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86)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86화(86/246)
잿더미 속에서 (3)
조범석 씨로 말할 것 같으면 수십 년간 내 근처 커피잔이나 유리창에 붙어 성불 못 한 유령이 심심할 때 무엇을 하는지를 꼬박꼬박 선보이다 보니 도무지 위엄이 느껴지질 않는다.
– 국방부 장관감이 마땅치 않다고?
하지만 누가 쿠데타 수괴 아니랄까 봐, 존재감이 흐릿해지다가도 가끔 21세기의 광기가 무엇인지 보여줄 때가 있었다.
– 힌덴부르크.
지금처럼.
– 광기라니. 전직 대통령을 특사로 임명하는 케이스는 꽤 많다고. 미래의 어떤 대통령은 독재자 슬레이어라고도 불리는데, 가만. 그럼 너도 그 땅콩맨을 만나면 죽는 건가?
물론 이 공화국의 국방부 장관이라는 자리는 바지사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입만 열면 독립 독립을 외치는 군바리들은 장관이 뭐라 떠들어도 어디서 개가 짖나, 하고 무시해버리니까.
그래도 그렇지, 국방부 장관이 특사에 비교될 만큼 핫바지 자리까지는 또 아니거든요?
– 푸하핫. 저게 군대냐?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독일군이라는 놈들은 사실 다른 나라라고 봐도 딱히 차이가 없는데? 독일국에서 독일군으로 보내는 특사 역할을 힌덴부르크한테 맡기는 거지.
힌덴부르크 본인이 선선히 응했다면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범석이는 상대방을 고려치 않은 계략을 꾸몄으니 성공할 가능성이 없었다.
하지만 모름지기 청출어람이라 하였느니.
나는 조스비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좀 더 독일의 현실에 맞으며 실현 가능성도 있는 계획으로 진화시켰다.
그 결과물이 바로 젝트의 입각(入閣).
내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패였다.
– 젝트 담근 거 너잖아? 양심이란 게 이제 다 닳아서 사라진 거냐?
아니지. 젝트가 나가리난 건 절반은 본인 실수고 절반은 슐라이허 탓이다.
1926년.
젝트는 전직 카이저 팔병신의 손자를 불러와 군대 훈련을 구경시켜 줬다. 슐라이허는 이걸 정치인들에게 꼰질러 스캔들을 터뜨렸고, 힌덴부르크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이용해 젝트를 끌어내렸다.
내가 한 일은 슐라이허 귀에 대고 ‘지금 아니면 젝트는 천년만년 군의 수장으로 지낼걸?’이라고 속삭인 것뿐이라고. 이런 내가 젝트를 담갔다고 하면 그건 좀 과장이 심하지.
그래서 군복을 벗고 쫓겨난 젝트는 지금 뭘 하고 있었느냐?
“대통령 각하를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젝트 장군께서 우리 당에 입당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우린 이미 공군 재건을 위해 호흡을 맞췄던 사이 아닙니까? 당연히 제가 믿고 의지해야지요.”
놀랍게도 젝트는 얼마 전까지 민족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그리고 내가 대선에서 승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족당을 탈당해 독일민족혁명당에 입당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까.
총선과 뒤이은 내전이 벌어지기 전, 나는 곧장 그를 불렀다.
“마그데부르크 공천을 희망하십니까?”
“이번에 의회가 해산되기 전까지 제가 지역구민들을 위해 봉사했었습니다. 2년간 충실히 의정 활동을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이 늙은이가 조금 더 힘을 쓸 여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 권력이란 게 무섭긴 무섭군. 그 젝트가 저렇게 비굴해지다니.
군의 정점에 서서 대통령도 총리도 윽박지르던 인간이 이렇게 기브 미 쪼꼴릿 하면서 달려드네. 정말 무섭다 무서워. 환갑이 지난 노인네조차 저렇게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중독자처럼 바들바들하게 만들다니.
“죄송하지만 장군님을 공천해드리는 건 그다지 적절해 보이는 인선은 아닙니다.”
“어째서입니까. 설마 과거의 해묵은 일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까? 저는 제 발로 민족혁명당에 입당함으로써 공화국과 당에 대한 충심을 드러냈다고-”
“아,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공군을 사병화하려고 수작 부린다 믿고 고깝게 여기던 젝트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고, 이토록 충심을 입증하려는 늙은이만 남다니.
권력.
짜릿하다.
이 맛이다.
뇌가 녹아내릴 것 같은 바로 이 맛.
