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46)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46화(146/589)
< 146 : 인맥의 확장 >
“조건? 말해보라.”
나이프가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천연가스 파이프를 요르단까지 연결했으면 합니다.”
“천연가스? 그걸 어디다 쓰려고?”
“발전소 연료로 쓰고자 합니다. 미국 BR사에 공사를 발주해주십시오. 파이프가 연결되면 10년 이상의 장기 공급계약을 맺었으면 합니다.”
이처럼 장기 계약을 맺어놓아야, 오일 쇼크 때도 안전하다.
물론 오일 쇼크로 천연가스 가격이 조금 오르겠지만, 그 정도로 사우디와 요르단 왕실 간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버려지는 자원이니 판매 대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면 되겠군. 그런 조건이라면 너무 쉬운 것 아닌가. 이게 조건의 전부가 아닌 거로군.”
머리가 좋은 양반이었다.
내가 당신 같은 거물을 만났는데, 남의 밥그릇만 챙기겠나? 더 중요한 건 내 밥그릇이지.
“예. 다른 하나는 저희 대세에 사우디 원유 수입권을 보장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게 내걸 조건이 맞는가?”
이 역시 너무 쉬운 일로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지금에야 그렇지만 나중엔 달라지지.
“한국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 원유 공급 안정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왕자님께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하긴, 석유는 국가 안보 문제라고도 할 수 있지. 좋다. 내 복권을 돕는다면, 확실하게 공급 안정성을 보장하겠네.”
“감사합니다. 그 약속 또한 최소 10년은 유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해야지. 그런데, 대세라면… 인도네시아 원유를 우리 사우디 원유로 바꿔 가는 회사가 맞는가? 독특한 거래라 기억이 나는군.”
“예, 제 회사입니다. 대세는 해운업과 석유 화학업종도 하는 복합 기업입니다.”
이 시대는 그룹보다는 복합 기업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 것이다.
여하튼 이 양반, 바깥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척하더니 여러모로 정보를 분석하고 있었군.
하긴, 여기 갇혀서 할 일이 뭐가 있겠나?
“으흠, 해운업에 석유화학까지라…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겠어.”
나이프 왕자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용할만한 기업이 하나 더 생겼다는 뜻인가?
그래, 마음껏 이용하시라.
대신 절대 공짜는 아니다.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중동에서는 긍정적인 의사 표현을 하려면 알라를 찾으면 된다.
이봐, 나이프 왕자. 그 마음 절대 변하면 안 돼.
우린 지금 알라를 걸고 약속하는 거니까.
“그런데 그대만 조건이 있는가? 응당 나 또한 조건을 걸어야 하지 않겠나.”
이게 사우디식 샤리아 법이다.
절대 공짜는 없다.
물론, 이슬람 율법답게 대가를 돈으로 받는 게 아니라 일로 되돌려 받는다.
“말씀하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편임을 증명하게. 그것이 내 조건일세.”
“여기, Lee를 왕자님 곁에 두고 가겠습니다. 대세의 공동 창업자이며 제철소의 상무입니다. 연락책으로든 말동무로든 나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삼복이를 앞으로 훅하고 떠밀었다.
‘마! 무슨 소리야! 또 나를 인질로?’
삼복이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인질 노릇도 한두 번 하다 보면 인이 박힌다.
이왕 한번 해봤으니 이번에도 잘 해보렴.
“좋군. 마침 이야기 상대가 없었는데 말이지.”
“아직은 이슬람 문화에 익숙하지 않지만, 가르쳐 주시면 잘 따를 겁니다.”
‘뭐? 설마 기도도 하고 금식도 해야 하는 거야? 야이, 미친놈아!’
삼복이가 나를 죽일 듯이 쏘아보았지만, 나는 담담히 삼복이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맞췄다.
“Lee! 대세 그룹의 명운이 걸린 일이니, 모쪼록 협력해주십시오. 내. 그대만 믿겠습니다.”
나이프 왕자가 들으라고 일부러 영어로 말했다.
