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42)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42화(142/589)
< 142 : 확실히 보내주마 >
“자, 끊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귀빈들이 가위로 테이프를 잘랐고, 대통령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가 열연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벌겋게 달궈져 있던 슬래브가 레일을 타고 흘렀고, 롤러 위로 연신 냉각수가 뿌려질 때마다 치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음, 멋지군. 이렇게 강판을 만들면 배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들고 하는 거잖아. 그렇지? 임자.”
“예, 그렇습니다. 철은 산업의 쌀이죠.”
대통령이 대뜸 물어서 나도 바로 답했다.
국가 기반 산업에 있어 석유화학 산업이 가장 우선이고 그 다음이 제철소다.
다른 산업은 모두 그 바탕 위에 이뤄지니까.
“저기 보십시오. 포항제철 1호 열연코일이 생산되었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첫 번째 열연코일이 생산되어 나왔다. 시뻘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함부로 만지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다.
후끈한 기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참석자 전원이 1호 열연코일 주변을 에워쌌다.
“각하, 휘호를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누군가 대통령에게 페인트 통과 붓을 건넸다.
60년대답게 또 휘호를 적는 시간이었다.
「피와 땀의 결정체」
“와아아아아아!”
어떤 휘호를 적나 싶었는데 이 자리에 딱 어울리는 글귀였다.
“다들 하루에 서너 시간 밖에 못 자고, 죽을 둥 살 둥 일했다는 거 익히 들었지. 이 철에 녹아 들어간 게 임자들 피와 땀이란 거 나도 알고 대한민국 국민도 다 알아. 수고했어.”
대통령은 진짜 축하 연설을 여기서 했다.
“만세! 대통령 각하, 만세!”
“만세!”
“각하, 일본에서 판형 강재를 수입해 이렇게 코일을 만들어 다시 일본으로 수출하면 톤당 10불이 남습니다. 봉이 김선달식 무역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장관님 말씀이 정확하십니다.”
“허허, 그런가?”
자기들끼리 북도 치고 장구도 치면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았다.
어이없는 계산법이었다.
반제품을 사 와서, 이 비싼 설비를 운용해 고작 톤당 10불을 남기고 다시 일본에 판다고?
그리 싼 값에 가공 해주면 일본 기업만 신나지.
호구 외주업체 하나 개발한 셈이니까 말이다.
얼핏 보면 반제품 가공이 남는 장사처럼 보이지만, 기술 축적이 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계속 이런 돈만 벌다가는 자체 기술 개발은 요원해지고, 중진국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동남아나 남미국가들처럼 말이다.
심지어 남는 장사도 아니다.
“좋아. 다들 수고했으니 오늘 하루는 막걸리 한잔하고 숨 좀 돌려야지. 다들 가자고.”
“각하, 앞장서시지요.”
“와아아아아!”
대통령은 모내기 한판 하고 새참 먹으러 가듯 사람들을 우르르 몰고 회식 장소로 향했다.
회식 장소도 딱히 대단한 곳이 아니었다.
추진위 사무실로 쓰는 가건물에 탁자를 놓고, 신문지를 깔고는 안주와 막걸리를 차려놓았다.
나는 이 장면을 포항제철 역사관 사진에서 보고, 연출된 사진이겠거니 싶었는데…
이 시대엔 대통령도 이런 자리에서 회식했군.
잘됐다. 담판을 짓기에도 좋은 자리였다.
“오늘, 각하 오른쪽 자리는 석기훈 추진위원장이 앉아야지.”
배학렬 경제 부총리가 선심이라도 쓰는 척 분위기를 잡고, 석기훈 차관보가 주춤주춤 대통령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임자, 고생한 거 다 알아. 담배 한 대 피워.”
대통령은 담뱃갑에 라이터를 얹어 석기훈 차관보에게 권했다.
대통령 앞에서 맞담배를 피는 게 이때는 굉장한 특권이었던 모양이다.
“감사히 피겠습니다.”
내가 알기로 석기훈 차관보는 비흡연자인데, 한두 모금 깊이 빨더니 슬며시 껐다.
