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80)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80화(80/246)
하나의 유령 (4)
로젠바움사 회장실.
거울 옆에 선 아르민 로젠바움이 담배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가운데, 콘라드 슈미트는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농촌은 확고하게 히틀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말이 농촌이지, 순 융커들이잖나. 그럴 수도 있지.”
“나치는 강령도, 공약도, 정책도 없습니다. 그냥 그럴듯한 제복을 입힌 돌격대원들이 행진을 하면서 있어 보이는 척을 하고, 빨갱이가 나라를 다스린 탓에 경제가 망했으니 자신들을 뽑아야 한다고 떠듭니다.”
“괜찮아. 이미 우리들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
농촌의 표심은 대개 땅 많고 나이 지긋한 몇몇 마을 유지들을 따르는 법이다.
그리고 이 유지들은 융커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계층이고, 나치는 바로 이들을 포섭했다.
“저저, 도시 놈들은 그저 자기들만 독일인 줄 알지. 누가 보면 여긴 폴란드인 줄 알겠어 아주?”
“히틀러 뽑아줘야 해. 사람이 얼마나 선하게 생겼어. 히틀러처럼 애국심 있고 강단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어? 10년이 넘도록 한 놈도 우리 말을 안 듣는데.”
“와, 형! 멋져요!”
“나도 커서 돌격대가 될래요!!”
여기에 대응해 로젠바움 선거 캠프는 또 다른 농촌의 바로미터를 움직였다.
“오늘 성경 봉독은 잠언 26장 2절입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 떠도는 것과 제비 날아가는 것 같이 이르지 아니 하느니라. 민수기도 함께 봅시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은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은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여러분. 입만 열면 남을 저주하는 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편엔 말 대신 행동으로 남을 돕기 위해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매달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과연 누구를 지지해야겠습니까?”
상조를 통해 로젠바움과 끊을 수 없는 경제적 체인을 이루게 된 종교인들.
이들이 돈맛을 보고 타락한 것은 아니다.
다만 로젠바움사와 시민단체와 너무나도 긴밀해졌고, 그들이 얼마나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지 누구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데다가, 이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그 빈자리가 얼마나 거대할지도 알고 있을 뿐.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나섰다.
히틀러 또한 이 연계를 알고 있던 만큼, 로젠바움과 종교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괴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독실한 신앙인인지를 어필하는 한편 뒷구멍으론 ‘로젠바움은 신앙을 숨긴 유대교도다’라고 떠들어댔다.
그리고 곧바로 반격타.
“아돌프 히틀러는 1904년 견진성사를 받은 가톨릭교도입니다.”
“하지만 그가 성당에서 기도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돌프 히틀러, 그는 가톨릭이냐 개신교도냐! 비열하게 자신의 종교를 숨기지 말고 떳떳하게 나와서 신앙을 고백하라!!”
“히틀러는 무신론자다! 애미애비가 지옥불에 타죽든 말든 알 바 아닌 무신론자다!!”
“히틀러는 자신의 부하들과 남색을 즐기기 때문에 교회를 저주한다! 히틀러가 당선되면 동성애가 합법화된다!!”
농촌을 두고 벌어진 표심 대결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힘들었다.
로젠바움은 빨갱이였고, 농촌을 쌀독 수준으로 여기는 자본가이기까지 한다. 하물며 빨갱이 자본가라니. 민트와 초코만큼이나 혐오스럽게 여겨져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자선’에 신세진 이들, 그리고 종교인 계층의 엄호사격 덕택에 로젠바움은 제법 해볼 만한 레벨이었다.
반면 도시는.
“로젠바움!! 로젠바움!!”
“우린 아르민 로젠바움을 사랑해!!”
“그가 공황을 끝내버릴 거야!!”
“인플레를 끝장냈듯이!!”
“빵 한 덩어리에 10조 마르크 되는 꼴 보기 싫으면 닥치고 로젠바움 뽑읍시다!!”
베를린은 붉은 깃발로 물들었다.
카이저가 콧바람 뀌던 시절부터 그 누구보다 노동 환경 개선과 합리적 경영을 위해 매진하던 사람.
베를린이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그를 위해 한 표를 던지리?
“아르민 로젠바움은 자선과 복지의 탈을 쓴 비열한 자본가에 불과한데-”
“뭐, 이 새꺄?”
“나치다! 나치 새끼다!!”
“아니야! 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따라 반동분자의 위선을 규탄할 뿐이라고!”
“개같은 새끼. 위선 대신 위액을 내뿜게 해주마. 아가리 꽉 다물어라.”
베를린의 나치 지지자들 중 실업자, 청년 계층은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뒤지게 처맞고 하수구나 뒷골목에 처박히거나 혹은 무료 발치 시술을 집도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대계.
“히틀러는 입만 열면 절멸, 멸종, 말살을 부르짖는다.”
