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03)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03화(103/589)
< 103 : 초심자의 행운 >
인천항을 떠나 인천제철로 향했다.
유동로에서 쇳물을 뽑아 기존 공법으로 강판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오늘은 21세기 공법으로 강판을 뽑아보는 날이다.
연속주조설비와 열간압연기를 모두 개조했기에, 이론적으론 SMS사의 ‘박판주조법’을 구현할 수 있어야 했다.
“삼복아! 뵈스트 공장장님!”
“어서 와.”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직원이 작업복을 가져다주었다.
작업복을 입으면 한결 견디기가 쉬웠다.
사장이고 임원이고 기름때 절은 작업복을 멋으로 생각하는 것은 제철소의 특징이었다.
“어째 그동안 진전이 좀 있었습니까?”
나는 부산에서 열심히 배를 만들고, 뵈스트는 박판주조법을 열심히 실험했다.
“계속 시도해봐야죠, 사장님.”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는 소리네.
연속 주조와 열간 압연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공정 조건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자칫하면 철판이 깨지고, 장비가 멈추고, 어찌어찌 강판을 만들어도 표면 상태가 불량하다거나 강도 품질이 엉망이었다.
“찬수야, 오늘도 실패하면 기존 공정으로 생산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신공정과 기존 공정을 오락가락하는 게 너무 고역이야.”
“응, 알고 있어.”
실험을 위해선 기존 방식으로 잘 돌고 있던 연속주조기와 열간압연기를 모두 멈춰야 했다.
용해로나 전로에 쇳물을 담아두는 시간은 한정적이라 이런 실험은 생산 라인에 큰 부담이었다.
더욱이 5월까진 무조건 배를 띄워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더는 설비를 멈춰서는 안 된다.
“공장장님, 그간 실험한 샘플 좀 보여주세요.”
“예, 사장님. 이리 오시지요.”
뵈스트가 나를 공장 한켠으로 데려갔다.
기다란 탁자에 공정 조건별로 강판 샘플이 정리되어 있었다. 샘플이 80개는 족히 넘는 걸 보니, 바꿔볼 만한 공정 조건은 죄다 바꿔본 것 같았다.
뵈스트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정도면 바꿔볼 공정 조건도 없겠어요.”
시간, 온도, 수냉, 압연속도, 압연압력, 등등 온갖 조건을 풀 매트릭스로 돌린 걸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다 결함이 있었다.
공정 조건에 따른 경향성이라도 보이면 되는데, 최종 품질이 널을 뛰니 영향 인자를 끄집어낼 수가 없었다.
“모든 조건을 한계치까지 몰아가도 경향이 보이질 않습니다. 모든 경우에서 결함이 관찰되니 공정 설계를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구현이 쉬웠다면 SMS사가 우리에게 특허를 팔지 않았겠죠.”
“사장님은 이 공법이 성공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난 성공하리라 확신해요. 그래도 단기간에 성공하긴 힘들긴 하겠네요.”
“…그… 그러시군요.”
21세기엔 양산 공법인데 당연히 성공해야지.
내가 제철소에 근무했다면 뭘 놓쳤는지 단박에 알았을텐데, 분명 이거 노하우가 있는 거다.
“샘플 치우는 거나 도와줄게.”
삼복이가 내 말에 상심했던지, 커다란 통을 질질 끌고 와서 샘플을 담기 시작했다.
“잠깐, 그거 뭐냐?”
“뭐?”
“그 샘플 뭐냐고?”
“이거? 이건 샘플 아냐. 스크랩이야. 압연기를 원복할 때 뽑아낸 거야.”
“이리줘봐.”
나는 스크랩 통에 담겨 있던 쇠판 조각을 끄집어냈다. 표면이 매끈한 것이 완벽한 샘플이었다.
“이거 뽑아낸 사람 누구에요?”
“어어…”
“혼낼려는 게 아니니 어서 손들어요.”
“예, 사장님. 저희들이 기계 원복 했습니다.”
기능공 몇 명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이 쇠판 끄집어낼때 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봐요.”
내가 흥분하자 뵈스트도 달려와 기능공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야, 우리 청소할 때 뭐 했냐? 기억나냐?”
“어, 나는 별짓 안 했는데. 턴디쉬에 슬래그가 많이 껴서 불 한번 지폈는데…”
“… 우리 몰드에서 쇠판 빼낼 때 박자 맞춰 노래 부른 것밖에 없잖아.”
기능공들끼리 쑥덕쑥덕하는 말을 들으니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잠깐, 잠깐! 노래를 불렀다고요? 불러봐요. 그때 했던 것과 똑같이 해봐요.”
“예에?”
“어서요.”
