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9)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9화(9/246)
이카로스 (2)
1900년 11월, 나는 최초의 공개 비행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그렇다.
역사에 내 이름을 박아넣을 날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원래라면 나는 1902년에 비행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점차 급박해지고 있었기에, 결국 1900년에 첫 비행에 나서야만 했다.
먼저 첫 번째.
원 역사엔 없던 귀엽고, 잘생기고, 재주 좋으며, 미래까지 창창한 놀라운 인물 아르민 로젠바움이 항공업계에 발을 디뎠다.
갑자기 무슨 개소리냐고? 좀 들어봐라.
내게는 미래 지식이 있었지만, 그 지식만 가지고 서기 1900년이라는 조건에서 최초의 비행기를 뚝딱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나는 이 시대의 각종 학문을 공부했지만, 단순한 공부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인터넷도 없는 시대인데.
당장 실제로 필요한 지식과 학문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해서 만들어내야만 했다.
나는 그래서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는 물론, 항공역학이나 비행기 개발에 흥미가 있는 공학자, 엔지니어, 자칭 연구자들과 부지런히 서신을 교환하면서 내게 필요한 지식들을 확보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알음알음 내가 갖고 있는 지식 또한 어느 정도 빠져나간다. 이 사람들도 빡대가리가 아니고 당대의 석학들이니, 아주 작은 힌트만 있더라도 옳고 그름이 판단되겠지.
요약하자면, 내가 이들 항공개발의 최선두를 달리는 이들과 의사소통을 한 것만으로 <최초의 비행기는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발명>이라는 역사가 그대로 유지되리란 보장을 못 하게 됐다. 쫄린다고.
그리고 그다음.
내 후원자인 체펠린 백작의 역작 사실상 실패.
원래 역사에선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백작에겐 내 비행기라는 또 다른 손패가 남아 있다. 그리고 백작은 후원자로서 내게 빠른 실험을 종용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 그냥 잔뜩 풀이 죽은 영감이 <호수의 얼간이 체펠린>이라고 대문짝만하게 헤드라인이 박힌 신문을 읽고 있으면 내가 피가 거꾸로 솟는다.
이 졸렬한 놈들. 몇 년만 지나면 백작을 국민영웅으로 떠받들 놈들이 지금은 저렇게 남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다니. 참으로 나뭇잎처럼 가벼운 기자 놈들 아닌가.
나를 위해.
미래를 바꾸기 위해.
그리고 약간 덤으로 저 축 처진 영감을 위해.
나는 최종적인 점검에 열을 올렸다.
– 존경하는 카이저 폐하, 소인은 폐하의 은덕에 힘입어 평온한 하루를 영위하고 있는 대학생 아르민 로젠바움이라고 합니다.
폐하와 독일 제국의 영광을 온 세상에 떨치기 위해 제가 비행기를 제작하였으니, 부디 세계 최초로 날아오를 이 기체의 이름을 <빌헬름 데어 그로세>로 명명하는 것을 허가해 주시면 일생의 영광으로···.
그리고 승부수까지 띄웠다.
나는 백작이 아니다. 가진 것 많아 사회적 위신을 신경 써야 하는 그와 달리 나 같은 젊은 평민 애송이는 허리가 얼마든지, 마치 삼전도로 나아간 인조처럼 유연해도 된다.
물론 팔병신 카이저가 저기에 답장을 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이, 실패해서 추락하면 망신이잖은가. 일단 내가 성공하고 나서 뻔뻔하게 주장해도 늦지 않다.
그렇게.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내가 체펠린 백작의 투자를 받기 위해 집안 등골을 뽑아먹었던 베를린 교외 풍동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대신 우린 백작의 본거지인 뷔르템베르크 인근, 바람 잘 부는 언덕을 골라 거점을 마련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완벽하네. 이놈은 진짜야.”
마이바흐 씨가 씩 웃으며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 자동차 업계를 통틀어서 최고 클라스를 자랑하는 마이바흐 씨가 직접 이곳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신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왔지.
어차피 엔진의 설계엔 본인이 직접 나섰으니, 그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평온해졌다. 결국 비행기의 향방은 엔진이 좌우하는 것이니.
“내일이면 세상이 바뀌겠군.”
“그러길 바라야지요.”
“흐하하! 내가 역사에 남는 순간이군!”
