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20)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20화(120/589)
< 120 : 철과 바다의 왕국 >
1월 중순,
“자재를 여기다 놓으면 어째! 야적장으로 옮겨야지! 이쪽으로 배 들어온단 말이야!”
“옙!”
“정신 차려!”
현장은 매섭게 돌아갔다.
정말이지 울산 항구를 미리 짓고 있지 않았다면 어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세 건설이 어느새 조선소 앞바다에 방파제를 쌓고, 바다를 준설하고, 안벽(岸壁)까지 만들었다.
아직 조선소 안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닦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영도에서 만든 블록을 바다 쪽에서 옮겨 올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정말이지 야드 쪽만 14만 평에 달하는 조선소를 설계도를 그려가며 건설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덤프트럭 105대, 불도저 15대, 페이로더 20대, 굴착기 7대, 바지선 크레인 1대 등등 내가 가진 중장비를 거의 다 여기에 퍼붓고 있었다.
거친 바닷바람에 맞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니 밥 먹고 돌아서자마자 배가 고플 지경이었다.
“우와아아! 암반이다! 암반이야!”
“우와! 사장님 불러와! 어서!”
도크를 파던 굴착기가 갑자기 멈추기에 혹시나 하고 달려왔더니 구덩이 아래서 환호성이 들었다.
“부르긴 뭘 불러요! 와 있는데!”
냉큼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니, 정말이지 제 1 도크를 파던 곳에서 암반이 드러났다.
“여기까지 깊이가 얼마죠?”
“13m입니다. 사장님!”
“이야, 하늘이 돕는군요.”
“와아아아아!”
도크 깊이 스펙이 12m인데, 13m에서 암반이 드러났다. 작업하던 직원들이 만세를 불렀다.
도크는 해수면 아래에 존재하는 데다, 배를 띄우기 위해선 물을 채워야 하는 곳이다.
대충 7m 정도를 채운다고 보면 1제곱미터당 7톤의 양압력이 가해지는 꼴이고, 안전 계수를 고려해 도크 바닥을 깐다면 철근콘크리트를 적어도 2.5m 두께로는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도크 바닥에 이처럼 단단한 암반이 나온다면, 철근콘크리트를 1m만 만들어도 충분했다. 그 말인즉슨, 돈이 굳었다는 뜻이다.
“사장님, 여기 제가 찍은 곳 아닙니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서는 여기를 딱 짚어주더라고요. 이 암반 때문이었군요. 하하하!”
단충기 차장이 꿈 잘 꾼 덕분이라며 어깨를 으쓱으쓱했다.
“하하, 50% 확률은 인정하죠. 제 2도크는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까 말이죠.”
같은 지역인데 한쪽은 암반이 나오고, 한쪽은 나오지 않는다니 해안가 땅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쪽은 할머니가 찍어줬는데, 영 아니네요. 우리 할머니 빈대떡은 참 맛있었는데요!”
“하하하하!”
단 차장의 농담에 잠시나마 현장에 온기가 돌았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이렇게 분위기를 띄워주는 양반이 있으면 견뎌낼 수 있다.
“여하튼 암반이 2도크 쪽으론 뻗을 것 같지 않으니 해안 쪽으로 길게 땅을 파야겠습니다.”
“그렇게 방향을 틀면 땅 모양 때문에 도크 크기인 650m가 아니라 500m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650m를 고집하다간 도크가 아니라 운하를 파는 꼴이 되기에, 또 설계를 변경해야 했다.
그래도 이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설계 확정합시다. 폭은 80m를 유지하고 방수 처리를 합시다. 여기 암반 중앙과 양쪽 귀퉁이에 다공질 콘크리트를 타설해서, 일부 유입되는 지하수는 펌프실로 유도하는 형태로 말입니다.”
난 설계도를 그 자리서 고쳐가며 단 차장에게 작업 지시를 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이드 쪽에도 배관을 추가로 설치하시는 겁니까?”
단 차장이 설계도를 짚어가며 물었다.
