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74)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74화(74/246)
대공황 (1)
1925년 독일 대통령 선거는··· 어지러웠다.
– 이건 그냥 개차반이지. 이게 대선이야, 김두한 대 하야시야? 우미관패 두목도 이거보단 더 절차 갖춰서 뽑겠다.
아니, 이 정도면 클린하지 무슨 소리야.
– 선거가 뭔지도 모르는 게르만 야만족 새끼들. 너네는 그냥 딱 긴또깡식 선거제가 어울려. 기호 1번 2번 3번 모아서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이 나라에서 선거할 때 개판이 안 되던 때가 있긴 했던가?
범석이는 아직도 자기의 21세기식 민주주의가 옳은 것이라고 굳게 믿는 모양이었다. 독일엔 독일에 맞는 독일식 민주주의가 있는 법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연설을 하던 대통령 후보에게 누군가 납탄을 박지도 않았고, 대통령이 풍 맞고 쓰러져 부인이 비선실세가 되어 국정을 총괄하지도 않았고, 대통령 후보가 경쟁 상대를 도청하기 위해 비밀조직을 침투시켰다가 걸리지도 않았고, 대통령이 갑자기 총리를 겸임하고 헌법을 정지시키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제를 가장 길게 했던 미국에서조차 몇 가지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독일인들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완벽하게 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이 미친 깡패 새끼들은 뭐냐고!
“죽여라!!”
“빨갱이들의 대갈통을 깨버리자!!”
“수구 꼴통 왕당파들을 혁명의 밭고랑에 처넣어버리자!”
음.
저건···
전통 풍습이다.
– 미쳐버렸군. 현실을 직시해. 정치깡패들이 각목이랑 나이프 들고 서로 싸우고 있다고!
어. 음. 음.
무슨 소리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이건 공화정과 민주주의의 본고장 신성로마제국에서부터 유래된 유서 깊은 민주주의 절차, ‘선제후식 투표’라는 거다. 자신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칼빵마저 감수할 만큼 그 후보를 간절히 지지한다는 뜻이지.
– 사람 마빡이 으깨지고 있는데?
이래서 아시안은 안 돼. 그리스-로마의 공화정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와 달리 은나라 시절부터 전제군주의 지배를 받아 왔잖아. 민주주의에 대해선 내가 조금 더 너보다 잘 알지 않을까?
– 하다못해 무솔리니가 그 말을 했어도 지금보다 더 빡치진 않겠다. 너는 밤에 조심해라. 빡쳐서 내가 내 머리통에 총 겨누는 수가 있다. 니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그때는 내가 로젠바움을 죽인 아르민이 되는 거야. 앙?
공산당 전위대와 극우 철모단의 웅장한 대결.
당연한 말이지만 정치적 의식이 부족한 나약한 민중들은 도망치고, 각목의 내구도가 0이 된 장정들은 독일인 전용 한손무기 맥주잔을 하나씩 들고 서로의 뚝배기를 노려댔다.
음. 이게 독일이지. 마상창시합의 전통은 아직 살아 있다!
– 그래. 니 나라 개판이라 참 좋겠다.
좋고말고.
우리 범석이는 평화의 나라에 살아서 전투 의지가 약한 게 흠이다. 세상에, 왜 시위를 하는데 촛불 같은 걸 들지? 촛불이 아니라 횃불을 들어야 상대가 말을 들어먹지.
내가 지난번에 해봐서 아는데, 촛불의 협상력이 1이라면 횃불은 10이고 Gew98 소총에서 불이 번쩍이면 거의 무조건 말을 들어준다.
내가 그렇게 총기의 협상력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쯤, 저 멀리서 호루라기를 삑삑 불어대며 달려오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이 무례한 깡패놈들! 자신들의 폭력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선량한 서민의 생계를 위협하다니!”
음. 어지간히 얼굴가죽 두꺼운 나도 저건 좀 부끄럽군. 괴벨스에게 대본 좀 고쳐 쓰라고 해볼까.
정갈하게 다림질한 제복을 쫙 차려입은 한 무리의 남정네들이 위풍당당하게 등장하고, 그 가장 앞에 있던 괴링이 오늘따라 더욱 반질반질 광을 낸 푸르 르 메리트 훈장과 철십자 훈장을 슬며시 쌍으로 과시하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저 뒤편에서 촬영용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건 덤이고.
“너희에게 생계를 위협받고 거리에서 두려움에 떠는 소시민, 소상공인, 서민을 위해! 우리 독일중흥민족각성운동 청년돌격대가 너희들의 행패를 막겠다!”
