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77)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77화(77/246)
하나의 유령 (1)
사람들은 흔히 대공황이 와서 공화국이 터졌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보자.
원래 심장이 좋지 않은 지병이 있는 A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몸에 안 좋은 줄 뻔히 알면서 술과 담배를 걸신들린 듯 탐닉했고, 심장에 무리가 가는 격렬한 침대 위 레슬링을 하다가 억 하고 죽고 말았다.
그럼 여기서 원인은 뭘까? 지병일까, 술담배일까, 레슬링일까?
– 문제가 뭐 이따위야?
아, 아무튼 풀어보라고.
내가 낸 문제에 고민하던 범석이가 마침내 답을 골랐다.
– 그야··· 지병으로 죽었다고 봐야지? 굳이 그렇게 격한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그 심장 문제로 죽었을 것 아닌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확실해?
–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정답은 바로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도 복지도 유흥도 없이 레슬링으로나 스트레스를 풀게 만든 이 바이마르 공화국이 A씨를 죽였다>다. 어리석은 놈. 당연히 이건 이 나라 잘못이고말고.
– 요즘 따라 개소리를 너무 유창하게 한다?
공화국의 지병은 너무 뿌리 깊은 데다가 심각하기까지 했다.
남부 바이에른은 북부 프로이센을 싫어했다.
목가적이고 종교적인 농촌은 퇴폐적이고 환락 가득한 도시를 싫어했다.
군부는 더 이상 자신들이 정권의 ‘존중’을 받지 못한다고 믿었다.
소련의 후원을 받는 공산당은 코민테른 전당대회를 열어 <사민당은 좌익 파시스트>라는 엄격 근엄 진지한 사형선고를 내렸고, 공산 혁명을 위해서는 사민당의 배때기에 사시미를 꽂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업가들은 정부의 친-노동자적 행보에 치를 떨고 있었고(최소한 그들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존받으려면 카이저 수준은 아니더라도 <강력한 우익 지도자>가 시끄럽기만 한 의회 대신 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의회는 이렇게 무수한 이해관계자들의 무수한 갈등을 건전한 방법으로 논의하고 해결해나가는 공론의 장이 되어야 했지만, 그게 그렇게 매끄럽게 되면 애초에 나라 꼴이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다.
대공황은 이렇게 서로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가득한 이들을 섬에다 던져놓고 ‘자, 이제부터 서로 죽여라’라고 킬링필드를 깔아준 셈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
그 곳간이 불탔으니 이제 서로 죽일 시간이었다.
***
1930년 3월.
불경기의 어둠이 모두의 머리를 꾹꾹 내리누를 때.
고용보험을 놓고 연일 치고받고 싸우던 의회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포켓전함! 포켓전함을 진수해야 한단 말이오!”
“야, 이 새끼들아! 나라 꼴이 이 따위인데 그놈의 배를 뽑아야 해?”
“실업급여 지급하다가 나라 망하게 생겼소! 1인당 수령액을 줄여야만 합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오. 안 그래도 코딱지만 한 돈을 더 줄이겠다고? 누구 죽일 일 있소? 기업의 부담액을 더 늘려야 합니다! 지금 기업 부담금이 3.5%니까 깔끔하게 4% 합시다!”
“깔끔하게 니 좆이나 까!”
연정은 폭발했고, 힌덴부르크는 대통령의 힘으로 경제학 박사이자 가톨릭중앙당 의원인 하인리히 브뤼닝(Heinrich Aloysius Maria Elizabeth Brüning)을 총리로 임명했다.
그는 미리 슐라이허의 군부, 그리고 힌덴부르크와 교감한 대로 좌익계 의원들을 배제하고 우익 위주의 내각을 편성했으며, 재정 확보를 위해 엄청난 긴축 재정과 세금 인상을 목표로 한 예산안을 제출했다.
7월 16일.
국회는 브뤼닝의 예산안을 거부했다.
그러자 힌덴부르크가 나섰다.
“공화국 헌법 제48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으로 2건의 법률을 통과시키겠습니다.”
그동안 칼집에만 잠들어 있던 대통령의 권능이 발동되었고, 해당 예산안을 강제로 통과시켰다.
7월 18일.
의회는 ‘대통령이 미쳤다’, ‘선을 넘었다’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대통령 권능을 취소하는 의회 결의를 통과시켰다. 웃기게도 나치당조차 이 결의에 동의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의회의 정종무공과 대통령의 마공이 격돌하게 되자, 힌덴부르크는 자신의 또 다른 권능 <의회 해산명령>을 선고한 뒤 다시 한번 강제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그 모든 의원들의 금뺏지를 하나로 모아도 찍어누를 수 있다는 선례가 생겼다. 의회는 제압당했다.
