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49)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49화(149/589)
< 149 : 대세 목재 >
다만, 인도네시아 해상 유전 개발은 꽤 어려운 편이다. 기본적으로 유전의 덮게 암(岩)이 얇고, 저류암이 연약해서 유정이 잘 무너지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생산 잘하고 있던 유전이 한순간에 막히기도 하고, 반대로 폭발적으로 원유가 터져서 누출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첫 시추는 울산이나 뀌년 앞바다처럼 안정된 지반에서 하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네.
“조광권 협의가 완료되면 보유 시추선과 탐사 전문가를 바로 파견하도록 하지요. 설마, 조광권을 제게 파시려는 건 아니시겠죠?”
“조광권은 당연히 무상입니다. 원목 사업에 필요한 도로나 항만을 건설해주실 테니 말입니다.”
나름 물물교환이나 다름없었다.
국제 입찰을 하면 조광권은 적어도 2, 3천만 불은 줘야 한다.
산림 도로와 항만 건설 비용이 딱 그 정도 될 것이다.
“그럼 유전 지분 비율만 정하면 되겠군요.”
“공평하게 50대 50으로 하시지요.”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어이없을 정도로 좋은 조건이었다.
2차대전 이전이라면 모를까, 70년대로 접어들면서 기업의 지분은 30%를 넘지 못한다.
해당 국가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해 사업 리스크가 큰 경우엔 45%까지 지분율이 올라갈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진심입니다. 대신 특약조항이 있습니다.”
그래, 특약이 없을 수 없지.
“말씀하시죠.”
“중도에 포기란 없습니다. 무조건 성공해주셔야 합니다. 개도국끼리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셔야만 합니다.”
“적절한 특약이군요. 반드시 지키죠. 대신 탐사 구역은 제가 정하겠습니다.”
“물론이죠. 탐사도 능력이니까요.”
인도네시아로선 내게 유전 하나 정도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주는 한이 있더라도, 메이저 석유 회사를 끼지 않고도 유전 개발에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양반 보통 전략가가 아니야. 카톨릭 신자라고 알려진 것도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어.’
처음 인니를 방문하고 베니 무르다니와 협상을 한 후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빌 베인에게 자료 조사를 시켰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베니 무르다니는 인도네시아의 육, 해, 공군은 물론 보안사와 경찰까지 관장하는 통합군사령관이었다.
쿠데타의 주역이라 그런가 했더니, 빌 베인의 설명은 조금 달랐다.
베니 무르다니가 카톨릭 신자였기에 그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선 무슬림이 아니면 대통령이 될 수 없기에, 무르다니 장군이 정권을 잡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그러니 정권을 잡은 수하르토는 무력 관련 직책을 모두 무르다니에 밀어준 것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는 쿠데타가 가장 두려웠을 테니까.
“그럼 실사를 마치고 우리 영사관을 통해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출만 하시면 대통령께서는 바로 서명하실 겁니다.”
역시 인도네시아 국책사업이었군.
“좋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대통령 궁에서 뵙게 되겠군요.”
“실사를 하려면 현지 안내자가 필요할 테니 인원을 보내드리죠.”
“감사합니다.”
꼭 필요한 일을 해주면서 은근슬쩍 자기 사람도 내 옆에 붙였다.
철두철미한 양반이었다.
여하튼 내가 이런 계약을 맺었다고 알려지면, 메이저 석유 회사들은 놀라기는커녕 비웃음만 날릴 것이 뻔했다.
유정을 2, 3개만 파도 대세 정도의 기업은 대번에 유동자금이 말라버릴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난 실패 가능성이 아예 없다.
오히려 처음에 너무 대형 유전을 개발해버리면, 사방에서 견제당할 게 뻔하니 적당한 곳을 선택해야만 했다.
즉, 알짜배기 유전이면서 견제는 받지 않는 유전이 필요한데…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할 판이었다.
**
서울, 수성 사장실.
똑똑.
“아버님, 저 권희입니다.”
“음? 거제도에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얼굴 보기도 힘들었는데 잘 왔다.”
