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4)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4화(14/589)
< 014 : 느낌 아니까 >
“찬수야, 무슨 짓이야! 수출 물량인데.”
“닥쳐, 이 부장. 이따위 제품을 어떻게 수출해? 회사 망하게 할 셈이야?”
내가 삼복이를 이 부장이라 칭하며 정색을 하자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이 따위로 품질로 첫 수출을 시작해서 대세 그룹이 그따위가 된 거다.
기술은 사오면 된다며 하청 업체만 끊임없이 늘리고, 기업 합병을 했던 전생의 우 회장이 이렇게 시작했던 거다.
이런 싸구려 제품으로 돈 맛을 보면 안 된다.
“구 반장들, 이리 와봐. 이거 어떻게 보여?”
나는 이 참에 교육을 단단히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잔뜩 쫄아 있는 구 반장들을 불러서 원단을 살펴보도록 했다.
“킁킁. 새 옷 냄새가 많이 나긴 하는데…”
“끝단에 올이 좀 풀리긴 했지만, 출하할 때 깨끗하게 다듬으면 될 것 같습니다. 사장님.”
“염색을 하면 좀 원단이 빳빳해지는 데 기계에서 쫙쫙 펴겠습니다. 사장님.”
“하아아아… 이 양반들…”
어이가 없었다.
반장들은 문제점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일을 하기 싫어 말을 돌리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제품을 보지 못했던지, 제품 품질에 대한 기준점이 너무나도 낮았다.
“찬수… 아니, 사장님. 대체 뭐가 맘에 안 드시는 겁니까? 말씀드렸잖아요. 이건 성수동에서 최고로 염색 잘하는 공장에 의뢰한 제품이라고요.”
삼복이가 내 성질을 건드렸다.
반장들이 괜찮다고 해도 너는 그러면 안 되지.
“이게 뭔 최고야! 손에 염료가 다 묻어나잖아. 그리고 이 얼룩이 눈에 안보여? 여기랑 저기랑 색깔이 다르잖아. 그리고 원단에 보풀이 일어난 것도 모자라 쭈글쭈글해! 이걸로 고객이 어떻게 옷을 만들어! 만들자마자 헌옷이야! 이걸 염색이라고 했어? 그 새끼들 당장 불러와! 내 원단 값 물어내게 해!”
새 차 뽑아서 광 좀 내라고 맡겼더니 차를 엔진부터 좌석까지 죄다 뜯어놓은 격이었다.
“이 정도 이염이야 당연하고, 얼룩이라니… 그냥 아주 약간 색깔이 다른 정도잖아.”
“너 같으면 이런 물건 받으면 다시 주문하겠냐? 장사 한번 하고 말래? 어?”
“……”
“우린 이 원단을 팔아서 돈 벌어야 하잖아. 한 번이 아니라 계속 팔아야 한다고. 부자 안 될 거야?”
“부자는… 돼야지.”
“그럼 이렇게 하면 안 되지!”
“……”
“뭔 표정이 그래? 제대로 할 생각 없어?”
“이보다 더 잘하려면 일본에 보내야 해. 한국엔 이보다 잘하는 데는 없…”
“뭔 일본이야! 국내에서 제대로 하는 곳을 찾아야지.”
솔직히 나는 염색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이래서는 절대 수출 물량이 늘어나지 않을 거라는 건 안다. 아니, 수출한 뒤에 클레임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사장님, 원단을 몇 번 빨아서 기계로 펴면 괜찮아 질 수도 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헌옷은 빨아봐야 헌옷이야. 이건 이미 헌옷이라고!”
쫙! 쫙!
나는 작업용 커터로 남은 원단도 모두 찢어 공장 앞마당에 던졌다.
그 위에 윤활유를 마구 들이부었다.
“헉! 찬수야! 그거 다 돈이야! 돈이라고.”
삼복이가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내 팔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닥쳐! 이건 돈이 아니라. 독이야. 이따위 제품을 팔면 우리 공장은 망한다고! 직장이고 나발이고 다 없어진단 말이야!”
