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76)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76화(76/246)
76. 대공황 (3)
아직까지 유럽은 평화로웠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심장인 런던 금융시장과 가장 리스키한 투자를 거침없이 질러대기 일쑤였던 파리 금융시장은 지금쯤 미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터.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떡락장이 앞으로 전 세계를 거무죽죽한 늪에 처박을 기나긴 파국의 시작이리란 끔찍한 예상을 쉽사리 던지진 못한다. 그걸 예상하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미친놈이거나 세상에 쌓인 억하심정이 많은 놈이리라.
나만 빼고.
–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양치기 소년? 카산드라? 아닌데.
뭐긴 뭐야. 선지자 사촌쯤 되는 사람이지.
2년.
나는 최근 2년 동안 목놓아 부르짖었다.
“조만간 경제 위기가 올 겁니다! 사원 여러분, 그리고 시민 여러분! 저축하십시오. 그냥 저축으론 안 됩니다. 금과 패물을 모으고 지하실에 햄을 쟁여 놓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독일의 번영은 너무나도 위태로운 외나무다리 위에 거대한 나무가 자라난 것과 같습니다. 이역만리 미국의 자본가들이 마음을 달리 먹는 순간 우리의 평안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위기에 대비하십시오!”
“이 세상에 천년만년 계속되는 부귀영화는 없습니다. 에덴동산도 그 끝이 있었는데 대체 어찌 이 호경기가 계속되겠습니까? 지금이야말로 대비해야 합니다!”
“로젠바움 펀드에 가입해 여러분 가계의 위험에 대비하십시오!”
마지막 대사 하나로 인해 내 주장은 재앙을 경고하는 선지자에서 순식간에 펀드 팔아먹고 싶어 환장한 자본주의자의 홍보 문구로 추락해버렸다.
홍보를 할 당위성도 충분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장기 기억력이 좋지 않고, 하이퍼인플레 당시 팔자가 펴고 인생이 천지개벽한 인간들조차 ‘어떻게 내 펀드 계좌에서 돈을 꺼내지?’의 고민을 할지언정 추가로 투자를 해야겠단 발상을 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옆집 춘식이는 파워볼에 당첨됐는데 나는 로또 2등 됐으면 인간이란 짐승은 대개 만족을 못 하고 배가 아픈 법.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끝난 이후에도 절대 수익률이 나쁘진 않았지만, 사람들 머릿속엔 전부 일확천금뿐인 걸 어쩌겠나.
내가 주로 나발을 불어댄 레퍼토리는 다양했다.
조만간 닥쳐올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
폭력단을 동원한 정치적 분쟁 대신 품격 있는 준법 강조.
퇴폐적인 베를린 문화에 대한 경종과 개인 도덕과 가정 윤리의식 재고 등등.
그리고 이제.
그동안 뿌려둔 종자를 추수할 시간이었다.
나는 최고 심복들을 불러 모았다.
회사 사람들과 달리, 이곳에 모인 이들은 내 은밀하고도 진정한 목적에 대해 대강이든 자세히든 알고 있는 이들.
“헤르만?”
“예, 형님.”
“브리핑해 봐.”
괴링은 주변을 슥 돌아보며 은근히 알게 모르게 모나리자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이를 암만 처먹어도 저 ‘나는 특별하다! 나와 형님의 관계는 너희들 같은 단순한 고용자와 노동자 관계가 아니지! 하하!’ 하는 모습은 도무지 바뀌질 않았다.
“항공대는 사실상 리히트호펜 일가가 장악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리히트호펜은 우리의 도움이 절실하지요. 프로이센 단세포 놈들 머릿속엔 육군밖에 없습니다. 먹을 거, 입을 거, 싸울 거. 항공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협찬이 가득한 만큼 밥값은 해줄 겁니다.”
자신이 철철 흘러넘친다.
하긴.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공군을 실질적으로 재건한 건 우리다.
젝트와 그 후임자들은 공군에 투자를 하고 우리의 지분을 희석시키느냐, 혹은 공군을 아예 외주 맡기는 대신 그 돈으로 육군을 더 강화하느냐를 택해야 했고 –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슬슬 팔자가 편 젝트가 공군에 본격적인 개입을 하려던 찰나에 내가 사주하고, 슐라이허가 실행범이 되었으며, 힌덴부르크가 다 알면서도 방임했다. 등 뒤에서 칼을 찔린 젝트는 억 소리도 내지 못하고 군복을 벗게 되었다.
“돌격대는?”
“각지의 자경단과 청년 단체로서 전국에 수십만이 넘는 회원들이 있습니다. 실전을 염두에 둔 전투 조직은 별도로 관리 중입니다.”
“전투력은 어느 정도쯤 될까.”
“정부군과 싸우면 무조건 집니다.”
괴링은 단언했다.
“명색이 독일의 군대인데 우리가 기른 사설 조직이랑 싸워서 비등비등하면 그게 더 문제 아니겠습니까. 군과의 충돌은 가급적 피해야 할 겁니다.”