“그건 안전 확보 시스템(safe relief system)이라고 최후의 보루입니다. 홍수든 폭풍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지하수가 과하게 유입되는 상황에서 정전이라도 되면 맨홀 뚜껑이 자동으로 열리도록 하는 겁니다.”
도크의 콘크리트 벽이 터지면 대형 참사라, 차라리 맨홀 뚜껑이 날아가서 도크에 물이 가득 들어차는 게 낫다.
“그럼 정말 훨씬 안전하겠네요. 제가 매번 배웁니다.”
고달픈 전생을 겪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된 거다.
전생에 아파트 건설을 하다 보니 배수 관련해서는 하도 지적을 많이 받아 알게 된 것이다.
“누구든 일하면서 배우는 겁니다. 여하튼, 이제 기공식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군요.”
이제 도크 위치와 크기가 확실히 정해졌으니 기공식 모양새는 갖추는 거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장님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직원들이 잠시 일손을 놓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아하, 직원들을 대표해서 말하는 거로군.
“기왕 대통령 각하께서 오시니 용왕님께 고사도 지냈으면 합니다. 한나라의 수장이 절을 하면 용왕님도 감복해서 우리 회사를 보살펴 주실 거 아니겠습니까?”
“… 그래요, 부탁드려보죠.”
“와아아아아!”
“감사합니다. 사장님.”
단 차장은 물론 주변 직원들도 좋아했다.
당연히 미신이지만, 고사 한번 지내서 직원들 마음이 편해진다면 못할 것도 없지.
다행히, 대통령도 이런 건 또 흔쾌히 동의할 양반이다.
포항 제철 기공식 때도 왜 고사상을 안 차렸냐고 했던 양반이니까.
그러고 보니 기공식 때 새해맞이 막걸리 한잔하자고 했던 것도 고사상을 차리라는 의미였나?
“단 차장이 한 번 잘 차려보세요. 용왕님도 감복하시고, 대통령님도 덩달아 감복하시게.”
“예, 잘하겠습니다.”
불과 며칠 뒤면 기공식이었다.
정말 시간이 눈 깜짝할 새 흘러갔다.
****
1월 20일
삐이익! 삐이익!
“모두 비켜! 위험! 위험!”
“비키라니까. 부딪히면 뼈도 못 추려!”
아침 일찍부터 건설 현장이 시끄러웠다.
오늘 오후가 기공식인데, 영도에서 오늘 아침에야 작은 블록 하나가 울산으로 입고되었다.
갖다 놓을 도크도 아직 미완성이지만, 고사상 뒤에 두려고 미리 입고시켰다.
50톤짜리 소형 블록이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 눈에는 거대하게 보일 것이다.
그래도 내 눈엔 50톤짜리는 작아도 너무 작았다.
이걸 5배로 키워 250톤짜리를 상상해도 작기는 매한가지였다.
현재 주문한 골리앗 크레인의 스펙으론 250톤 이하의 블록으로 조립할 수밖에 없는데.
250톤짜리 소형 블록으로 26만톤짜리 유조선을 만들 생각을 하니 새삼 끔찍해졌다.
‘안 되겠네. 최소한 1000톤 가까이는 들어 올릴 크레인을 만들어야 해. 이런 식으로 60년대 기술과 타협했다간 혁신은 물 건너가겠어.’
크레인을 입고하기 전에 이렇게 작은 블록을 눈으로 직접 봐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돈을 더 주는 한이 있더라도 더 큰 크레인을 가져올 생각을 굳혔으니까 말이다.
“사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런 지네차를 어떻게 주문할 생각을 하셨습니까?”
혼자 생각하고 있자니, 옆에서 변영식 부장이 감탄사를 토했다.
바퀴가 80개나 달린 블록 전용 운반차인 트랜스포터를 보고 그러는 것이었다.
내가 21세기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해 서독에 주문한 특수차였다.
트랜스포터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지네처럼 생겼다고 다들 지네차라고 불렀다.
“수직 이동은 골리앗 크레인이, 수평 이동은 트랜스포터가 하는 겁니다. 그걸 공정에 적극적으로 이용하셔야 합니다.”
