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26)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26화(126/589)
< 126 : 사업가의 영광 >
“우 사장님, 이왕 이리된 거 도크를 더 키우시죠.”
“그래야죠. 그래서 말인데, 항타기 한 대만 빌려주시겠습니까? 이쪽에 말뚝을 빽빽하게 박아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쇄석 말뚝으로 과할 정도로 지반을 다지면 지하수가 터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예, 그러지요. 안 그래도 항타기 한 대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새 장비가 많이 느셨습니다.”
“경부고속도로를 맡기로 해서 관세 없이 중장비를 싸게 들여왔습니다.”
“잘하셨네요. 경부고속도라니 대단하십니다.”
원래 역사에서도 현산이 경부고속도로의 힘든 구간을 거의 다 맡았다. 왕 회장의 장비 욕심을 한껏 채우는 일이기도 했다.
“이번 달 말 청와대에서 국토개발 확대 회의를 할 때 한번 들어오십시오. 2월에 기공식을 한다는데 아직도 총사업비를 지정하지는 못했습니다.”
“총사업비도 못 정했는데, 기공식을 한다고요?”
어이없지만 이 시대에는 가능한 일이다.
한국 주식회사의 경영진이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는 일이지 않나.
게다가 나도 찬성표를 던졌다.
대통령이 결심을 굳히는데 한몫을 했을 거다.
“일단 저희 현산건설은 총사업비로 280억을 써냈습니다. 물론, 우 사장님은 이번에도 돈이 더 든다고 하시겠지요?”
“그럼요. 적어도 km당 1억으로 총 430억은 들 겁니다. 그것도 적자를 감수하는 최소 비용입니다.”
“아이고, 공사비 430억이라니 어림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차관을 거부해서 모두 내자로 해야 한다는데 그런 돈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뭐, 내가 말을 보탤 필요는 없다.
건설부, 재무부, 육군 공병감 할 것 없이 총사업비를 두고 엄청나게 싸우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단군 이래 최대 토목 공사라고 불릴 정도라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사업비 계산이 쉬울 리가 없다.
결국, 경부고속도로는 총사업비 330억으로 시작해 완공할 때는 430억까지 증액을 거듭했다.
그것도 1차 완공에 쓰인 돈이며, 그 후 보수공사비로 900억 가까이 쓰이게 된다.
일단 길부터 뚫고 도로가 망가지면 보수하면서 쓰면 된다는 식의 발상이라고 할 것이다.
누구는 날림공사라고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전 세계 개발도상국 중 한국만이 유일하게 고속도로를 성공시킨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최저가로 일단 뚫어내고, 그 뒤에 드는 보수공사비는 통행료로 상당 부분 벌충했거든.
어찌 보면 내가 조선소를 지으면서 배를 동시에 건조하는 전략과도 비슷하다. 선박 계약금 및 중도금으로 조선소 건설비를 벌충하니까 말이다.
“제가 달리 현산을 도와드릴 방법은 없고, 갈프사와 협상할 때 불러주십시오. 아스팔트 단가를 10%는 깎을 수 있을 겁니다.”
“아이고, 그럼 드럼당 2700원으로 계산하면 되겠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왕 사장은 아예 단가를 고정해버렸다.
고속도로 자재비 항목 중에 큰 것만 추리면 휘발유, 경유, 아스팔트, 시멘트라고 할 수 있다.
즉, 그중 아스팔트 비용은 10억쯤 할 거니 내가 도와주면 1억쯤 아껴주는 것이다.
갈프사에게 아스팔트 출고가를 좀 깎아주라고 압박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우리 대세 화학이 갈프사에 촉매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면 엄청 곤란해지거든.
게다가 난 갈프사가 아스팔트를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다.
솔직히 나라면 대형 화물차를 염두에 두고 아스팔트보다 시멘트로 고속도로를 깔겠지만, 정부는 절대로 합의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오일 쇼크 이전이라 아스팔트가 시멘트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싸거든.