“좋아.”
괴링이 자리에 착석하자 곧장 괴벨스가 일어났다.
“회장님을 음해하며 제 세를 모으려는 저열한 무리들은 온 사방에 가득하지만, 특히 우리에게 가장 적대적인 곳은 나치당입니다.”
“그놈들을 당장 쳐죽이시죠. 히틀러 그놈이 유세하는 곳을 습격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우국지사’ 한 명만 제대로 투입하면-”
“그만. 계속 말해주시오, 괴벨스 박사.”
“히틀러는 예전, 최소한 <나의 투쟁>이란 불쏘시개 책을 출간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회장님에 대한 음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나의 투쟁>은 범석이가 살던 미래에도 한 획을 그은 베스트셀러지만.
– 아니다, 이 자식아. 이름만 유명한 마공서라고. 그걸 누가 읽어?
···아무튼 매우 유명한 책이지만, 나라는 이레귤러가 출현하면서 그 책의 이름은 같아도 내용은 제법 바뀐 모양이었다.
[저 유대인 로젠바움조차 백마 탄 초인의 독재야말로 독일을 구원할 최고의 정치체제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나는 선언한다. 바로 나야말로 이 나라를 다스려야 마땅한 초인이다!] [로젠바움은 끝없이 우리더러 싸움을 그만두라고, 베르사유 조약에 굴종하라고 외친다. 자존심 챙기지 말고 당장 내일 빵 한 덩이를 더 살 수 있는 좋은 일자리나 찾아보라고 권한다.하지만 틀렸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민족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유대인을 박멸하고, 러시아인을 노예로 삼고, 폴란드인을 멸종시키고, 프랑스에 빼앗긴 땅을 되찾아야 한다! 오직 피와 칼로 저들에게 복수해야만 한다!
노동자가 가난한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적들에게 우리의 몫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역시 히틀러는 히틀러였다.
괴링과 괴벨스는 생각보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조직이라는 건 원래 압도적인 재능의 소유자가 없어도 이 대신 잇몸처럼 굴러가기 마련.
히틀러에겐 악마적인 카리스마와 사이비 교주와 유사한 매력이 있었고, 나치당이라는 고독(蠱毒) 항아리에선 매일매일 무수한 병신들끼리 죽고 죽인 끝에 가장 일 잘하고 총애받는 놈들이 승리자가 되어 히틀러의 심복 자리를 꿰찼다.
“회장님.”
“예.”
“이 나라를 손에 쥐셔야 합니다. 회장님께서 이 나라를 거머쥘 수만 있다면 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괴벨스는 영화사 간부가 아니라 어디 아즈텍 신관이라도 되는 것마냥 참으로 경건하게 입을 열었다.
– 심장 뽑기라도 할 것 같은데.
시끄러. 저토록 충성을 다하는 신하를 흡족하게 여기진 못할망정 왜 자꾸 그렇게 악담을 하고 그래.
– 저런 놈들이 원래 배신을 하는 거야.
정말? 원 역사에서도 배신했어?
범석이는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잠시 구석에 자리한 화분만 멍하니 바라봤다. 저저, 대답 회피하는 뽄새 좀 보소.
– 생각해 보니 종교인 맞네. 부패했지만 신앙심은 확실한.
그럼 됐지 뭐. 배신은 안 하겠구만. 내 심장 뽑으러 올까 무섭긴 하다만.
“그동안 촬영해 놓은 회장님에 대한 영화가 몇 작품 더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단순한 자서전이 아닌, 회장님의 정견과 통치 비전을 설파하는 책을 출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의미가 있겠나?”
나 대신 괴링이 먼저 나서 괴벨스의 발언을 잘랐다.
“당장 <나의 투쟁>만 보더라도 히틀러 그놈조차 특정 정견에 대한 표명은 하지 않았네.”
“그걸 읽었다고요?”
“그럼 적을 분석하지도 않나? 히틀러는 소련을 정벌해야 한다느니 알자스-로렌을 돌려받아야 하느니 이런저런 말을 지껄이긴 했지만, ‘어떻게’에 대해선 전혀 논하지 않았어. 자기가 다 해낼 수 있으니 자길 믿으라고만 했지.”
“하지만 우린 다릅니다. 히틀러야 단순한 선동가지만,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잡아야 하는 우리는 분명한 열정과 국정 로드맵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그만.”
내가 한마디 하자 두 사람이 입을 다물고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구석에 가만히 앉아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를 쳐다봤다.
“파펜 의원님.”
“예, 회장님.”
파펜.
슐라이허 친구.
그리고 프로이센 출신 가톨릭중앙당 소속 왕당파.
– 그게 이상한 건가?
엄청 희한하지. 제국 시절 가톨릭은 탄압 대상이었다니까? 근데 또 정작 본인은 가톨릭교도지만 남부 독일 출신도 아니고 프로이센 본토 태생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친구지.