“망하긴 누가 망해. 네 맘에 좀 안 들어도 마을 시장에만 내놔도 다 팔릴 거야. 내가 팔아올게. 이거 다 팔면 30만원은 족히 나온다고.”
그럴까봐 태우는 거다
“내 말 잘 들어. 이걸 팔면 우린 그 순간부터 싸구려가 되는 거야. 평생 싸구려 소리 듣고 살 거야? 평생 시장바닥에서 물건 팔래? 우린 수출 기업이야! 수출해야 부자 되지! 부자 안 될 거야? 안될 거냐고!”
대세 그룹이 그랬다.
기술 개발을 등한시하며 탱크 주의니 뭐니 하며 중저가 제품에만 올인했기에, 성장 동력을 잃었다.
아무리 마케팅을 잘해도 자체 기술력이 없는 제조업은 한계가 있는 거다.
“부자 될 거야. 수출할 거야. 수출할 거라고!”
“그럼 태워! 태우라고!”
“하아, 찬수야… 그래도 이건…”
“닥치고 태워! 구 반장들 뭐해! 불량품 모두 들고 와! 다 태워!”
“사장님…”
“사장인 내가 명령하잖아! 다 태워! 난 싸구려를 팔 바엔 혀 깨물고 죽을 거야.”
나는 여태 했던 닦달 중에 최고의 닦달을 했다.
내 기에 질린 삼복이와 구 반장들이 원단을 모아 불을 질렀다.
나일론 베이스의 원단이라 연기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지만, 시뻘건 불꽃에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사방에 가득 찼다.
하도 방방 떴더니 곁눈으로 지켜보던 여사원들은 부들부들 떨었고, 공장 밖의 행인들도 멈춰 서서 지켜볼 정도였다.
“다시 한 번 이따위 쓰레기를 생산하면 공장도 다 불지를 거야! 이왕 망할 거 빨리 망해야 고생이라도 덜하지!”
“사장님, 고정하세요. 직원들이 다 듣습니다.”
다 들으라고 이 짓하는 거다.
“내가 못할 것 같아? 당장 불 질러 줄까?”
“동구 반장, 사장님 끌고 가. 승구, 용구 반장! 이리 와.”
“예, 부장님.”
“각자 염색 대기 중인 원단 한 롤씩 가져와. 오늘 염색 공장이란 공장은 다 돌아보자. 어서!”
어쭈, 지랄을 하니까 행동을 하는군.
이왕 돈 들여 지랄하는 거 확실하게 해야지.
“이거 놔, 놓으라고! 다 불지를 거야! 싹 다!!!”
“동구 반장! 어서 끌고 가! 사장실에 가두고 자물쇠로 잠가. 한다면 하는 친구니까, 진짜 공장에 불 지를지도 몰라. 어서!”
“예, 부장님.”
내가 버둥거리자 다른 직원들도 뛰어 나와서 내 팔 다리를 붙들고 사장실로 옮겼다.
사장실이라고 해봐야 코딱지만 한 다락방이라 밖에서 문을 잠그면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절대 사장님 꺼내주지 마. 알았지!”
“예, 부장님.”
삼복이가 차에 원단을 가득 싣고 공장을 빠져나갔다. 그래, 그러라고 차를 사준 거야.
국내에서도 염색 전문가는 찾으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휴우…”
사장실에 혼자 갇혀있자니 점차 차분해졌다.
솔직히 아까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출하 품질 스펙」
– 깨끗한 물에 중성세제로 세탁 시 물 빠짐 또는 이염이 발생되어서는 안 된다.
– 자연광 아래서 관찰했을 때, 전체 면적의 2%이상 기름얼룩이나 변색 부위가 있으면 불량이다.
– 보풀 발생 면적이 2% 이상이면 불량이다.
– 염색 후 치수 변경이 2% 이상이면 불량이다.
나는 책상에 앉아 대략적이나마 출하 스펙을 작성했다. 엔지니어링에서 애매하다 싶으면 그냥 2%를 스펙 기준을 삼으면 된다.
