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8)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8화(8/246)
이카로스 (1)
이 시기 마이바흐는 ‘설계의 왕’이라는 평가를 무려 프랑스, 그 달팽이를 파먹고 개구리 뒷다리 잘라먹는 괴인들의 나라에서 받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명성을 구가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프랑스야말로 가장 개같은··· 아니지, 러시아야말로, 아니지, 영국인들이야말로······ 독일이 왜 망했는지 이런 식으로 깨닫긴 싫은데. 온 사방에 웬수만 가득하다니.
아무튼 체펠린 백작이 이만한 거물을 부를 수 있었다니. 세상에. 백작 작위는 역시 폼이 아니었다. 암만 가진 돈 죄다 꿈에 꼬라박은 탓에 비행선 조립할 부지가 없어서 동네 호수에 띄워놓고 만드는 할배라지만, 역시 인맥만큼은 짱짱한 게 틀림없다.
“젊어 보이는 친구인데 사업 수완이 제법 괜찮군.”
“하. 하하하.”
내가? 사업 수완이? 왜죠?
“백작님은 번 돈을 열심히 그놈의 비행선에 부어버리는 버릇만 빼면 신뢰할 만한 사람이지. 백미러 특허 관련 교섭은 원활히 진행될 걸세.”
“아직 스물도 채 되지 않은 제가 백작님을 믿지 못하면 누굴 믿겠습니까.”
“그것도 복이지. 인복이야말로 가장 큰 복이고말고.”
나는 영문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일단 그의 맞장구를 쳐주었고, 다행스럽게도 마이바흐는 내 대답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특허요? 백미러에? 그거 그냥··· 당연한 거 아닌가?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 거리를 굴러다니는 자동차엔 백미러를 달기 어렵다. 그야, 지붕이 없거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자. 똑바로 일해라, 조범석. 어째서 날로 먹을 수 있는 기술을 내놓지 않은 거지?
나는 다시 한번 내 날틀 1호를 보여주며 그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짚어나갔다.
“양 측면을 볼 수 있는 거울. 그리고 후방을 볼 수 있는 거울. 이 세 개의 거울에 더불어 여기 네 번째 거울까지. 정면을 주시하면서도 언제든 원할 때 고개를 돌리지 않고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설치했습니다.”
“두 개의 프로펠러, 꼬리날개, 엔진을 보는 용도로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탑승한 상태에서 거울을 조작할 수 있는 게 또 중요합니다. 자동차에도 이 기능이 탑재되면 무척 편해지겠지요.”
“흐음.”
자동차가 처음 개발된 시기엔 이런 백미러, 사이드 미러라는 개념이 필요가 없었다.
도로는 텅텅 비어 있었고 차는 느려터졌으니, 부딪히더라도 딱히 ‘사고’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날로 도로를 메운 차량은 늘어만 갔고, 차량은 계속해서 속도를 올려 갔다. 바로 그 힘을 불어넣어주는 엔진 개발의 최선두에 있는 사람이 내 눈앞의 마이바흐 씨 아닌가.
지붕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 문제.
이제 엔진의 힘이 강화되고 있으니 지붕이 있어도 좋겠지만, 그러면 시야 확보가 어려워진다. 그렇다. 백미러의 시대가 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멍청한 군바리 조범석이식 마인드에서는 ‘이게 돈이 되겠냐’라는 잡념이 사라지질 않고 있었다. 무지몽매한 놈 같으니.
백미러나 사이드미러가 뭔가 탁월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전용 거울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특허 내놓는다고 해도 우회하기만 하면 긴빠이··· 어? 쉽네? 조 장군님, 당신은 이 더러운 자본주의 사회를 충분히 이해하고 계셨군요. 역시 먹은 짬밥의 차이가 크긴 큰가.
내 상념이 끝나기 무섭게 마이바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여기에 온 까닭은 이 거울 때문이네. 자네에게 권리를 위임받은 체펠린 백작님께선 이 거울 시스템에 대한 권리를 넘기는 대가로 자네의 비행기 엔진 제작을 의뢰했네.”
“그게 그렇게 되었군요.”
“아깝나?”
그가 매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허나 이 아르민 로젠바움. 고작 공돌이 아저씨의 떠보기 질문에 넘어갈 정도로 어수룩하진 않다.
“하하하. 아까울 리가요.”
“어째서지? 막대한 특허료가 기대되지 않나?”
