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83)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83화(83/246)
대통령 (3)
쿠르트 폰 슐라이허 장군은 나날이 말라가고 있었다.
아니, 이제 피골이 상접해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황무지로 변한 머리 위는 울룩불룩 흉하게 혈관이 솟아나 있었고,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해도 심장이 퉁퉁퉁퉁 엇박자를 내지르며 두려움을 호소해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시피 했다.
한때 그가 엄청난 타격을 주고 좌천시켜버린 블롬베르크(Werner von Blomberg)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렸다.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군 내부의 친나치 파벌을 형성한 것이다.
블롬베르크, 라이헤나우, 프리치 등의 파벌은 히틀러만이 독일 민족의 미래를 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를 <유대인의 음모>라고 규정했고, 히틀러가 떠드는 것처럼 독일군 내에서 유대인 혈통을 물려받은 이들이나 혹은 유대인과 결혼한 자들을 모조리 쫓아내야 다음 전쟁을 해볼 만하다고 믿고 있었다. 맛이 가도 단단히 가버린 게 틀림없었다.
물론 이들이 군의 전체는 아니다.
하지만 초급 간부일수록 <다 쳐죽이고 전쟁 일으켜서 정복하자>라는 나치 캐치프레이즈에 매력을 느끼는 증세가 더 심한 편이었고, 윗대가리는 윗대가리들대로 ‘베르사유 조약이 징병제를 금지했으니 나치 돌격대를 예비군 대용으로 온존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게 군의 꼬라지였다.
“네가 정치인들이랑 붙어먹으니까 그렇지.”
사적으로는 친분이 있지만 정치적으론 거리가 먼 하머슈타인(Kurt von Hammerstein-Equord) 육군 참모총장은 그런 그를 병신 바라보듯 했다.
“나는 정치가들로부터 군을 지키려고 했을 뿐이야. 군이 이 지랄이 난 건 순전히-”
“네놈 탓이고말고. 네가 상관을 푹푹 찔러대고 출세를 해대니까 아랫놈들이 보고 배운 거잖아! 다들 제2의 슐라이허가 되고 싶어서 정치인들 뒷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니는 이 판국을 네가 만든 게 아니면 누가 만든 거야!”
하머슈타인은 한가롭게 신세 한탄이나 들어주려고 슐라이허를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나치를 토벌할 명분은 갖춰졌네. 저들을 싹 쓸어버려야지. 공산당은 이번 기회에 덤으로 날려버리고.”
“그러니까 그러면 안 된대도!”
“대체 왜?”
“나치 돌격대는 인적자원이자 예비대로서의 효용성이 있네.”
“그건 로젠바움사의 <형제단>이 훨씬 규모가 크니 문제가 없지.”
“그리고··· 그들은, 어쨌거나 나라를 위하고 있네. 대통령이 임의로 다른 당파를 탄압하는 선례를 만들 순 없어.”
“혹시 오는 길에 약 먹었나? 개소리를 너무 유창하게 하니까 이상한데.”
그는 인상을 확 찡그렸다. 언제부터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인간이었다고 저런 식으로 입을 털어댄단 말인가?
“···그래. 나는 내전을 막고 싶네. 워게임 결과 봤지? 돌격대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어마어마한 피해를 각오해야 하네. 전 국토가 다시 한번 전쟁의 불길로 불타오를-”
“자네가 손쓴 거 아닌가.”
“아냐. 맹세하지. 하나님께 맹세코, 절대 아냐!”
그는 태연스럽게 유황불 지옥을 자신의 사후세계로 예약했다.
당연히 손을 썼다. 나치 지지자들에게 워게임을 돌리라고 했으니 당연히 결과가 그따위로 나오지.
“하지만 거기엔 공산당의 봉기 가능성은 적혀 있지 않아. 공산당과 나치가 손을 잡고 봉기한다면 이 나라는 확실히 끝장이지.”
“···으음.”
슐라이허가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현상유지.
공화국이 심심하면 국내 불온 세력으로부터 물리적으로 위협받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군부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바로 이 현상이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
국가 방위를 미덕이자 의무로 삼는 군인으로서는 실격을 넘어 총살감인 발상이었지만, 슐라이허와 군부가 권력의 단꿀을 빨고 싶으면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하머슈타인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 더더욱 지금 즈려밟아야 해. 동쪽엔 존재 자체가 죄악인 폴란드가 있고, 서쪽엔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가만 두지 못해 안달인 프랑스가 있어. 이제 이 혼란을 끝내야만 하네. 자네 권력욕을 위해 이 나라를 볼모로 잡을 순 없어!”