인간의 눈으로 색깔이든 부피든 길이든 2% 정도 차이나면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거든.
물리적으로도 그런 2% 법칙이 있지만, 심리적으로도 2% 법칙은 꽤나 있다.
무슨 사업이든 기존 시장 점유율의 2%를 대체하기 시작하면 성장세로 들어서고, 경기 성장률도 2%를 기준으로 저성장과 고성장으로 나누고 말이다.
“하도 버둥거렸더니 진이 빠지네.”
다락 바닥에 벌러덩 몸을 뉘였다.
여전히 공장에서는 원단을 척척 뽑고 있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제처럼 기분이 좋진 않았다.
염색에서 발목이 잡힐 줄이야.
내가 21세기 인간이라고 60년대 기술을 너무 가소롭게 봤던 모양이다.
하긴 나는 회귀하기 전까진 나일론의 ‘나’자도 몰랐던 놈이 아닌가.
초짜라면 초짜답게 겸손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을 계기로 품질에 대해 꾸준히 개념을 심어둬야 해. 내버려뒀으면 큰일 났을 거야.’
길게 보면 불량이 잘 터졌다 싶었다.
어째 바닥에 누웠더니 일어나가기 힘들었다.
중간 중간 쪽잠을 자긴 했지만 밤새 푹 잤던 날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였다.
***
똑똑.
“이보게, 우 사장. 살아있나?”
“헉!”
비몽사몽을 헤매고 있던 차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허, 살아 있네. 나야, 혜성 나일론 황 영감.”
“영감님이 여긴 웬일이십니까?”
문틈 사이로 황 영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문을 열려고 했지만, 정말로 직원들이 자물쇠로 문을 잠가놓았다.
“원단도 불태우고, 공장까지 불 지르겠다고 난리 쳤다며? 그래서 이리 갇혀 있는 거야?”
“명색이 수출품인데, 품질이 개판이었습니다. 직접 보셨어야 했는데.”
“안 봐도 뻔하지. 일본 놈들이 우리 제품에 코웃음을 치는 이유니까.”
“… 혜성 나일론에서 납품받은 원사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원사 문제가 아니라 염색이 불량했습니다.”
혜성 나일론 탓이 아니라고 해도 황 영감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걸 확인하러 온 게 아니라는 듯 말이다.
“자네처럼 성질 더러운 사장은 내가 처음 봤어. 나라도 좀 거들어야겠어. 해결은 아니더라도 도움이 되긴 할 거야.”
“영감님께선 염색도 하실 줄 아십니까?”
황 영감님이 도와주겠다니 놀라웠다.
하긴 소형이지만 나일론 중합 플랜트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 보통 사람일리 없지.
“제 아버님은 일본 합섬에 징용되어서 공장 지을 때부터…”
“됐다. 잊고 싶은 일이다. 어서 문이나 따거라.”
“예, 아버지.”
응? 아들인 황혜성 사장도 같이 왔네.
장차 혜성그룹의 회장이 되는 황혜성 사장도 꽤 실력 있는 화학 공학자인데, 황 영감님이 기술적으론 더 천재적이었던 모양이다.
“혜성아, 우 사장이랑 원단 챙겨서 오너라. 나는 먼저 가서 염색약이나 타고 있을 테니.”
“예, 아버지.”
직원들을 자극하려고 원단에 불을 질렀는데, 그 불꽃을 등대삼아 황씨 부자가 날아들었다.
***
“아버지, 저희 왔습니다.”
“원단 갖고 왔으면 깨끗하게 빨아라.”
“예, 아버지.”
황혜성 사장을 따라 나일론 공장을 가로질러 뒷마당으로 향했다.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물을 채우고 가스불로 뜨끈하게 끓이고 있었다.
황혜성 사장은 황 영감의 말에 따라 뜨거운 물에 원단을 집어넣고는 빨기 시작했다.
커다란 나무 주걱을 가져와 휘휘 젓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뭘 하시는 겁니까?”
