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15)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15화(115/589)
< 115 : 두 미치광이 >
“선주를 소개해 주신다니, 제가 어찌 보답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코킨스 부총재에게 감사를 표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단순한 호의란 없다.
보답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일회성으로 끝난다.
바클레이즈 부총재와 그렇게 끝내서는 안 되지.
“저야 우 사장님과 인연을 맺게 되는 거로 족합니다. 하지만, 제 친구 리바노스는 그리 만만치 않을 겁니다. 신생 조선소와 거래를 터준다는 조건으로 통상적인 수준을 넘는 보상을 원하겠지요.”
코킨스는 내게 빚을 지우겠다는 의미였다.
“통상적인 수준 이상이라고요?”
“선가를 과하게 후려치겠지요.”
“성실히 협상에 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요. 리바노스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겠습니까?”
가격이야 협상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나야 가격 경쟁력은 차고 넘친다.
조선소 건설비가 좀 부담돼서 그렇지, 철강 자재비나 인건비는 세계 최저가이지 않은가.
솔직히 킹스톤 조선소에서 설계도도 헐값에 사 왔고 말이다.
“매년 이맘때면 스위스 클럽 하우스에 있을 겁니다. 초대장이 있으니 가져가시죠. 올해 저는 갈 시간이 없군요.”
코킨스 부총재는 내게 초대장을 건넸다.
화려한 금장으로 꾸며진 초대장이었다.
그들만의 VIP 클럽에 들어가는 회원권 같은 것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초대장을 열어보니 생모리츠 클럽 하우스로 초대한다고 되어 있었다.
생모리츠는 유럽 귀족이나 갑부들이 스키를 즐기는 곳이지 않나.
예약 없이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할 수 없다는 곳 말이다.
“계약이 성사되면 제가 한번 모시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코킨스 부총재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어쩌다 보니 영국 관광에 이어 스위스 구경까지 하게 생겼다.
롱바텀 회장과 스위스의 겨울을 만끽하는 호사를 같이하기로 했다.
**
며칠 뒤,
“역시 알프스는 언제와도 좋군요.”
“돈도 많으신데, 여기에 별장 하나 만드시죠.”
“아직은 그렇게 돈이 많지는 않지만, 우 사장님과 함께라면 달라질지도 모르겠군요.”
롱바텀 회장이 슬쩍 나를 띄워줬다.
“가시죠.”
우리는 차를 빌려 초대장에 적힌 대로 길을 찾아 나섰다.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관광지를 벗어나, 여기에 길이 있나 싶을 정도로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따라가니 어느 순간 훅하니 넓어졌다.
그림 같은 절경에 유럽식 대저택이 어우러진 모습은 정말이지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제복 차림의 보안 요원이 길을 막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미스터 리바노스의 초대로 왔습니다.”
나는 금장의 초대장을 흔들어 보였다.
“앗, 실례했습니다. 이 길을 쭉 따라가시면 클럽 하우스가 나옵니다.”
“고맙습니다.”
몇 겹에 걸친 철문이 열리고, 그 안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정원과 스키 슬로프가 펼쳐져 있었다.
이런 시발, 이런 멋진 곳을 VIP 클럽이랍시고 저들끼리 독점하다니!
프라이빗 비치는 들어봤어도 21세기에도 프라이빗 스키장은 없는데 말이다.
아니, 내가 몰랐던 건가?
어찌 되었든 입맛이 썼다.
지구 반대편에는 밥을 굶는 사람이 부지기순데, 누군 한낱 사교 클럽에 이렇게 돈을 쓰다니.
“미스터 우, 롱바텀 회장님! 바클레이즈 은행의 코킨스 부총재님 소개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클럽 하우스에 들어서니 비서로 보이는 이가 우리를 맞았다. 코킨스 부총재에게서 이미 연락을 받은 것 같았다.
“리바노스 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지금 내려오시는 중입니다. 음료부터 가져다드릴까요?”
“커피 부탁합니다.”
“나는 홍차가 좋겠군요.”