“예, 그래야겠지요.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삼복이는 속마음이야 어떻든 애써 장단을 맞춰 주었다.
역시 대세의 2인자다운 모습이었다.
“여기 텔렉스 번호를 본사에 알려두십시오.”
“예, 사장님.”
삼복이를 통하면 연락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삼복이는 여기서 이런저런 정보도 주워들을 것이고, 나이프 왕자와도 어려운 시절을 함께하는 것이니 상당한 유대감을 쌓을 수 있으리라.
“나이프 왕자님, 계약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짐짓 계약서를 어찌할까 물었다.
중동에서는 계약서 자체를 믿으면 안 된다.
차라리 신을 매개로 맹세하는 것이 더 낫다.
“맹세를 적어주지.”
대박! 맹세를 적는단다!
최상급 계약서였다.
‘나, 무함마드 빈 나이프는 사우드 왕가를 대표하여 요르단 왕실에 천연가스를 팔기로 맹세한다.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간단한 문장이었지만 완벽한 계약서였다.
나이프가 복권되지 못해 왕실로 못 들어가면 이 계약은 무효, 복권되어도 왕실을 대표할 정도로 힘을 가지지 못해도 무효였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요소를 만족하면 요르단 왕실과 왕실 대 왕실로 맹세한 것이니 절대 깨질 수 없는 계약이었다.
‘이 양반 정말 머리가 좋아. 괜히 최장수 내무장관이 된 게 아니었어.’
좋은 파트너를 만났다.
“감사합니다. 사우드 왕가여 영원하라.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나는 사우디식 인사를 하며 경의를 표했다.
“이 계약이 이뤄지는 그 날, 나는 그대의 수고를 잊지 않으리라.”
나이프는 기분이 좋았던지, 손을 휘휘 저어 나를 축복했다.
“파이프 건설을 위한 사전 조사를 하려고 합니다. 수행원이 필요합니다.”
사우디에선 현지인의 도움이 필수다.
관광 비자조차 없는 나라가 아닌가.
“문밖에 몇 명이든 데려가라. 모두 왕실 경호실 소속이니 수행에 문제 없을 것이다.”
간수들을 모두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놨던 모양이다. 하긴, 들어올 때부터 간수치곤 왕자에게 깍듯하다 싶었다.
여하튼 왕실 경호실 소속의 수행원이면 사우디에서 지질 조사를 하는 덴 문제 없겠다.
서로가 만족한 계약을 마친 후, 나는 삼복이와 헤어져 혼자 호텔 사무실에서 텔렉스부터 쳤다.
To. 밴 플린트 장군.
요르단 프로젝트의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사우디로부터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요르단까지 연결하기로 확답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바레인에 유배 중인 나이프 왕자를 복권시킬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밴 플린트 장군이라면 이 정도 숙제는 충분히 해낼 것이다.
나는 낸시에게도 같은 내용의 텔렉스를 보냈다.
이리저리 나이프 왕자의 복권 방법을 찾다 보면, 결국 사우디 왕가 내부에서 붉은 왕자를 찾아 실각시키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이다.
“오케이, 이제 나는 내 할 일을 해야지.”
사우디 동쪽의 유전 지대인 쿠라이스와 서북쪽 요르단 아라바 항구까지 파이프를 연결하려면, 경로 조사가 우선이었다.
단순한 파이프 공사라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중간중간 오아시스가 있어야 하거든.
어렵고 힘들어도 내가 직접 조사할 거다.
내가 직접 챙겨야 뒤탈이 없는 법이다.
괜히 사우디인에게 맡기면 100% 엉뚱한 곳으로 간다. 사우디가 원래 그런 곳이다.
‘가자, 사막으로!’
나는 어금니 꽉 깨물고 사우디로 향했다.
모래 밥을 먹는 건 정말 괴롭지만, 그만큼 큰돈이 생기는 일이다.
간수 중에 듬직해 보이는 3명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사우디로 향했다.
***
몇 주 뒤, 호텔 바레인 베이.
바레인으로 돌아왔다.
텔렉스를 확인했더니, 밴 플린트 장군과 낸시가 동시에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고 말이다.