“섭씨 30도의 물에 소량의 세제를 풀어 원단에 있는 불순물과 기름얼룩을 벗겨내야 합니다. 염색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죠.”
“언제 여기에 염색 라인이 있었던 겁니까?”
“제 아버님의 실험실입니다.”
“실험실이라고요?”
“예, 아버님은 일제 강점기 때 징용 당하셔서 섬유공장에서 일하셨답니다. 그땐 이렇게 주걱이 아니라 세탁조 안에서 맨발로 옷감을 밟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직접 발로 밟아요? 그래도 돼요?”
아무리 섭씨 30도의 온탕이라지만, 계속 작업하면 발이 팅팅 불어 다 까질 것 같았다.
“당연히 안 되죠. 제 아버님은 하도 발톱이 빠져서 이젠 아예 발톱이 없으십니다.”
“… 이런…”
“아버님은 해방 후 현해탄을 건너오시면서 다짐을 하셨답니다. 기필코 일본제보다 나은 옷을 만드시겠다고요. 실 뽑는 것부터 재단까지 우리 기술로 하고 싶어 하시니, 염색은 당연히 필수죠.”
헐, 원사부터 제단까지… 대단한데?
혜성 그룹이 그렇게 섬유 사업에 매달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황 영감님의 집념에 더해 황혜성 사장이 대를 이어서라도 아버지의 꿈을 이루고 싶었던 거네.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거냐?”
“없는 말도 아닌데요. 아버지.”
“후딱 일이나 하자.”
황 영감님은 감정 표현에 인색한 기술자였지만, 그의 아들인 황혜성 사장은 꽤나 붙임성이 있었다.
잘 어울리는 부자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어찌 알아? 그냥 해보는 거니까 그런 소린 안 해도 돼.”
황 영감님은 나름 완벽주의자였다.
내가 염색 품질에 대해서 만족할 지 안할지를 두고 보겠다는 말이었다.
“이리 나서주신 것만도 감사드린다는 겁니다.”
“됐고, 원하는 색깔이 뭐야?”
“노란색과 녹색입니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얻은 원단 샘플을 펼쳤다. 다른 색 주문도 있지만, 일단 라자크가 요청한 노란색과 녹색 물량이 20만 야드로 가장 급했고 물량도 많았다.
“망고 색, 숲 색이구만.”
“예, 그렇습니다.”
정확한 표현이었다.
“아버지, 망고 색부터 하시죠. 그게 쉽잖아요.”
“그러자꾸나.”
황혜성 사장이 어디선가 염료와 갖가지 유리병을 잔뜩 가져왔다.
그걸 황 영감님이 깡통에 집어넣고 휘휘저어 색깔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영감님, 색깔이 너무 짙은 것 같은데요…”
“아냐, 딱 이 정도가 적당해. 그래야 나중에 수세를 했을 때 발색이 제대로 나온다고.”
“그… 그렇군요.”
짙은 정도가 아니라 붉은 기운마저 도는데, 저게 염색하면 노란색이 된다는 게 놀라웠다.
“혜성아, 맛 좀 봐라.”
“예, 쩝. 쩝… 퉷. 초산이랑 카르복실 나트륨을 좀 더 넣어야 할 것 같아요. 아버지.”
“그래? 쩝. 쩝… 퉷. 정말이네.”
미친, 부자 둘이서 염색약을 탄 깡통 물을 맛보며 품평회를 하고 있었다.
양념장 간을 맞추듯 온갖 약품을 첨가하며 맛보기를 반복했다.
‘빙초산, 카르복실 나트륨, 소르비톨, 아틸렌디아민, 소듐 벤조에이트…’
유리병에 쓰인 약품명만 봐도 결코 건강에 좋을 리 없는데 맛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아무리 맛만 보고 뱉는다고 해도 저렇게 거리낌없이 혀를 댈 수 있나 싶었다.
“왜 그런 표정이여? 우 사장도 맛 한 번 볼텨?”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 014 : 느낌 아니까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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