“‘우리’라고 해주시죠.”
내 정정에 조종사, 아우구스트 오일러(August Euler)가 대답하긴커녕 껄껄대며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내 장담하지. 테스트도 완벽했어. 이제 저 하늘 높이, 이카로스처럼 비상하면 된단 말이야!”
“그런 불길한 말 하지 마시고요.”
“뭐, 태양을 향해 조종하진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꼬맹이.”
“오일러 씨? 마지막으로 엔진 점검 좀 합시다. 뷔르템베르크 국왕 전하께서도 이 비행을 관람하러 온다고 하니 말입니다.”
“판이 커지는군요. 좋습니다. 긴장돼서 정신 나갈 것 같은 게 딱 좋아요.”
오일러 씨도 확실히 제정신인 사람은 아니었다.
낭만 넘치는 19세기의 도전 정신 충만한 인간답게, 아헨공대를 나온 그는 유럽 전역을 돌며 각종 기술을 공부하다 자동차에 꽂혔다.
재봉틀 공장, 타이어 공장, 자동차 레이서 등의 파란만장한 이직을 거쳤던 오일러.
그는 ‘목숨 걸고 날틀에 탈 운동신경 좋은 또라이. 단, 공학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야 함’이라는 희한한 조건으로 사람을 찾고 있던 마이바흐 씨의 눈에 들어 우리 패거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는 조촐하게 남부식 돼지 족발에 맥주를 함께하며 최후의 식사를 마쳤고.
1만 명의 군중 앞에서 비행에 나섰다.
***
“주전부리 팝니다 주전부리~”
“맥주 한잔하시구려, 시원한 맥주!”
“자자! 이리로 오시오! 사람들이 더 들어올 예정이니 들어오시오!”
“물럿거라!! 국왕 전하 행차시다!! 썩 물러서!!”
혼돈의 카오스.
대량해고에서 살아남은 체펠린 비행선 회사 직원들은 이제 익숙해진 대규모 인파 관리를 척척 해내며 구경꾼들을 유도했다.
미래 지식을 얻고 미쳐버린 한 젊은이가 개입하면서, 역사적인 비행을 구경하기 위해 온 이들은 관람석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끔찍한 시련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람?”
“자자! 배가 많이 고플 텐데 먹을 것 좀 사가시오!”
“구운 감자! 버터 바른 감자!!”
“저 위에 올라가면 내려가기 힘들지. 맥주 좀 챙겨 가시구려!”
K-축제라고 하면 으레 깔리는 전형적인 포장마차들.
이 시대라고 해서 그런 게 없겠냐마는, 애초에 구경하기 위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양옆으로 이 먹거리 노점상들을 쫙 깔아놓고 미칠 듯이 냄새를 풍겨대겠다는 발상에는 약간의 창의력 점수 가점을 줄 만했다.
“하나 주시오.”
“감사합니다! 여기 거스름 받아 가세요!”
구경은 무료지만, 이들의 지갑은 분홍색 진공청소 괴물을 만난 것처럼 순식간에 홀쭉해졌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수금 장면을 지켜보던 미치광이 미래인은 광소했고, 늙은 백작은 눈만 연신 끔뻑였다.
“이래도, 되나?”
“백작님. 왜 그러십니까.”
“저래서야 꼭 음식을 사야만 할 것 같잖은가.”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래서 준비해 놓았으니까요.”
그는 포장마차에 대문짝만하게 붙은 <수익의 일부는 독일제국의 도전과 열정을 후원하는 데 쓰입니다>라는 문구를 가리켰다. 모든 노점상들은 이 문구를 부착해 놓고 있었고, 냄새에 유혹받던 이들은 고민 끝에 기꺼이 이 ‘도전과 열정’을 후원하기로 결심하고 지갑을 열었다.
“저들은 음식을 사먹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열정! 독일의 정신! 마스에서 메멜까지 넘쳐나는 이 열의에 감동해서 기부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구만.”
아르민은 더 설명을 하는 대신 백작에게 통감자가 담긴 바구니를 내밀었다. 그가 입에 감자를 털어넣으며 수염에 설탕이 묻었지만 아르민은 이를 외면했다. 그야··· 재밌으니까.
아르민은 힐끗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체펠린가 자매가 체펠린 부인을 사이에 둔 채 연신 재잘거리며 감자칩을 먹고 있었다.
