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47)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47화(147/589)
< 147 : 가까워지는 중동 >
며칠 후,
나와 삼복이는 사해 리조트에 자리했다.
긴 탁자 뒤쪽으로는 요르단 국기와 사우디 국기가 내걸리고, 위에는 줄줄이 계약서가 놓여있었다.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 사우디의 나이프 왕자, 대세 건설, BR사, 벡텔 등등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관련된 이들이 빼곡히 앉았다.
“이 계약으로 천연가스라는 알라의 축복을 함께 나누기로 맹세하니 요르단과 사우디는 또다시 형제임을 증명했습니다. 국왕으로서 요르단 국민들을 대신하여 모든 관계자분께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요르단 국왕이 축하 연설을 하였고, 모든 이들은 알라를 외치며 화답했다.
요르단으로선 그간 문제가 되어왔던 에너지 수급 문제와 식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일이라 국가적인 경사였다.
왕실과 왕실끼리의 계약이라 수급 안정성은 말할 나위도 없었으니, 허풍을 조금 보태면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게 된 날이었다.
누구 하나 손해 보는 사람이 없기에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버려지는 천연가스로 전기를 만들고 해수를 담수로 만드니 누구는 돈을 벌고, 누구는 왕권을 강화하고, 누구는 중동의 큰형님으로서 영향력을 키우는 일이 아닌가.
놀라운 일은 사우디 왕실을 대신해 나이프 왕자가 직접 계약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는 왕가로 복귀하자마자 파드 국왕의 심복으로 완벽히 자리 잡더니 불과 며칠 만에 내무장관으로 취임하고 곧바로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계약서 서명은 단숨에 끝나고, 사방에서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얘기꽃을 피웠다.
본격적인 파티의 시간이었다.
사해의 밤은 시원하고 아름다워 파티를 열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이리 오게, SB. 여기 인사 좀 하지.”
“예, 왕자님.”
삼복이는 완전히 나이프 왕자의 절친이 되어 이리저리 불려 다니기 바빴고, 나 또한 오랜만에 느긋하게 파티를 즐겼다.
밴 플린트와 벡텔 부사장이 다가와 건배를 청했다. 할 말이 있나 보군.
“이렇게 멋진 프로젝트를 제풀에 포기해 버린 웨스팅하우스는 완전 초상집이겠군. 하하하.”
밴 플린트는 웨스팅하우스를 거론하며 승리감을 만끽했다. 하마터면 좌초할 뻔한 프로젝트를 되살렸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나.
“그러게요. 여러모로 상황을 분석했다면 천연가스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웨스팅하우스가 나처럼 절박하지 않았다는 것이 승부처가 갈린 이유였을 것이다.
절박하게 움직인 만큼 과실은 달콤했다.
내가 따낸 파이프 납품과 시공부문만도 자그마치 2900만불에 달하는 대형 수주였다.
설계 용역, 각종 기자재, 추후 유지보수까지 따지면 총 7200만불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공사였다.
솔직히 LNG 형태로 보관 및 이송하는 파이프라인이었다면 공사비는 더 어마어마했겠지만, 단순히 천연가스를 이송시켜 발전소에서 태우는 공사라 상대적으론 저렴한 편이었다.
“어찌 되었든 웨스팅하우스 대신 벡텔이 발전소를 맡게 된 것은 100% CS의 추천 때문이야. 고마워하라고.”
“하하, 당연하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벡텔의 부사장도 연신 땡큐를 연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웨스팅하우스에 뺏겼다고 여긴 대형 프로젝트를 내 덕분에 되찾았으니 말이다.
“저도 벡텔과 이번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되어 든든합니다. 발전소 플랜트만큼은 벡텔을 따라갈 회사가 없지요. 이번 해수 담수화 플랜트와 연계하는 설계도 아주 잘 뽑아주실 거라 믿습니다.”
“당연하지요. 벡텔은 대세와는 굿 파트너이지 않습니까. 우리 회사에서 기술 연수를 받은 대세 엔지니어들이 자그마치 100명이 넘는데 말입니다.”
나름 벡텔과 대세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연수생을 연줄로 실무자끼리도 협업을 잘할 것이다.
