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72)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72화(72/246)
파시즘 발호 (2)
아르민 로젠바움의 자서전은 마치 신성로마제국 같은 무언가였다. 이름만 자서전이지 실제론 전혀 ‘직접 쓰지’ 않았다는 데서 더더욱.
로젠바움 자서전은 자신의 거창한 사상을 늘어놓은 책이 아니라 오히려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을 담담히 돌이켜보는 회고록에 가까웠다.
어렸을 적.
학창 시절.
청년 사업가.
그리고 전쟁과 지금.
당연히 여기에 어마어마한 윤색과 허위, 과장, 왜곡, 날조가 첨가되었다. ‘인간말종 브루노 로젠바움과 폭행당하던 아밀리아 로젠바움의 외아들’ 같은 걸 쓸 순 없잖은가.
결과적으로 이 자서전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베를린의 한 소년은 어떻게 인간승리를 일구고 신화가 되었는가>라는 거대한 뽕의 결정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상에. 이런 난관을 뚫고 지금 저만한 회사를 일구다니.”
“자본가는 다들 돈에 미쳤다고들 한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했으니 남들을 마구 부려도 될 권리를 얻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로젠바움은 다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유일한 자본가 아닌가?”
이 살기 팍팍한 시대에.
아르민 로젠바움은 아가리로만 떠들지 않고 자선과 복지를 향한 행보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었다.
누구보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휘말려 고통받던 이들일수록 당연히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의 자서전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군데 군데 배어 있는 로젠바움의 사상과 생각을 접하게 되었다.
[오늘날 이 나라가 이토록 혼란스러운 이유는 단언컨대 도덕의 부재를 신념과 이념으로 포장하기 때문이다.<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굳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더라도 누구나 당연히 여길 법한 이야기지만, 오늘날에는 <대의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라는 단서조항이 달리면 죽여도 되고 훔쳐도 된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전쟁은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았지만, 결코 우리의 자긍심마저 짓밟을 수는 없다.
우리가 잘살자고 다른 민족을 핍박해선 안 된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남을 불행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독일 민족의 손엔 식민지인의 피가 묻어 있지 않고, 우리의 공장과 은행엔 다른 민족의 절규가 녹아 있지 않다. 우리는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자강(自强)하여 전 세계를 이롭게 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민족이다···.] [독일 민족의 미래는 평화와 번영에 있으며, 독일의 번영은 오직 반제국주의와 탈식민주의의 기치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비록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국경의 벽 아래 갈라져 있지만, 평화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이해받을 수 있다면 결국 민족자결의 이름하에 우린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로젠바움 그룹의 창립이념이자 궁극적인 목표는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다.
아침에 눈 떠 회사로 출근해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사람은 보답을 받아야 한다. 그의 가정에 평화가 가득해야 하며 자식들은 더 좋은 교육을 받아 더 나은 일자리, 더 나은 미래를 꿈꿀 희망이 있어야만 한다.
기업은 단순히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하고 대가를 지급하는 데서 끝나선 안 된다. 모든 기업가들은 단순히 8시간 근로 시간을 채우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회사를 집처럼 여기고 충성을 다하길 원하지 않는가? 그걸 원하는 기업이라면, 지금 그들이 사서 사용하는 것은 노동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다. 일당 몇 마르크 몇 페니히는 인생을 구입하는 정당한 가격이 아니라···.] [가부장은 가족 구성원을 지킬 책임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장은 사원을 지킬 책임이 있다. 당연히 국가 또한 국민을 지켜줘야만 한다. ‘무책임한 남자’라는 말이 얼마나 모욕적인지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으면서 ‘무책임한 국가’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오늘날 공화국은 혼란스럽다. 하지만 백마 타고 나타난 초인이 다스리지 않는 이상 이 혼란을 단숨에 수습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을 다스릴 초인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칼과 총 대신, 서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민주주의적 의회 정치가 유일한 차선책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로젠바움 자서전에 녹아 있는 이 사상들은 순식간에 23년 말부터 24년까지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듣기 좋고 원칙적으로 옳은 말만 신나게 떠들었으니 당연히 좋아 보일 수밖에 없다. 모세의 십계와 다른 게 뭐가 있는가?”
“그 좋은 말씀조차 때려치운 이들이 이 독일에 한가득한데, 최소한 원리원칙이라도 지키자고 말하는 사람보고 위선자라고 비난하면 어쩌잔 거냐?”