“여하튼 총공사비 280억으로는 재료비 좀 아낀다고 적자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교량과 터널을 생각하면 km당 1억원도 모자랄 겁니다. 하지만, 일단 공사부터 시작하고 예산은 차차 따면 되는 거죠. 일이 있어야 건설사는 먹고 사니까요.”
이 또한 왕 사장다운 발상이었다.
“그런 전략이라면, 정부와 계약을 맺으실 때 보수공사비는 따로 정산하는 조건을 넣으십시오. 그때라도 이익을 좀 남기셔야죠.”
“… 보수공사비라… 그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정말 좋은 생각이십니다. 280억으로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해도 되겠군요. 하하.”
이 정도 배짱이면 왕 사장은 대통령과 죽이 잘 맞을 거다.
내가 좀 편해지는 면도 있으니 더욱 좋았다.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면 자연스레 소양강 댐 공사도 현산이 맡게 될 테고, 그럼 나는 조선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세와 현산은 물론, 나라 전체로도 좋은 일이다.
“이거 수습할 시간도 모자랄 텐데 제가 말이 길었군요. 그럼 다음에 보시죠.”
“이렇게 오셨는데 식사는 하셔야죠. 우리 현장 국밥이 정말 맛있습니다. 제가 장담하죠.”
“아, 그래도 될까요? 출출하긴 합니다만…”
“여어, 다들 밥 먹으러 갑시다!!”
“와아아아아! 밥 먹으러 갑시다.”
이리저리 흩어져 드럼통에 모닥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던 직원들이 아침밥 얘기가 나오니 서둘러 함바집으로 향했다.
대세, 현산, 도림 직원들이 서로 뒤섞여 자기네들 밥이 더 맛있다는 둥, 자기들 현장은 여기보다 몇 배는 힘들다는 둥, 시끌벅적하게 아침밥을 함께했다.
중동 진출할 때 최소한 이 두 회사와는 전략을 같이 논의하는 것도 괜찮겠다.
어차피 일이 넘쳐나서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을 할 이유도 없거니와 컨소시엄 등을 고려할 때도 서로 도움이 될 것이다.
**
며칠 뒤,
“단 차장, 배수로 해안 쪽 안벽을 더 두껍게 하세요. 그래야 T자형 도크가 안전해지니까.”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이런 T자형 도크가 다른 데도 있습니까?”
“그럴 리가요. 우리가 처음이죠.”
나는 이왕 동쪽 거벽이 확장되어 버린 제 2도크의 설계 디자인을 아예 T자로 바꿔버렸다.
메인 도크 양옆에서 다른 선박의 일부를 미리 건조함으로써 도크 회전율을 높이는 디자인이었다.
메인 도크에서 완성된 배가 빠져나가면, 약실(藥室)에 총알을 밀어 넣듯 부분 건조된 선박을 메인 도크로 옮겨 선박을 건조하게 되는 것이다.
도크 공사 기간은 좀 늘어나겠지만, 선박을 건조할 때는 작업이 훨씬 더 편하니 유조선 인도 시기가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제대로만 돌리면 26만톤짜리 유조선을 제 2도크에서 연이어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미 돼지가 새끼를 딱 품고 있는 설계라니, 사장님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난 약실과 총알을 상상했는데, 어미 돼지와 새끼 돼지라니… 어째 비유조차 60년대다웠다.
여하튼 21세기 기술을 옮겼을 뿐인데, 이런 찬사를 듣다니 다소 민망했다.
“상황이 이리되었다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그보다 말뚝은 다 박았습니까?”
“예, 더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박아넣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언제 다하나 싶었는데, 해놓고 보니 뿌듯합니다.”
단 차장은 어깨를 잔뜩 부풀리며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봐도 대단했다.
지하수가 몰려왔다가도 무수히 박혀 있는 쇄석말뚝을 보고는 방향을 틀 것 같았다.
“말뚝 박을 때 안전팀은 대동했습니까?”
