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13)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13화(113/589)
< 113 : 엎어치기 >
“예, 팬마리타임사의 조건이 한국에 아주 유리합니다. 조선소 설계 용역비로 580만불을 선투자해준다면 합작하겠다고 합니다. 그 뒤에 4000만불에 대해 외국 차관을 주선하고, 선박건조 자재, 장비, 부품을 제공하면서 한국 기술자 교육도 해주고 판매까지 대행해주겠다고 합니다.”
“뭐라고, 판매 대행까지 해준단 말인가?”
“예! 척당 200만불의 수수료를 받는 조건으로 판매를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하하! 우리나라가 성공하리라 보였나 보군. 그렇게나 좋은 조건을 들이밀다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괜스레 비싼 영국 회사를 끼워 일하는 것보다 이스라엘 팬마리타임사(社)가 훨씬 합리적입니다.”
참나, 우리나라가 조선산업을 시작한다니 사기꾼들이 돈 냄새를 맡은 거다.
그런데 좀 자존심이 상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돈이 없어 보였으면, 고작 580만불을 사기 치겠다고 달려드나?
나라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면 적어도 5000만불은 불러야 하는 거 아냐?
“부총리님, 아무리 그래도 580만불로 조선소를 세울 수 있다는 겁니까? 그 정도라면 굳이 정부 예산 쓸 필요 없이, 제가 빌려드리죠.”
“아니, 뭔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580만불은 설계 용역비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쪽에서 충분히 사업성 검토를 해서 합작하자는데, 검토도 안 해보시고 그런 막말을 하시다니요.”
“이제 차관 사기 정도는 구별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인천제철 루기르사(社) 사건 모르십니까? 팬마리타임사(社)도 설계 용역이랍시고 사람 한두 명 보내서 쓰레기 도면 몇 장 그려주고 도망칠 게 뻔합니다.”
“제대로 알고 하는 말입니까? 팬마리타임사라면 이스라엘에서 명성 있는 해운사인데, 무슨 사기를 친다고 그러십니까?”
“해운사? 딱 봐도 각이 나오는군요. 그럼, 한국이 580만불을 먼저 내놓으면 합작사의 자본출자는 신용장으로 하겠다고 했겠군요. 깡통 신용장 말입니다.”
말만 신용장이지 숫자만 찍힌 빈 통장이나 다름없다.
해운사 대표면 아주 쉬운 일이다.
설령 진짜 환전 가능한 신용장이라고 해도, 580만불을 받으면 곧바로 돈을 인출 할 게 뻔하다.
“깡… 깡통 신용장이라니요.”
“그럼 현금 출자하겠답니까? 정말 그래요?”
“…그… 그건 밝힐 수 없습니다.”
이러니 맨날 당하지.
우리나라가 합작을 받아주면 팬마리타임사는 꽃놀이 패를 들고 시작하는 거다.
정말 우리가 일을 잘해서 조선소가 성공하면 50대 50 합작 지분을 이용해 경영권을 뺏어갈 거고, 일이 잘 안되면 쓰레기 장비와 부품만 팔아먹고 깡통 신용장이나 던지고 도망치고, 아예 초장에 사기가 들통나면 580만 불만 먹고 튀는 거다.
글로벌 합작은 세계적인 은행들마저 종종 사기를 당하는 일이다.
그래서 글로벌 합작은 무조건 출자부터 받고 시작해야 한다. 내가 미국에서 석유화학단지 차관 유치를 했듯이 말이다.
“임자, 너무 의심만 하는 거 아니야? 다른 건 몰라도 고객도 물어다 주겠다는데, 같이 일해보는 건 괜찮잖아?”
“… 그건…”
“각하 말씀이 옳습니다. 경제기획원의 생각도 바로 그겁니다. 팬마리타임사는 수수료를 받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고객을 알선해 줄 겁니다. 솔직히 일본 조선소를 두고 우리나라 신생 조선소에 배를 맡길 선주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내가 설명하려 했더니 또 끼어들었다.