“돈도, 뒷배도, 신분도 뭣도 없는 애송이 김나지움 학생이 제출한 특허를 존중해주리라고 기대하면 너무 멍청한 놈 아니겠습니까.”
“흐음.”
어차피 내 목표는 자동차왕 따위가 아니었다.
최소한 자동차왕에 도전하고 싶었으면 훨씬 일찍 태어나야 했다.
당장 이 독일만 해도 다임러, 디젤, 마이바흐, 벤츠 부부가 있고 프랑스엔 푸조와 르노, 미쉐린이 있다. 내가 낀다고 해도 앞으로 페라리, 마세라티, 시트로앵, 포르쉐, 롤스와 로이스, 벤틀리, 포드 같은 인물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올 텐데··· 감당할 수 있겠나? 이 사람들을? 내가?
항공이라는 분야가 없었다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도전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은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백작님께서는 저보다 훨씬 연륜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선 가볍고 힘 좋은 엔진이야말로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을지 없을지 유무를 가른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죠.
이미 온 세상에 엔진 제작으로 명성이 자자한 분께서 제 비행기의 심장을 제작해 주신다면 그깟 불투명한 권리 따위, 얼마든지 처분할 수 있습니다.”
“합격이네. 자네 말마따나, 당장 특허 심사를 담당하는 관리가 설계도를 팔아먹을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더라도 유사품이 나올 가능성도 있고.”
그제서야 그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탁탁 두들겨 주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어차피 체펠린 백작의 호의뿐이다.
그리고 백작의 호의는 내가 비행기에 미친 광인이라는 동족의식 때문에 주어진 것.
만약 여기서 돈이 될 것 같단 생각에 얼른 자동차 백미러 따위를 부여잡으려 한다면, 글쎄. 적어도 내 눈앞의 이 마이바흐 씨가 단숨에 지팡이로 내 뚝배기를 내려칠지도 모른다. 영감의 호의가 남아 있을지 없을지도 미지수 아닌가. 그런 어리석은 판단력으로는 외줄과도 같은 대한민국 육군 피라미드에서 별을 못 단다.
“단순히 꿈을 실현하겠다는 객기가 아니라 제법 세상을 파악하는 머리도 있군. 그럼 어디, 자네의 객기를 현실로 바꿔줄 엔진을 만들어 봐야겠어.”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 비행기에 탑승할 만한 또라··· 조종사도 수배 중이네. 조만간 보내주지.”
나는 다시 한번 굽신굽신거리며 잘 부탁드린다고 예의 바른 청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후, 그를 베를린 시내까지 바래다주었다.
이제 이 위대한 항공 개척자 아르민에게 남은 건 뭐다?
<도전, 100일의 전사>
“씨발. 오, 씨발. 주여. 그리스도여.”
대입 수험이죠.
***
1899년과 1900년을 거쳐서, 세상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스페인은 피떡이 되어 그 어떤 유럽 국가도 신대륙에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되었다.
영국인들의 여왕 빅토리아는 80세를 맞이해 참 징글징글하게도 오래 산다는 인증서를 받았다. 영국은 혐성의 나라답게 여왕의 장수를 기념해 제2차 보어 전쟁을 일으켰다.
프랑스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정부(情婦)와 정열적인 알몸레슬링을 하다가 뇌졸중으로 죽었다. 프랑스 우익은 그 대통령의 장례식 도중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쯧쯧. 쿠데타 그렇게 일으키는 거 아닌데.
반면 위대한 독일제국에서는 <아스피린>이라는 약의 상표권이 등록되었다. 이것만 봐도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 증진을 위해 공헌하는 나라가 어디인지 명명백백해지지 않은가? 심심할 때마다 입으로 똥을 싸는 카이저 빌헬름만 뺀다면 독일은 그야말로 평화의 나라였다.
그럼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느냐.
“안 돼, 안 돼!!”
“백작님.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없다고! 빌어먹을 프로이센 놈들!”
“전국의 무수한 사람들이 백작님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백작님은 결코 헛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린 하늘을 날 수 있어요!”
멘탈이 콩가루가 되어 침대에 누워버린 체펠린 백작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LZ 1.
Luftschiff Zeppelin – 다시 말해 ‘체펠린 비행선’.
1900년 7월 2일.
1만 명이 넘는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십만 마르크를 발라 만든 이 비행선이 역사적인 비행을 개시했다.
하지만 LZ 1의 역사적 비행은 악운으로 점철되었다.