“장군님의 오랜 연륜과 경험, 탁월한 능력은 지역구민보단 이 나라 전체를 위해 쓰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 말씀은?”
“국방부 장관으로 내각에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순간, 젝트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내각이라··· 한평생 제가 추구했던 군의 독립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란 말씀이십니까?”
“군의 독립성은 어디까지나 공화국의 끔찍한 정치적 혼란으로부터 군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함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여기서 ‘아닌데요. 제가 군대 꽉 잡고 권력자 노릇 하고 싶어서 그랬는데요.’라고 말한다면 젝트의 광기를 히틀러 레벨로 상향해 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내겐 다행히도 젝트는 쫓겨나서 흑화했을지언정 아직 미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장군.”
“예.”
“이제 독일이 기지개를 켜야 합니다. 우리의 군대, 우리의 힘을 선보여야만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부의 적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자신들이 군인인 줄 착각하는 깡패들, 자신들이 정치인인 줄 착각하는 군인. 정당한 독일의 몫을 되찾으려면 이들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강렬한 유혹.
군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내 손을 뿌리칠 것이냐.
혹은 자신의 사사로운 복수와 권력을 위해 군의 독립을 포기할 것이냐.
“모든 것은 강한 독일을 위해서였습니다. 시대가 바뀌면 당연히 군도 바뀌어야지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젝트는 후자를 골랐다.
참으로 빠른 변절이었다.
***
요 몇 달 사이.
대선 유세, 당선 선언, 취임사, 총선 승리···.
그리고 폭발.
저 멀리 불타 폐허가 된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한 채 궐기대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독일 국민 여러분. 공화국이 불타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이 나라를 좀먹으며 우리의 삶을 진흙탕에 처박기 위해 애쓰던 자들이 마침내 반역의 기치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반역자들을 죽여라!!”
“빨갱이를 처단하자!!”
“나치는 사회악이다!!!”
살의를 머금은 탄성이 괴벨스의 말끝마다 메아리처럼 따라붙었다.
<베를린 전투> 결과, 공산당은 베를린에서 완벽하게 몰락했다.
수백, 수천 명에 달하는 공산당원과 공산당 지령을 따르는 노조원이 체포되거나 사살당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을 적극적으로 따르던 평범한 시민들의 지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독일인들은 법을 중시한다.
‘아무리 그래도 법은 지켰어야지’가 통용되는 민족.
피가 강처럼 흐른 이상, 공산당이고 나치당이고 이 베를린에서 다시 기세를 올릴 일은 없다 봐도 무방하리.
“베를린은 이제 안전합니다. 하지만 공화국은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노예가 되고, 폭력에 굴복해 자신들을 섬기길 원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원합니까!!”
“아니다!! 아니다!!”
“여러분은 대낮부터 깡패가 판을 치고, 밤에는 복면 쓴 놈들이 한 집안의 가장을 심심하면 살해하는 나라를 원하십니까!”
“아니다!! 아니다!!”
공화국의 수호자 괴 박사가 선창하고 대중들이 뒤를 잇는다.
– 내 정신이 다 아득해지는데. 이게··· 맞나?
뭐 어때.
원 역사의 운명을 바꾸고자 했던 게 내 평생의 과업 아니었나.
–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생각이 들지만. 그래. 최소한 유대인을 다 몰살하잔 소린 아니니 다행이구만.
내 감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괴벨스는 마이크를 다 씹어먹을 듯한 기세로 연신 대중들을 향해 격렬한 감정을 분출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뭉쳐야 합니다!
기나긴 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오직 하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서로 화합하고 보듬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이들을 향해 분노하십시오! 우리가 비참하길 바라는 이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십시오!!
로젠바움 대통령과 민족혁명당은 사상과 이념을 넘어서 독일 국민의 평화를 원하는 모든 계층을 아우른 거국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만큼은 왕당파도, 프롤레타리아도, 자본가도, 자영업자도, 농부도, 군인도, 학생도 모두 단 하나, 독일인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독일! 오직 독일 하나의 기치로 뭉쳤기 때문입니다!!”
“으아아아아!!!”
“민족혁명당 만세!!”
“대통령 각하 만세!!”
위기가 모든 것을 정당화해주었다.
왕정복고를 꿈꾼다는 혐의로 밀려났던 젝트가 돌아온 것도.
어떠한 뚜렷한 당론도 없이 오직 막연한 희망만으로 집권에 성공한 것도.