하여간 배 장사를 해보지도 않은 것들이 서류만 검토하니 이렇게 순진한 거다.
세계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의 조선 공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게끔 도와주겠나?
팬마리타임사 같은 놈들에게 얽히면 아무리 잘해도 하청 공장이 되는 것이 고작일 뿐, 독자적인 수출기업이 될 수 없다.
“대통령님, 속으시면 안 됩니다. 고객을 주선해준다는 조항을 이용해 우리가 고객을 직접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입니다. 자칫 배를 만들고도 판로가 막히는 독소조항입니다.”
“아니, 우 사장은 평생 속고만 살았습니까? 팬마리타임사의 대표는 이스라엘의 국회의원입니다, 국회의원! 그런 양반이 무슨 사기를 칩니까!”
국회의원은 사기 안 치냐?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에 사기 안 치는 놈 있어?
동양이고 서양이고 다 똑같아.
“이것저것 다 떠나서, 배가 가격 경쟁력이 있고 품질만 좋다면 고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괜히 코 꿸 수 있는 조항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상공부도 같은 의견입니다.”
“이거, 조선소를 짓자는 거요? 말자는 거요? 이리 좋은 합작선을 거부하는 저의가 뭡니까?”
“저의라니요? 우 사장님의 의견은 틀린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정렴 장관이 내 편을 들고 나서니 또다시 경제기획원 쪽에서 얼굴을 붉혔다.
“이것 참,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판단하라는 거야? 임자들, 정말 그런 말이야?”
“대통령님, 영국 은행의 차관 무한지급보증 조건은 일견 과해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서로 믿을 만합니다.”
“우리 경제기획원은 영국은 몰라도 대세는 못 믿겠습니다. 조선소가 부실화되면 그 돈은 무한정 세금으로 물어줘야 한다는데, 그걸 용납하란 말입니까? 그건 안 위험합니까?”
어쭈, 막말하네.
인천제철이고 한국조선공사 같은 부실기업을 되살린 게 난데, 내가 위험하다고?
그리고 내가 조선소를 말아먹으면, 내가 무사하겠냐? 중정에 끌려가지 않겠어?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부실을 방치하겠어?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부총리님,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우 사장님이 추진한 국책과제가 어땠는지 모르십니까!”
“나 장관, 자꾸 대세를 두둔만 하지 말고 특혜를 줘야 하는 이유를 가져오란 말이오.”
“특혜라니요!”
쾅!
“다들 조용히 해!”
대통령이 탁자를 치며 으르렁거렸다.
나 장관과 배 부총리가 황급히 입을 닫았다.
“이봐, 임자. 경제기획원 말도 일리는 있어. 영국의 차관도 시설재를 수입하는 조건으로 빌려오는 거잖아? 그게 사기가 아니고, 제대로 동작한다는 증거는 또 어딨어? 그리고, 공개 입찰이 아니니 일반 국민이 보면 리베이트를 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해. 충분히 특혜처럼 보인단 말이야.”
사실을 알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억지였지만 제삼자 입장에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 리베이트를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장비는 제대로 동작합니다.”
“임자는 그걸 어찌 증명할 거야?”
“……”
대답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난 뇌물 따윈 안 받는 깨끗한 사람이며, 장비를 제대로 아는 중공업 전문가라고 말할 순 없잖나.
그렇게 말하면 대통령을 비롯해 여기 있는 사람을 죄다 바보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자연히 드러나게 될 겁니다. 믿어주십시오.”
규모로 논쟁이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합작 방법 자체에 의문을 표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이 돈도 돈이고 저 돈도 돈이야. 사기꾼이라고 의심되는 놈이어도 합작하겠다고 하면 끌어들여서 우리 땅에 돈을 쓰게 해야 해. 그 방법만 생각하라고.”