도권희는 수성 조선의 전무로 부임해, 거제도에서 조선소 공사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문서로야 늘 보고드리지만, 간혹 구두 보고도 필요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공사 진척이 왜 이리 더디더냐? 이유가 뭐냐?”
벌써 대세 조선은 도크를 1차로 완성하고 유조선을 건조하기 시작했다는데, 수성은 아직 도크도 제대로 파지 못했다.
“기술 이전에 시간이 좀 걸리고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대세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건 우리 수성이 할 행태는 아니지.”
도병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명목상 일본 이시카와 중공업과 합작하긴 했지만, 차관을 내주는 대가로 설계와 시공을 일본이 모두 가져갔다.
당연히 기술 이전 계약도 체결했으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제대로 배워야지.
비싼 수업료를 치르는 과외 수업이나 다름없는데, 공사 진척도를 챙긴다고 대충 배울 수는 없었으니까. 대충 배우는 건 오히려 일본 측이 바라는 것이리라.
“오늘은 수성 조선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보고가 있어 이리 올라온 것입니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예,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우리 수성이 전자산업에 진출할 때가 말입니다.”
“무슨 소리냐? 전자산업이라니. 원래 기업끼리는 고유 영역이라는 게 있다. 전자산업은 금양사(社) 영역이다. 업계의 불문율이야.”
도병철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괜스레 남의 영역을 건드려 좋을 게 없었다.
괜히 경쟁하다가 내 영역까지 침범당할 빌미를 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역 나누기 불문율은 이미 깨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저희가 경공업을 넘어 조선소라는 중공업으로 나섰지 않습니까?”
“그건 전혀 다른 얘기다. 정부에서 중공업 진출을 종용하지 않았더냐. 전자산업과는 달라.”
어찌보면 영역 침범이었다.
하지만, 국가 정책에 따른 것이라 대세 조선도 딱히 반발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이 적기라는 겁니다. 3선 개헌으로 코너에 몰린 청와대로선 호의적인 여론몰이를 해줄 이가 절실할 겁니다. 우리가 여론도 움직이고, 정치자금도 지원한다면, 정부에서 수성에 전자공업에 진출하라는 지시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듣고 보니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정부가 나선다면 중복 투자니, 상도의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욕은 정부가 듣지 수성이 듣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방법이야 차치하고, 왜 전자산업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부터 들어보자. 얼마나 돈이 될 것이기에 그런 욕심이 내는 것이냐?”
“최근 얻은 정보입니다. 중공업만 바라보는 대세조차 CNC라는 공작 기계에 들어가는 전자부품 때문에 미국 기업에 수백만불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없는 나라 살림에 미국에 함부로 투자했다간, 불법 외화 반출 혐의로 중정에 끌려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 위험을 무릅썼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솔직히는 철 지난 정보였지만, 도권희는 그냥 최근 얻은 정보라고 퉁쳤다.
“대세가 나섰으니, 성장 가능성이 확실한 사업이라는 것이냐?”
“여태 대세가 진출했던 부문은 성장세가 남달랐습니다. 더욱이 전 세계 몇 대 팔리지도 않는 공작 기계에 들어가는 전자부품도 전망을 밝게 보는데, 라디오나 테레비에 들어가는 전자부품을 만든다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일본 기업이 전자부품에 대해선 유독 기술 이전을 꺼린 게 이유가 있었군.”
도권희의 말에 도병철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촉이 움직였다고나 할까?
전자부품에 대해서 말이 나올 때마다, 일본 측에선 한사코 돈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었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돈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돈이 너무 되어서 그랬던 거야.’
“사업에 성공할 자신은 있느냐?”
“예, 있습니다. 마침 산요전기라고 한국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전자부품업체가 있습니다. 합작 형태가 좋을 것 같습니다.”
“합작의 명분은 어찌할 생각이냐?”
“전 세계적으로 전자제품 시장이 팽창하고 있습니다. 당사는 2년후 연간 7000만불의 전자부품을 생산하여, 90% 이상을 수출하고 국가의 전자공업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겠습니다.”