지식인들끼리는 서로 위선자네 위선조차 안 지키는 놈이네 하며 갑론을박했고.
“누가 자본가 아니랄까 봐 민족이라는 허상으로 이 나라 인민들을 마취시키려는 저열한 선동 글뭉치에 불과하다. 로젠바움이 원하는 건 자신의 영지, 자신의 장원이며 그는 누구보다 신분제에 천착하는 산업 귀족이다!”
“로젠바움은 스스로가 체펠린, 마이바흐, 카이저 빌헬름 등 더 윗선에 있던 이들의 도움을 받아 자립할 수 있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가 이 도움의 대가로 도움을 준 이들의 가신이 되었던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받았던 만큼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순환이고, 진정한 의미의 자선이다! 이걸 비난하려면 너흰 대체 뭘 했는지부터 따져라!”
말 그대로 개판.
이토록 사방에서 갑론을박이 터지고 있는데 당연히 누구보다 민심에 민감한 정치권이 여기에 안 끼어들 린 없었다.
공산당은 당연히 이 로젠바움의 의견을 ‘수정주의적 발상’으로 절하하고 타도되어야 할 신종 악덕쯤으로 취급했지만, 정 반대편에 있는 수구 왕당파 세력들도 전혀 여기에 공감하지 않았다.
“책임이라니.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신민의 당연한 의무인데, 이래서야 꼭 쌍방향 거래 관계잖은가.”
“로젠바움은 자신이 카이저 폐하의 총애로 성공했다는 걸 자각하고 있음에도 빈민 자선 따위로 제 변절을 은근슬쩍 가리고 있다. 이 자서전은 유다의 장대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가장 여기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정치 세력들은 당연히 자유주의적 정파들, 그리고 사민당과 중앙당.
[독일인이 독일인을 핍박하는데 왜 자꾸 이유를 덧붙이는가? 같은 신교를 믿는 영국인이 가톨릭을 믿는 독일인보다 더 우월한가?] [유대인이 우리 등에 칼을 꽂을 힘이 있었다? 혹시 몰트케가 유대인이었나?] [나는 가장 많은 독일인을 참호로 내몰아 죽인 역적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자의 성은 L로 시작하고 이름은 E모 씨다. 얼마 전엔 반란도 일으켰었는데, 필시 그는 유대인이리라.]“루덴도르프가 유대인이란다!!”
“암, 암. 그놈은 유대인이 맞고말고.”
“어쩐지 베르사유 조약에 순순히 서명하더라니 유대인이어서였군.”
찬성하건 반대하건 별생각이 없건, 지금 이 책을 읽지 않고선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것이 시류.
하다못해 얼굴에 기름 번들거리는 공장 직공들조차 읽는 책을 못 구한다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지금은 감옥으로 이용되고 있는 란츠베르크 요새의 한 수감자 또한 문제의 책을 접했다.
“영도자시여!”
“조용히 하게. 책을 읽고 있으니.”
죄수, 아돌프 히틀러는 확신했다.
자신의 진정한 적은 공산당도 융커도 유대인도 아니오.
바로 이 책의 저자라고.
“<나의 투쟁>의 탈고를 서둘러야겠어. 이 맹독이 독일 전체에 퍼지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고!”
“염려치 마십시오. 대중들은 반드시 진정 이 나라를 구원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군지 알아차릴 겁니다!”
“이놈이 노리는 바는 명확해. 간교한 놈. 이런 놈이 살아 있다니, 독일의 수치야. 죽여버려야 해. 죽여버려야 한다고···.”
맥주홀 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전국구 유명인사로 부상했다.
감방은 연일 면회객들로 미어터졌고, 이 투철한 애국자를 지지하는 이들은 날로 늘어났으며, 그의 웅변과 연설을 듣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전국 각지에 솟아났다.
위대한 애국자 아돌프냐.
전설적인 자선가 아르민이냐.
그들의 지지 기반이 모두 대중인 이상,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충돌할 운명이었다.
***
얄마르 샤흐트가 경제에 대한 전권을 잡고 인플레 방어에 들어갔다.
미쳐돌아가던 마르크화는 몇 차례의 푸닥거리 끝에 간신히 정신줄을 다시 잡았고, 독일이 생지옥이 된 꼴을 지켜보던 미국은 마침내 총대를 메고 독일에 힐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루르에서 철수한다.배상금 액수를 조절한다.