좌파 사회민주당과 우파 독일민족당이 한 지붕 한 식구로 같은 당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것도.
오직 단 하나.
국민들의 평안한 삶을 지켜주기 위한 거국적 결단, 이라는 그럴듯한 대의명분 앞에선 오히려 희생이 되었고 대타협이 되었다.
그리고 요제프 괴벨스는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고 거짓을 진실로 뒤트는 기술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마침내 매국노들은 우리를 적대하고 파멸시키고자 하는 외국을 끌어들였습니다.”
주어를 명확하게 명시하진 않았기 때문에, 듣는 이들의 생각에 따라 그건 이탈리아일 수도, 소련일 수도, 혹은 프랑스나 폴란드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저들 모두 언제든 기회만 되면 독일을 향해 숟가락을 휘저어댈 나라들이었으니 딱히 억울하진 않으리라.
압도적 지지.
현재 독일 민족에게 닥친 최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희생’은 감수할 수 있다는 국가적 분위기.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준비시키게.”
숙청 시간이다.
***
슐라이허는 눈을 떴다.
그의 집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틀림없이 불을 다 끄고 잠을 청했을 텐데 자그마한 등불 하나가 켜져 있었다.
“일어났나?”
그리고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그의 침대 옆에 있었다.
이 봄날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푹 눌러쓴 남자 두 사람.
“누, 누구시오.”
“애국자들.”
슐라이허는 등골에 서늘한 칼날이 닿는 것만 기분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애국자들’이라니.
십여 년 전, 그가 젝트의 명을 받고 <흑색군>의 이름으로 불순분자들을 죽이고 다닐 때 하던 말 아닌가.
“자, 잠깐. 내가 누군지 모르겠나? 나는.”
“쿠르트 폰 슐라이허 장군이지. 왜 모르겠나.”
이들은 무미건조하게 말하고 슐라이허의 앞에 서류 뭉치 하나를 내던졌다.
“군의 이름을 팔아 무고한 이들을 해치고 다닌 죄. 군을 사유화하며 제 이익과 권력을 탐한 죄. 에른스트 룀, 아돌프 히틀러 등과 공모해 국가를 무너뜨리고 반역을 시도한 죄. 우리 게르만 비밀 법정은 만장일치로 쿠르트 폰 슐라이허에게.”
“그, 그만.”
“사형을 선고했다.”
“그만! 나, 나는 젝트가 시켜서 했다고. 그래. 젝트 장군이지? 그 시대착오적인 왕당파 늙은이가 보냈구나! 잘 들어. 흑색군은 젝트가 지시한 거야. 그러니까-”
그 어떤 래퍼보다도 빠르게 속사포처럼 말을 두다다 쏟아붓던 슐라이허는 눈앞에서 번뜩이는 권총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반역자 슐라이허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오, 오! 내 무엇이든 하지. 로젠바움 대통령과 젝트 장군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저는 조국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가 있으니-”
“자살하라.”
침묵.
등불 타닥이는 소리만이 그의 집을 가득 메웠다.
“프로이센 장군 된 이가 변절한 끝에 처단당했다는 선례를 만들 수는 없다. 쿠르트 폰 슐라이허. 순순히 죄를 참회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누, 누구 맘대로.”
“우리가 손을 쓴다면 귀하의 부인도 함께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침대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에, 엘리자베스!”
“읍! 읍읍!!”
“결정해라.”
저 구석에 꽁꽁 묶인 채 집어 던져져 있는 부인을 본 슐라이허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의 온몸에서 땀이 샤워기 꼭지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내 평생을 바친 군을 위해··· 결심했소. 총을 주시오.”
“읍읍!!”
“잘 생각했다.”
괴한 중 한 명이 권총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죽어!!”
자신의 관자놀이에 가져다댄 총을 번개보다 재빨리 눈앞을 향해 돌린 그가 연신 방아쇠를 당겼지만.
딸칵.
딸칵, 딸칵.
“아. 아, 아아으아아. 으아아.”
“훌륭하다. 너는 자신에게 주어진 최후의 기회를 버리고 자신이 반역자임을 증명했다.”
“아니, 아니. 아니. 들어주십시오. 여러분. 제가 미쳤나 봅니다. 목, 목을 매달겠습니다. 유서를 작성하지요. 그러니까.”
“끝이다.”
탕! 타타탕! 탕! 탕! 타앙!
슐라이허 부부가 맞이한 최후의 밤은 그렇게 총성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