그리고 1930년 9월 14일.
선거가 시행되었다.
투표율은 암울한 시대를 반영하듯 무려 82%.
그리고.
“이게, 이게 무슨 소리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신이시여!”
“대중들의 울분이 폭발했다! 공화국에 대한 분노가 터져나왔다고!”
의석 577석.
과반은 289석.
제1당인 사민당이 고작 140석을 거머쥐는 동안.
나치 117석.
공산당 81석.
의회가 공화국 국체를 부정하는 이들로만 198석을 채우게 되었다.
한편.
나는 브뤼닝과 은밀한 접촉을 시작했다.
***
“나는 경제를 조금 더 망치길 원합니다.”
– 지금 내가 무슨 소릴 들은 거지?
전직 반란 수괴조차 화들짝 놀라는 말을 내뱉는 현직 총리님.
나는 놀라움은 범석이의 몫으로 남겨 두고, 철저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로젠바움 회장은 이 말을 듣고도 미동조차 없으시군요. 어째서입니까?”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다만,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기다리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습니다. 아주 원대한 목표가 제게 있습니다.”
브뤼닝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심심하면 독일에 경제 위기가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그놈의 배상금! 우리 목을 졸라대는 배상금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이번 기회에 독일을 짓누르고 있는 이 암을 적출해야 합니다. 경제가 박살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저 영국과 프랑스인들은 우리 독일에서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범석아. 혹시 민주주의 정치인들은 자국을 파괴하는 게 취미생활이니? 아니면 금뺏지 달 때 몰래 어디 선서라도 하나?
– 어··· 음··· 이제 나도 좀 자신이 없는데. 혹시 원래 그런 건가? 가만, 생각해 보니 정치인들이란 놈들이 어째 전부···.
조스비은(는) 혼란에 빠졌다!
영문도 모르고 자신을 공격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한 거지가 되어서 전쟁배상금을 모조리 짬시켜버리자!>라니.
나는 어째서 브뤼닝이 경제학 박사인지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렇다.
왜 빚을 어떻게 갚을 것이냐 같은 문제로 고민을 해야 하지?
어떻게 그 빚을 탕감받을지를 고민해야 프로 빚쟁이인 것이다.
– 아, 아니지. 이게 아니지! 정신 차려! 니가 돈 꿔주는 사람이야! 암만 복지니 뭐니 해도 결국 너도 이자 받아먹는 놈이야. 저런 미친 소리에 홀리면 안 된다고!!
아뿔싸.
나라 하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평생을 절치부심한 이 내가 압도당할 정도의 광기라니. 이래서야 누가 봐도 브뤼닝이 진짜 광기고 나는 가짜 광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리고 독일 경제를 지옥으로 보내고 싶은 건 사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치와 공산당의 어마어마한 성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겐 <정치적 리스크>로 인지되었고, 탈독일 엑소더스는 더더욱 가팔라졌다.
나는 또다시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거두면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고, 그 돈을 다시 실업자 구제와 빈민 급식에 쏟아붓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한 나라의 총리라는 분께서 어떻게 경제를 망치겠단 말씀을 하십니까!”
나는 냅다 버럭하고 고함을 질렀다.
“총리님. 지금 진담이십니까?”
“물론이오. 로젠바움 회장, 진정하고 들어보시오. 지금이 아니면 우리가 언제까지 베르사유 조약의 굴레에-”
“지금 당신은 이 나라의 위정자로서 그들의 일자리와 가정을 파괴해서라도 국가의 영광을 얻겠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지난 대전쟁 때의 융커들과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잖습니까!”
나는 쾅 하고 책상을 있는 힘껏 두들겼다.
“미쳤군. 당신은 정말 미쳤어.”
“이보시오. 당신 정말 빨갱이요?”
“나는 지금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인이 국민을 죽이겠다는 데 분노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투표로 총리가 된 게 아니오. 힌덴부르크 각하께 이 나라를 어떻게든 건사해 보라고 임명받았지!”
나는 힌덴부르크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잠시 태도를 누그러뜨렸고, 그제서야 브뤼닝은 숨구멍을 찾았다는 듯 맹렬하게 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나갔다.
“힌덴부르크 각하께선 조국의 미래를 위해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린 게요.”
“······하. 진짜. 정치하는 인간들이란 다 이렇습니까? 혹시 당신들, 공감이라는 게 마비되셨습니까들?”
“로젠바움 회장. 당신도 알잖소? 지금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훗날 죽을병에 걸릴 수도 있단 것을.”