“!!!!!”
뭐야? 사기꾼 돈도 뺏어보자 이거야?
이 양반이 고도 성장기를 이끈 이유가 있네.
그 방식이 60년대엔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지금은 야만 시대, 정글 시대다.
강한 놈만 살아남는 시대다.
“예, 대통령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배학렬 경제부총리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우 사장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괜찮아요. 괜찮아요. 지켜보세요.’
나 장관이 탁자 밑에서 내 손을 꽉 쥐길래 나는 그의 손등을 점잖게 두드려주었다.
“하하, 우 사장님 생각이 바뀔 줄 알았습니다.”
배 부총리가 껄껄 웃으면 좋아했다.
내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굴복했다고 여기는 것이리라. 그래, 많이 좋아해라.
“그럼, 임자가 팬마리타임사와 합작을 해보겠다는 거야?”
“아닙니다. 대통령님 말씀대로 이 돈이고 저 돈이고 죄다 돈 아닙니까? 조선소도 마찬가지지요. 어느 조선소든 성공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오호!!!”
원래 역사에서 팬마리타임사가 한국에서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까짓거 해보면 되지.
그놈들이 사기꾼이건 나발이건 간에 일단 조선소부터 짓게 하고 그게 나자빠지면 내가 헐값에 접수하면 그뿐이다.
접근 의도 자체가 썩은 데다 원래 역사에서도 존재감이 없었던 놈들이니, 성공할 리 만무했다.
“경제기획원에서는 팬마리타임사와 착공하시고, 저는 상공부와 함께 대세의 자본금으로 따로 착공하겠습니다. 자연스레 두 조선소 간에 공기든 장비든 경쟁력 비교가 될 테니, 특혜 시비는 잦아들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 묘안이군! 묘안이야!”
대통령은 탁자까지 치며 좋아했다.
“아니, 경제기획원이 어떻게… 대세가 조선소를 지어야지요.”
“조선소 하나당 기술직 250명, 사무직 250명, 기능공 4500명이 필요합니다! 조선소 두 개면 도합 만 개나 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니 서로 열심히 해보도록 하시죠.”
“좋아! 좋아! 무한보증이든 보조금이든 양쪽에 공평하게 지원해주자고! 예산 얼마나 따놨어?”
일자리 얘기가 나오자 대통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마구 휘저었다.
딴소리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예, 각하. 조선산업에 2000만불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딱 반 갈라서 1000만불씩 지원해! 둘 다 무조건 성공시켜! 어선을 만들든 유조선을 만들든, 능력껏들 해보란 말이야. 하하하.”
“맡겨 주십시오.”
지원금 1000만불이 좀 아쉽긴 하지만, 무한보증 조건은 따냈으니 나름 성공이다.
1000만불 정도야 요르단에 카블라가 본격적으로 납품되면 어찌어찌 벌충할 수 있으리라.
“부총리 표정은 왜 그래? 안 할 거야?”
“아닙니다, 각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은 개뿔! 잘도 하겠다.
부총리는 완전히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팬마리타임사로부터 리베이트는 자기가 받고 일은 내게 떠넘기려고 했겠지?
혹시라도 일이 잘 안되면 독박까지 내가 쓴다고 여겼던 거다.
“경제기획원에서 도움을 요청하신다면 대세도 기꺼이 돕겠습니다.”
“… 아… 예…”
“그래, 그래! 서로 도와야지. 그래야 나라가 발전하지. 다들 가서 일 보고, 임자는 날 따라와. 할 말이 있으니까.”
“예, 대통령님.”
어이없는 결론으로 끝난 회의였지만, 왠지 통쾌했다. 잘하면 조선소를 추진하면서 부총리와 비서실장이 경질되는 꼴을 볼 수도 있겠다.
***
뚜벅. 뚜벅.
집무실로 향하는 것 같더니, 뒷문으로 빠져나가 정원까지 들어섰다.