대통령 앞에서 맞담배를 피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모양이다.
“다들 잔 채우지.”
“각하께서 건배 제의하시겠습니다.”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다.
“쇳물이 쏟아지는 그 날을, 위하여!”
“위하여!”
“건배!”
“건배!”
참석자 대부분은 대통령과 함께 막걸리를 훅하니 비웠다.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었다.
김중필 의원, 청와대 자문 교수들… 죄다 일본 기술자들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막걸릿잔에 입만 대는 척하고 내려놓았다.
어째 사소한 것도 이렇게나 표가 날까?
“다들 술 한잔했으니, 현장에서 어려운 일 있으면 얘기해봐. 모인 김에 여기서 풀어야지.”
대통령은 한국 주식회사 사장답게 간담회를 빙자한 회의를 주관하기 시작했다.
***
“추진위원장으로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 말해봐. 현장에서 어떤 애로사항이 있나? 정부가 뭘 도와주면 되겠어?”
석기훈 차관보가 배에 힘을 꽉 주고 말을 시작했고, 대통령은 뭐든 들어주겠다는 듯 시원하게 대답했다.
“저희 추진위원회가 처음에 기획한 제철소 배치안이 있는데, 일본에서 실시 설계를 맡은 뒤로 무차별적으로 설계 변경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시 설계는 또 뭐야? 그리고 대체 뭐가 바뀔 게 있다는 거야? 완벽한 종합 제철소 설계라고 피츠버그 철강업계도 감탄했지 않았나.”
으흠, 대통령은 모르는 일이었군.
하긴 역대급으로 중요한 국가 프로젝트인데, 그가 설계 변경안을 지시했을 리 없지.
“대통령님, 실시 설계는 현장에서 쓰는 도면입니다. 원래 현장 상황에 맞게 설계를 조금 수정하기도 하는데, 석기훈 위원장 말로는 지금 그 권한을 이용해 포항제철을 망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뭐라고? 포항제철을 망쳐? 날림 공사를 한다 이건가?”
“차라리 날림 공사면 때려 부수고 다시 지으면 되는데, 공장 배치를 바꾸고 있습니다. 생산 효율성이 극히 떨어지는 형태로 말입니다.”
“무슨 소리야? 여기 들어간 혈세가 얼만데! 이건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업이란 말이야.”
내 말에 대통령의 언성이 높아졌다.
시작은 좋다.
일단 시선은 끌었다.
“우 사장님. 제대로 알고 말씀을 하셔야죠. 각하께서 오해하시지 않습니까!”
배학렬 경제 부총리가 나서서 인상을 구겼다.
“제가 뭘 모른다는 겁니까? 공장을 일렬로 놓고 쇳물부터 강판까지 한 번에 쭉 흘러야 하는데, 말발굽 형태로 바꾸고 있으니 쇳물이며 강판이며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야 할 판입니다.”
나중에 21세기로 가면 자동화나 전산화를 하게 될 텐데, 그것이 힘들어지는 구조다.
“무슨 소립니까? U자 구조는 일본 전문가와 청와대 자문 교수들이 최선으로 뽑은 겁니다.”
“I자 구조가 더 최선입니다. 피츠버그 기술자들과 추진위원들이 뽑은 최선의 배치였단 말입니다.”
“일하다 보면 설계야 늘 수정하기 마련이고, 그 와중에 최선을 찾는 것이죠. 책상 앞에서 짠 설계도 가지고 탁상공론을 하면…”
“무슨 탁상공론입니까? 포항제철 공장부지와 물류를 철저하게 분석한 배치안이었습니다.”
“최근 자리를 비우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
“부총리는 가만있어 봐. 임자! 임자말로는 포항제철이 이상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야?”
대통령이 부총리의 말을 끊고 내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 사장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부총리, 조용히 하라고 했지! 임자 계속해봐.”
대통령이 성마른 목소리로 부총리의 입을 다물게 했다.
좋은 날이라 고생한 이들을 치하하러 왔는데,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장 배치안을 두고 말다툼이 일어나니 화가 날 만도 했다.
