그러셨습니까.”
“미, 미안하게 됐어요. 그, 그게 그렇게 문제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그냥 편지 하나를 전달해주면 거금을 준다길래!”
“내일부터 출근하실 필요 없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봐주세요! 제가 아드님 두 분 기저귀도 다 갈아드렸습니다. 회장님 편찮으실 때도 제가 간호했구요. 제가 크게 실수를 했습니다! 한 번만!”
“이제 나가세요. 그동안의 옛정을 생각해 퇴직금은 넉넉히 챙겨드리겠습니다.”
믿을 놈이 없다.
내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조차 이렇게 어이없을만치 손쉽게 매수당하는데 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곧이어 가정부도 정원사도 심부름꾼도 모두 입고 있는 속옷까지 모조리 까발릴 기세로 뒷조사에 들어갔고, 조금이라도 찝찝한 여지가 있으면 다 갈아치웠다.
그들 대신 새로 취직한 이들은 아예 우리 회사에서 오래 일했던 사람들의 가족들로, 변절했다간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피해가 오도록 조치했다.
이렇게 한차례 신명나는 칼부림을 한 뒤.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슐라이허 소령님. 아르민 로젠바움입니다.”
“폰 슐라이허입니다.”
이 슐라이허라는 인물을 초대했다.
***
외부적으로 슐라이허가 하고 있는 일은 나와 딱히 관련이 없지만, 은밀하게 군부 최상층부에 타진해 본 결과 그는 매우 수상쩍기 그지없는 블랙옵스에 투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나는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 내 서재에 있던 괴문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최근 제게 이런 출처불명의 편지가 왔습니다. 놀랍게도 우체통도 아니고 제 서재 책상에 떡하니 올려져 있더군요.”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슐라이허는 편지를 집어 들어 이를 읽어보았지만, 그가 편지보다는 내 표정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이 음흉한 새끼. 역시 보안 쪽 종사하는 놈들이 다 그렇지. 남 뒤나 캐고 다니는 것들.
“회장님의 애국을 돕겠다는 좋은 뜻 아닙니까? 어째서 이걸 문제시하시는지요?”
나이 처먹은 아저씨가 그렇게 의아하다는 듯 굴지 말라고. 눈깔 먹물을 쪽 뽑아버릴라.
“그야 누군가 제 가정집에 마음대로 들어왔다는 뜻 아닙니까. 이 편지의 발신인이 다른 마음을 먹으면 제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단 뜻 아닐까 싶은데.”
“음··· 요즘 공산주의자들의 발호에 맞서는 애국지사들이 많잖습니까. 저라면 오히려 누군가 절 지켜주고 있단 생각에 안심할 것 같습니다.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군요.”
그는 나를 관찰하고 있었지만, 나 또한 그를 관찰했다.
내가 아무리 바지사장에 반쯤 명예 계급이었다지만, 명색이 대령이고 푸르 르 메리트 수훈자인데도 이 싹수 노란 놈은 대가리를 빳빳하게 쳐든 채 끝까지 내게 ‘대령님’이라고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은근히 ‘이런 편지로 그렇게 두려워하다니, 뭐 켕기는 거 있어? 쫄?’ 하고 꼽주는 솜씨까지.
이놈이 보낸 게 맞다.
가정부를 매수한 건 필시 이놈이리라.
이대로 곧장 상급자에 대한 예의가 부족하다며 귀싸대기를 갈기고 쪼인트를 까고 싶단 욕망이 스멀스멀 치밀어올랐지만, 뜨뜻하게 단전에서 마기가 솟구치는 것과 별개로 내 머리는 찬물을 쏟아부은 듯 오히려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
왜 이렇게까지 싸가지없이 굴까?
이놈은 내게 호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확신이 생겼지만, 가장 중요한 ‘왜’가 빠져 있는 상황.
뭔가 의도가 있는데, 아직 난 그걸 알아내지 못했다.
“걱정 마십시오. 군부는 로젠바움 회장님의 애국심에 한 치의 의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 저것만큼 의심하고 있다고 자백하는 대사는 없을 것 같은데.
나도 알아.
