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16)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16화(116/589)
< 116 : 천재의 작품 >
스위스 취리히, 빈터투어 28번가.
빈터투어라는 곳에 와보니 공단 지역이었다.
청정 스위스엔 굴뚝 산업이라곤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내 선입견이었나 보다.
슐츠 형제 기계공장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자니, 골목 어귀마다 쇠 깎을 때 나는 시큼한 냄새가 떠돌고 있었다.
누군가는 알프스 스키장에서 휴가를 즐기고, 누군가는 이렇게 쇠를 깎으며 생활을 이어간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사람 사는 거야 유럽이든 우리나라든 다를 게 있겠나.
여하튼 이런 풍경은 스위스에서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스위스는 이런 중공업에서 정밀 기계와 관광업으로 국가 중점 사업을 옮겨가거든.
디젤 엔진의 양대 산맥인 슐츠가 핀란드 회사인 바르질라사(社)로 인수되는 이유다.
역사와 전통의 슐츠는 70년대부터 독일 MAN사와 일본 미쓰비시에 가격 경쟁력에서 급격히 밀리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 공단이 사라지기 시작하니, 제아무리 슐츠라고 해도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던 거다.
중공업은 빵빵한 협력업체들이 받쳐줘야 경쟁력이 생기거든. 제아무리 잘나봐야 저 혼자 모든 부품을 값싸고 품질 좋게 만들 수는 없다.
「Sulzer Brothers Machine Works」
“드디어 찾았네.”
슐츠 형제 기계공장이라는 고풍스러운 이름과는 달리 높은 고층빌딩이었다.
외벽이 반질반질한 것을 보니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 건물이었다.
슐츠가 인수 합병된 또 다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스위스의 산업 정책이 급변했던 것도 있지만, 슐츠가 이때 사세 확장을 했었네.
이러다가 오일 쇼크를 거치며 나락에 빠졌던 모양이다.
“실례합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나는 건물 입구의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여기 미스터 심을 찾으러 왔습니다. JH 심이라고, 한국인입니다.”
“JH 심? 아! 그 아티스트 연수생?”
“응, 아티스트라고요?”
“저기 교육센터에 있습니다. 거기로 가보세요. 바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교육센터? 아, 고마워요.”
재홍 씨가 슐츠사의 교육센터에 있다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국제개발 협회 기술 연수생 교육센터」
빌딩 옆으로 돌아나가니, 허름한 건물이 나왔다.
나름 넓은 공터가 딸린 걸 보니 이 건물이 원래 슐츠 형제 공장이었던 모양이다.
오래된 건물을 교육센터로 재활용하는 거였다.
UN 마크가 새겨진 걸 보니, 저개발 국가의 인재들을 모아 교육해주는 국제 프로그램이었다.
슐츠사는 잠재 고객을 확충한다는 측면에서 이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딱히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교육센터를 지키는 경비원도 따로 없었기에 창문으로 건물 안을 살펴보았다.
강사로 보이는 이가 실습생 사이를 오가며 뭔가 말을 하고 있었고, 앳된 얼굴의 실습생들이 간혹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필기도 해가며 열심히 공작 기계를 다루고 있었다.
금발 머리, 갈색 머리, 빨간 머리들 사이로 검은 머리가 눈에 띄었다.
기계를 다루면서도 한 번씩 왼팔을 뻗고 돌리고 하는 걸 보니 심재홍 씨가 확실했다.
“열심이네, 재홍 씨.”
얼마나 기다렸을까?
어느 순간 실습이 끝났는지 와아아! 하는 환호성과 함께 실습생들이 마당으로 쏟아져나왔다.
분위기로 보니 오전 수업은 끝인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은 정원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고 있는데, 재홍 씨는 여전히 공작 기계 앞을 떠나지 않았다.
“재홍 씨!”
“어?”
내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던 재홍 씨가 그대로 얼어버렸다.
“이런, 무슨 말이든 해 봐요. 난 반가운데.”
“아, 사장님!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재홍 씨는 넘어질 듯 달려와 꾸벅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나는 그가 반가워 악수부터 했다.
