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2)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2화(12/589)
< 012 : 몰려오는 사람들 >
“내가 IDA 차관 관계자라는 걸 알고서 접근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편안한 눈빛으로 그를 마주했다.
사업가라면 돈 되는 일엔 진심을 다해야 한다.
내가 범법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
“휴우… 규정상 당장 미스터 우를 멀리해야겠지만, 그러기엔 궁금함이 더 크군요. 어떻게 알았죠? 난 세계은행 사무관으로 IDA(국제개발협회) 소속도, 미 정부 소속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로선 당연한 추론이었습니다. 세계은행 사무관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국제개발협회(IDA), 국제금융공사(IFC), 국제투자보증(MIGA) 어디다 갖다 놔도 되는 자리 아닙니까?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IDA 차관 담당을 따로 파견하진 않을 테니, 결국 차관 담당은 데이비드님이죠.”
“많은 것을 알고 계시는군요. 허면 세계은행이 IDA 차관을 반대하는 것도 아시겠군요. 한국에 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해봤자, 미국에 아무런 이득이 없을 거라고 말이지요.”
“방금 전 베트남 전쟁으로 우리 한국 제품이 필요하게 될 거라는데 동의하시지 않으셨나요?”
“저는 동의합니다만, 세계은행 본부가 동의할지는 모르겠군요.”
“세계은행 본부를 왜 신경 쓰시죠? 이미 그쪽은 데이비드님에게 별 관심이 없지 않나요? 제가 데이비드님이라면 미 정부에 개인 명의로 인플레이션 위험 보고서를 제출하겠습니다.”
“!!!!!”
“서두르셔야 될걸요? 미 정부가 열대 밀림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데이비드님의 보고서는 의미가 없어질 테니까요.”
“헉!!!!”
학자에겐 업적이란 명예이자 돈이다.
절대 놓칠 수 없지.
“데이비드님의 의견이 옳다는 것은 울산 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자마자 단박에 증명될 겁니다. 주저하지 마십시오.”
“단박에 증명되다니요. 공단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공사기간만 3년 이상 걸리고, 경제 효과를 체감하려면 5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한국은 안 그렇죠. 한국인은 속도전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민족임을 아시지 않습니까.”
“속도전이야 그렇지만 기반 인프라도 없는데…”
기반 인프라가 없긴 왜 없나?
즉각적인 경기 체감은 충분히 가능하다.
“울산엔 이미 미국 정유 회사인 갈프사(社)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 정유소에서 원료 얻고, 각 공장에서 쓰고 남은 잉여유분(분해가스)은 다시 파이프로 정유사로 보내면 되죠. 원료 수급과 부산물 처리 문제가 아주 간단해지는 겁니다.”
“그… 그런 아이디어가…”
아저씨, 플랜트의 기본입니다.
솔직히 일부 시설만 가동해도 합섬 섬유의 원료가 미친 듯이 쏟아질 것이다.
나일론이든 폴리에스테르건 마구 찍어서 미국에 수출할 수 있다.
“IDA차관 10만 불만 융통해주신다면 올해 안으로 증명해드리죠. 미국 수출만으로 100만불! 어떻습니까?”
이 양반은 우리나라에 1.5억불에 달하는 IDA 차관을 다리놔준 핵심 인물이었다.
10만 불 정도면 껌이지 않을까?
“… 허풍이 심하시군요.”
“허풍? 제가 허풍을 칠 이유가 뭐죠? 고작 10만 불에 말입니다.”
생각해 봐요. 여태 선견지명을 뽐내다가 말도 안 되는 허풍을 부릴 이유가 없지 않나.
“… 10만 달러라… 그래요, 그 정도는 투자해야겠지요. 당신을 관찰하는 비용이라면 말이죠.”
데이비드는 아예 10만 불은 내 개인에게 투자한다고 정의해버렸다.
나는 차분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 가지만 약속해줄 수 있습니까?”
“말씀하시죠.”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도 1년에 최소 한번은 만나겠다고 약속해주세요. 그럼 10만 달러를 융통해 드리죠. IDA 차관 항목 중에 한국 현지 컨설팅 명목입니다. 어떻습니까?”