“대통령님, 하나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열연 공장의 재료로 수입하는 슬래브가 터무니없이 비쌉니다.”
“슬래브가 비싸?”
“각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공해서 일본에 되팔면 톤당 10불이나 남는 일입니다. 외려, 최대한 많이 수입해야 합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우 사장! 말 가려가면서 합시다.”
“계산을 뭔 그따위로 합니까? 슬래브를 톤당 90불로 들여와서 열연강판으로 가공해서 톤당 100불에 일본에 되판다고요? 로스(Loss)는 계산 안 합니까? 산화막만 제거해도 톤당 몇 킬로는 없어집니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장사입니다.”
“그… 그건.”
“그리고 일본으로 되팔아요? 그럼 일본이 그걸 110불, 115불 이렇게 팔아먹을 텐데, 남 좋은 일을 왜 합니까? 우리가 미국으로 수출해야죠.”
“아니, 후진국 강판을 누가 사준다고 그럽니까? 일본 상표를 붙여야 팔리지요. 뭘 모르면…”
어휴, 뼛속까지 패배감에 빠져있다.
빌어먹을 인간, 그따위 마인드로 경제를 이끌 생각이냐.
“누가 누구보고 모른답니까? 제가 미국 피츠버그 연합을 괜히 끌어왔겠습니까? 그쪽에서 철강 인증을 받을 겁니다. 일본이 아니라 수입할 당사자한테서요!”
“수출이 그렇게 말대로 되는 줄 아십니까?”
“닥쳐! 여기서 우 사장보다 수출 많이 한 사람이 누가 있어? 내가 묻지! 우 사장, 이거 정말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일 맞아?”
대통령이 연신 줄담배를 피우면서 내게 물었다. 경제 부총리와 각을 세운다는 말은 어찌 보면 정부 시책에 반기를 든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리되면 경제기획원을 죽여야 내가 산다.
“예, 그렇습니다. 여기 열연 공장 연간 생산량이 60만톤 정도입니다. 톤당 10불을 남긴다면 연간 600만불, 한화로 대략 16억 정도입니다. 그 정도가 이 많은 인원이 3교대로 뼈 빠지게 일하는 값어치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따위 계약을 한 놈은 당장 주리를 틀어야 합니다.”
나는 잔뜩 얼굴을 붉히고 젓가락을 들고 부러뜨리는 시늉을 했다.
텅!
“이거 누가 계약했어? 대체 어느 놈이야?”
16억이라는 말에 대통령이 술상을 내리치며 고함을 질렀다.
“각하, 한시적인 계약일 뿐입니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차관을 내준 대가로 계약을 했습니다. 국회에서도 승인한 일입니다.”
이번엔 김중필 의원이 말을 보탰다.
오케이, 됐어!
“포항제철은 제철보국 하기 위해 지었습니다. 미쓰비시의 하청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죠. 게다가 한일 청구권 자금은 우리의 혈채인데, 거기에 무슨 대가를 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우 사장, 국가 간의 외교란 게 그런 게 아니야. 장사처럼 매번 나만 이익을 볼 수 있나. 실제로 외교를 하다 보면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해.”
김중필 의원은 짐짓 헛기침을 하며, 나를 애송이 취급했다.
“뭔 그따위 소리가 다 있어!”
“가… 각하!”
대통령의 호통에 김중필 의원이 움찔했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 그걸 자네 마음대로 정했다는 거야? 한일 협정도 자네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제자리로 돌리는데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설마 포항제철도 그따위로 일 처리한 거야!”
한일 협정도 김중필이 메모지 한 장으로 외교문서를 대신해서 일이 엄청나게 꼬였다.
메모는 그 특성상 한일 각자의 시선으로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각하, 제 말은 그게 아니고, 결코 우리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대통령님, 손해 보는 장사입니다. 제게 국제 입찰을 맡겨주시면 슬래브를 톤당 70불에 가져올 수 있습니다.”
호주를 통하면 그 정도 가격으로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다.
갈철석 대신 일부를 슬래브로 가져오면 효율이야 약간 떨어지지만, 60불까지 가져올 수 있으니 손해도 아니다.
