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19)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19화(119/589)
< 119 : 갑시다, 울산으로! >
“이대로 공지하세요.”
나는 최종 결재한 서류를 빌 베인에게 건넸다.
결재 서류에는 승진 인사는 물론, 비서실을 포함한 계열사 조직 개편안이 담겨 있었다.
“드디어 사인하셨군요. 첫 번째 일부터 만만치 않네요.”
“그룹의 조직 체계를 잡는 일이니 당연하죠. 수고 많았습니다.”
조직에 대한 서로의 이견을 좁히느라 시간이 꽤 들었다. 나로서도 좋은 경험이었다.
베인이 조직을 바라보는 시각은 확실히 좀 더 전문적이었다.
난 당연히 업종별로 계열사를 세울 생각이었으나 베인이 대세 건설과 대세 실업을 분리하는 것에 크게 반대했다.
대세 실업과 대세 건설을 함께 묶어 대세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룹 전체에서 가장 자금 회전율이 좋은 대세 실업을 금융사처럼 이용해서, 대세 건설의 자금 지원을 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러면 해외건설 수주전에서 자금 조달에 따른 수고도 덜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건설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금 조달이다. 괜히 이놈 저놈 끌어들여 내 파이를 나눠줄 필요 없이, 내 손으로 착공비만이라도 조달한다면 순순히 돈주머니를 풀 투자자들은 수두룩했다.
“그건 그렇고, 대세 인터내셔널을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한 겁니까?”
“최근 큰 건설사들이 종합무역상사와 합병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입니다. 상사가 국제 수주를 따내고, 내부 건설 사업부에 프로젝트를 주면서 자금 조달부터 보증까지 일괄적으로 담당하는 것이죠. 공사를 맡기는 고객 쪽에서도 안심이 되니 원만한 일 진행에도 도움이 됩니다.”
고객도 좋아할 것은 당연하다.
시공사가 자금 조달마저 알아서 하니, 공사가 멈추면 시공사가 망하는 것이라 목숨 걸고 완공할 거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더욱이 간접 부문 인건비도 아끼고 말이죠?”
“예, 그렇습니다. 건설사 직원보다는 아무래도 상사직원들이 돈 관리를 잘하는 법이니까요.”
컨설팅 회사 출신답게 두 회사의 간접 부문을 통합해 조직의 효율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었다.
법인을 따로 세웠을 때 생길 수 있는 내부 거래니, 일감 몰아주기니, 편법 자금운영이니 하는 여러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테니 여러 가지로 좋은 아이디어였다.
“조직 개편안과 승진 발표는 1월 4일 자로 실행하고, 인원 재배치는 3월까지 완료해주십시오.”
“예, 사장님.”
“나는 이후 조선소 건설에 매진할 테니, 청와대와 기공식 일정도 조율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삼복이가 요르단으로 간 후론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특히 많았는데 이렇게 일을 나눌 수 있으니 한결 어깨가 가벼워졌다.
대세 그룹은 대세 실업과 대세 건설을 합친 대세 인터내셔널을 지주회사로 두고, 대세 화학, 대세 목재, 대세 해운, 인천제철, 대세 조선, 그리고 대세 종합기술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해외 지사도 포틀랜드, 뀌년, 싱가포르, 호주, 요르단, 영국 등등해서 총 6군데를 운영하기로 했다.
대세 종합기술원은 그룹 연구소인데, 황 영감님이 소장직을 수락하셨다. 그동안 아들이 잘 되는 거로 충분하다며 직함이든 감투든 한사코 사양해 왔는데 후학 양성에는 뜻이 있으셨던 모양이다.
‘성함이 황 일자, 갑자셨어.’
황일갑, 성함을 이제야 알았다.
이제 황 영감님이 아니라, 황 이사님이라고 불러드려야겠군.
배우고 싶어도 길이 없을 때의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나이 어린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진 분이니 잘 해주실 거다. 심재홍 씨 같은 후배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잘 이끌어 주실 분이다.
“그리고 올해는 올림픽도 있으니, 나이크와의 법률 계약을 스포츠용품 전체를 커버할 수 있도록 정비하십시오. 법무팀을 꾸며 비서실 직속으로 두도록 하고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충원을 부탁드리려 했습니다.”
이미 비서실을 확충할 생각을 하고 있었네.
베인이 조직을 파악하고 각 구성원을 평가하는 데는 전문가이니, 비서실 인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김복순 과장을 그룹 총무 차장으로 특진시키자는 얘기를 나보다 먼저 꺼낼 정도니까 말이다.
“난 부산으로 가겠습니다. 일이 있으면 대세 조선으로 연락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선박 인도 시점이 2년 6개월밖에 남지 않아 마음이 급했다. 킹스톤 조선소에서 받은 리벳용 설계도를 용접용 설계도로 바꾸면서 동시에 울산에선 조선소 도크를 파야 했다.
나는 서둘러 부산 영도의 대세 조선으로 향했다.
***
다음날,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영도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 앞에 변영식 부장과 단충기 차장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상기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승진 소식을 들었을 테니 당연했다.