마침 파이프라인 경로도 다 뽑았기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어, 안녕들 하십니까!”
“CS, 연락하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 사우디를 얼마나 휘젓고 다닌 거야?”
“그러게 말이에요. 세상일은 혼자 다 하나 봐요.”
“사막을 조사하느라 좀 바빴습니다. 파이프라인의 최적 루트는 찾아야 하니까요.”
“아니, 사막에서야 그냥 직선으로 쭉 뽑으면 될 걸 뭘 조사까지 하고 그래?”
밴 플린트가 피식 웃으며 농담을 했다.
그가 누군가를 칭찬하는 방식이었다.
“이 지도대로 수주를 따주십시오. 계약자는 BR사, 시공사는 우리 대세 건설입니다. 아시죠?”
나는 파이프 공사 지도를 내밀었다.
“하하, 내가 졌네. 졌어. 여하튼, 자네가 루트를 정했다면 조사해보나 마나 최적 루트이겠지. 그쪽으로 파이프라인을 뽑자고 사우디와 협의하지.”
파이프라인 경로는 마음에 들게 나왔다.
쿠라이스 지역과 아라바 항구까지 연결하는데, 중간에 꺾이는 지점이 딱 한군데였다.
“멋진데요? 이렇게 천연가스를 옮기면 발전소 몇 개 돌리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겠어요. 이스라엘에서도 전기를 사가겠다고 할지도 모르겠군요.”
낸시는 짝짝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유태인답게 뭔 일이든 이스라엘을 끼워 넣으려고 했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서로 필요한 걸 사고팔며 우호를 다진다면 우리 사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보다, 내 관심은 언제 나이프 왕자를 복권시킬 수 있냐 하는 것이었다.
“나이프 왕자 일은 어찌 되어가나요?”
“하하, 그것 때문에 우리가 모인 게 아닌가. 자네 말을 듣고 사우디 왕실을 뒤져봤더니 아주 근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더군.”
밴 플린트가 싱긋이 웃었다.
“근사한 일이라고요?”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어이없게도 왕위 계승순위 2순위가 입헌 군주제를 주창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더군. 대통령제가 싫다고 의원내각제를 하자는 식이야.”
“왕실 입장에선 미친놈이군요.”
나는 맞장구를 쳤다.
“맞아 그런 놈은 정치할 자격조차 없어. 2인자인 주제에 기회를 만들긴커녕, 왕실을 박살 낼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미 국무부도 힘을 보탰어요. 사우디 왕실에 해당 정보를 살짝 흘려 그자를 실각시켰어요. 정말 CS에겐 행운이 따르는 것 같아요. 호호.”
“오늘이 그자가 실각하는 날인가요?”
“네, 맞아요. 지금쯤 바레인으로 날아오고 있을 거예요. 이제 감옥의 주인이 바뀌는 거죠.”
오늘 바레인에서 만나야 한다고 하더니, 역시 이유가 이것이었어.
“나이프 왕자를 축하해주러 가야겠군요.”
“그렇지, 출소 축하 파티라도 하러 가자고. 파티는 떠들썩해야지.”
“어서 가요.”
우리 셋은 훅하니 일어서 스카이라운지 아래층으로 향했다.
***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갑시다.”
이미 연락을 했는지, 간수들은 기존의 군복을 벗고 깔끔한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간 나이트 왕자를 보필했던 공로로 이대로 영전하는 모양이다.
“하하하! 어서 오시오. 오늘같이 기쁜 날, 이렇게 귀한 손님이 찾아오시니 더욱 기쁘도다.”
“힘든 시간을 이기신 분을 뵙게 되니 저 또한 영광입니다.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복권 축하드립니다. 사우드 왕가여 영원하라,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축하드려요. 나이프 왕자님.”
밴 플린트와 나는 정중하게 축하했고, 낸시는 알라를 찾기보다 축하 인사로 퉁쳤다.