대충 나는 여기서부터 슬슬 설득되는 척을 하기 시작했고, 브뤼닝은 자리에서 일어나선 2시간에 걸쳐 칠판을 가득가득 채워 가며 내게 경제학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으음. 안 돼. 학교로 돌아온 느낌이다. 아르민 로젠바움. 수업 중에 졸다니. 네놈은 F일세···.
“-그러니, 이 시국에선 프랑스 차관을 받아봤자 결국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고통스러운 미래를 뻔히 알면서도 이 방책이 최선이라는 걸 이성적으로는 납득해버린 지식인’ 코스프레를 훌륭하게 했고, 브뤼닝은 먹물쟁이 특유의 ‘내가 설득에 성공했다! 나의 전문지식과 학벌로 이 잘난 놈을 설복시켰다! 나는 이성을 지배할 수 있다!’라는 뽕맛에 한껏 취했다. 그치. 사람을 내 편으로 설복시키는 저 재미는 거의 마약 같은 즐거움이니까.
“그럼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으음?”
“뭐가 으음입니까. 세상에, 지금 사업가를 상대하시면서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을 생각이셨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내 방책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대가를 요구하겠다는 게요?”
“브뤼닝 교수님껜 동의합니다만, 브뤼닝 총리에게 공짜로 선물만 줄 순 없지요. 그건 뇌물입니다 뇌물.”
저 멀리 어딘가에서 ‘안녕! 나는 농장이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무시하자. 나는 살면서 결코 뇌물 같은 그릇된 수단을 쓴 적이 없으니 환청이 틀림없다. 아니면 조스비의 음모거나.
“···무얼 원하십니까?”
“출마하겠습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졌고.
브뤼닝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출마? 지금 로젠바움 회장, 정치에 입문하겠다는 게요?”
“그렇습니다.”
“어느 당으로 말이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당연히 중앙당-”
“파펜 씨에게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제가 노리는 건 대선입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뒤를 잇겠습니다.”
“각하께선 아직-”
“재선 출마 의사를 표명하지 않으셨지요.”
그는 잠깐 침묵하더니 고개를 귀신처럼 홱 꺾었다.
“이미 다 이야기되어 있던 거요?”
“슐라이허 장군과는 의견을 교환했지만, 아직 대통령 각하껜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총리님께서 말씀 전해주셔야겠군요.”
“나더러 이걸 말하라고?!”
“자자. 진정하시죠. 힌덴부르크 각하께서 몇 년을 더 사시겠습니까? 연세를 생각하신다면 이제 그분을 위해서라도 그분을 농장으로 돌려보내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나치당과 공산당이 저토록 세를 끌어모으는 지금, 국민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가져다줄 후보가 있습니까?”
– 오, 에고 가득하군.
하지만 나. 그동안 이미지 관리 완벽하게 해왔단 말이지.
브뤼닝은 의회를 사지마비 환자로 만들고 대통령 권능으로 총리가 되었다.
다음 대선에서 대통령이 바뀌면 브뤼닝도 나가리.
“그, 그럼.”
“제가 당선된다 해도 총리는 바꾸지 않겠습니다. 중앙당과도 협조하지요.”
“···생각해 보리다.”
생각은 무슨. 브뤼닝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힌덴부르크도 내가 출마하겠단 의사가 있다는 걸 듣는 순간 재선 같은 꿈은 냅다 포기하고 집에 돌아갈 게 뻔하다.
– 그 영감은 이제 살아서 얼마나 더 권력을 잡느냐도 좋지만, 역사에 어떻게 남느냐를 더 신경 쓸 나이긴 하지.
그렇지.
내가 힌각하를 알게 된 지도 수십 년인데, 그는 절대 자기 인생의 커리어에 <낙선>이라는 글자를 박아 넣기 싫다. 여든 살을 넘겼는데 낙선이라니, 누가 봐도 노욕에 미친 늙은이잖은가.
나는 은밀하게 동맹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히틀러 같은 선동가에게서 공화국을 지키려면··· 로젠바움 회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공화국을 지킬 수 있을 게요.”
“가장 매력적인 후보 아닌가? 당론으로 그를 지지해야 합니다.”
“히틀러가 대통령에 출마할지도 모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 이 나라는 끝이에요, 끝!”
“지금 같은 흉흉한 시국에 경제의 달인으로 불리는 로젠바움만큼 더 확실하게 표를 모을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무수한 이들이 나를 지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뭉쳤고.
내 예상대로.
사람들은 나치와 공산당, 극좌와 극우라는 거대한 악의 무리에 경악한 나머지 수십 년째 민심 모으기 행보를 다졌던 아르민 로젠바움의 출마엔 다소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32년 대통령 선거의 서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