“!!! 당연히 해드려야죠.”
데이비드는 나와 인맥을 맺기로 작정한 거다.
내게도 나쁘진 않았다.
“계약서에 서명하면 바로 수표를 끊어드리죠.”
데이비드가 캐비닛을 뒤져 계약서를 가져왔다.
미 공병단이 국내 건설사와 수의 계약을 맺을 때 쓰는 계약서 포맷이었다.
계약 주체를 미 공병단에서 세계은행 한국 지점으로 바꾸니 훌륭한 계약서가 되었다.
“좋습니다.”
나는 계약서에 대세실업 우찬수라고 서명했다.
쓱쓱.
서명을 마치자 데이비드가 대번에 품에서 수표책을 꺼내더니 10만 불짜리 수표를 끊어 주었다.
60년대는 이런 계약도 가능하구나 싶었다.
보름은 족히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말이다.
“종로에 가시면 미국 맨해튼 은행의 서울지점이 있을 겁니다. 수표를 건네면 현금을 내줄 겁니다.”
“계좌는 IDA 차관 명목이죠?”
“당연합니다. 필요하시면 맨해튼 은행 지점에 증명서를 요청하세요.”
“감사합니다.”
10만 불짜리 수표라… 지금 환율론 2700만원이지만, 21세기 기준으론 27억 수준의 거금이었다.
게다가 추가로 2700만원을 더 융자 받을 수 있다.
외자(外資)를 융통하면 같은 비율로 내자(內資)를 대출 받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 계산하니 그제야 심장이 쿵쾅거렸다.
“연말까지 미국 수출 100만 달러. 꼭 성공하시리라 믿겠습니다.”
내 실적이 50만 불만 돌파해도, 이 양반 명성은 하늘을 찌르겠지. 미국의 의류 물가가 안정된 그래프를 그릴 테니까 말이지.
“기대하십시오. 데이비드님의 커리어 하이를 찍어드리죠.”
“하하하하하!”
내 대답이 맘에 들었던지 데이비드는 내 손을 맞잡고 한참을 흔들었다.
***
산업은행 종로 본사.
“수고하셨습니다.”
“아이고, 살펴 가십시오. 사장님.”
맨해튼 은행에서 달러를 찾아 산업 은행에 입금하니 완전 VIP 대접이었다.
“내일 그 명함 주소로 은행 직원을 보내주시는 것 잊지 마십시오. 공장 인수 바로 할 겁니다.”
“아유, 걱정 마십시오.”
2700만원을 추가로 대출해주는 것은 물론, 성수동 공장 인수를 위해 직원도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자그마치 은행 잔고가 5400만원이나 찍힌 통장을 들고 성수동으로 향했다.
삼복에게 빌려오겠다며 큰 소리 쳤던 6천만 원에서 조금 모자라지만 이게 어딘가?
3천만 원으로 공장을 인수하고 나머지 2400만원이면 원료도 사오고 기계도 수리할 수 있다.
그러면 원단 뽑는 건 시간문제지.
“택시! 택시!”
“예, 손님.”
“성수 공단으로 가주세요. 공단 북쪽 골목에 수일합섬이라는 공장이 있습니다.”
“예, 손님.”
삼복이한테 한시라도 빨리 자랑하고 싶어 택시를 탔다.
‘녀석, 깜짝 놀라겠지?’
삼복이가 어찌 반응할지 상상하며 성수동으로 향했다.
‘어?’
공장 근처로 다다랐는데, 즐거운 마음과 달리 그 주변이 난리 법석이었다.
“사장님, 어디 계세요!”
“어디 계시냐고요.”
“아아, 다들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우찬수 사장님은 오늘 여기 안계십니다. 돌아가세요.”
“당신이나 돌아가세요. 난 여기 사장 얼굴을 봐야 한다고요.”
“아, 헛소문이라니까요. 다들 돌아가시라고요.”
“당신이 뭔데 돌아가라 마라야. 비켜요.”