솔직히 벡텔이 기술 연수를 잘 받아주니 이렇게 협력하는 거다. 비즈니스 세계만큼 기브 엔 테이크가 확실한 곳이 있을까.
“서로서로 도와야죠. 이번 수주는 제가 도왔으니 나중에 벡텔도 갚는 겁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우린 동맹이 아닙니까.”
벡텔은 나와 밴 플린트를 보면 동맹이라는 말을 썼다. 말 그대로 대세와 벡텔은 BR사를 중심으로 확실한 카르텔을 형성한 셈이다.
“하하하, 동맹이라! 듣기 좋은 말인데요?”
여하튼 벡텔도 나섰으니 수로 공사는 순조롭게 시작될 것이다.
“이봐, CS. 벡텔만 챙기지 말고 GE도 좀 돌아봐. GE 쪽에서도 이번에 흥미로운 제안을 하던데 말이야.”
“GE가요?”
“어, 저를 부르셨습니까?”
짐짓 지나가는 척하더니 GE 부사장이 우리 쪽으로 휙하니 끼어들었다.
발전소 부품을 납품할 뿐 계약 당사자가 아닌 GE가 왜 파티에 참석했나 했더니 할 말이 있었군.
“이봐, 직접 왔으니 말해봐. 이번에 탈산(acid removal) 공장의 수주를 따내고 싶다고 했잖나. 나이프 왕자와 연줄이 필요하다지?”
탈산은 천연가스를 파이프로 내보내기 위한 전처리 과정이다.
천연가스에는 황화수소를 비롯한 산성 가스가 포함되어 있기에 그걸 사전에 제거해야만 한다.
전처리 없이 그대로 배관으로 밀어 넣었다간 배관이 부식되는 것은 물론, 태웠을 때 대기오염과 악취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는 이참에 탈산 공장에 대한 기술 이전을 받기 위해 발주처를 섭외 중이었다.
GE가 한번 도전해보려는 모양이군.
하긴 미국 대기업이라면 석유화학에 죄다 한발씩 걸치고 있으니, 보유한 특허도 많을 것이다.
공장 수주도 의미 있지만, 황화수소를 처리해서 나오는 황산 같은 부산물은 또다시 돈이 된다.
미국에서야 공해산업이라고 떠들겠지만, 여기 중동에서야 GE가 탐을 낼 만했다.
“밴 플린트 이사님 말씀대로입니다. 대세에서 나이프 왕자와 다리만 놔주신다면, GE가 탈산 공장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을 겁니다.”
“다리를 놔달라…”
“물론, 대가는 있습니다. 예전부터 발전소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저희 터빈 기술에 관심이 많으셨지 않습니까? 지금도 유효하시겠지요?”
“물론이죠. GE의 터빈은 세계 최고니까요.”
나는 립 서비스를 해줬다.
뭐야, 설마 라이선스라도 주겠다는 건가?
“발전소용 터빈 부품에 대하여 10년짜리 기술사용협정(LA, License Agreement)을 맺어드리죠. 그러면, 한국에 설치된 발전기 터빈의 유지보수 시장은 죄다 접수하시는 겁니다.”
LA는 쉽게 말하면 면허 생산권이었다.
즉, GE로부터 터빈 부품에 대하여 생산 권한과 기술을 이전받아 대신 생산하는 것이다.
물론, GE가 터빈 블레이드 같은 첨단 부품 기술을 가르쳐주진 않을 것이고 터빈 덮개 정도를 만들게 하지 않을까 싶었다.
터빈 덮개는 굽힘, 용접, 기계 가공을 반복해야 하는 부품이거든. 노동력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다이어프램(Diaphragm)이라고 따로 부를 만큼 꽤 고급 부품이긴 하다.
내수 시장은 관심 없지만, 터빈 부품 기술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10년짜리 기술사용협정이라…”
“단, 해외 판매는 금지입니다. 정 원하신다면 일본은 예외로 두지요.”
마치 선심을 베풀듯 일본 시장엔 진출하려면 해 보라고 말했다.
타국 기업을 배척하기로 유명한 일본 시장을 뚫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 저리 말하는 거다.