“자꾸 그렇게 내 개인의 문제로 은근슬쩍 선 긋지 말게. 나는 어디까지나 군의 자립을 위해 행동했을 뿐이야!”
“지랄하고 자빠졌군.”
하머슈타인이 딱히 고결하거나 공화국 수호의 대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군부는 전쟁을 준비하고 싶어 했다.
지난 패배를 복수하고, 설욕하고, 정복하고, 유린하고 싶어 했다.
나라 살림 좀 편다 싶으면 카드로 만든 집마냥 정권이든 경제든 와르르 무너지는 이 병신 같은 환경에선, 전쟁 준비가 문제가 아니라 이웃나라에 침략당해 그대로 망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마침, 이 혼란을 종식시킬 만한 지도자가 둘이나 나타났다.
아돌프 히틀러.
아르민 로젠바움.
“대통령의 의중을 듣는 대로 난 결정하겠네. 이제 이 나라도 행동해야 해. 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하머슈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옛 친구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자네도 처신 잘 생각하게. 군을 위해 무엇이 가장 옳은 방향일지 고민해 보라고.”
“···이미 그러고 있네.”
그는 대답하지 않은 채 슐라이허의 집에서 나갔다.
슐라이허는 입 안에서 피 맛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군에 대한 통제력이 증발하고 있었다.
사막의 모래알처럼, 아무리 움켜쥐려 용을 써도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모든 것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 사이에 뭘 그런 딱딱한 말을 합니까. 한 번 공군은 영원한 공군 어디 갔습니까?”
“역시 그렇지요? 흐하하하!!”
“와하하하!!”
이곳은 붉은 남작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의 저택.
명분상으로는 어디까지나 개인들의 소박한 파티가 열린 이곳. 주최자가 주최자다 보니 끝없는 별들의 바다가 되어 있었다.
한 손에 와인잔을 든 채 입으로 온갖 낯뜨거운 아첨을 주워섬기던 리히트호펜은 슬그머니 내 뒷전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귀엣말을 했다.
“육군항공대는 공화국 수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생각해 보니 둘 다 거짓말이군요. 절대 육군항공대가 아닌 일부 부대는 대통령 각하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 육군항공대라니. 그런 조약에 의거해 금지된 조직이 설마 군 내에 있을 리가 있나.
“대통령 각하.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오, 선배님 아니십니까.”
“아니, 선배라니요. 말씀을 너무-”
“하하. 어렸을 적에 제가 너무 괴롭혔지요? 이제 그만 화 풀어주십쇼.”
나와 같은 김나지움에 다녔었던 발터 폰 브라우히치(Walter von Brauchitsch) 장군은 내 너스레를 듣자 사색이 되어선 땀을 비 오듯 줄줄 흘려댔다.
“제 평생의 영광과도 같은 기억입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그토록 관심을 제게 할애해 주셨는데!”
“하하. 앞으로 군의 역할이 커질 겁니다. 선배님도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어우, 칼각 경례 올리는 것 좀 봐. 간신이야, 간신.
– 그래도 생각보다 군에 이리저리 연줄이 많아서 다행이군.
조스비의 말에 나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리히트호펜을 비롯한 항공 계열은 물론,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 혼맥과 학연, 지연. 거기에 비즈니스 파트너들까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생각보다 군에 영향력을 투사할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이 사람들은 조금 예외.
“사석에서 뵈니 훨씬 신수가 훤하시군요.”
“아, 예.”
“대통령 각하를 뵙습니다.”
떨떠름하게 인사를 하는 두 사람.
하나는 하머슈타인 총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룬트슈테트(Karl Rudolf Gerd von Rundstedt) 장군이다.
– 룬트슈테트는 역사에도 이름을 남긴 장군이니까, 어떻게 좀 포섭을 하면 좋겠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저 인간이 베를린을 포함한 제3군관구 사령관이라고.
한마디로 말해 수도방위사령관이다. 무조건 끌어들이거나, 못 끌어들이면 그냥 깔끔하게 길바닥 시체로 만들어야 한다. 해임하고 새로 채워넣을 시간 따위 있을 쏘냐.
“대통령 각하께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셨건만, 또 정치인들이 훼방을 놓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나치당 말씀이십니까?”
“나치당과 공산당 둘 다 이야기입니다. 지금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두고두고 이 나라의 등판을 노릴 게 틀림없잖습니까.”
하머슈타인의 강경한 언사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지 못했다. 룬트슈테트가 딱히 동조하는 기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는 나치가 반역자라는 증거도 제출했고, 대통령으로서 제 권한 범위를 벗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군에서도 움직여주시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수술이 시작되면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습니다.”
마침내 룬트슈테트가 입을 열었지만, 내 상정 범위 내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확률은 매우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가의 안위가 달린 문제를 확률로 따지십니까?”