“저 새낀 진짜 저지를 놈이다. 히틀러가 당선되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자본가들 중 일부는 나치를 지지했다. 로젠바움이 집권하면 로젠바움사 특유의 <빨갱이 경영기법>을 법으로 강제 도입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계 자본가들은 그야말로 목숨 걸고 로젠바움을 위해 총력전에 나섰고, 도시 민심은 ‘이미 검증된 로젠바움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굳이 모험을 해야 할까?’로 쏠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제반상황을 보고한 슈미트는 서류를 덮고 다시 자세를 바로했다.
“-이제 남은 것은 각 당에서 출마할지 여부, 그리고 힌덴부르크와 군부의 의중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잠깐.”
가만히 듣고 있던 아르민은 손을 슥 들어 올렸다.
“자네.”
“예, 회장님.”
“집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지?”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니. 중요해. 슈미트 부인과 아이들의 원망을 샀다간 내 마음이 불편해지거든. 자네, 하도 집에 들어가지 않아서 파리가 꼬일 지경이야. 귀가해서 씻고, 푹 쉬고, 내일 출근하게.”
“하지만-”
“냄새나니까 가라고, 좀.”
아르민은 그대로 의자를 돌려 거울로 시선을 옮겼고, 타협의 여지가 없는 저 태도에 슈미트는 90도로 허리를 숙인 뒤 묵묵히 퇴근길에 올랐다.
집.
몇 주 만에 돌아왔는지 모를 집.
“어머. 들어왔어요?”
“응.”
“세상에. 까마귀가 형님 하겠네. 빨리 옷 벗고 욕실부터 들어가요.”
“제길. 까마귀라고 하지 마. 나치 놈들 같으니까.”
“이 사람이 정말.”
“아! 삼촌!!”
“아빠!”
여동생이 남기고 간 유일한 피붙이, 프란츠가 그의 딸 잉게를 꼭 붙든 채 방에서 나왔다. 암만 봐도 동생을 챙긴다기보단 장난감을 들고 휘적거리는 모양새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씩씩하니 보긴 좋았다. 붙잡힌 잉게도 꺄르르 웃고 있고.
“삼촌! 있지!! 오늘 학교에서 자기도 커서 나치당 돌격대가 되겠다던 놈들 싸다구를 갈겼어!”
“···그래?”
“울고불고 난리더라고. 걔들 이제 왕따야. 선생님도 그런 나쁜 말 하면 안 된다고 혼냈어··· 요.”
뭐라고 해야 하나.
콘라드 슈미트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친구를 때리는 건 나쁜 일이야?
폭력을 함부로 휘두르면 안 돼?
당연한 말이지만.
이 미친 나라에서 미친 정치가 개입된 순간 그 ‘당연’이라는 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북받치는 무언가를 콱 내리누르며 아이들을 그대로 꽈악 껴안았다.
“윽!!”
“아빠 구정물 냄새 나아.”
“많이 먹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공부해서··· 얼른 훌륭한 어른이 되렴. 둘 다. 알았지?”
프란츠 바이젠바움.
동생 부부가 두고 떠난 마지막 흔적.
저 미치광이 칫솔수염이 승리한다면, 이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진 불 보듯 훤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 탐독하고 또 공부했다. 그 유치찬란하고 소아 수준의 정신세계를 가진 수염쟁이가 이 나라의 권좌에 오른다면··· 하고도 남는다.
그놈은 말 그대로 유대인을 ‘지워’버리리라.
‘그러니 복수를 이어받을 놈들을 전부 죽여버려야 하네.’
그렇다.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1919년.
아르민 로젠바움은 그의 가족을 지켜주는 대신 다른 무언가를 빼앗아갔다.
그 거래는 대단히 합리적이었고, 슈미트는 후회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것이 양심이던가, 죄책감이던가. 어쩌면 자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아무튼 이젠 없단 사실이다.
히틀러는 언제나 전쟁을 외쳤고, 전쟁의 끝엔 절멸만이 있으리라 단언했다.
그러니.
나치는 절멸해야만 한다.
단 한 놈도 살려 둬선 안 된다.
너희가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다.
죽여야만 끝나는 나라로.
슈미트는 더욱 힘껏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
독일 정치가 혼란에 빠지면서, 온건 중도 세력은 사실상 대부분이 쇠퇴하고 말았다.
독일공산당.
사회민주당.
가톨릭중앙당.
독일민족당.
그리고 나치당.
살아남아 정치적 무게감을 가진 정당은 이제 이 정도뿐.
그중 수구적 우익인 민족당은 히틀러와 나치에게 흡성대법을 당해 가면 갈수록 지지 기반도 당원도 모조리 실시간으로 쭈아아압 빨려나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은 건 사실상 넷.
우익이 나치로 대동단결하려는 반면 좌익엔 영원한 트롤러 공산당이 있다.
