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29)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29화(129/589)
< 129 : 내 품에 안긴 복덩이 >
원래는 밴 플리트 장군과 함께 발사대 구매 협상을 하려고 했는데, 알아서 일 처리를 해준다니 예상 밖의 귀한 시간이 생겼다.
‘쇼핑이라…’
뉴욕에 온 김에 나이크를 돌아볼까 했지만, 그보다 일단 유학생들이 급했다.
조기 귀국이 가능한 유학생들부터 한국으로 데려와야 했다.
나이크는 다음으로 미루자.
아직 멕시코 올림픽까진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마음을 정하고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나서니 밴 플린트의 비서가 리무진을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편히 쇼핑하실 수 있도록 의장님께서 기사 노릇을 부탁하고 가셨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일단 MIT로 가주십시오.”
“쇼핑하실 곳이 MIT였군요.”
“잘 부탁합니다.”
“장거리에 필요한 음료와 다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리무진다운 최고급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대자 부드러운 진동과 함께 차가 출발했다.
***
MIT,
리무진이라 그런지 300킬로가 넘는 거리를 편하게 올 수 있었다.
밴 플리트의 호의가 새삼 고마웠다.
MIT 캠퍼스는 그다지 넓지 않아 곧 재료공학과 랩이 모여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주영길 교수, 아니 학생은 잘 있겠지.
「고온 내열 재료 연구실」
주영길 교수가 있는 연구실이 눈에 띄었다.
미리 연락하고 올 걸 그랬나 하며 랩 실을 노크했다.
똑똑.
“실례합니다.”
“앗, 사장님!”
“영길 씨, 마침 있었네요.”
“사장님이 여기 어떻게…”
“나도 이렇게 단박에 찾을 줄 몰랐군요. 오늘 내가 일진이 좋은 모양입니다.”
“제가 여기서 먹고 자고 하니까요. 여하튼, 어쩐 일이십니까.”
주영길 교수는 정말 반가웠던지 나를 와락 포옹했다. 참으로 넉살 좋은 양반이다.
“어쩐 일이긴요. 출장 온 김에 다들 어떻게 살고 있나 돌아보는 거죠. 솔직히는 인력이 너무 부족해서 조기 귀국 여부를 물을 겸 말이죠.”
“일손이 많이 부족하시군요. 대규모 조선소를 건설 중이라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맞아요. 본사 소식도 잘 알고 있군요. 여하튼 그간 연구는 어땠어요?”
나는 주 교수의 연구 실적이 궁금했다.
원래 역사대로 나사에서 탐냈던 초내열합금 제조에 성공했다면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제 연구요? 깜짝 놀라실 겁니다. 참, 여전히 콜라 좋아하시죠?”
주 교수는 어디선가 콜라를 가지고 와서 내게 권했다.
“고마워요.”
“대접할 게 그것밖에 없어 죄송합니다. 이제 제 연구 주제를 설명해 드리죠. 이쪽입니다.”
주 교수가 나를 연구실로 안쪽으로 이끌었다.
다른 대학원생이 보이긴 했지만 서로 묵례만 하고 지나쳤다. 다들 자기 연구에 바쁜 대학원생들의 특징이라고 할 것이다.
“이게 제가 만든 장비입니다. 이름하여 볼 밀 (Ball Mill) 장비죠.”
“볼 밀? 설명 좀 해줄래요?”
“말 그대로 금속구로 합금을 비비는 장비입니다. 이렇게 금속 분말을 넣고, 적당량의 물이랑 비누 가루를 좀 넣어주고, 니켈 구슬을 쏟아부은 다음 돌리면…”
위이이이잉.
마치 세탁기처럼 설비 통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니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하면 통 안의 구슬이 금속 분말을 짓이겨 섞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섞기만 하면 합금이 되는 겁니까?”
“단순히 섞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시적으론 균일하게 엉겨 붙어 합금이 됩니다. 분말 야금법이라고 옛날엔 금화를 제조하던 방법이었는데, 제가 내열 합금법으로 재발견한 셈이죠.”
“생각보다 오래된 기술이군요.”
몰랐다. 난 주영길 교수가 발명한 공법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강의 때 살짝 구라를 쳤군.
“정확한 비율로 금속을 섞어야 하는 내열 합금에 응용했다는 측면에선 제가 발명을 한 셈이죠. 그리고 여기 비누를 섞어야 볼 밀(Ball Mill)이 잘 된다는 건 저만의 비법입니다.”
주영길 교수는 나름 노하우도 쌓은 모양이다.
여하튼 눈으로 직접 보니 흐릿했던 옛 강의 내용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분말 야금법은 금속 분말을 잘 섞어 틀에서 성형한 뒤에 소결해서 합금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융점이 매우 높고, 소재를 정확한 비율로 섞어야 하는 내열 합금을 만들 때 매우 유용하다.