“변 부장님, 단 차장님. 승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두 명의 간부를 필두로 과장과 주임 승진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한쪽에는 설계실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이중문을 만들어 정보 보안 관리를 하고 있었다.
“설계도 수정은 잘 되고 있습니까?”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수정하고 있습니다.”
보여주는 도면이 꽤 근사했다.
리벳 공법의 도면을 용접 공법으로 바꾸는 중이었다.
무동력 벌크선이지만 용접 공법으로 블록을 붙이는 작업을 해봤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어제부로 특진시킨 이들은 대세 조선의 최고 베테랑답게 일 처리가 똑 부러졌다.
한국조선공사 시절 부정부패와 뇌물에 얽힌 이들을 죄다 자르고 나니, 베테랑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몇 남지 않아 불안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진흙탕 속에서 진주로 남아 있던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업무 성과마저 탁월했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이 변영식 부장과 단충기 차장이었다. 역시 회사든 사회든 정신이 올바른 사람들의 가슴속엔 통솔력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뽑아 올리면 조직 문화는 물론 회사도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내가 말했던 생산 설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군요.”
원래 조선소의 설계는 선주와 선급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기본 설계를 하고, 온갖 장비 배치를 고려한 상세 설계를 거쳐, 야드에서 가공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생산 설계까지 순차적으로 작성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만들어야 할 유조선은 원래부터 특이 스펙이 별로 없는 선박인 데다, 선주를 비롯해 선급마저도 우리 대세 조선이 킹스톤 설계를 그대로 실현하는 것조차 힘겨워할 거라고 여기고 있다.
즉, 우리식으로 블록을 분리해 생산 설계를 하면 되는 거다.
“예, 말씀하신 대로 각 블록 중량이 250톤 미만이 되도록 분리했습니다. 인천제철 후판 규격을 고려해 최대폭을 4.5m 이내로 맞췄고 말입니다.”
대형 선박 건조는 일종의 레고 블록 맞추기다.
선체를 조각조각 내서 용접하면서 점차 크기를 키워가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 3000톤에 육박하는 메가 블록을 맞춰가며 조립하지만, 현재 60년대 조선소에선 메가 블록은커녕 250톤짜리 블록도 겨우 옮길 정도다.
물론 초짜 대세 조선에선 그마저도 쉽지 않다.
생산 설계를 제대로 하려면 블록을 탑재할 때 무게 중심을 고려해야 하고, 공정간 운반 효율성, 안전, 변형방지, 선행 의장(배관 장비), 턴 오버(뒤집기) 횟수를 줄여야 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정말 머리가 빠개지는 일의 반복이다.
“여기 선수 부분 블록을 잘못 잘랐군요. 이렇게 갖다 붙이다가 쓰러지면 큰일 납니다. 기역자(ㄱ) 모양으로 바꾸십시오.”
“아, 그리하면 더 안전하겠군요.”
“실제로 모형을 만들어서 쌓아보십시오. 안전하게 쌓는 게 최우선입니다.”
“예,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250톤짜리 블록을 만들어서 울산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 방법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호주로 벌크선 끌고 갔듯이 바지선 위에 얹어서 끌고 갑시다. 해상 크레인으로 들어서 옮기면 됩니다.”
“해상 크레인으로요?”
“서독에 주문했으니 안심하세요. 공정 순서도를 작성해줄 테니, 자세한 건 그때 논의합시다.”
솔직히 해상 크레인 정도는 직접 만들어도 되지만, 시간이 없었다.
장차 대세 조선이 대세 중공업으로 확장될 때나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렇게 다 방법이 있는데 괜히 혼자 걱정을 했네요. 이거 원, 월급 받으면서 배우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설계를 총괄하고 있는 변영식 부장은 나름 그 문제로 걱정을 했었던 모양이다. 내 대답에 표정이 밝아졌다. 이 양반의 장점이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그 즉시 묻고 메모를 하며 배워나갔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자세만 잡는 이가 득세하는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는 척을 하기 위해서는 진짜 아는 사람을 어떻게든 찍어 눌러야 하니까 말이다.
내 회사에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보다 덴마크로 연수보낼 이들은 정했습니까?”
나는 우리 기술자들을 덴마크로 6개월간 연수보내기로 했다.
초반에야 어쩔 수 없이 외국에서 기술 인력을 채용해야겠지만, 기술 연수를 마치고 오면 그들을 핵심 실무진으로 활용할 것이다.
“예. 말씀하신 대로 설계, 선각, 의장, 건조, 품질관리, 자재구매 부분으로 나누어 총 60명을 뽑았습니다.”
변 부장은 그리 말하며 사무실 복도에 줄줄이 늘어선 이들은 가리켰다.
복도에 왜 사람들이 서 있나 싶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알았다.
“하하, 다들 왜 여기에 있어요? 서로 머리를 맞대고 외국에서 무슨 기술을 뺏어올지 논의해야죠.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겁니다. 현장으로 가서 뭘 배워오면 좋을지 조사부터 해요. 어서요.”
“예, 알겠습니다.”
내 말에 복도에 서 있던 직원들이 삽시간에 야드로 달려갔다.