오. 수치스럽다. 등골이 수치심으로 저릿저릿해진다.
하지만 저 뮤지컬 배우 같은 모습이 오히려 더 1925년 낭만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겐 어필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얼굴이 좀 받쳐줘서 그런가.
선제후가 모여 황제를 뽑던 전통을 지켜, 이 험악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좀 잘나간다 싶은 정당들은 다들 하나씩 무력을 휘두를 조직······.
– 정치깡패 집단이지, 무슨.
그래. 무장 깡패집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공산당이나 극우파는 물론, 심지어 사민당조차도 <흑적금국기단>이란 이름의 깡패집단을 갖고 있다. 이런 게 없으면 경쟁 당에서 보낸 깡패들이 유세 현장을 와장창 엎고 투표소로 가려는 시민들의 뚝배기를 깨버린다니까?
그리고 내가 만든 조직은 <시민들의 편에서 깡패들끼리의 싸움을 막는다>를 모티브로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어마어마하게 욕을 처먹었고 몇 번은 대놓고 죽여버리겠단 식의 공갈협박도 들었다. 너넨 뭔데 자꾸 나대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쳐다보기만 해도 수치심이 자극당하는 저 끔찍한 프로파간다를 하는 이유.
“와아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자는 다 박살 났지만 덕택에 잔이라도 몇 개 건졌습니다!”
“안심하시오! 시민 동지들의 친구인 우리가 왔으니 더 이상 점포에 피해는 없을 것이오!”
심심하면 다들 치고받고 싸우기 일쑤인데, 경찰이 출동할 일을 덜어주니 시민들이고 경찰들이고 당연히 호의적일 수밖에 없다.
– 정당이란 게··· 이런 거였나?
무슨 멍청한 소리야, 조스비. 우린 아직 정당 아냐.
그냥 애국자들 모임이지.
이 시대의 정당이란 대개 특정 계급을 대변하고, 이 계급은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가톨릭교도 아들은 가톨릭이고 유대인 아들은 유대인이다. 구두 수선공 아들은 공장 노동자나 호프집 업주가 될지언정 부르주아가 되진 않고.
하지만 나는 그들 모두를 원했다.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정당을 원했고, 계급에 투표하기보단 나라는 개인을 보고 투표함에 표를 던지길 갈망했다.
힌덴부르크의 승리는.
바로 그 시금석, 정당보다 인물이 우선한다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될 예정이었다.
***
21세기 대한민국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선 제도 사이에는 매우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먼저 1차 투표와 결선 투표라는 제도가 있었다.
1차 투표 때 한 후보가 과반수의 득표를 하지 못한다면 두 번째로 다시 선거를 하게 된다. 이 두 번째 선거는 이제 과반수가 아니라 단 한 표라도 더 많이 받아먹은 후보가 당선된다.
결선 투표제를 도입한 나라들은 대개 1차 투표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두세 후보를 가려서 이들만 가지고 결승전을 벌이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은 달랐다.
1차 때 후보들이 GG를 치고 선거를 포기할 때,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할 수 있다.
그냥 지지 선언이 아니다.
1차 때 출마하지 않은 옆집 철수 뒷집 영희를 지지한다고 선언해버리면, 이 사람이 출마할 수 있다!
“독일을 살리고 빨갱이들을 막을 인물은 오직 한 분! 힌덴부르크 원수 각하뿐이십니다!!”
“저는 비록 기나긴 경주를 중간에서 포기합니다만, 신정권 창출과 좌익 정권 타도를 위해서는 파울 폰 힌덴부르크야말로 저의 바람을 이어받아 줄 최고의 인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렇게.
결선 투표엔 몸을 둔 정당 하나 없는 힌덴부르크가 갑자기 출마했다.
일단 출마를 결심한 그의 처신은 참으로 교묘했다.
선거를 천박한 행사로 여기지만 권력은 탐나고 명예는 지켜야 하는 융커의 삼중고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농장(협찬 : 로젠바움)으로 각 당의 인사들이 몰려와 그의 출마를 간청하는 그림을 연출했다.
그러는 한편 왕당파들을 규합하기 위해 이번에도 출마 전 전직 카이저 빌헬름 씨에게 출마를 해도 되겠는지 서신을 보내 허락을 구했다. 역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하지만 늙은 각하께서 정열을 불태운 건 거기까지.
어찌나 피곤하셨는지 선거운동조차 거의 하지 않았고, 그나마 한 것은 하나의 성명서 발표가 전부.