“그럼 확률 외의 무엇을 봅니까. 지금까지 이 나라는 오직 굴복에 굴복을 거듭했을 뿐입니다. 이 나라를 좀먹는 뿌리 깊은 병폐를 도려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희생이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제가 당선된 이유입니다.”
나는 말을 잠시 멈추고는 술을 쭉 들이켰다. 알싸한 알코올이 내 뇌를 어루만졌다.
“하지만 이런 말로는 장군의 불안감을 달래지 못할 듯하니 조금 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보지요. 먼저, 돌격대원들의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차피 돌격대원 중 상당수는 그냥··· 버러지들이다. 정치깡패 조직에 뭘 바라겠나?
내가 나치를 짓밟겠다고 선언하자 남은 인원들의 광신성은 더해졌을지 몰라도 규모 자체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형제단>이 토벌 작전에 참여할 겁니다. 국기단도 아마 끼어들 것 같고, 철모단은 논의를 좀 더 해봐야겠군요.”
“흐음···.”
“이번 기회에 이 나라에서 군을 제외한 모든 사설 무장 조직은 짓밟아버릴 작정입니다.”
나는 ‘군을 제외한’이란 단어에 미묘하게 악센트를 주어 말했고, 장군들은 찰떡같이 내 시그널을 알아먹었다.
“드디어 평화가 좀 찾아오겠군요.”
“그러니 여러분들의 도움이 더더욱 필요합니다. 이제 선거철마다 깡패가 판치는 이 미친 나라를 뜯어고쳐야만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형제단은 예외다. 형제단은 정치깡패 조직이 아니라 건전한 시민단체니까. 음음.
“국가를 안정시킨 뒤엔, 무얼 할 계획이십니까?”
룬트슈테트가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내게 물어봤다. 내가 틀림없이 베르사유 조약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군인들에게 말했을 텐데.
“그야 당연히 조국의 영광을 드높여야지요.”
“지금 경제 사정이 엉망인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저 로젠바움입니다. 독일은 금방 경제가 회복될 것이고, 다른 국가들은 우리를 부러워하게 되겠지요.”
– 군사력을 증강하겠다.
– 국고에 빵꾸 났는데 잘도 되겠다.
– 경제 회복? 딱 기다려라.
믿어라 좀. 내가 경제 살린다니까? 경제 그까짓 거, 내가 살아라 하고 명령만 내리면···.
– 미쳐버렸군. 벌써 독재자 망상증이 온 거냐?
아직 독재는 시작도 안 했는데 억울하게시리.
나는 불신을 숨기지 못하고 떨떠름해하는 장군들을 다시 돌아보았다.
“이렇게 합시다. 곧 있으면 선거입니다. 독일민족혁명당이 이번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다면 이는 국민들의 지엄한 명령이니 즉시 군에서도 협조를 해주셔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도를 고민해 봐야겠지요.”
그들은 그제서야 만족하는 듯했다. <대승>의 기준을 딱 정하지 않았으니, 얼마든지 잡아떼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 군부도 상태가 말이 아니군.
그렇다.
만약 내가 군부의 수장이었다면, 괜히 형제단 같은 사설 조직은 나대지 말라고 하고 즉시 군대를 출동시켜서 나치와 공산당의 뚝배기를 모조리 깼을 거다. 그래야 군의 가치가 돋보이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간을 본다?
그것도 군 내에 친나치 파벌이 드글드글한데?
이번 기회에 전부 그놈들도 싹 다 조져버린다면-
– 어쩌면 반대일지도 몰라.
응?
– 한솥밥 먹은 군인들끼리 찌르고 찔리느니, 차라리 외부에서 찔러줬으면 하는 거지.
평생 군인으로만 살았던 사람의 말은 충분히 고민해 볼 가치가 있었다.
저놈들이 친나치 파벌의 숙청을 내게 짬때린다? 전지적 군인 시점에서 본다면 그것도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
“와아아아아아!!!”
“로젠바움!! 로젠바움!! 로젠바움!!”
“민족혁명당 만세!!”
“평화 만세!! 폭력 반대!!”
내가 당선된 지 약 한 달째.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치른 총선이 끝났다.
“이, 이게,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부정선거. 부정선거가.”
“정신 차리시오! 이게 민의요! 받아들여야만 해요!”
독일민족혁명당.
득표율 58%.
단독 과반.
그리고 그날 밤.
베를린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선거는 조작이다!!”
“공산주의자들이 투표함을 바꿔쳤다!!”
“유대인들이 매수했다! 감시인을 매수해 선거를 더럽혔다!!”
독일 내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