“사장님이 똑같이 하라잖아. 시작해!”
옆에서 선배들이 윽박지르니 기능공 몇 명이 연속주조기로 달려가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탕탕! 탕탕!
“날씬한 날씬한 아가씨끼리! 아싸!”
“정답게 정답게 손을 잡고서! 아싸!”
기능공들이 유행가를 부르며 쇠 파이프로 연속주조기의 주형틀(Mold)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쇳물이 통과하는 통로였다.
“사장님, 이해하십시오. 저리 두들겨야 몰드에 끼어있던 찌꺼기들이 빠져나옵니다.”
“4분의 4박자네.”
옆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4분의 4박자로 두들기면 쇳물이 잘 흘러가네.
취익! 취이이이익!
게다가 기능공 한 명은 옆에서 턴디쉬의 가스 버너 압력을 조절하며 박자를 맞췄다.
“완벽해! 완벽하다고!”
어찌 이런 우연이 있지?
생각해보니 저리 하는 게 당연했다.
완벽하게 박판주조법에 어울리는 공법이었다.
“예에, 완벽하다고요? 사장님.”
“하하! 시작합시다. 전원 제 자리로!”
“제자리로!”
뵈스트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직원들을 제자리로 훅하니 보냈다.
이미 실험할 준비는 완벽했다.
용해로를 거친 쇳물이 전로(轉爐, 변환로)에 담겨 있는 걸 보니 정련까지 끝나 있었다.
기존 공법으론 쇳물을 주조기에 부어 240mm 두께의 슬라브(slab, 판상부재)를 만들고, 식어버린 슬라브를 다시 1200도까지 가열한 뒤 열연 압연기로 50mm까지 반복 압연하여 선박용 후판을 만들거나, 더 나아가 1.5mm짜리 열연코일을 만든다.
당연히 생산 경비가 과다한 공정이다.
그걸 우리는 주조단계에서 60mm짜리 슬라브를 만들 거고, 그럼 몇 번만 압연해도 50mm에서 6mm까지 다양한 두께의 후판이 척척 튀어나오는 거다.
원가가 50%나 싸지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찬수야,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응! 오늘은 될 것 같아. 느낌이 와.”
“느낌이 온다고?”
빈말이 아니라 정말 느낌이 그랬다.
설비가 어서 시작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시작합시다! 전원 스탠바이!”
“스탠바이!”
“레들에 쇳물 부어!”
“레들에 쇳물 부어!”
레들(Ladle)은 쇳물을 담는 용기다.
대용량 전로에서 소량씩 나눠담은 꼴이다.
촤아아악!
전로에서 탄소와 황이 제거된 쇳물이 커다란 바가지(레들)로 옮겨왔다.
“턴디쉬(Tundish) 밸브 열어!”
“턴디쉬(Tundish) 밸브 열어.”
“홀딩 타임 3분 30초!”
“홀딩 3분 30초!”
“사장님, 홀딩 시간이 너무 깁니다. 그러면 턴디쉬에서 쇳물이 굳습니다.”
뵈스트가 화들짝 놀랐다.
턴디쉬는 쇳물 바가지에서 평평한 바가지로 쇳물을 옮기는 것을 말한다.
평평한 곳에 옮기면 쇳물 위로 지저분한 게재물이 떠오르기 때문에 그걸 걷어내려는 목적이다.
“그 생각이 문제였던 겁니다.”
“예에”
“홀딩 시간이 너무 짧아 불순물을 충분히 걷어내지 못했던 겁니다.”
“오오!”
뵈스트도 뭔가를 깨달았던지 감탄사를 토했다.
이거 성공할 것 같았다.
“턴디쉬 버너 온! 타깃 온도 1200도!”
“턴디쉬 버너 온! 타깃 온도 1200도!”
“으아아, 바로 이거였군요!”
기능공이 청소한다고 턴디쉬를 가열했던 것이 턴디쉬에 쇳물을 오래 둬도 식지 않게 했던 거다.
박판주조법의 첫 번째 노하우였다.
“홀딩타임! 카운트 다운, 5. 4, 3, 2, 1!”
“몰드 열어, 쇳물 흘려!”
“몰드 열어, 쇳물 흘려!”
쏴와아아아아아!
박판 주형에 쇳물이 흘러 들어가자 냉각수 증기가 강하게 품어져 나왔다.
“몰드 두드려! 4분의 4박자!”
“에에?”
“하하! 뭐합니까? 사장님이 두들기라잖아요.”
직원들은 내 말에 어리둥절했지만, 뵈스트가 마구 뛰어갔다.
탕탕! 타타탕! 탕탕! 타타탕!