손바닥에 딱딱한 굳은살이 느껴졌다.
“왼팔은 좀 어때요?”
“괜찮습니다. 이제 머리도 양손으로 감습니다.”
“혈색도 좋고 건강해 보여 다행이네요. 대체 스위스에서… 아니, 그보다 회사 지원금을 왜 돌려보낸 겁니까? 이삼복 상무가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저야 여기서 숙식에다 생활 지원금도 받는걸요. 그 돈으로 다른 직원도 지원하셔야죠.”
아니, 회사 걱정을 하는 거야?
어째 이런 사람은 안 해도 될 걱정도 한다.
“아니, 그건 재홍 씨를 지원하는 돈인데, 왜요.”
“저 같은 놈이 외국으로 나온 것만으로도 과분합니다. 그리고 여기 물가가 워낙 비싸서, 지원비를 조금씩만 모아도 한국에 가면 꽤 큰돈이 됩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아니, 그러니까 물가가 비싼데 조금이나마 그걸 모으려면 안 먹고 안 입어야 하잖아요, 재홍씨.
“아, 그래서 지원금을… 그건 그렇다 쳐도 여긴 어떻게 오게 된 거예요? UN 산하의 국제기구가 주관하는 프로그램 같은데요.”
“재수가 좋았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기계공작을 배울 곳을 찾던 중에, 미 공병 정비사 시험 감독관께서 이 연수 프로그램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시험 감독관이요? 뀌년에 있었던 그 시험 감독관 말인가요?”
“예. 제가 깎은 체스 말을 면접관에게 보여주라고 하길래, 그 말대로 했더니 뽑혀서 왔습니다.”
이야, 대단하네.
전 세계에서 몇 명을 선발하는데 그중 한 명으로 뽑혔다는 것 아닌가.
하긴 재홍 씨의 체스말을 보면 예술이지.
미 공병 시험 감독관은 물론, 여기 연수생을 뽑는 면접관도 그걸 보고 홀렸을 것이다.
“장합니다. 정말 잘했어요.”
“제가 한 건 별로 없습니다. 주영길 사원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주영길 교수, 아니, 사원이 도와줬어요?”
“예, 자기 일도 바쁠 텐데 지원 서류 작성부터 면접 통역까지 다 도움을 받았습니다.”
맞아, 주 교수는 원래 학생들에게 친절했다.
학점이 짜서 그렇지.
“동기끼리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여기서는 뭘 배웠어요? 한국에 돌아오면 써먹어야죠.”
나는 재홍 씨가 배운 것이 궁금했다.
기계 산업은 시기상조라 재홍 씨에게 충분한 교육시간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슐츠 사의 주 제품인 보일러와 디젤 엔진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 디젤 엔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어? 슐츠사(社)가 보일러도 만들었나?
디젤 엔진의 유명세에 가려져서 그렇지, 보일러 사업도 했었나 보네.
사세가 기울면서 보일러 사업을 접나 보네.
하긴, 슐츠사는 이리저리 찢겨 인수 합병되었으니 내가 몰랐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지금 당장은 디젤 엔진보다 보일러가 더 관심이 갔다.
내가 만들 유조선의 메인 엔진은 디젤 엔진이 아니라 보일러와 증기 터빈의 조합이니까 말이다.
이때의 유조선은 보일러에서 생성된 고온 고압의 증기로 증기 터빈을 돌려서 운행했다.
증기 터빈 엔진이 대형화가 쉽기도 하고, 유조선에서 보일러는 끈적한 벙커C유를 데워 연료로 태우거나, 뻑뻑한 원유를 파이프로 옮기기 위해 저장 탱크의 온도를 올리는 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21세기엔 일부 LNG 선박을 제외하곤 대부분 증기 터빈이 디젤 엔진으로 교체되지만, 21세기에도 발전소 플랜트나 각종 열처리 설비에 보일러가 쓰인다는 측면에선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디젤 엔진이라, 멋지네요. 여기선 어떻게 가르치던가요? 한국으로 돌아오면 재홍 씨가 후배들을 가르쳐야죠.”