[친애하는 독일 국민들에게!가슴 깊이 조국의 안녕을 염원하는 독일의 모든 민족, 모든 지역 국민들이 제게 국가 수반의 자리를 권유했습니다. 저는 오랜 고심 끝에 조국에 대한 나의 경의를 바치며 그 부름에 순명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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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군인으로서, 저는 국가 전체를 위해서만 고찰해 왔을 뿐 단 한 번도 일개 정당을 위해 움직인 적이 없습니다.
의회가 통치하는 국가엔 당연히 정당이 필요하지만, 모름지기 국가의 수장이란 그들 정당의 머리 위에 있어야 하며, 정당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고, 정당들이 떠드는 그 모든 의제를 통치할 줄 알아야만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독일인을 가호한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믿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하루아침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믿을 만큼 젊지도 않습니다. 그 어떠한 전쟁도 내란도 이 속박되고 산산조각난 조국을 자유롭게 해줄 순 없습니다.
길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과정. 특히 정치를 업으로 삼던 정치 기술자들이 물러나야만 조국을 재건할 수 있습니다!]
힌덴부르크 본인은 의도했을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특정 정당이나 계급에 지지를 호소하기보단, ‘평화와 안정을 바라며 정치인들이 지긋지긋한’ 모든 대중을 향해 지지를 호소했다.
당연히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었다. 세상에, 대중 선동에 이토록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니. 그 괴인의 정체는 대체 누구일까?
– 지랄이 좀 길다.
결과적으로, 힌덴부르크는 ‘카이저는 아니지만 아무튼 카이저 비슷한 힘으로 국회의원들 쌈박질하는 거 말리고 엄격히 지도할’ 사람을 찾는 파더 콤플렉스 독일인들에게 적절한 어필을 했고.
“아아악!!”
“이 나라는 글렀다! 늙어빠진 군바리 영감을 뽑아주는 이 나라는 망했다!!”
“공산당!! 공산당이 사퇴하지 않고 완주해서 진보 정당 표를 훔쳐먹었다! 공산당이 프락치다!!”
“이제 이 나라는 살았다!”
“각하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실 거야!!”
“힌덴부르크 각하! 카이저 폐하를 복위시켜주세요!!”
기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말았다.
“나는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며-”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공화국을 지키겠노라고 굳게 맹세하며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의원내각제 국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대통령이란 단순한 바지나 토템에 불과하다.
대통령 취임식에 내빈으로 참석한 내가 공허하게 박수를 치고 있는 가운데, 늙어빠진 토템을 자임한 힌덴부르크는 문득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걱정 말라고.
당신은 토템이 아니니까.
시간을 약간 되돌려 1919년을 떠올려보자.
난데없이 공화국의 헌법을 만들어야 했던 학자들이 가장 먼저 무얼 염려했을 것 같은가?
사실은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싶은 거무튀튀한 속내를 숨긴 누군가가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이 되는 것? 그럴 리가. 그런 걸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영화나 소설을 너무 많이 봐서 훼까닥한 게 틀림없으니 가까운 정신과를 방문해야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
‘수의 폭력으로 헌정이 무너지려 할 때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헌법을 제정하던 시기는 전국에서 인민 공화국이니 소비에트 공화국이니 하면서 너도나도 죽창을 들고 전국 곳곳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벌어지던 때.
게다가 독일인들에게 있어 의회란 언제나 거수기 역할에 불과했지, 단 한 번도 정치적 권력을 쥔 의회를 맛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헌법을 만들던 이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빨갱이들이 떼법으로 의회를 장악해 나라를 엎어버리면 어쩌지?”에 더욱더 큰 고민을 했고.
“아하, 의회가 미쳐도 강력한 대통령이 공화국을 지키면 되겠구나!”라고 결론을 내렸다.
보통 같은 경우엔 이게 맞을지도 모른다.
바이마르 공화국 의원 선거는 당을 보고 투표하는 비례대표제 100%로 구성되어 있지만, 대통령만큼은 인물을 보고 투표할 수 있으니.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공화국 멸망이 목표인 자들이 국회의원으로 입성하게 될 줄은.
공화국 의회가 영원히 공회전만을 반복하게 되는 끔찍한 수라장에 빠지게 될 줄.
그리고 대통령에게 거의 모든 통치 권한을 위임하게 될 줄은.
힌덴부르크는 기꺼이 그 짐을 짊어질 예정이었다.
아주 기쁘게.
그리고 1929년이 도래하기까지의 4년간은 아이들 크는 모습만 구경해도 순식간에 당도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었다.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