삼복이 근처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 비키라고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삼복아.”
“아씨, 이제 오면 어떻게 해!”
삼복이가 날 발견하더니 펑펑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냐니까!”
“우찬수 사장님이다!”
“사장님!!!!”
사람들이 새까맣게 내게 달려왔다.
**
“어어, 이게 무슨… 왜들 이러시는 겁니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니 결국 나도 벽으로 몰렸다.
“사장님, 일할 사람 뽑으신다면서요. 월급은 15000원이고요.”
“그렇긴 한데…”
“찬수 네가 그랬다며, 반장들에게 일 잘하는 사람 있으면 데려오라고.”
삼복이가 인파를 헤치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거짓말 안보태고 못해도 수백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데, 이들이 다 우리 공장에 지원한 거야?
월급 15000원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했다고?
“저 일 잘합니다. 성동공고 1등이었습니다.”
“저는 용산공고 1등이었습니다.”
“저는 덕수상고 1등이었습니다. 저기 마산공고 삼총사보다 제가 더 공부 잘했습니다.”
마산공고 3총사라면 우리 회사 성구, 용구, 동구 반장을 가리키는 말 같았다.
구 반장들은 나름 공고 출신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모양인데?
그들의 말 한마디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몰려오다니 말이다.
연신 구 반장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줄서요. 줄!’을 반복하고 있었다.
“여공은 안 뽑으시나요? 저도 일 잘해요. 서울여상 1등이었어요.”
“저는 동수여상 1등요. 제발 뽑아주세요.”
“전 효성여고 1등 입니다. 뽑아주시면 정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공고생들만 몰려든 것이 아니었다.
여공으로 뽑아달라며 앳된 학생들도 수두룩하니 몰려들었다.
듣자하니 하나같이 명문 학교였다.
6~70년대는 나름 명문 공고(工高)와 명문 상고(商高)가 있었다.
공부는 잘했어도 학비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포기한 수재들이 수두룩했을 때니까.
이때는 중학교, 고등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는 때였다.
인문계 고등학교 못지않게 성동공고, 용산공고, 덕수상고, 서울여상, 동수여상 같은 일명 명문(名門) 공고와 상고는 경쟁률이 엄청나서 합격하면 부모님이 몇날 며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닐 정도였다.
“으악, 제발 그만 밀어요.”
삼복이와 나는 인파에 밀려 자의반 타의반 공장 대문 뒤쪽으로 밀려들어갔다.
“삼복아, 여기 몇 명 뽑아야 하냐?”
“무슨 소리야? 몇 명 뽑다니?”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이 참에 신입사원 채용하지 뭐.
“공장 돌리려면 당연히 직원을 뽑아야지.”
“야이, 제 정신이냐? 수중에 돈 한 푼… 젠장!”
삼복이는 말을 하다 말았다.
수중에 돈 한 푼도 없는 놈이 뭔 공장을 돌린다 그러냐는 말을 삼켰으리라.
“돈 걱정은 말고, 쨔샤.”
“너… 너…”
내가 통장을 펼쳐 잔고 액수를 보여주자, 삼복이는 넋 나간 놈처럼 어버버거렸다.
“내가 돈 마련해 온다고 했지? 이제 말해봐. 공장 돌리려면 몇 명이 필요하데?”
“반장이 3명, 여공은 20명이 필요하다는데?”
응? 뭐야? 기존 구 반장들을 합치면 반장 6명에, 여공이 20명이란 소리잖아. 숫자가 이상한데?
4조 3교대를 하면 각 교대근무(Shift)당 반장이 1.5명에 작업자가 5명인데?
반장들의 숫자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데다, 작업자 숫자가 너무 작았다.
“응? 뭔 숫자가 그래?”
“뭔 소리야? 그 정도는 뽑아야 주야간 교대 근무를 시키지. 거기서 더 줄이면 어째?”
“뭔 소리야? 그 숫자로 어떻게 3교대를 돌려? 공장은 24시간 돌려야 하는 거야. 그래야 수주 물량을 감당하지.”