“알겠습니다. 이왕 다른 이가 가져갈 프로젝트라면, GE가 가져가는 게 좋겠군요. 솔직히 이 업계에서야 서로 도와서 나쁠 게 있겠습니까.”
“하하하, 감사합니다. 대세에 빚을 졌습니다.”
GE로선 한국에 설치된 발전소 터빈 A/S라는 계륵 같은 사업을 떠넘기고 수주를 하게 되었으니 일석이조였다.
“하하, 역시 CS답게 화끈하게 계약하는군. 앞으로 한국에서 벌어질 발전소 사업만큼은 대세가 컨소시엄을 구성해도 되겠어.”
밴 플린트는 내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밴 플린트 정도는 되어야 한국인을 제대로 판단하지.
GE는 한국인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한국인에게 10년짜리 면허 생산권을 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내가 확실하게 보여주지.
면허 생산이 내게 아주 유용한 이유는 GE가 보유한 터빈 특허의 범주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체 기술 개발에 있어 GE의 특허를 회피할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을 얻을 수 있다.
“발주 공고가 나면 바로 접수하십시오. 나이프 왕자님에게 GE를 배려해달라고 말을 넣어 두겠습니다.”
“수주하게 되면 곧바로 기술사용협정을 맺어드리지요.”
“기대하겠습니다.”
내 말에 GE 부사장은 즐거운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사우디 프로젝트는 왕족을 통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걸 뻔히 아는 것이다.
“일이 척척 이뤄지는군. 차주부터 착공에 들어가는 건가? 쿠라이스 유전에서부터 시작하겠지?”
“그래야죠. 그런데, 쿠라이스엔 제가 아니고 김 부장을 보낼 생각입니다.”
“Kim이라면 믿을 수 있지. 그럼, 자네는 바레인 수리 조선소를 챙기려는 모양이군.”
“벌써 들으셨군요. SB가 한 건 했습니다.”
“정말이지, 지구 전체를 돌아다니는군. 바레인도 조만간 한국인으로 북적거리겠어.”
그러고 보니 직원을 더 뽑아야 할 것 같았다.
일단 공채로 뽑은 직원 중에 지원자를 먼저 받고, 그래도 모자라면 전포동에서 황금종을 울려야 할 것이다.
기능공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겠지.
오히려 용접하겠다고 지원하는 사무직 직원들을 설득하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대세 건설은 무서울 정도로 세를 불려 나갔다.
“북적이는 인원만큼 중장비도 많이 필요합니다. BR사에서 여유가 되면 중장비 좀 빌려주십시오. 장비 대여료는 넉넉하게 쳐 드리겠습니다.”
“어려울 것 없지. 안 그래도 베트남에서 중장비 일부를 철수시켜서 사우디로 가져올 생각이었거든. 바레인에도 일부 보낼 테니 빌려 가.”
벌써 월남에서 일거리가 줄어드나?
역시 닉슨 정부가 들어서니 슬슬 발을 빼기 시작하는군.
“감사합니다.”
“아, 할 말이 있는데… 바레인에 들렀다가 곧바로 귀국하지는 마. 관광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좀 보내라고.”
“왜 그러십니까?”
귀국을 말리는 이유는 뻔했지만 밴 플린트의 조언을 듣고 싶었다.
“한국 정세를 알아보면 내 말뜻을 알게 될 거야. 괜스레 귀국해서 귀찮은 일에 얽히지 않았으면 해. 3선 개헌이라니, 영 무리수야. 닉슨 정부도 지지하지 않을 거야. 외려 그걸 핑계로 한국 정부와 거리를 벌리겠지.”
하긴 미 정부도 애매하긴 할 거다.
정권이 바뀐 지 채 몇 달밖에 안 됐는데 타국의 내정 간섭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있기엔 동맹국의 독재를 지지하는 모습이고 말이다.
“어차피 바레인 현지 조사에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그걸 마치고도 인도네시아에 들러야 하는 일도 있고요.”
“인도네시아까지. 아… 군함 건인가 보군. 그럼 충분하겠군.”
아직 염원철 수석비서관에게서 메시지가 없으니 귀국할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다.