“다만, 제가 지인들에게 건너 건너 듣기로, 요즘 조금 불편한 일을 겪고 계시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불편한 일이라. 사업을 하다 보면 항상 겪는 일들이지요. 공무원들의 행정처리, 노조의 땡깡, 정치인들의 헛기침, 세금 문제다 뭐다-”
“가정부를 새로 쓰셨다지요.”
“벌써 그 소문이 퍼졌습니까? 나이가 많이 들어서 제가 내보냈습니다.”
슐라이허는 기다렸다는 듯 방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말입니다. 그 가정부가 놀랍게도··· 빨갱이들의 프락치였다고 합니다.”
나는 최대한 그에게 들리지 않게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빨갱이요?”
“그렇습니다. ‘애국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하는군요. 세상에, 강대한 조국의 부활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쓰고 계신 로젠바움 회장님의 곁에 빨갱이의 마수가 도사리고 있었다니!”
“군부에선 저를 빨갱이로 보고 계실 줄 알았는데, 다소 의외군요.”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애국의 방향이 살짝 다르지만 결국 우리가 강한 조국을 원한다는 사실만큼은 같잖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이 계속되길 기다렸다.
내가 가타부타 뭐라 답을 하지 않고 염화미소만 띠고 있자, 슐라이허의 가식 가득한 미소가 점점 옅어지고 짜증이 슬슬 표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의사(義士), 협객들이 나서서 그 민족반역자를 심판했다고 합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 땅의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비밀 법정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 늙은이의 죄악을 엄단하기로 판결이 내려졌고, 은화 서른 닢에 양심을 판 노인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러 갔다고 합디다. 아, 저도 어디까지나 주워들은 이야기입니다.”
– 죽였다고? 그 사람을?
이 개호로잡놈 새끼들이 기어이 내 사람을 건들기 시작하는구나. 죽여도 내가 죽여야지 왜 네놈 같은 버러지들이 멋대로 내 사람을 죽여대지?
– 잠깐만. 잠깐만 진정해. 하지만 공산당에 매수를 당했다면 틀림없이 위험했단 소리잖아! 당장 그 가정부는 네가 전쟁 전부터 식량을 사재기했단 사실도 알고 있어. 결국 입을 막긴 해야 했을 텐-
범석아. 머리를 좀 써.
빨갱이들은 매수 같은 거 할 돈이 없어요. 걔들은 작년부터 하도 짓밟히고 또 짓밟혀서 매수 같은 거창한 스파이 활동을 할 돈이 없다고.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을 읽고 마기가 골수까지 치밀어올라 세뇌당하는 애들이 매일같이 비 온 뒤 잡초처럼 쏟아지는 게 공산당인데 무슨 놈의 얼어죽을 매수냐.
– 아.
저 새끼다.
자기들이 매수해놓고, 내가 눈치를 채자마자 곧장 살인멸구를 한 뒤 뻔뻔스럽게 내게 공갈을 치다니.
나는 이 신호를 접수했고, 숙련된 프로 정치 선수로서 상대의 기술에 완벽한 응대를 해줘야만 했다.
– 언제부터 협박에 대응하는 게 프로레슬링이 됐는지는 모르겠다만···.
“세상에. 빨갱이라니. 그 가정부가 커피에 독을 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입니다.”
“하하하. 걱정 마십시오.”
“애국자들의 도움이라는 게 이런 거였군요. 정말 손발이 덜덜 떨립니다. 그들의 조력이 아니었다면 저와 우리 가족, 우리 애들이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을지!”
“그들은 딱히 원하는 게 있어서 애국을 하고 다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그들을 움직이는 건 오직 우국충정뿐입니다.”
[살려주세요. 죽기는 싫습니다.] [그럼 뭐 좀 내놔.]슐라이허와 나는 완벽하게 겉과 속이 다른 의견 교환을 나누었다.
– 네 주둥이에 붙어 있는 옥수수를 내버려 두는 대신 다이아를 달라는 건데. 그냥 돈 몇 푼은 아닐 것 같단 말이지.
당연하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저도 그분들을 뒤에서 후원하고 또 응원하고 싶습니다.”