내가 제일 처음 밴 플린트와 대통령을 만났던 그 정원이었다.
이미 누군가 술상을 곱게 차려놨다.
막걸리와 감자전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쪼르륵.
대접에다 반쯤 막걸리를 따르더니 사이다로 나머지를 채웠다. 대통령표 막사인가?
“수고 많았어. 미국 정부에서도 이번 요르단과 이스라엘 물밑 접촉을 주선한 것에 감사한다고 전문을 보내왔더군.”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다 알고 있었으면서 중동 일을 물었던 거야?
“요르단 수로 공사를 따내려다 보니 얻어걸렸을 뿐입니다.”
“얻어걸렸든 아니든 이번 건은 미국 대선에도 큰 도움을 준거야. 차후 잘 이용해 봐야지. 서양이든 동양이든 정치판이야 다 그런 거 아니겠나.”
“예, 그렇습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 뜸을 들이지?
청와대가 다른 건 몰라도 막걸리 하나는 맛있었는데, 오늘따라 유독 텁텁했다.
사이다까지 섞은 막사인데 말이다.
“그래서 말이야, 자네가 좀 도와줄 게 있어.”
제길, 여기서 더 이상 뭘 어떻게 도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고요.
“예, 말씀하십시오. 대통령님.”
속과 다르게 정중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엊그제 날아온 전문이 하나 더 있었어. 호주 수상이 수영하던 중에 사고사를 당했다고 하더군. 조만간 장례식이 있는데, 거기서 존슨 대통령이 보자고 하더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임자 생각엔 뭐 때문에 부르는 것 같은가?”
내게 부탁할 것이 있다더니 질문부터 했다.
날 시험하는 건가?
답은 너무 쉬웠다.
호주도 월남전 파병국이 아닌가.
“월남에 추가 파병을 요청하려는 목적일 겁니다. 군사적으로든 협상으로든 종전에 가까워졌다는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요. 대선을 앞둔 공화당으로선 목에 걸린 가시 같을 겁니다.”
와중에 국군이 주둔한 뀌년 주변과 메콩강 삼각주는 안전하니, 원래 역사보다 나은 상황이긴 했다.
“역시, 임자가 꽁으로 돈을 잘 버는 게 아니야. 호주에 같이 가자고!”
“예에?”
“내일모레 떠나야 하니까, 준비하도록 해. 주요 쟁점과 협상안을 가져와.”
‘아니, 그건 비서실에 시켜야지. 왜 내게…’
왜 하필 이때 이런 일이 생기지?
원래 역사에서도 이때 호주 대통령이 죽었나?
제길, 내가 거기까지 어떻게 알아?
“대통령님, 저는 일개 장사꾼에 불과합니다. 정상회담은 나라의 큰일인데, 제가 감히 어떻게 관여하겠습니까?”
“조금 전 회의에서 비서실이 말하는 거 봤지? 돈 버는 데는 영 소질이 없어! 월남 가서 돈을 제일 많이 벌어들인 사람이 누구야? 임자 아니야! 이번에도 지원을 잔뜩 얻어내 보자고.”
“대통령님…”
“임자는 잘할 거야. 힘내도록 해.”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나나?
대통령은 막걸리병을 들더니 이번에는 사이다도 없이 한 대접 가득 따라주었다.
주는 잔이니 탈탈 털어 마시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호주에 가봐야 딱히 내게 도움이 되는 게 있나?
철광석은 최대한으로 실어오고 있지 않나.
그러고 보니 내년엔 많은 일이 벌어지는구나.
미국 존슨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니, 북한도 도발하고 월맹군도 구정 대공세를 하지.
미국의 인플레 문제도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시작하는 해기도 했다.
미리 준비를 해두긴 해야겠네.
오케이!
가서 어디까지 일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누굴 만나야 하는지는 알겠네.
< 113 : 엎어치기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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