“나씨나 나씨나(날씬한 날씬한) 아가씨! 하하하!”
“하하하하!”
뵈스트가 어설픈 노래를 부르며 쇠 파이프로 주형틀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두드려! 와아아아아아!”
기능공들도 신나게 합류했다.
“이게 뭐야?”
삼복은 어이없는 듯 양 손바닥을 펴 보이며 날 쳐다봤다.
“뭐긴 뭐야? 우리 노하우지!”
제철소에 간혹 대형 진동기가 납품되던데, 여기 쓰는 물건이었던 거다. 당장 만들어 달아야겠다.
촤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 나왔다!”
“뭐해요! 롤러 돌려요!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하하하!”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정말 예쁘게 60mm 수준의 얇은 슬라브가 압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주홍빛 철판이 롤러 사이를 몇 번 오가자 선박용 후판으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 장비 끝에 도달한 쇠판이 툭하니 잘려나가 하얀 김을 뿜어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표면이 깨끗한 것이 최상급 강판이었다.
“으하하하! 찬수야. 이거 봐. 이거 봐!!”
삼복이는 최종 제품을 보고서야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태 내가 뭔 짓을 하나 싶었을 거다.
“자고로 장비는 두드려야 되는 거야!”
“만세!! 만세!”
“으하하하하하! 성공이야!”
기능공이며 엔지니어며 할 것 없이 내게 달려와 헹가래를 쳤다.
“사장님, 최고등급 강판입니다.”
뵈스트도 엄청나게 흥분해서 난리였다.
‘이건 내가 제철소 초짜라서 가능한 일이야.’
턴디쉬를 가열하고, 주형틀을 두드리는 건 솔직히 제철소에 오래 근무한 사람일수록 생각하기 어려운 예상외의 노하우였다.
“정말 한국인들은 창의력이 대단합니다.”
“우린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거든요.”
“말년에 이런 영광이라니…”
뵈스트마저 미칠 듯이 빠른 속도로 쌓여가는 후판을 보며 놀라워했다.
뵈스트의 유동로 공법이 제선 공정의 혁명이라면, 이 박판주조법은 후공정의 혁명이었다.
“찬수야, 우리 부자 된 거 맞지?”
“응, 당연하지.”
삼복이는 샴페인 대신 사방에 냉각수를 뿌리며 소리쳤다.
“이거 얼마에 팔 거야? 톤당 95불에만 팔아도 우리 대박이야.”
철강은 달러와 비슷해서 톤당 100달러에 꾸준하게 팔리는 제품이다.
심지어 수요가 언제나 공급을 앞지르는 수요 창출형 제품이라 가격 변동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예외적인 경우가 곧 발생하지.
“안 팔 거야. 죄다 부산의 조선소로 옮기자.”
“에? 설마… 전량?”
“응, 전량.”
조선소에서 쓰다가 남으면 쟁여놓으면 되지.
장차 톤당 300불을 호가할 물건인데.
“왠지 그럴 것 같았어. 큭.”
“자, 오늘은 인천제철 전체 회식입니다.”
“와아아아아!”
떼돈 벌었으니 일단 회식부터 해야지.
“고기 맘껏 드세요. 맥주도!”
“와아아아아아!”
직원들은 나를 무동 태워서 고깃집으로 달려갔다. 오늘 이 근방 고기란 고기는 우리가 다 해치울 것이다.
***
5월 5일.
“대세 조선의 첫 작품 벌크 1호의 진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에 대세 조선의 모든 임직원이 한꺼번에 환호했다.
그동안 정말 미친 듯이 작업했다.
뵈스트는 인천제철에서 철판을 미친듯이 뽑아냈고, 나또한 용접기를 들고 조선소에서 살았다.
나와 과장급들이 용접기를 들고 각 블록의 조립체를 가접해두면, 기능공들이 용접하는 형태로 일을 했다.
그간의 고생을 생각하며 감회에 젖어 있다가 사회자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신호에 맞춰 밧줄을 끊어 주십시오.”
“셋, 둘, 하나, 진수!”
탁!
대세에서 유일한 여성 과장인 김복순 씨가 진수용 밧줄을 끊자, 기능공들이 진짜 밧줄을 끊었다.
배를 진수할 때는 탯줄을 자른다는 의미로 여성이 밧줄을 끊는다.
콰콰콰콰, 쾅! 첨벙!
거대한 벌크선이 미끄러져 바다에 첨벙 들어갔다.
대형 도크가 없어서 바다까지 길게 경사길을 만들고, 조각을 연결하고 상판 작업을 했다.
오래된 조선소에서 행하는 활주대(Slipway) 기법과 비슷하다.