현장에 간다고 해도 뭘 조사해야 할지 바로 파악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고민하고 연수를 가느냐 그냥 가느냐는 천지 차이다.
“변 부장, 매주 업무 성과 점검하고 연수 노트가 불성실한 사람은 즉시 교체해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이 킹스톤 조선소에서 설계도를 받았는데 연수는 왜 덴마크 조선소에서 받는지 궁금해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덴마크가 우리와 같은 도크 방식으로 배를 만드니까요. 영국은 도크 방식이 아닙니다.”
“아, 그렇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짧게 말했지만 실은 킹스톤에서 영국병이 옮아올까 걱정해서다.
원래 역사에서 현산이 했던 큰 실수는 영국 킹스톤 조선소로 직원 연수를 보냈다는 것이다.
영국 조선소는 도크 방식이 아닌 활주대(sliding way) 방식을 고집했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고도로 숙련된 베테랑 중심으로 작업이 이뤄졌다는 게 더욱 큰 문제였다.
어느 수필에 등장한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건조된 선박의 최종 품질은 좋았을지 모르나, 선박 인도 시기가 늦어지고 기술 개발조차 베테랑들의 개인 능력에만 의존하게 되어 조선소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선진 조선소는 블록건조공법을 도입해 선박 건조 작업을 세분화, 단순화, 표준화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때 사람들은 생산성 저하로 영국 경제가 몰락하는 현상만 보고 단순히 영국병이라고 퉁치고 마는데, 내가 볼 땐 시스템적인 문제였다.
무엇보다 내가 킹스톤 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통일된 작업복을 입은 이들조차 없었다.
그런 회사는 원가나 생산성 개념이 없기 마련이다. 설계도만 받아오고, 그 문화는 멀리해야 한다.
결국, 현산은 영국으로 연수를 보낸 게 실수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일본 가와사키 중공업과 기술합작을 통해 생산 설계 기법을 배우게 된다.
난 그걸 알기에 덴마크로 연수를 보내는 것이다.
결과를 알면서도 시행착오를 반복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리고 애플도어사에 기술자를 파견해달라고 할 테니, 사내에 기능공훈련소를 만드십시오. 6개월 과정으로 가스절단, 배관, 판금, 전기관리, 라인히팅 등을 가르치게 할 테니까요.”
여기 부산 영도 조선소는 울산 조선소가 제대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신입사원 교육과 수리 전용 조선소로 활용할 생각이다.
여차하면 오일 쇼크때 이곳을 처분해 여유 자금을 확보하는 것까지 생각해야 한다.
“신입기능공을 채용하시려는 겁니까?”
“그럼요. 지금 조선소 기능공을 다 합쳐봐야 고작 1000여 명 정도이지 않습니까? 토목공사를 제외하고 조선 기능공만 4000명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여기 영도의 인력을 차차 울산으로 이관하고도 신입을 꽤 뽑아야 할 겁니다. 훈련소 성적 우수자가 우선 대상입니다.”
회사도 커졌으니, 전포동에서 쳤던 황금종을 대신해 사내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향후 몇 년간 3000여 명은 뽑아야 조선소에 필요한 인력을 겨우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맡겨 주십시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변 부장은 책임감이 막중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던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앞으로도 수고해 주세요. 여긴 변 부장이 맡아서 교육과 블록 제작에 매진해 주세요. 나는 울산에서 조선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테니까요.”
“예, 사장님.”
다소 어이없지만, 조선소를 지어야 하는데 완성된 조선소 설계도마저 없는 상황이다.
하역 안벽부터 조립 공장에다 도크까지 기본 설계도부터 그리고, 현장에서는 그에 맞춰 시공 상세도(Shop drawing)를 그려가며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한겨울에 토목공사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지만, 유조선 인도 시기를 고려하면 별수가 없다.
“울산 갈 사람은 다들 모였습니까?”
“야드에 모두 모여 진출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세 해운에서 배를 내어줘서 중장비도 모두 실어뒀습니다.”
“갑시다.”
60년대는 사회 전체가 군대식이라 회사에서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진출식이란 걸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 하니, 이 시대에 맞는 행동을 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와아아아아!”
내가 단상에 오르니, 직원들이 두 팔을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망해가던 조선소를 살린 데다 더 큰 조선소를 만든다니 환호할 만할 것이다.
과장이나 주임으로 승진한 이들이 꽤 있어서 그 열기에 겨울바람이 후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직원 여러분, 196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와아아아아!”
“지금, 이 시각! 대세 조선은 새로 태어난 것이며, 그 선봉에 여러분과 함께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와아아아아!”
“약속드릴 것은 딱 한 가지! 우리는 꼭 부자가 될 겁니다. 외치십시오! 우린 부자가 될 거다!”
“우린 부자가 될 거다아아!!!!!”
언제나 아드레날린이 솟아나는 외침이었다.
“갑시다. 울산으로!”
“울산으로!”
나는 직원들을 이끌고 야드 안벽에 접안된 배에 올랐다.
< 119 : 갑시다, 울산으로!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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