따끈한 커피 한잔과 함께 멋진 알프스 풍경을 감상하고 있자니,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웰컴투 스위스! 즐거운 인생이어라!”
리바노스가 게스트 홀이 떠들썩할 정도로 요란한 환영 인사를 하며 들어섰다.
여기가 자신의 사교 클럽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우리를 맞이했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리바노스 님.”
“어서 오십시오. 롱바텀 회장님.”
둘은 서로 가볍게 포옹하고 허공에 볼 뽀뽀까지 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리스인이라서 그런지, 인맥 중심의 해운업자라 그런지 남부 유럽 특유의 과하게 친밀하고 오글거리는 인사법이었다.
“대세 조선의 CS Woo입니다.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내 친구가 장차 자이언트가 되실 분이라고 하더군요.”
“자이언트는 제가 아니라, 리바노스 님이죠. 그리스의 선박왕이신데요.”
나 또한 가벼운 포옹과 볼 뽀뽀를 나눴다.
“하하하! 이거 오랜만에 칭찬을 받았더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군요.”
과장된 몸짓으로 사교 파티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뭣들 해? 어서 술 가져와! 미스터 우에겐 잭콕, 롱바텀 회장님껜 로열 살루트 스트레이트야.”
“예, 사장님.”
리바노스의 등장에 맞춰 어디선가 술 시중을 드는 여자들까지 몰려와 분위기를 띄웠다.
내가 잭콕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걸 보니, 나에 대해 이미 조사를 했다는 의미였다.
겉으로는 한량처럼 보이지만, 속은 사업가였다.
“하하, 내 위스키 취향을 기억해주니 고맙군요.”
“멋진 분에게 딱 어울리는 위스키를 대접하는 게 제 취미라서 말이죠. 오랜만에 계약하려니까 이거 떨려서 저도 한잔해야겠습니다. 건배하시죠.”
짐짓 너스레를 떨며 온더락 잔에 얼음도 없이 위스키를 콸콸 채우고는 건배 제의를 했다.
“미래의 자이언트를 위하여.”
“멋진 계약을 위하여!”
“그리스 선박왕을 위하여!”
각자 상대를 위하는 건배 제의를 했고, 리바노스는 남성미를 과시하듯 한 잔 가득 채운 위스키를 원샷에 들이켰다.
“역시 슬로프를 타고 난 뒤에는 이렇게 마셔줘야 몸이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법이죠. 멋진 계약까지 하게 되면 밤새 여자와도 뜨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리바노스가 뜬금없이 여자 얘기를 꺼냈다.
이런 화법은 해운업계의 특징이다.
해운업계는 기술적 이슈보다, 누가 먼저 알짜배기 물류 라인을 선점하느냐가 경쟁력이다.
한마디로 해운업계는 돈 놓고 돈 먹기 판이라서 리바노스 정도의 큰손이라면 부와 인맥은 물론, 여성 편력마저 경쟁적으로 과시하는 것이 어찌 보면 필수 불가결이다.
그런 사치를 과시하지 못하면 선박왕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해야 하고, 해운사의 상황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다.
따라서 해운사 큰손들은 세기의 바람둥이가 많았고,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였는데 그게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리바노스 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에즈 운하에 유조선이 두 척이나 끼었다면서요?”
내가 훅하고 지르니, 리바노스가 순간 움찔했다.
그걸 어찌 아냐고 말이다.
왜 모르나?
수에즈 운하에 갇힌 15척 중 그리스 선박이 몇 척이라는 건 나도 조사할 수 있다.
“… 쩝. 빌어먹을 겁쟁이 놈들이 내 배를 앞뒤로 막아서 어째 빼내 올 수가 없더군요. 뭐, 별수 있습니까? 새 배를 사는 수밖에요. 돈이야 뭐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죠. 하하하.”
배짱이 좋든, 연기력이 좋든 둘 중 하나겠지만 일단 살짝 미친놈인 건 확실했다.
자기 선박 중 두 척이나 운항이 중지되었는데, 이렇게 스키나 타고 있을 인간이 어디 있겠나?
여하튼,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하긴 해야 할 것이다.