“저 같은 놈이 후배들을요? 여하튼, 여기선 이론 수업과 실습을 병행하는데 선생님의 영어를 잘 알아듣진 못해서 그림을 그려준 걸 실습 때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형태로 공부했습니다.”
나름 여기 가르치는 양반이 친절했던 모양이다.
모식도를 그려가며 설명을 해줬군.
“그래서 계속 공작 기계에 달라붙어 있었군요.”
“머리가 안 되면 열심히라도 해야죠. 아직 미완성입니다만, 제 실습 과제를 보시겠습니까?”
“하하, 어디 한 번 봐요.”
재홍 씨의 작품이라니 안 볼 수 없지. 궁금한 마음에 그의 휴식 시간을 조금 뺏기로 했다.
“여기가 개인 실습 공간입니다.”
작은 공간에 선반과 각종 공구가 널려 있었다.
스위스답게 연수생에게도 개인 실습실을 제공하는 것 같았다. 사실 팀별로 제공되는 공간이겠지만, 재홍 씨처럼 따로 시간을 내서 실습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아, 이게 재홍 씨 작품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한쪽 구석에 천으로 덮어놓은 걸 벗겼다.
재봉틀만 한 크기라 뭔가 했는데…
“헉…”
눈앞의 작품을 보자 말문이 막혔다.
살다 보면 간혹 천재적인 재능과 터무니없는 노력이 어우러진 뭔가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게 글이든, 그림이든 혹은 기계든… 우린 그걸 걸작이라고 부른다.
나는 예술품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최고의 작품을 마주했다.
눈앞에 수백분의 일로 축소해놓은 선박용 디젤 엔진이 있었다.
응축된 시간이 보이는 것 같은 정교한 커팅과 완벽한 마감이었다.
“정확하게 측정해서 축소한다고 했는데 처음 몇 번만 움직이다가 멈춰버리더라고요. 아직 고칠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연수가 끝날 때까지 완성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동작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엔진을 선형적으로 축소하면 피스톤에 가해지는 폭발력은 제곱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폭발력 대비 피스톤이 너무 무거운 거다.
“하아아…”
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설계도도 없이 이런 정교한 제품을 만들려면 얼마만 한 시간이 들었을까.
부품을 뜯어서 측정하고, 깎고, 조립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교육받는 와중에 이런 걸 만들어보려면 잠이라도 제대로 잤을까 싶었다.
“아이고, 이걸… 어떻게…”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이런 사람을 직원으로 두고 관광이나 하고 돌아다녔네. 내 동료는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인데, 나는 벌써 부자가 된 것처럼 들떠 있었다.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동작도 안 하는 걸 괜히 보여드려서.”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래서 한숨 쉰 거 아닙니다. 감탄해서 그래요. 진심이에요.”
나는 차마 재홍 씨 앞에서 울 수가 없어서, 괜히 말이 길어졌다.
“사장님… 그런데 왜…표정이…”
“너무 대단해서요. 타국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싶어서요.”
나는 연신 심호흡을 하며 재홍 씨의 손등을 두드렸다.
“재홍 씨, 이거 나 말고 누구에게 보여준 적 있어요?”
“아니요. 사장님이 처음 보시는 겁니다. 아직 미완성인 데다 과제도 아니고 해서요.”
천만다행이었다.
“재홍 씨는 지금 엄청난 일을 한 거예요. 이거 깎을 때 치수 적으면서 작업했죠? 어딨어요?”
“예, 여기 있습니다.”
어이없게도 재홍 씨가 공용 책상 서랍에서 공책을 꺼냈다.
너덧 권의 공책에 빼곡하게 각종 부품의 그림과 치수가 적혀 있었다.
더 대단한 것은 조립하다가 잘 안 된 경우였던지 일부 부품에 대해서 여러 개를 측정해 평균값을 구해놨다.
‘공차마저 조사한 격이잖아.’