“의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중앙당 의원들 중 힌덴부르크 각하를 원망하고 그분을 괄시하는 이들이 제법 있긴 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로젠바움 회장님이 출마한다면 중앙당에서도 지지 의사를 밝힐 확률이 제법 있을 겁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 당 지도부를 설득해보지요.”
“슐라이허 장군은 제가 출마한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 친구를 내가 잘 아는데, 당연히 아주 기뻐할 겁니다! 내가 만날 때마다 결코 로젠바움 회장이 빨갱이가 아니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소!”
– 저 얼간이 아저씨가 저렇게 말하니까 더 불길한데.
그것도 그렇지만, 슐라이허의 힘은 어차피 폭력에서 나오지 정치력에서 있는 게 아니다.
대선 출마를 암시하는 멘트를 좀 치기만 해도, 더 이상 나를 물리적으로 해칠 수 있는 세력은 없어진다. 여태껏 건달에게 보호비 뜯기던 나날은 이제 끝이란 소리.
“전 군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간과 군의 분리를 부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걸 슐라이허 장군이 알아주셨으면 하는군요.”
“허허. 여부가 있겠습니까.”
“중앙당이 절 돕는다고 한다면, 내각을 조각(組閣)할 때 중앙당의 몫을 크게 떼어 드리겠습니다.”
“그 말까지 들으니 더욱 설득에 노력해야겠군요.”
파펜은 실크 햇을 눌러쓰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갔나?”
“예. 완전히 나갔습니다.”
슈미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걸어다니는 모자걸이는 여기까지만 알면 충분하지. 이제 그다음이다.”
나는 준비한 계획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독일 경제를 무너트린다.”
“···!”
“미국 증시가 바닥 밑 지하실까지 처박히고 있으니 반드시 월스트리트의 악귀들이 독일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 들겠지. 우리도 그 흐름에 합세해 이 나락을 나락까지 떨군다.”
“그렇습니다. 지난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를 맛보면 나약한 공화국 정치인들은 반드시 사분오열할 게 틀림없습니다.”
“누구 책임이냐, 그리고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백날 싸워봐야 답이 없는 이야기지.”
독일은 자력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마땅찮다.
여기서 막대한 외화를 들고 있고 미국 자본가들과의 파이프라인도 튼실한 누군가가, 아예 확실하게 경제의 숨통을 끊어버린다면?
“32년 대선 때 모두가 정치인들을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날 분위기를 조성한다.”
공화국 정부는 기존 연금에 더불어 고용보험 제도까지 신설했고,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부터 재정이 빡빡하다고 사방에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런데 대공황이 터지면?
실업급여 제도가 폭발해버리면?
배상금 갚는다고 항상 허리가 휘는 독일 정부의 재정에 실업급여와 세수 감소라는 이중고를 더 때려준다면···.
확실하게 공화국은 파탄이다.
“공산당과 나치당이 반사이익을 거둘 게 틀림없습니다.”
“그들을 찍어누르고 우리가 거머쥐어야지.”
“공산당이 크게 대두할 가능성이 올라가면 기성 정당 그 어떤 곳도 선거를 원치 않게 될 겁니다.”
“대통령 비상 내각!”
그렇다.
국가 위기라고 판단될 때, 대통령은 선거와 의회 따위 무시하고 본인이 직접 총리를 지목할 수 있다.
이제 바이마르 공화국 의회는 다시 거수기로 전락한다.
선거의 의미를 흐릿하게 만들고.
거리를 공산당과 나치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난장판으로 바꿔버리고.
‘경제 위기 해결 능력’이 최대의 관심사이자 화두가 되도록 유도한다.
“창당을 준비합시다.”
“시기는 언제로 생각하십니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즉시. 그 이전 창당은 안 됩니다. 철저히 숨겨야지요.”
“정치가들이 그런 눈속임에 넘어가겠습니까? 눈치챌 것 같습니다만-”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어차피.
어차피 망할 경제고, 어차피 미국인들만 한몫 챙겨서 빠져나갈 증시다.
차라리 내가 다 먹고 시민들에게 베풀면 되지. 이게 더 낫다. 독일 최고의 자선가인 내가 돈을 버는 게 모두에게 조금 더 이롭지 않겠나?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눈부신 20년대는 순식간에 대공황 앞에서 난초처럼 시들고 말았다.
독일 시민이 그들의 권리를 포기하기까지 채 몇 년 남지 않은 시점.
“사랑하는 독일 국민 여러분!”
나는 마이크를 붙잡았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결코 정치를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제가! 정치를 결심하고 말았습니다!”
“5년 만에 또다시 경제를 말아먹고 서민의 가정을 파탄 내는 정부! 심심하면 폭동이 일어나도 대처 하나 못 하는 나약한 정부!”
“이 로젠바움이! 공화국의 질서를 재정립하겠습니다!”
수백만 회원을 자랑하는 시민단체가 단숨에 정치조직으로 돌변한다.
공화국 의회의 악몽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