부양을 시작하자마자 윈치가 부러졌고, 누수도 발생했고, 수리 작업 중엔 강풍이 몰아쳐 또 부품들이 부서졌다. 긴급 수리를 마치고 다시 비행을 했지만 이번에는 또 기름통에 물이 유입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기름에 물이 섞인 시점에서 비행은 중단되었다.
10월 20일과 24일, 두 번에 걸쳐 LZ 1은 시험 비행에 재도전했다.
하지만 20일의 비행에선 또다시 강풍이 몰아쳐 엔진이 버티지 못해 20분 만에 비행 중단.
체펠린의 비행선은 당대에 제작되었던 다른 비행선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를 자랑했지만, 독일 군부는 매정하게도 ‘이건 절대 실용적으로 못 써먹음’이란 판단을 내렸다.
백작은 사실상 파산했다.
LZ 1을 구매하겠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고, 비행선 회사 주주들은 추가 투자를 거부했다. 이제 남은 일은 LZ 1을 죄 뜯어버리고 부품과 재료를 팔아치우는 것뿐.
그런데 여기서 문제.
결국 미래에서 체펠린 백작은 독일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어 군함의 이름으로 쓰일 위인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1차 대전 당시 체펠린 비행선은 독일의 무기로 채택되어 영국을 폭격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백작은 여기서 무너지지 않는다.
백작은 결국 비행선 개발에 성공한다.
그러니 나는 그에게서 도망치는 대신, 옆에 찰싹 달라붙는 길을 선택했다. 무조건 떡상할 주식에 투자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로젠바움.”
“예, 백작님.”
“나는 이제 자네를 도와줄 만한 게 많지 않아. 왜 다른 이들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지?”
“그야 우리는 하늘을 날 테니까요.”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고, 내 손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이 미친 듯 덜덜 떨리더니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내 꿈도 같이 맡기겠네.”
“백작님.”
“성공할 거야. 자네는 아직 젊고, 유능해.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안 죽는다니까요. 털고 일어나시면 됩니다.”
왜 자꾸 죽을 자리 찾고 있어. 죽는다 죽는다 하면서 삼시세끼 따박따박 먹성 좋게 드시는 분이. 내가 아는 어떤 패배자도 독방에 처박혀도 통감자 와구와구 처먹던데, 혹시 쪽팔린 노인네들의 세계공통 입버릇인가?
나는 한참 실버케어 복지사가 된 것처럼 백작을 위로해준 후 침실 밖으로 나왔다. 아우, 혀 아파 죽겠네.
“로젠바움 씨도 이제 식사하셔야죠.”
“저는 괜찮습니다.”
“따로 챙겨놨으니 드세요. 어머니가 준비해 놓으셨어요.”
“이거 참, 정말 고맙습니다.”
“아버님 신경 써주시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요.”
솔직히 말하면 머리가 지끈거려서 밥보다는 그냥 잠이나 자고 싶었지만, 밥상 차려놨다는데 어쩌나. 가야지.
그렇게 나는 두 자매, 헬레네와 에르나 체펠린에게 붙들린 채 식사를 해야만 했다.
이 마성의 남자, 잘생긴 죄를 타고난 아르민 로젠바움이 눈치를 못 챌 순 없다. 솔직히 이만한 사윗감이 어디 있겠나? 봐라. 체펠린 부인이 챙겨준 내 고기의 살이 처음 이 집에서 밥 먹었을 때에 비하면 2.5배쯤 늘어났다. 이건 필시 어마어마한 호감이라는 뜻.
하지만 덥석 받아들일 순 없었다.
이 신분제 나라 독일제국엔 당연히 ‘귀천상혼’이라는 게 있다. 이걸 무시하더라도 아들이 없는 백작은 딸들의 결혼에 주목할 수밖에 없고, 높으신 분들일수록 결혼은 당사자 의견보다 가장의 의견이 훨씬 더 중요한 법.
정리하자면, 나는 백작이 미쳐서 ‘딸을 주겠네!’라고 외치더라도 일단 세 번쯤 사양하고 봐야 했다. 나랑 결혼하면 귀족이 아니게 된다니까? 그 뒷감당을 내가 어떻게 해. 송충이는 솔잎이나 찾아야지.
“그나저나 비행기 제작이 거의 다 끝났다고 들었어요.”
“예, 맞습니다. 백작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지요. 백작님을 위해서라도 올해에 시험 비행을 개시할 겁니다.”
“직접 탑승하시는 건 아니시죠?”
“그러면 백작님께서 후원 안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말하기 무섭게 자매가 나란히 웃는다. 거, 나는 진지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