대신 삼복이를 보내 업무를 챙길 생각이었다.
요르단도 난공사는 다 끝낸 셈이라, 마무리는 아버지에게 맡겨도 충분할 것 같았다.
***
“아이고, 취한다…”
밴 플린트와도 이야기를 끝내고 리조트 분숫가에 앉아 분위기를 즐기자니 삼복이가 다가왔다.
“실컷 마셨냐?”
“너무 실컷 마셨네. 너는 괜찮냐?”
“난 언제나 잭콕이지. 이건 마셔도 안 취해.”
“안 취하긴 개뿔! 여하튼, 이제 발전소 연료 문제도 해결했겠다 귀국만 하면 되는 거냐?”
“바레인엔 들렀다 가야지. 수리 조선소 부지는 둘러봐야 설계 드로잉이라도 해서 줄 거 아냐. 네가 수주한 건인데, 잘해야지.”
“설마 거기서도 날 두고 가는 건 아니겠지?”
삼복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노려봤다.
“아서라. 인천제철로 가서 파이프도 만들어야지, 바레인 프로젝트 지원자도 받아야지, 모자라는 기능공은 전포동에서 모집도 해야지, 부산 근처로 간 김에 영도 조선소도 좀 봐줘야지… 삼복이 너는 귀국할 수밖에 없어.”
“으잉? 너는 귀국 안 하겠다는 말이냐?”
“요즘 우리나라가 정치 때문에 시끌벅적하지 않냐? 나는 좀 피해있으마. 마침 인도네시아에 군함 건으로 볼일도 있고 말이야.”
“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삼복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마워, 역시 너뿐이다. 일을 그리 많이 시켜도 싫은 내색도 안 하고 말이야.”
“역시, 내가 없으면 일이 안되지?”
“꼭 그런 건 아닌데…”
“안 된다고 해주지 않으련?”
삼복이가 주먹을 불끈 쥐었기에 나는 바로 말을 바꿨다.
“어, 당연히 안되지. 이삼복 상무님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지!”
“그렇지. 이제 말을 제대로 하네. 그런데, 정말 바레인 수리 조선소를 설계부터 시공까지 턴키(Turnkey, 일괄수주)로 해볼 셈이냐?”
삼복이는 조금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울산 조선소처럼 애플도어 같은 영국 회사의 기술 용역을 받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울산 조선소야 유조선 수주와 연계해서 리바노스의 믿음을 얻어야 했기에 그랬던 거다.
이제 울산 조선소에서 실적을 만들고 있으니, 바레인 수리 조선소야 턴키로 해봐야지.
도크만 제대로 만들면 다른 건 크게 문제없다.
게다가 수리 조선소의 특성상 골리앗 크레인도 필요 없다. 그냥 크레인만 있어도 무방하다.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야. 우리야 동아시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지만, 객관적으론 세계 물류의 중심은 중동이야. 중동에서 수리 조선소 실적은 만드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냐? 아… 하긴 여기 드나드는 유조선만 따져도 일감이 정말 많긴 하겠네.”
“수리하러 온 김에 싣고 온 물건을 하역할 수도 있지. 게다가 배를 수리하면 돈이 필요하잖아? 그럼 자연스레 배를 담보로 운영자금을 융통하는 금융업도 발전하게 돼. 이래저래 돈이 된다고.”
처음엔 우리를 못 믿어 신조(新造) 조선소가 아니라 수리 조선소를 발주했나 싶었는데, 바레인으로선 수리 조선소가 훨씬 유용했다.
“… 바레인 정부가 머리를 잘 쓴 거네. 수리 조선소를 만들면 배든 돈이든 이쪽으로 몰리겠네.”
“바로 그거야. 괜히 조선업을 국가 기간 산업이라고 부르겠냐?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유조선과 거대 화물선은 움직이는 자산이다.
세계 경기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걸 제외하면 조선업은 꽤 쓸만한 구석이 많다.
“갑자기 바레인에 엄청 가고 싶어지네.”
“내일 출발?”
“콜!!”
가자, 바레인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첫 조선소 수주다!
< 147 : 가까워지는 중동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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