미국은 독일에 2억 달러를 빌려준다. 독일은 국영 철도를 담보로 잡는다.]
핵심은 바로 미국의 수혈.
불경기를 털어내고 역대급 대호황을 맛보기 시작한 월스트리트의 금융 괴물들은 저평가 우량주 독일 코인을 풀매수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물론 이 차관을 시작으로 한 미국자본의 막대한 투자는 필연적으로 독일 경제의 미국 의존도 떡상을 불러일으키겠지만, 미국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경제가 망해버릴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외화가 절실했던 독일과 꿀수익 투자처가 필요했던 미국의 의중이 일치하면서 독일은 말 그대로 구원받았다.
그리고 샤흐트의 전 직장이었던 로젠바움의 시민단체 또한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무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고.
***
“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괴벨스 박사.”
요제프 괴벨스는 영화사 내에서 차근차근 입지를 다진 끝에 로젠바움 회장의 심복 자리를 꿰어찼다.
괴벨스는 로젠바움을 주인공 또는 모티브로 삼은 영화 몇 편을 성공적으로 흥행시켰고, 본인의 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로젠바움 자서전을 실질적으로 집필했다.
그리고 이제.
괴벨스의 인생 목적은 하나뿐이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회장님께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대동소이한데, 다음 대선에 출마하셔서 이 나라를 구원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저는 출마할 생각이 없습니다.”
괴벨스는 속이 탈 지경이었다.
애초에 책을 어떻게 썼던가. <초인이 없으니 민주정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적어 놓지 않았나.
그 자신도 알고 있고, 대중들 또한 알고 있다.
로젠바움이야말로 이 나라를 구원할 초인이다.
하지만 참으로 답답하게도, 그의 주인은 한사코 저 영광스러운 옥좌로 향하길 거부하고 있었다.
“어째서입니까?”
“어째서라니?”
“회장님께서 영입했던 샤흐트가 저토록 탁월한 경제 운용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회장님의 용인술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이번 대선에서 단숨에 대통령직을 거머쥐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르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박사.”
“민중들은 냄비처럼 쉽게 끓지만 그만큼 쉽게 식어버립니다. 저들의 지지가 꺼지기 전에 행동에 나서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더 안 되는 겁니다.”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은 아르민은 괴벨스를 응시했다.
“아직 부족해요. 전국적인 지지, 전국적인 조직. 두 가지 모두를 거머쥐기 전엔 정계로 데뷔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온 사방에서 회장님께서 정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습니다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킹메이커지 직접 권력을 잡는 게 아니에요. 애초에 대통령은 얼굴마담이고 실권은 총리에게 있잖습니까? 적어도 내가 당 하나를 창당했을 때 집권여당으로 만들어버릴 수준이 아니면 어렵습니다.”
다 와 간다.
때가 오고 있었고, 사람들의 기대도 무르익고 있었다.
이제 필요한 건 딱 하나.
압도적인 절망.
그리고 무너지는 국가 체제.
이미 아르민 로젠바움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이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놀라운 능력을 선보여 무수한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제 다음 파도가 바이마르호를 덮치고 타이타닉 옆 자리에 가라앉을 판국이 온다면.
승객들은 누구의 이름을 간절히 목 놓아 부르짖겠는가?
괴벨스가 막 무어라 반박하려던 찰나, 똑똑 하면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슈미트입니다!”
“들어오게.”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콘라드가 곧장 문을 벌컥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조금 전 에베르트 대통령이 죽었습니다.”
“암살인가?”
“아닙니다. 병으로 죽었답니다.”
“···대선 일정이 당겨지겠군요.”
괴벨스가 허탈하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중얼거렸고, 아르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거 준비 시간이 훅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이번 출마는 무리.
괴벨스의 머릿속에서 불출마에 대한 아쉬움이 경애하는 회장님의 선구안에 대한 찬탄과 경이로움으로 변환되는 동안, 아르민은 슈미트가 내민 서류들을 빠르게 확인했다.
“사민당이 조만간 접촉해 올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지지 연설을 해달라고 할 듯한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친구였던 에베르트가 세상을 떠났으니 우선 장례부터 참석해야겠지. 하지만···.”
아르민은 책상에 놓인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음 수는 어차피 정해져 있었다.
“오랜만에 힌덴부르크 각하를 봬야겠군.”
킹메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