“으음. 곤란하군요. 정말 저는 그분들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런 성의를 바라고 움직이는 분들이 아니니 너무 걱정 마시죠! 그러고 보니, 혹시 얼마 전에 신문에 보도된 그 내용 아십니까?”
슐라이허는 거기서 넙죽 무언가를 요구하는 대신 한참 동안 이런저런 잡소리를 떠들어댔고, 날카롭게 곤두세웠던 내 신경은 그의 헛소리 대잔치에 휩쓸려 점점 꺾여만 갔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번에 제 아는 친구 하나가 베를린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허. 슐라이허 소령님의 친구라면 제 친구이기도 하지요. 당연히 로젠바움사에 오셔야지요!”
“누군지도 모르면서 말씀이십니까?”
“모름지기 영웅의 곁엔 영웅이 모이기 마련이고 소인배의 곁엔 소인배가 모이기 마련입니다. 슐라이허 소령님과 같은 분 곁에 있는 분이라면 다른 회사에서도 열심히 러브콜을 날릴 텐데, 제가 가장 먼저 그분을 모실 기회를 거머쥐어야겠지요.”
나는 그의 청탁을 곧바로 접수했다.
– 이거, 회사 내에 사람 박겠단 뜻 맞지?
안 박아주면 곧바로 수상한 새끼로 몰고 가겠단 뜻이기도 하고.
내 너그러운 마음으로 참아준다. 아무래도 돌격대의 덩치를 조금 더 키워줘야겠어.
슐라이허는 한참 뒤 커피 잘 마셨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며칠 뒤 그 문제의 ‘구직자’와 면담을 가졌다.
“실례합니다. 로젠바움 선생께서 제게 일자리를 제안하셨다는 과분한 말씀을 듣고 이리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아르민 로젠바움입니다.”
“여기, 제 이력서가 있습니다.”
나는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와 다름없던 슐라이허와 달리 꽤나 젠틀해 보이는 모습의 신사와 악수를 나눈 뒤 가지런히 철해져 있는 이력서를 펼쳤다.
이름. 프란츠 폰 파펜(Franz Joseph Hermann Michael Maria von Papen).
생년. 79년생.
전직 군인이자 외교관.
– 기억 났다. 파펜과 슐라이허. 빌어먹을!
누구지?
– 공화국 최후의 총리들. 파펜과 슐라이허. 히틀러랑 붙어먹다가 나라를 말아먹은 놈들이지.
끼리끼리 노는 새끼들이란 셈이군. 그런 사람이 지금 내 회사에 착석할 예정이란 거고.
–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두 사람. 나중엔 원수지간이 됐을 거야. 틀림없어.
그래?
그럼 조금 더 일찍 원수지간이 돼도 괜찮겠군.
“실례지만, 폰 파펜 님께서는 저희 로젠바움사와 함께하시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예? 어째서입니까? 비록 제가 군사나 외교 쪽에만 종사하긴 했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웠던 분께서 어찌 한낱 장사치 일에 매진하겠습니까? 잠시 쉬어간다 생각하시고, 더 큰 대업에 도전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슐라이허급의 음흉함을 염두에 두고 가벼운 립서비스를 날렸는데, 갑자기 파펜은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 황제 폐하의 마지막 충신인 귀하께서 이토록 말씀해주시니 제가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이 파펜, 적어도 사람을 보는 눈은 있습니다! 더 큰 물로 건너가기 전까지 귀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요!”
병신인가?
– 병신까진 아니고. 친구를 잘못 둔 멍청한 사람 같은데.
나는 악수 대신 곧장 이 파펜이란 아저씨를 꽉 끌어안았다.
슐라이허, 이 딱한 사람아.
네 사람이 언제까지 네 사람으로 남아 있을지.
어디 한번 해보자고.
(참고)
파펜은 1차대전 당시 미국 주재무관으로 머무르며 미국 내 테러, 멕시코 매수, 캐나다 운하 폭파 계획, 미국에 있던 아일랜드와 인도 독립운동가 지원 등 다양한 음모를 꾸미다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