물론 그마저도 작업 장소가 협소해 나중에는 선수 일부가 물에 잠기는 걸 감수하고 작업했다.
누가 보면 이리해도 되냐 싶을 정도로 무식한 방법이었다.
“다행입니다. 사장님.”
조립을 맡은 두선익 과장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감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배가 균형을 잘 잡고 떴다.
벌크선이라 흘수가 얕고 바닥이 넓은 편이라 무게중심이 확실히 아래쪽에 쏠린 덕분이리라.
우려했던 것보단 훨씬 안전해 보였다.
“스미스 선장, 시범 운행하세요.”
“예, 사장님.”
스미스 선장이 베테랑 선원들과 함께 벌크 1호에 올라 조종을 맡기로 했다.
예인선 역할을 할 화물선에는, 예전에 영입한 권칠득 씨와 그의 동료들이 한 명씩 나눠타 각 선장을 돕기로 했다.
“두 과장님, 조정이 되긴 하겠죠?”
“물론입니다. 벌크 1호엔 메인 엔진만 없다 뿐, 방향타와 그걸 동작시키는 엔진은 충분합니다.”
벌크 1호를 멍텅구리 배라고 부르지만, 방향타를 달아서 최소한의 조종은 가능했다.
스미스 선장이 4척의 화물선을 원격으로 조종하면서 항해를 해나가는 식이었다.
<들립니까? 사장님.>
“예, 잘 들립니다. 스미스 선장님.”
<이야! 배를 이렇게도 움직일 수 있다니, 지구상에 이렇게 항해하는 사람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 하하하.>
무전기 너머로 스미스의 웃음이 전해져왔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해야죠. 어째, 호주까지 갈 만하겠습니까?”
<보고 계시지요? 아주 상태 좋습니다. 맘 같아선 세계 일주도 가능하지 싶습니다.>
부산 앞바다를 유유히 도는 모습이 아주 순조로웠다. 화물선과 연결된 줄이 없었다면 끌려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바로 출발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항해 경로는 다 점검하셨지요?”
나는 다시 한번 챙겼다.
돈도 돈이지만, 호주까지 가는 데 절대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
대세 해운 전체가 걸린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스터 권을 비롯해 예인 전문가들이 우리와 함께 호주를 여태 4번이나 왔다 갔다 했습니다. 충분히 해볼만 합니다.>
“스미스 선장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안심이 되는군요. 호주에서 선적 완료되면 곧바로 텔렉스 부탁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출항 명령 주십시오.>
스미스 선장이 자신 있게 출항 명령을 달라고 했다. 세계 최고의 선장인 엑스트라 마스터가 저 정도로 얘기할 정도라면 배가 주는 안정감이 확실한 모양이다.
“벌크 1호, 대세 화물선 선단! 출항하라!”
<출항!! 출항하라!!!>
뿌우우우! 뿌우우우~
“와아아아아!”
“잘 다녀오세요!”
“대세 해운 화이팅!”
“아빠, 잘 다녀와!”
화물선 4척이 동시에 기적을 울렸고, 진수식에 초대받은 가족들도 사방에서 손을 흔들었다.
마치 퍼레이드를 하듯 선단은 가족들 앞을 크게 돌아나갔다. 대세 해운 직원들이 갑판에 늘어서 멋들어진 거수경례로 환호에 답했다.
역시 해운사 직원은 정복을 입혀놓으면 정말 멋지다니까. 바다에 나가면 기관사들은 대번에 작업복으로 갈아입겠지만 말이다.
“찬수야, 저리 빈 배로 보내는 게 너무 아까워. 원단이라도 실어서 보냈어야 했던 거 아니냐?”
“세관 기다리는 시간마저 아까워. 게다가 원단을 가져가 봐야 호주 서쪽에서 동쪽까지 기차 태워서 보내야 해. 하세월이야.”
지금 우리에겐 낭비할 시간이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해머슬리사가 마이너스 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사라지는 거다.
“왜 그리 서두르는 거야? 기껏해야, 사나흘… 길어도 일주일이면 되는 일인데.”
“원단 수출은 미국과 동남아에 집중해. 호주는 한 번이라도 더 철광석을 실어오는 게 답이야.”
“하긴, 네 판단이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난 찬수, 너 믿고 인사나 해야지! 벌크 1호! 잘 다녀와! 안전하게 철광석 잔뜩 싣고 와라!”
삼복이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가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잘 다녀와라, 벌크 1호.’
갈 때는 허접한 리어카였지만, 돌아올 땐 금을 싣고 오는 것처럼 환영받으리.
바야흐로 6월이 오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 중동이 등장하는 때가 다가왔다.
< 103 : 초심자의 행운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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