따라서 나는 저 ‘우익 대연합’을 분쇄하면서 동시에 좌익 지지자들을 모조리 다 빨아먹을 참신한 아이디어를 준비해야 했다.
“군부는 뭐라든가?”
“리히트호펜 장군과 만나고 와 메모를 전달받았습니다. 슐라이허는 자신을 국방부 장관에 앉히고, 파펜을 내무부 장관에 임명해준다면 책임지고 군부를 설득하겠답니다.”
–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이거 매관매직이랑 다를 게 뭔가?
저런. 아직 범석이는 ‘엽관감수성’이 부족하구나.
힘 있고 세력 가진 놈의 지지를 얻는 대가로 감투를 던져준다. 이건 <상식>이라고?
– 그래. 그럴 순 있다 치자··· 근데 저 새낀 군인이잖아!! 군부가 왜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감투를 받냐고!! 이게 나라냐!!
괴링은 떨떠름하게 메모를 넘기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슐라이허 장군과 별개로, 그 밑의 장군들은 조금 생각이 다른 듯하답니다.”
“누구?”
“블롬베르크(Werner Eduard Fritz von Blomberg)가 슐라이허의 가장 큰 적입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히틀러를 만나 충성을 맹세했단 소문이 파다합니다.”
나라 꼬라지 봐라. 조만간 군웅할거도 하겠어.
– 공군은 통째로 네 사병집단이나 매한가지잖아.
공군? 무슨 소리죠? 독일군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공군의 육성이 금지되어 있습니다만? ‘제복 코스프레 항공 동호회’라고 불러주시겠어요?
나는 커피잔에 담긴 스푼을 신경질적으로 휘저어 범석이를 토네이도에 빠뜨린 뒤 잠깐 고민에 빠졌다.
“친애하는 파펜 씨에게 장관직을 던져주는 건 문제가 될 게 없지. 그는 우리 친구기도 하니까. 하지만 슐라이허는 조금 고민인데.”
“하지만 형님. 리히트호펜을 참모총장으로 세울 공작을 벌일 게 아니라면 슐라이허 말고 우리와 협상할 만한 장군도 딱히 없습니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겠다고 슐라이허에게 전해.”
“예?”
괴링이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왜 그리 놀라?”
“연합국이 가만 있겠습니까?”
“나중에 놈들이 물어뜯으면 ‘파기’는 오해고 ‘개정 추진’이라고 말 돌리면 돼. 이 정도도 안 하고 어떻게 선거에서 이기겠어.”
히틀러에게 선제권 따윌 줄 것 같으냐. 아젠다를 주도하는 건 나여야만 한다.
“그리고 나치 돌격대와 룀을 집중적으로 물어뜯어. 히틀러가 당선되면 독일군은 해산당하고 돌격대가 <인민군>으로 승격되리라고 루머를 풀라고.”
“알겠습니다.”
지금 베를린은 소돔과 고모라 뺨칠 만큼 성소수자나 동성애, 자유연애와 프리섹스에 개방적인 곳이다. 1930년 베를린이 21세기 이태원이나 종로보다 더하다면 믿겠나?
하지만 정작 범-좌파의 지지를 얻고 있는 나는 가정과 윤리를 외치며 동성애 반대에 조금 더 힘을 주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지만 전 국민이 ‘로젠바움은 저런 거에 반대한다’라고 알고 있는 상황.
그리고 누구보다 극우적인 히틀러는 정작 동성애 문제에 대해선 ‘군인이 싸움만 잘하면 되지 소시지를 어디다 박든 내 알 바냐?’라고 동성애를 옹호하고 있다. 돌격대 두목인 룀과 그 일당이 밤낮없이 오도기합을 외치며 뜨거운 전우애를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스카어 그 멍청이한테 전해. 빨리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께서 나를 지지한다고 표명해주지 않으면 별로 재미없어 질 거라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처먹은 값은 하라고 닦달하지요.”
그리고 다음 날.
[충격! 히틀러의 군제개혁안 유출되다!] [<테베 신성대 부활 계획> 나치당 비밀 문건 유출돼··· 남색가 1만 명으로 구성된 사단 편성 계획 밝혀져] [단독! 돌격대 수장 룀 의료기록 확보!] [‘내게 들러붙는 여자들보다 소년이 훨씬 좋다’ 충격의 연속] [끝없는 성 추문, 나치당은 현대판 소돔인가?]선거전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그랬지만, 역대급으로 추잡한 기사가 신문 1면을 가득가득 메웠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저는 다음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바입니다. 아무쪼록 다음 대통령 또한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보다 국가의 수반으로서 조국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엄격한 도덕성을 함양한 헌헌장부가 제 뒤를 이어받았으면 하는 바람이-]힌덴부르크가 공식 성명을 발표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그는 나를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