조선소는 엄청난 쇳덩이를 옮기고 갖다 붙이는 일의 연속이다. 안전은 물론 작업 효율을 위해서라도 이동 설비에 투자를 아끼면 안 된다.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또 메모하시는군요.”
변영식 부장의 특징이었다.
언제나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미주알고주알 적어댔다. 그래서인지 업무 지시와 수행에 착오가 없는 양반이었다.
“사장님 말씀을 작업 표준서로 만들면 업무 효율이 확확 오릅니다. 심지어 자잘한 안전사고까지 확 줄었습니다.”
트랜스포터를 사용하는 것도 변 부장에겐 새로운 표준이었던 모양이다.
“이왕이면 직원들에게 있었으면 하는 장비에 대해 아이디어를 조사해주십시오. 일본 조선사는 작업 효율화로 유럽 조선사를 압도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일본을 이기려면 작업 효율 개선은 물론, 선진 기계와 설비를 도입해야 합니다.”
신규 설비에 투자할 수 있다는 건 후발주자인 우리가 가진 최고의 경쟁력이었다.
이미 대세 조선은 일본 벤치마킹은 충분히 잘하고 있었다. 생산 공정을 철판 마킹, 표면 처리, 가용접, 용접, 표면 연마까지 최대한 세부화시켜 작업 효율을 높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자재만 옮기는 팀과 가설 발판만 전담해서 만드는 팀을 따로 뒀을 정도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용접 모자를 보고 좋아하셨군요.”
변 부장은 또 메모했다.
그러고 보니 기분 좋은 일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영도를 방문했더니 작업자가 기존의 용접 마스크를 개선해서 쓰고 있었다.
안전유리에 케블라를 덧대어 소방사 모자처럼 만들어 그걸 머리에 쓰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고 내가 만들려고 했는데 우리 직원들이 한발 앞서 개발했다.
왼손이 자유로우니 작업이 편하고, 머리 주변으로 튀는 불똥을 막을 수 있어 안전사고 방지에도 아주 효과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용접 모자를 발명한 사원은 특진시켰습니까?”
“예, 말씀하셨던 그 날 바로 특진시켰습니다.”
현재 직무 발명이나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 미흡해서, 그런 A급 아이디어는 특진을 시켜 보상해주고자 했다.
빌 베인에게 관련 사규를 만들라고 해야겠다.
더 적극적으로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보상을 해줘야지 싶었다.
“사장님, 기공식 준비가 다 됐습니다.”
어디선가 단 차장이 달려와 완성된 고사상을 가리켰다. 고사상 뒤에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블록을 실은 트랜스포터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근사했다.
조선소는 역시 철과 바다의 왕국이었다.
***
그날 오후,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내외 귀빈 여러분. 본인은 오늘 이렇게 초대형 조선소 기공식을 하게 된 것을 참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후략)…”
모래밭 위에 단상을 만들고, 그 아래 천여 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열을 맞춰 기공식에 참여했다.
한쪽에 일반 내빈이라고 적힌 팻말 아래에는 갓 쓰고 한복 입고 나온 동네 노인들, 애 업은 아줌마, 잡상인들마저 대통령이 왔다고 구경하러 왔다.
더욱이 고사상에 잔뜩 쌓인 떡갈비를 가리키며 달라고 우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당황스럽기도 하면서도 왠지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뭐든 맘껏 먹게 해주고 싶었다.
“대통령 각하께서 배향하시겠습니다.”
어느새 축하 담화가 끝나고 기공식 버튼도 누르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대한 늬우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리와. 임자가 술을 따라야지.”
“예, 대통령님.”
고사상에는 떡갈비와 과일은 물론이고, 어디서 구했는지 고래고기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용왕에게 안녕을 비는 고사인데 고래고기를 쌓아 놓아도 되나 싶었지만, 차린 사람 마음이다.
“대세 조선소가 번성하고 또 번성해서 세계만방에 우리 배가 뻗어 나가게 해주십시오.”
막걸리 한 사발을 가득 채워 바치고는 대통령이 먼저 절을 했다.