한일 인맥을 제거하는 데 일조한다면 백만톤도 가져오지.
“톤당 70불? 그럼 얼마가 남는 거야? 톤당 110달러로 직접 수출하면 40불이 남는 거야? 그럼 연간 얼마야?”
“현재 연 생산량이 60만톤쯤 되니, 2400만불은 남길 수 있습니다.”
석기훈 차관보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솔직히 인건비와 기타 경비를 빼면 그보다야 적겠지만, 뭐 어떤가? 상대적인 비교일 뿐이다.
“연 600만불짜리 장사가 실제론 연 2400만불짜리였군. 손해 보는 장사 맞지 않나! 대체 미쓰비시에서 얼마나 처먹은 거야. 다른 건 몰라도 포항제철만큼은 건드리면 안 되는 거 몰라!”
대통령은 술판을 엎을 듯 대노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중정 요원들이 눈치 빠르게 실무진만 내보내고 문을 닫아걸었다.
“각하, 경제기획원을 비롯한 정부 각처는 최선을 다해 포항제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뇌물이라니요, 그런 일 절대 없습니다.”
“그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럼 어째서 어렵게 구매한 공장부지를 파서 바다로 만드는 겁니까? 포항제철 말아먹으려고 작정한 거 아닙니까?”
“뭔 말씀을 그렇게…”
“뭐? 육지를 바다로 만들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간척해도 시원찮을 판에 누가 그따위 짓을 해!”
대통령이 눈에 불을 켰다.
그도 기공식 때 언덕 위로 올라가 공장부지를 보지 않았던가.
해안을 따라 일자로 쭉쭉 확장해 나갈 거라는 계획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계 용역 대표가 그러더군요. 공장부지를 성토하려면 육지를 파야 한다고요. 대세며 현산이며 준설선이 몇 척인데, 바닷모래를 파서 성토하면 되는 일을 말입니다.”
“용역 대표? 그 미친놈을 당장 데려와!”
“우에노 조자부로라는 일본 기술자입니다. 청와대 자문 교수도 그자의 의견에 동의했다는데, 어디 말씀 좀 해보시죠. 교수님들.”
내 말에 교수들이 바짝 얼었다.
퍼렇게 질린 얼굴이 이미 패배를 시인하는 꼴이었다.
“왜, 아무도 말씀을 안 하십니까? 왜 멀쩡한 땅을 파서 공장을 U자로 만드시냔 말입니다. 공장 땅까지 좁혀가면서!”
“그… 그거야 물류도 편해지고, 공기도 단축…”
“덜떨어진 놈, 너 어느 대학 교수야? 일부러 땅을 좁혀서 물류를 편하게 해? 그걸 말이라고 해!”
“A대 조선공학과 교수입니다.”
대통령의 호통에 석 차관보가 곧바로 대답했다.
여태 추진위를 꽤나 괴롭혔나보다.
“저놈 끌고 가서 당장 조사해! 뭘 받아 처먹었는지, 모조리 토해내게 해!”
“예, 각하!”
“어어, 용서… 용서해주십시오. 각하!”
서슬 퍼런 대통령의 일갈에 중정 요원이 자문 교수를 끌고 나갔다.
바보 같은 놈들.
뇌물도 판을 보고 처먹어야지.
포항제철을 건드려?
이건 절대 소화할 수 없는 건이다.
대통령이 국가 기간 산업으로 생각하는 거라고.
“가… 각하. 뭔가 오해를 하셨습니다. 이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실무 수준에서 공장 배치가 조금 바뀐 것에 불과합니다.”
일이 커지겠다 싶었던지 잠시 찌그러졌던 김중필 의원이 다시 나섰다.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생산성이…”
“우 사장! 각하 앞일세. 계속 그리 오해할 말만 한다면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할 거야.”
김중필이가 급기야 내 말을 끊으며 협박했다.
이 자리만 파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그런 협박이 내게 통할 것 같냐?
넌 이번 건으로 아웃이야.
확실히 보내주마.
< 142 : 확실히 보내주마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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