단, 주조법과 비교하면 프레스, 소결로, 혼합기 등등 비싼 장비가 필요하니 생산원가가 매우 높은 가공법이라고 할 것이다.
“이걸 소결하면 원하는 내열 재료가 만들어지는 거군요.”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바로 아시는군요. 놀랍습니다.”
“나야말로 놀랍군요. 이런 장비를 손수 만들다니요.”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사장님 말씀대로 금속을 녹이지 않고 합금을 만드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거든요.”
나름 내 조언이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와중에 내가 이 양반의 강의를 들었던 것이 참으로 행운이었다.
“장비를 만드느라 고생을 꽤 했겠는걸요?”
“사장님 말씀을 두고 6개월 내내 곱씹었더니 답이 나오던걸요. 덕분에 이 장비로 단박에 석사과정을 패스했습니다. 지도교수가 바로 서명하더군요.”
“그랬군요.”
하긴 재발견이라고 해도 분말 야금법은 내열 합금 개발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방법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MIT 교수가 후진국에서 온 학생을 바로 박사과정으로 올릴 리가 있나.
“그리고,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이걸로 950도까지 견디는 니켈 기반의 내열 합금을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대세 메탈, DSM950이라는 모델명으로 특허까지 제출했다니까요.”
“뭐라고요? 특허까지 제출해요?”
난 깜짝 놀랐다.
950도까지 견디는 소재는 21세기 기준으로 봐도 정상급 소재였다.
물론 최정상급 소재는 1100도까지 견디지만, 그건 충격에 약하다는 약점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 쓰지 않는다.
즉, 950도까지 견디는 내열 재료가 훨씬 그 활용도가 크다.
“예, 사장님도 발명자로 등재했습니다.”
“나와 공동 특허라고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객관적으로는 아주 기뻤지만, 이 양반이 이 합금 소재의 파급력을 제대로 알고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나사에서 라이선스를 가져갔다던 소재가 분명했다.
“영길 씨, 개인적으론 무척 기쁜데 그 특허는 장차 크게 주목받을 겁니다. 굳이 나와 공동 특허를 할 필요가 없으니, 지금이라도 수정해요. 물론, 대세에 라이선스는 팔아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사장님을 등재해야겠는데요. 솔직히 이 특허는 사장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이 된 거니까요. 저 혼자선 분말 야금법을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하하하.”
주영길 교수는 뿌듯한 표정으로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나중에 후회할지도 몰라요. 이 특허 라이선스는 생각보다 큰돈이 될 겁니다.”
“사장님이 그 정도는 챙겨주실 거 아닌가요? 저 대세에 취직할 건데요.”
주 교수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후회하기 없기입니다.”
“사실, 이 특허의 가치에 대해선 지도교수한테 이미 충분히 들었습니다. 자기에게 이 특허 지분을 10%만 주면 확실하게 학계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인정받게 해주겠다고 하길래 동의했습니다. 저 잘했죠?”
“잘했습니다. 정말 잘했어요.”
10%로 MIT 교수를 특허 방패로 끌어당기다니, 아주아주 잘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더니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성도 많이 는 것 같았다.
특허도 냈고, MIT 교수와 끈을 만들었다면 조기 귀국해도 되겠네.
초내열합금은 아니지만, 이 정도 합금이면 충분히 잘 쓸 수 있다.
피스톤 헤드, 크랭크축, 엔진 주축, 터빈 블레이드 등등, 활용도는 수두룩했다.
‘양산성이야 회사 내에서 확보하면 되지.’
내 생각은 그랬다.
오히려 학교에서 연구하다가 정보가 줄줄 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제 지도 교수의 말로는 엔진에 이 소재를 쓴다면 대략 4% 정도 연료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걸 대세에서 써주신다면 아마도 제 평생 밥값은 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헌데, 직접 와서 적용해요. 주영길 과장보.”
맞는 말이다.
이 정도 내열 소재를 엔진에 적용하면 효율이 당연히 올라간다. 엔진은 사용 온도가 높아질수록 효율이 높아지니까.
솔직히 4% 정도의 효율 향상은 일반 차량에서는 별거 아니지만, 선박은 전혀 얘기가 다르다.
초대형 유조선은 하루에 연료만 100톤 가까이 쓴다. 운행 속도를 20노트 가까이 올리면 훨씬 더 많이 소모되고 말이다.
그걸 4%만 줄여도 연간 약 1200톤의 연료를 절감하는 셈이다.
중유값을 배럴당 1불로만 쳐도 연간 연료비로 대략 8400만불을 아낄 수 있다.
대박이지. 선주들이 줄을 설 거다.
아니, 대부분의 선주는 처음엔 주저하겠지만 어떤 미친놈 한 명만 내게 엔진을 주문하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예? 제가 과장보라고요?”