“3교대? 찬수 너, 사업 시작한다고 사람까지 변하면 안 되는 거야… 아무리 돈이 좋아도…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한데… 잔업 수당도 안주겠다는 거야? 너 그렇게 악독한 놈이었어?”
뭐야? 뭔 반응이 이래?
삼복이 녀석이 눈에 핏줄까지 세우며 내게 이마를 들이밀었다.
잔업이 생긴다면 당연 잔업 수당을 줘야겠지.
헌데, 제조업 생산부서에서의 잔업이란 작업자가 몸이 안 좋아서 출근을 못했다거나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나 발생하는 거다.
효율적인 공장 운영을 위해선 그런 상황은 미연에 방지해야 하기에, 각 근무조당 1명 정도는 여유 인원을 두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여유 인원은 평소엔 품질 관리를 하다가, 비상 상황에서 작업자 역할도 할 줄 아는 베테랑이어야 하기에 각 근무조의 조장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삼복이의 반응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직원들에게 8시간 근무를 시키는 것에 대해 악독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설마, 너 공장을 주야간 12시간 2교대로 돌릴 생각을 하는 거냐?”
“당연하지. 그래야 근무자들이 4시간 잔업 수당에 두 달에 한번은 야간 수당도 챙겨갈 거 아냐.”
“… 하루에 4시간 잔업 수당? 그래서, 저렇게 몰려든 거야?”
“당연하지. 네가 잔업 수당을 1.5배로 챙겨주기로 약속했다며? 설마, 너… 그냥 해본 소리였어?”
미친… 아무리 잔업 수당이 짭짤하다지만 사람이 무쇠도 아니고 주야간 2교대로 어찌 돌려?
아니, 얼마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하지만 계속 그랬다간 몸이 버티질 못한다.
공사기간 단축이 곧 돈인 건설현장에서는 어쩔 수없이 12시간 주야 교대로 운영할 때가 간혹 있는데, 그마저도 두 달을 넘기지 않는다.
그 이상 길어지면 작업자의 피로가 누적되어 무조건 인명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잔업 수당을 제대로 챙겨주겠다는 말에 이리 많은 이들이 몰려들다니, 60년대는 60년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후, 알았다. 알았어. 이제야 삼복이 네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했어.”
“알겠어? 그럼, 원래대로 뽑는 거다.”
“아니, 더 뽑아. 총 인원이 반장 12명에 작업자 48명이 되도록 말이야.”
“헉! 뭐야 2배수가 넘게 뽑아?”
“일은 계속 늘어날 거야. 미리 뽑아놔야 한꺼번에 교육이 되지.”
3교대로 돌리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이득이라는 건 차차 보여주면 될 일이고, 일단 인원부터 뽑아야 했다.
인원은 12명의 배수가 되는 것이 최선이다.
3개조로 나누든, 4개조로 나누든 조직을 구성할 때 아주 유리한 숫자라서 그렇다.
“교육이라고?”
“그래, 교육! 우리 사람은 우리가 키워야지.”
이렇게 뽑아도 우리 공장만으론 물량을 쳐내지 못할 테고, 하청 업체에 물량을 뿌려야 할 것이다.
처음에야 하청 업체를 이용하는 게 효율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 공장을 키워놓지 않으면 하청업체의 생산성과 품질에 의지하게 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결국 최종 제품 품질은 떨어지고, 시장에서 품질 경쟁을 할 수 없으니 더 싸구려 제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를 찾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대세 그룹도 그런 악순환에 빠져 초일류가 되지 못했다. 전생의 절반을 하청업체로 살았던 내가 그따위 악순환을 반복할 순 없다.
내가 우찬수로 다시 태어난 이상, 이번 생엔 제대로 된 사업을 할 거다. 내 사람을 키울 거다.
“이야, 너 꿈이 크구나.”
“쓸데없는 농담 그만하고, 책상이나 옮기자. 너랑 나랑 면접 위원이야.”
“응? 면접 위원? 내가?”
대세 실업의 첫 번째 신입사원 면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012 : 몰려오는 사람들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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