나를 비롯해 주변의 모든 이들이 함께 절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대통령은 대접에 막걸리를 따라서 직원들에게 나눠줬고, 나는 고기 접시를 애 딸린 아줌마들에게 나눠줬다.
***
“공사 시작한 지 고작 한 달째라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하겠어. 벌써 이렇게 거대한 선체도 가져다 놓고 말이야.”
대통령은 50톤짜리 블록에도 감탄했다.
전체 유조선의 수백분의 일도 안되는 것이라 선체라는 단어를 쓰기도 민망한데 말이다.
더 크게 만들어야 해. 더 크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봄이 와서 날씨가 풀리면 공사도 좀 속도가 날 겁니다. 그전까지는 설계 검토와 해외 연수에 더 신경을 더 쓸 예정입니다.”
대충 둘러댔다.
또 청와대에 공사 진척상황을 보고하라고 하면 안 그래도 바쁜데 더 바빠질 거 아닌가.
영도 조선소를 이용해 선박 건조 공기를 단축할 수 있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임자가 여권 발급 요청을 엄청나게 했다더군. 해외 연수를 얼마나 보내려는 건가?”
“한 회차당 60명씩 몇 달 간격으로 꾸준하게 보내려고 합니다.”
직원들이 해외 연수를 승진에 준하는 특혜로 여기고 있기에, 근무 성적이 좋은 이들을 선발해 보내줄 예정이었다.
“일본 쪽으로도 연수를 보낸다고 들었는데, 내가 제대로 들은 거야? 임자는 일본 안 좋아하잖아.”
최근 일본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기술협력 의사를 타진해와서 연수부터 제안했다.
역시 우리가 자력으로 조선소를 시작하자 일본 조선소도 자극을 받았던지, 일단 발은 걸쳐두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싫어도 배울 건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 조선소가 세계를 석권하는 것은 사실이니 말입니다.”
“일본이 자기네 기술을 순순히 알려주겠어? 뭔가 방법을 강구하고 가는 건가?”
“분위기만 느끼고 와도 성공이지 싶습니다. 일본의 경쟁력은 기술 자체라기보다 일하는 방식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일을 세부화하고 표준화를 하는 것 말입니다.”
“으흠, 자문 교수단이 그 비슷한 말을 하긴 하더군. 여하튼, 그래서 내게 부탁할 건 없어?”
대통령의 장점이 나왔다.
국가 권력을 이용해 돈 들이지 않고, 뭔가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대세 조선 내에 기능공 훈련소를 만들었습니다. 졸업 시험을 통과하면 국가 자격증을 주셨으면 합니다. 기능사 2급 자격증 정도면 좋겠습니다.”
“국가 자격증? 그게 왜 필요해?”
“국가가 산업 역군을 귀하게 여긴다는 걸 느끼게 해주신다면 자긍심을 가지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가 자격증은 동기 부여가 될 테고, 자격증을 딴 사람 위주로 채용한다면 60년대 특유의 알음알음으로 행해지는 인사 비리 또한 줄어들 것이다.
“애국심 고취라… 그런 취지라면 전 산업 분야로 확대해도 괜찮겠어. 임자 생각대로 해주지.”
“감사합니다.”
나름 자신이 생각해도 괜찮은 아이디어였던지, 담배를 꺼내 맛있게 피워댔다.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군. 서울까지 어느 세월에 가나 싶단 말이지. 이래서 고속도로를 빨리 놓아야 하는 거야.”
은근슬쩍 고속도로 얘기를 꺼냈지만,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여기 현장을 빠져나가시는 길이 험합니다. 물때를 잘못 만나 자칫 자동차 바퀴가 빠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하룻밤 묵고 가십시오. 직원용 숙소지만 나름 깨끗하니 크게 불편하시진 않을 겁니다.”
대통령이 내 제안을 들어줬으니, 나도 호의를 베풀었다.
우연히도 오늘은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기습하는 날이지 않나.
원래 역사대로라면 내버려 둬도 무장공비가 토벌되지만, 아예 근처로 안 가는 게 제일 안전하다.
물론, 이게 호의라는 건 나만 아는 일이었다.
< 120 : 철과 바다의 왕국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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