하긴 유태인인 낸시가 여기에 자리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미 물밑 접촉을 통해 사우디와 미국이 외교 관계를 재정립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미 정부도, 저희 BR사도 나이프 왕자님의 복권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을 잊지 말아 주시오.”
“잊을 리가 있겠소. 여하튼, 석유 카르텔과의 이익 배분도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길 바라오.”
“나이프 왕자님, 걱정하지 마세요. 어제부로 특별소비세법이 통과되었고, 미국 석유 회사들은 사우디 원유에 대해 소비세를 면제받기로 했답니다. 그 돈을 사우디 왕실이 챙기시면 된다는 뜻이죠.”
헐, 기가 막힌 전략이었다.
세금 우대정책을 이용해 사우디 왕가의 이익을 보전해주는 격이었다.
석유 기업들도 미 정부에 내던 세금을 사우디에 주는 것이니 손해가 아니었고, 미 정부도 추가 재원 마련 없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했다.
역시 세금 정책은 만능열쇠라니까.
“좋군. 그리하면 나도 미국과 했던 모든 약속을 지킬 수 있겠군. 물론, CS와 했던 개인적인 약속도 지킬 수 있고 말이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나이프 왕자님 앞길에 영광이 있으라.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CS 그대의 뜻대로 되었으니, 나 또한 원하는 바가 이뤄졌으면 좋겠군. SB에게 내 일을 일러뒀으니 챙겨주시게.”
삼복이에게 조건을 말해둔 모양이네.
가볍게 말하는 거로 보아 무리한 요구는 아닌 듯했다.
그러고 보니 삼복이가 안보였다.
“SB는 어디에 있는지요?”
“하하하, 축하 장소에 미리 가 있네. 다 같이 자리를 옮겨봅시다.”
나이프 왕자는 기분 좋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
“하하. 어서들 오십시오.”
삼복이는 머리에 터번까지 두르고 우리를 맞이했다.
내겐 잭콕을, 밴 플린트 장군에겐 위스키와 쿠바산 시가를, 낸시에겐 샴페인과 초콜릿을, 나이프 왕자에겐 커피와 물담배를 내밀었다.
내가 말해준 적 없는 밴 플린트 장군과 낸시의 취향마저 아는 거로 보아 나이프 왕자로부터 정보를 일부 공유받았던 모양이다. 역시, 삼복이야.
“나이프 왕자님의 복권을 위하여!”
“나이프 왕자님을 위하여!”
“위하여!”
우리는 건배했고, 나이프 왕자는 밴 플린트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물담배를 즐겼다.
“어째, 잘 지냈던 것 같다.”
“여기 정보원들에게 들었다. 사우디 사막에서 고생 좀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마음이 좀 풀렸냐? 사막의 땡볕보다 여기가 낫지 않냐? 갇혀 있긴 하지만 에어컨도 나오고 술도 있잖아. 뭣보다 잠은 실컷 잤을 거 아냐.”
“그간 못 쉬었던 거, 여기서 다 쉬었다. 그래도 너 나갈 때 데리고는 갈 거지?”
“그래, 오늘 출소다.”
나는 삼복이와도 잔을 부딪쳤다.
“그런데 나이프 왕자의 조건이 뭐야? 벌써 동의한 거지?”
“동의할 수밖에 없었어. 대화 중에 우리가 울산에 조선소를 짓고 있다고 했더니, 바레인에도 하나 지어달래. 수리용 조선소라고 하더라. 바레인 왕실이 나이프 왕자에게 잘 해줬나 봐. 보답하는 차원에서 해줘야 한다더군.”
우리 실력에 대해 100% 확신은 없었던지, 신조(新造) 조선소는 아니고 수리 조선소를 맡겼다.
“이야, 수주 한 건 했네.”
“큰 건도 아닌데, 뭘.”
짐짓 아무것도 아닌 듯이 얘기했지만. 삼복이의 어깨는 이미 하늘까지 솟구쳐 있었다.
나이프 왕자가 바레인 왕실과 끈을 맺는데 우리 대세를 이용한 것이다.
대세가 나이프 왕자와 줄을 이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했다.
< 146 : 인맥의 확장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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