이 모형을 다시 확대하고, 최적 공차를 구하고, 나의 21세기 지식까지 더 한다면 국산 디젤 엔진을 만들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울컥하는 마음에 손이 덜덜덜 떨렸다.
“사장님, 제가 뭔가 잘못한 겁니까? 전 단지 사장님이 메콩강에서 엔진을 건져 기뻐하셨다는 소문에… 제 딴에 도우려고… 죄송합니다.”
지금 내 표정이 괜한 오해를 일으키나 보다.
“잘못한 거 없다니까요. 그보다, 이 연수… 언제 끝나요?”
“올해로 끝납니다.”
한 달 남짓 남았다. 딱 좋았다.
“이 돈 받아요. 연수 끝나면 바로 귀국해요. 여기서 사 오고 싶은 책이든 기계든 공구든 뭐든 사서 와요.”
나는 지폐 뭉치를 꺼내 재홍씨에게 건넸다.
“헉, 이런 큰돈을… 사장님, 그럼 제 유학은 이대로 끝인가요?”
“아뇨, 시작이에요. 일단 고국으로 돌아와서 내 일부터 돕고, 일이 안정되면 정식으로 학위를 따요. 내가 도울 테니까요.”
“저 같은 놈이 무슨 학위까지요. 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는데요.”
“재홍 씨가 안 따면 누가 따요? 세상에 배운 사람은 많겠지만, 재홍 씨보다 더 노력한 사람은 찾기 힘들 겁니다.”
최선을 다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 적당히 하거나, 잘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리 보면 최선의 반대는 최악이 아니라 적당히 한다는 말인 것 같다.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는 게 적당히 좀 하라는 말이 안 통하는 민족이라서 그랬던 게 아닐까.
“설마요…”
“약속할게요. 내가 재홍 씨는 꼭 부자 되게 해줄게요. 고생 많았어요.”
“……”
그제야 재홍 씨가 이 일의 크기를 짐작하는 것 같았다.
“여기 이 노트, 다른 사람이 보면 큰일이니 내가 가져가죠. 이 모형도 부품으로 뜯어서 회사로 보내줘요. 회사에서 재조립합시다.”
“예, 사장님. 그럼 제가 돌아가면 사장님 옆에서 엔진 깎을 수 있는 겁니까?”
“당장은 아니겠지만, 조만간 그리될 겁니다.”
“조만간! 네 알겠습니다.”
당장 메인 엔진을 국산 디젤 엔진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몇 년만 고생하면 선박 발전기용 보조 엔진 정도는 충분히 국산화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차근차근 출력을 높이는 연구를 해나가다 보면 머지않아 메인 엔진도 국산으로 대체 가능하리라.
“내가 여기 들른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혹시나 해서 말이죠.”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한국에서 봐요. 떡국은 같이 먹읍시다.”
“예, 사장님.”
엔진을 3D로 베끼는 행위라 혹시나 해서 재홍 씨에게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고 교육센터를 빠져나왔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지금 내 곁에 천재가 두 명이나 있다.
한 명은 황 영감님, 또 한 명은 심재홍씨.
단언컨대 둘은 천재였다.
***
뜻밖의 행운에 이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슐츠 디젤 엔진의 도면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포괄적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가야 해.”
나는 심호흡을 하고 본관으로 들어섰다.
나에 대해 알려진 게 없는 지금이 라이선스를 얻기에 더 쉬울 수도 있겠다.
나조차 슐츠와 라이선스를 맺을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슐츠사(社) 사장은 어련하겠나?
보일러를 핑계로 접근하면, 슐츠사 사장으로선 아무것도 모르는 후진국 애송이가 제 발로 손바닥 위로 기어 올라왔다고 여길 것이다.
마침 리바노스에게 받은 계약금도 있지 않나.
정문 쪽을 바라보니, 마침 본관 안내 데스크도 교대 시간인 것 같았다.
내게 재홍 씨 위치를 알려준 직원이 막 손을 흔들고 문을 나서고 있었다.
하늘이 나를 돕는 것 같았다.
어서 찔러보라고 말이다.
< 116 : 천재의 작품 > 끝
ⓒ 푸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