“로젠바움.”
“예, 백작님.”
“둘 중에 누가 더 낫나?”
“콜록! 콜록, 콜록!!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천재라더니, 귀도 베토벤을 닮아 가나. 둘 중에 괜찮아 보이는 처자 있냐고.”
“제가 어찌 감히 백작가 영애님들을 마음에 품을 수 있겠습니까.”
백작은 감자 한 알을 다시 입에 넣었다. 손이 살짝 떨리는지, 조금 전보다 훨씬 많은 설탕이 그의 수염에 발렸다.
“첫째는 자네보다 나이도 다섯 살이나 많고, 자네 말마따나 귀천상혼 문제도 있지. 하지만 둘째는 한 살 차이 아닌가.”
“저랑 결혼하면 둘째 따님은 더 이상 귀족이 아닐 텐데요.”
“자네 정도면 언제고 작위는 받겠지. 그보다 중요한 건, 아무래도 나는 자네를 혼맥으로 묶어놔야 편해질 것 같단 말일세.”
“오늘 같은 날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백작님.”
“아니야. 지금이어야만 해. 성공하면 자네 몸값이 훅 올라갈 테니.”
아르민은 잠시 고민했다.
개차반 가정에서 자라난 내가 제대로 된 가정을 만들 수 있나? 아니, 그 이전에, 백작가 따님을 모시게 되는 순간 그동안의 엉망진창 행복 캠퍼스 라이프는 쫑나게 되는데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그 고민은 백작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비추어졌다.
“내 딸이 성에 안 차나? 아니면 혹시 첫째가 더 마음에 들어?”
“아,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다만, 제 고생길에 엄한 사람을 끌어들이게 될 것만 같아-”
“내 딸로 태어났으니 그깟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닐 걸세.”
백작에겐 불행하고 아르민에겐 운 좋게도, 그 순간 뷔르템베르크 왕가가 행차하며 대화가 끊겼다. 천하의 체펠린 백작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수십만 마르크를 지원해 준 귀하신 분 앞에서 뻣뻣할 순 없었다.
“지금부터!!! 역사에 길이 남을!! 독일제국이 하늘을 거머쥐는 순간을!! 우리의 눈으로!! 똑똑히!! 보–시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었다.
교묘하게 이루어진 지형은 특정한 방향으로 바람이 몰아치게끔 자연의 이름으로 깎여 있었고, 이는 바람을 갈구하는 이들 항공 개척가들이 가장 원하던 바이기도 했다.
엔진에 힘차게 시동이 걸렸다.
두 개의 프로펠러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와아아아아아아아악!!!”
오일러가 탄 비행기가 힘껏 전진했다.
수만 개의 시선이 비행기를 향해 꽂혔다.
뷔르템베르크 국왕 옆에 있던 체펠린 백작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갔다.
아르민 로젠바움은 피가 흐르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에르나 폰 체펠린은 아르민의 곁으로 가 그의 허리께를 살며시 붙잡았다.
조금 전까지 주전부리를 팔던 인부들조차 모든 장사를 접은 채 하늘을 응시했다.
“날았다!!”
“사람이 날았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인간이 하늘을 정복했다! 이제 하늘은 독일의 것이다!!”
“독일, 그 무엇보다 독일, 세상 그 무엇보다도!”
누군가가 애국가, ‘독일인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군중들은 하나 되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끝없이 국가적 자긍심을 갈구하던 이들은.
지금 이 순간 하늘에 떠 있는 저 비행기를 보며 끝없는 고양감을 느꼈다.
“백작. 드디어 성공했구려.”
“아닙니다, 전하. 제가 아니라 저기 있는 저 젊은 친구의 작품입니다.”
“원래 원석을 알아보고 깎는 게 나이 먹은 이들의 역할 아니오. 이만하면 대성공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오만.”
“전하를 비롯해 저를 도와준 모든 이들의 염원이, 저 젊은이의 손끝에 모여 오늘을 만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비행은 계속되었고, 저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내려오고, 크게 선회해 원을 그리고 또 올랐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1900년 11월 10일.
아르민 로젠바움이 발명하고 아우구스트 오일러가 조종한 인류 최초의 비행기가 독일 상공을 비행하고 성공리에 착륙했다.
대항공시대가 개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