여태 안전전담팀이 있긴 했지만, 해왔던 업무가 직원들이 현장에서 안전모를 쓰는지 안전띠를 거는지 챙기는 일반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 지하수 사고를 시작으로 작업장 자체를 안전팀이 인증하는 식으로 업무 규정을 바꾸었다. 예상치 못한 비상사태에 대해서도 비상 연락망을 구축하도록 했고 말이다.
“예, 안전팀의 인증을 받았습니다. 그와 더불어 각 현장에 비상 사이렌을 설치하고, 사내 소방서와 의료원도 신설했고, 각종 위험요소를 사전에 신고하는 직원에 대해선 포상 규정도 마련했습니다.”
음, 내가 지시한 대로 후속 조치를 잘했네.
안전사항은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다. 이렇게 하늘이 경고를 해줄 때 잘해야 하는 거다.
“잘하셨네요. 쇄석 말뚝을 많이 박으라고 제 1도크에서 자갈이 그렇게 쏟아졌나 보네요. 수고 많았습니다.”
이번 일로 많이 놀랐을 단충기 차장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사장님, 그리고 부산 영도에서 또다시 50톤짜리 블록을 보내왔습니다. 이제 제 1도크에 하나씩 집어넣어서 조립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려면 크레인이 와야 하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서독 회사에 빨리 입고하라고 하세요. 스펙 바꿨다고 징징대면 기술 협의할 테니 한번 들어오라고 해도 되고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말하는 뉘앙스를 보자니 서독 크레인 회사와 업무 협조가 잘 안되는 모양이네.
이유야 당연히 내가 최대 중량을 1000톤까지 올려서 그럴 것이다.
설비 도입가를 올려 주겠다니 하니 경영진은 덥석 하겠다고 했을 테고, 밑에 있는 실무 엔지니어들은 어렵다고 징징대고 있겠지. 뻔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온 전화 메모입니다.”
“아 그래요?”
단 차장이 여기 현장에선 내 비서 역할도 해주고 있었다.
「수신 : 대세 그룹 회장님.
쿠퍼-맥도날드사(社)로부터 비즈니스 미팅 요청이 있습니다. 업무 지시 부탁드립니다.
– 비서실장, 빌 베인」
맥도날드사가 이렇게 빨리 연락을 했다고?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
***
따르릉.
<대세 그룹 비서실입니다.>
빌 베인은 꼭 대세를 그룹이라고 하고, 나에게도 회장이라는 존칭을 썼다.
하긴 아직은 그룹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지만, 조만간 전경련을 필두로 누구나 재벌이니 그룹이니 하는 말을 쓰게 될 거다.
“납니다.”
<아, 회장님.>
“맥도날드사가 날 보자고 한다고요?”
<예, 한국 정부에 M16을 납품하고 싶다며 사장님을 봬야 한다더군요. 뀌년의 고위 장성으로부터 사장님을 소개받았다면서 말입니다.>
무기 판매상답다.
물밑 접촉에 대해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요청한 사람들이 맞긴 한데, 직접 만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닐 것 같군요. 정부 쪽에 공을 넘기는 게 좋겠어요. 상공부랑 다리를 놔줘요.”
<상공부라면, 염원철 차관 말씀입니까?>
“그렇죠. 참, 그 양반에게 연결해줄 때 맥도날드사의 M16 판권이 상반기에 종료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가격도 후려치라고 알려줘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방위산업은 결코 만만한 시장이 아니기에 덥석 뛰어들어선 절대 안 된다.
방위산업은 그 속성상 정치적 시장(Politicized market)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기술이나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도, 후발국 제품을 써줄 고객은 그다지 많지 않다.
누가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물건을 싸다고 덥석 사겠나. 내 방탄복과 방탄 헬멧도 미군이 쓴다고 하니 요르단군이 쓰겠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아무리 소총 정도라고 해도 무기 생산은 높은 품질 비용, 고급 가공 기계, 계측기, 숙련 기술자 등등 고정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그걸 상쇄시키고 자체 생산을 하고, 급기야 국제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때까지 실적을 쌓으려면 정부 지원은 물론 다른 식의 이윤 창출을 꼭 보장받아야 한다.