해운업의 특성상 큰 배를 자기 혼자 소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여러 화주를 모아 지분과 이익을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리바노스가 운항을 멈춘 두 척의 배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대응책을 마련해야 화주들이 안심하고 계속 화물을 맡길 것이다.
“… 그럼, 편하게 얘기하실 수 있도록 음악을 좀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술 시중을 들던 여자들이 어느 순간 슬며시 사라졌다.
리바노스의 표정을 살피며 비즈니스 얘기가 나올 타이밍임을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그들마저 잘 훈련받은 프로들이었다.
“미스터 우는 믿을만한 거래처입니다. 저희 신디케이트론 연합도 기술검토를 끝냈고, 조선소 설립부터 대형 선박 건조까지 도울 생각입니다.”
“롱바텀 회장님이 나설 정도의 일이라면, 응당 믿을만하겠지요. 하지만, 실제 계약은 돈이 되냐 안되냐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리바노스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의 눈엔 내가 애송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원하시는 조건을 말씀해보시죠,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23만톤 유조선 1척당 2760만 달러로 해서 2척을 주문하고 싶군요. 배는 2년 6개월 안에 받았으면 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배 인도 시기를 맞추는 것은 문제없지만, 선가는 다소 어이없군요. 톤당 140달러가 글로벌 최저가인데, 거기서 또 15% 가까이 깎으시다니 말입니다.”
선가를 2760만 달러라는 복잡한 숫자로 제시한 것부터가, 글로벌 최저가는 물론 조선소의 순익률이 15% 내외라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나보고 배를 원가에 달라는 소리였다.
“미스터 우, 첫 번째 선주에겐 그 정도의 프리미엄은 줘야죠. 이익이야 후속으로 들어오는 선주들한테 챙기시고요.”
“리바노스 님도 사업을 시작하실 때 첫 번째 화주에게 원가로 장사하셨나요?”
내 질문에 리바노스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장사꾼은 절대 원가로 장사해선 안 된다.
원가로 시작한 장사에 피치 못할 변수가 발생하면 유동성에 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큰 회사도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 차라리 그런 비즈니스를 하지 않으니만 못하다.
“하하, 대신 내 조건을 받아들이면 당장 계약금을 드리리다. 이봐 뭐해? 가져와!”
“예, 리바노스 님.”
어디선가 훅하니 비서가 나타나 탁자 위에 계약서를 펼치고, 현금을 산처럼 쌓았다.
“계약금 10%입니다. 두 척이니 552만 달러죠. 여기 계약서에 서명만 하면 이 돈은 당신 겁니다.”
리바노스가 도박판에서 올인하듯, 552만불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음, 이렇게 나오니 원래 역사에서 왕 회장이 훌러덩 넘어갔군.
그런데, 어쩌지? 난 왕 회장이 아니다.
왕 회장이야 조선소 건립이 지상과제였고, 그게 성공할지 말지 확신할 수 없었겠지만 난 다르다.
“안타깝군요. 이런 계약이라면 곤란합니다.”
난 552만불을 리바노스 쪽으로 다시 밀어냈다.
“미스터 우, 뭔가 착각하는 것 아닙니까? 당신은 유조선을 건조할 조선소도 없고, 기술 검증도 안 됐고, 돈마저 없습니다. 있는 거라곤 허풍이 전부인데, 이런 거래를 거부한다고요? 나처럼 당신을 믿어주는 미친놈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자기 입으로 미친놈이라고 했다.
“어쩌죠? 나도 당신 못지않게 미친놈이라서 말이죠.”
“……”
“리바노스, 내가 제의를 하나 해보죠. 23만톤이 아니라 26만톤짜리를 만들어주면 어때요? 대신 단가는 서로 양보해서 톤당 125달러로 합시다. 그럼, 척당 3250만 달러, 도합 6500만 달러가 되겠군요.”
“26만톤… 척당 3250만 달러라…”
“크기를 3만 톤이나 키워주고 일본의 선가보다 10%나 싸게 주는 겁니다. 이런 파격적인 조건으로 배를 파는 미친놈은 이 세상에 저밖에 없습니다.”