“방금 과장보를 달았어요. 귀국해서 DSM950의 양산에 성공하면 곧바로 과장을 달아주죠. 지금 대세에선 소재 전문가가 절실하거든요.”
창원의 연구소로 합류시키면 될 것이다.
이번 유조선의 엔진은 몰라도 차후 선박의 엔진 부품부터는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디젤 엔진 부품이든, 터빈 블레이드든 말이다.
“저더러 박사과정을 중단하고 조기 귀국하라는 말씀이군요.”
“그만한 대우는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물론 학위를 더 중히 여긴다면, 여기 더 있어도 문제는 없습니다. 뭘 선택하던 존중할 겁니다.”
나는 주영길 교수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지금 당장 합류하는 것도 좋고 나중에 좀 더 노련한 상태로 합류해도 나쁘지 않으니까.
주영길 교수는 내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학위에 욕심이 있는 게 아니라, 조금만 연구를 더 하면 1000도 아니, 1100도까지 견디는 초내열합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가 더 회사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주영길 교수가 진중하게 내게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음, 그런 생각이라면 창원에 있는 연구소로 합류해요. 여기 있는 장비를 그대로 구매해서 옮기고 동료들과 같이 연구해봐요. 학위를 안 딴 거 후회하지 않게 해줄 테니까요.”
“장비를 다 가져간다고요? 그럼 괜히 고민했네요. 여기 있는 거 다 사서 가도 됩니까?”
“그럼요. 필요한 거 있으면 다 사요.”
기껏 해봐야 몇백만 불이면 다 살 거다.
R&D에 그 정도는 투자해야 초일류가 될 수 있다. 60년대라고 해서 기술개발에 투자하지 않고 인건비나 따먹는 회사로 키울 생각은 원래 없었다.
“이야, 학생들끼리 장비 돌려가면서 쓰는 게 제일 스트레스였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학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나 보군.
하긴 학위를 출세하는 수단이라고 본다면, 대세에 하루라도 빨리 합류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세계적 기업의 부사장까지만 올라가도 유수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는 수두룩하게 줄 테니까.
“내가 시간을 좀 줄 테니 유학 동기들과도 얘기해봐요. 내가 조기 귀국을 권하면 솔직하게 선택하지 못할 테니 영길 씨가 의사를 물어봐줘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엄청나게 비싸지만 진짜 좋은 장비가 있는데 사가도 됩니까?”
동기들과 얘기를 해보라는 말은 그냥 흘리고, 여전히 장비에만 집중했다.
“무슨 장비길래 그렇게 뜸을 들이는 겁니까?”
“CNC라는 최신식 장비인데요, 아주 기가 막힙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CNC라고요? 컴퓨터 수치제어 장치(computer numerical control) 말입니까?”
60년대에 CNC라는 말이 있었나?
그냥 NC라고 불렀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하긴, 미 공군의 지원으로 NC 기계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곳이 MIT니 CNC도 있을 순 있겠네.
“사장님도 CNC를 아시는군요! 이곳 정밀 기계 랩에서 가지고 있는데, 손으론 가공하기 어려운 터빈 블레이드도 수치만 집어넣으면 척척 만들어냅니다.”
“그래요? 비싸겠네요. 한대에 얼마나 합니까?”
터빈 블레이드를 자동으로 척척 뽑아낸다고?
60년대 공작 기계가 그렇게 성능이 좋았나?
터빈 블레이드는 대부분의 제조사가 90년대까지도 기계 가공보다 주조 방식으로 양산할 정도로 생긴 모양이 까다롭다.
“그게…. 대당 350만불이라고 하더군요.”
보통사람이라면 놀라 나자빠질 가격이었다.
골리앗 크레인 기둥 한 개가 250만불 정도이니 말이다.
“350만불이라고요? 대체 어디서 만든 제품이길래 그리 비쌉니까?”
화낙? 히타치? 도시바? ABB?
60년대에 CNC 장비는 누가 최고였지?
“썬드스트랜드(Sundstrands)라는 회사의 제품입니다. 그 기계 자체도 명품이지만, 부품으로 들어간 마이크로프로세서(MPU)가 더 명품입니다. 인텔이라는 벤처에서 만들었다는데, 손톱만 한 게 엄청 비싼 모양이더라고요.”
“뭐라고요? 인텔요?”
썬드스트랜드라는 회사는 생소했지만, 인텔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이때 벌써 인텔이 사업을 시작했었나?
벤처 타이틀을 달고 페어차일드사(社)에서 튀어나오는 때가 이때쯤인가?
아직 기계 공업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는데, 복덩이가 제 발로 훅하니 내 품에 안겼다.
안겨든 복을 내칠 수는 없고, 어쩌지…
< 129 : 내 품에 안긴 복덩이 > 끝
ⓒ 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