즉, 특혜라고 불릴 정도의 정치적 혜택 없이는 60년대 후진국 대한민국에서 방위산업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21세기까지 버티면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되겠지만 말이다.
“상공부에서 정치적 고려를 해줄 낌새가 느껴지면 그때 나와 연결해줘요.”
<예, 알겠습니다. 헌데, 여태 사장님의 사업전략과는 다소 다른 것 같습니다. 사업 확장을 주저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방위산업은 웬만해선 적자를 면치 못합니다. 여긴 한국이지 미국이 아니니까요.”
<아, 알아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빌 베인은 어쩌다 보니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도록 한 게 미안했던 모양이다.
내가 아무리 21세기에서 왔어도 방위산업에서 수출을 꾀하기란 쉽지 않다.
솔직히 내게서 유조선을 사가는 리바노스도 업계에서 미친놈 소리를 듣는데, 대뜸 군함을 사갈 정부가 어디 있겠나.
결국, 상공부는 맥도날드사와 딜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M16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때 나를 부르면 수익이 나는 방향으로 특혜를 요구하는 게 내 전략이다.
난 전생을 거치며 사장으로서 최고의 덕목은 흑자 회사를 유지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다른 어떤 듣기 좋은 명분으로도 직원들 밥그릇이나 깨는 인간들은 감히 경영자라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없다.
내 존재 가치는 권력자의 명에 따르는 것에서가 아니라, 직원들 밥그릇에서 나온다.
나는 빌 베인에게 간단히 내용만 지시하고 상공부가 접촉해올 때까지 무던하게 기다렸다.
***
며칠 뒤,
“사장님,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상공부에서 오셨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곧 가죠.”
현장을 살피고 있자니 사무실 직원이 달려왔다.
그럼, 그렇지. 상공부가 올 때가 됐지.
“아이고, 우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염 차관님, 바쁘신 분이 여기 울산까지 오시고. 어쩐 일이십니까?”
나는 짐짓 시치미를 떼고 염 차관을 맞았다.
“아유, 왜 그러십니까? 우리 사이에. 섭섭하려고 그럽니다. M16 판매책을 알려주셔놓고는 모른 체 하시다뇨.”
“아, 그거요. 제가 뀌년에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업체입니다. 대통령께서 방위산업을 말씀하셔서 상공부로 보냈는데, 어째 도움이 좀 되셨습니까?”
“도움이 되다 뿐입니까? 자그마치 10년 계약에서 판가를 30%나 깎았는걸요. 게다가 사장님께서 아주 좋아하실만한 특약까지 체결했습니다.”
“특약을 체결했다고요?”
“예. 맥도날드사가 완제품 라이선스는 제공할 순 없지만, 부품 라이선스는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대세가 하면 되겠다 싶어 이렇게 찾아뵌 겁니다.”
“글쎄요. 제가 굳이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다른 업체가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이건 국가 방위산업입니다. 이런 사업을 맡는 것은 대단한 영광입니다.”
염 차관은 흠칫 쫄았다.
내가 안하면 할 사람이 없죠?
우리나라는 아직 정밀 기계 불모지인데.
사업가에겐 돈이 남아야 영광이다.
M16 완제품을 해도 돈이 남을까 말까인데, 부품 몇 개해서 수익이 남겠나?
“영광이긴 하지만, 대세가 하기엔 너무 덩치가 작습니다.”
“덩치… 매출이 작다는 말씀입니까?”
“예, 인건비와 시설 투자를 생각하면 적자도 그런 적자가 없을 겁니다. 기존 업체를 알아보시거나, 아니면 대세가 기계산업에 투자할 동기 부여를 좀 해주셔야 합니다.”
“역시, 우 사장님은 언제나 예상 밖입니다. 청와대에 보고하기 전에 달려온 게 천만다행입니다. 말씀해보시지요. 동기부여라니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요?”
염원철 차관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말을 옮겨적겠다는 듯 수첩을 꺼내 들었다.
< 126 : 사업가의 영광 > 끝
ⓒ 푸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