나니까 이 정도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거다.
세계에서 제일 싼 철강과 제일 싼 임금을 동원할 수 있거든.
“하, 이거 두 분 미치광이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왕이면 미스터 우의 손을 들어주고 싶군요. 23만톤 유조선 가격으로 26만톤을 사는 격이니까 말이죠.”
“일본의 선가를 알고 있다면, 품질 수준도 알고 있겠군요? 맞출 수 있는 겁니까?”
“미국 선급의 인증을 받아 배를 넘겨드리죠. 따로 선급을 파견하셔도 무방하고 말이죠.”
선급은 배의 설계부터 건조 완료까지 검사와 승인 업무를 하는 감독관이다.
미국 선급이면 세계적으로 까다로운 선급이니 품질 보증에는 충분했다.
“그 정도로 자신이 있으시다? 그렇다면 인도 시기와 품질을 충족하지 못하면 원리금 전액과 운항 불가로 인한 손실액까지 보상하는 특약은 어떻습니까?”
“문제없습니다. 받아들이죠.”
“허!”
오히려 리바노스가 깜짝 놀랐다.
놀리긴, 첫 고객인데 그 정도 서비스는 해줘야지.
짝!
“서명합시다. 미치광이분들!”
롱바텀 회장이 리바노스의 계약서에 선가와 특약을 기재하고는 제일 먼저 서명했다.
나도 리바노스도, 미치광이답게 망설임 없이 서명했다.
“건배합시다!”
롱바텀 회장의 말에 모두 잔을 들어 올렸다.
“이거 참 비싼 술인데요? 이 한잔에 500만 달러쯤 하려나요?”
나는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너무 많이 깎아준 것 같다고 말이다.
“하하하! 미스터 우는 나에게 산타클로스가 될 것 같군요. 아주 화끈한 산타클로스!”
막상 계약서를 챙기고는 입이 귀에 걸렸다.
미국 선급이 보증하는 26만톤급 최고급 유조선을 최저가로 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 흉내야 백번이라도 내주지.
“뭣들 합니까? 파티를 시작해야죠! 맘껏 즐기십시오. 여기 수영장도 좋고, 스키장도 좋고, 여자든 술이든 얼마든지 있으니까. 다들 들어와!”
나와 롱바텀 회장에게 객실 키를 던진 리바노스는 신이 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직원인지 댄서인지 모를 여자들이 몰려와 리바노스와 어울려 더티 댄스를 선보였다. 어느새 끈적끈적한 음악이 홀을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난, 위스키와 이 경치면 충분합니다. 아, 텔렉스만 있으면 완벽하겠는데요.”
“하하하! 이것 참, 뭐해? 일밖에 모르는 VIP께서 텔렉스를 찾으시잖아. 안내해드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안내받은 사무실에서 텔렉스를 보냈다.
마침, 오늘 삼복이에게 소식을 전하는 날이었다.
「To. 삼복.
스위스 도착. 유조선 2척 6500만불 계약 완료.」
녀석이 아주 기뻐하리라.
여기 분위기 좋다는 말은 쓰지 않았다.
삐리릭. 삐리릭.
“응?”
어째 텔렉스를 보내자마자 바로 회신이 왔다.
설마 텔렉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거냐?
「To. 찬수.
스위스? 좋겠다. 떼돈 벌었다니 더 좋다. 그런데, 스위스 간 거면 심재홍 사원 좀 살펴봐. 언제부턴가 계속 지원금을 반납하고 있어.」
“으잉? 심재홍 씨?”
미국으로 보냈는데, 여기 스위스에 있다고?
삼복이가 잘못 알진 않았을 거다.
인천제철로 발령내기 전엔 유학생들 지원을 전적으로 맡았으니까 말이다.
띠리릭. 띠리릭.
「주소는 취리히, 빈터투어 28번가 슐츠 형제 기계공장(Sulzer Brothers Machine Works)이야.」
“뭐? 슐츠 공장에 있다고?”
어째, 내게도 산타클로스가 찾아온 것 같았다.
< 115 : 두 미치광이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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