수출 위주의 기업임을 내세워 중복 투자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내수를 통한 생산확대로 규모의 경제와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니까 말이다.
대부분의 제조업에선 관세와 운송비용을 감안하면 내수 시장의 수익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2년 후에 연간 7000만불 매출!”
도권희의 출사표에 도병철이 깜짝 놀랐다.
재작년 사카린 밀수 사건 때문에 위의 형제들이 세가 밀리긴 했지만, 아직 도권희가 수성의 정식 후계자로 공표된 것은 아니었다.
도권희가 허풍을 칠 계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님께서는 정치권을 챙겨주셔야 합니다.”
“그래, 기름칠을 하라면 해야지.”
“… 송구합니다. 아버님.”
“그보다 사업 자금은 어찌 마련할 셈이냐? 일본과 합작한다면, 대부분 투자는 우리가 하고 기술 이전 비용도 내야 할 텐데.”
당연히 수성에선 전자산업에 관한 기술이 없으니, 조선소와 똑같은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수성 조선소의 차관으로 얻는 6000만불에서 일부 떼어내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럼 조선소는?”
“일본으로부터 선박 수주를 받아 계약금과 기성금으로 건설비를 충당하겠습니다.”
“일본이 수주를 준다고 하더냐?”
“23만톤급 유조선 3척을 8000만불에 수주하기로 했습니다. 2년 뒤부터 매년 한 척씩 인도하기로 말입니다.”
도권희의 말에 도병철은 흠칫 놀랐다.
그런 대규모 거래를 자신에게 보고도 없이 결정했다니 말이다.
이번 전자산업에 출사표를 던진다는 말은, 후계자로서 능력을 증명하겠다는 뜻이었다.
“척당 2700만불도 안되는구나. 세 척이면 1000만불은 족히 손해를 보는 장사겠어.”
여태 파악한 바로는 20만톤이 넘는 유조선은 척당 3000만불은 받아야 겨우 본전이었다.
“송구합니다. 실적 확보가 우선이고, 몇 년에 걸쳐 이자를 낸다고 생각했습니다.”
“끙.”
아랫돌 빼서 윗돌 괴자는 소리였다.
도병철은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냈지만, 전자산업 진출을 미루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 검토해볼 테니, 그만 돌아가거라.”
“예, 아버님.”
검토한다고 했지만, 도병철은 마음을 굳혔다.
전자산업에 진출하기로 말이다.
***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영사관.
무르다니 장군을 비롯해 여러 유력 정치인과 면담을 하다 보니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오늘 드디어 대세 목재 직원들이 입국하는군요. 실사 결과가 아주 기대됩니다.”
한수동 총영사는 이번 일을 특히 기뻐했다.
대규모 국책사업이나 다름없는 일이 자신의 부임지에서 실행되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성공만 한다면 초대 인도네시아 대사로 발령 날 가능성도 충분했다.
“총영사님이 중간에 다리를 잘 놔줘서 일이 척척 진행되는군요.”
“그런데, 이런 기쁜 소식을 본국에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계약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입니다.”
“정 그러시다면 원목 사업은 성사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유전 개발은 아직 타진 중이다. 이 정도로 하시죠.”
“하하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정부에서도 아주 기뻐할 겁니다.”
총영사는 입이 귀에 걸렸다.
대박 프로젝트를 자신이 성사시킨 모양새이니까 말이다.
어차피 언론에 알려질 거, 총영사 덕분이라고 치장하는 것도 좋으리라.
인도네시아 총영사라면 앞으로 도움받을 일도 많을 테고 말이다
“그럼 저는 신문 좀 읽다가 직원들 마중을 나가겠습니다.”
“예, 예. 그러십시오.”
내가 한국 소식이 궁금하다고 했더니 영사관에서 한 달 치 신문을 몽땅 모아서 내게 가져다주고 다과까지 차려주었다.
정치든 경제든 원래 역사에서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국내 정치가 혼란스러워 그런지, 닉슨이 괌에서 발표한 대(對) 아시아 독트린에 대해 국내에선 큰 관심이 없는 것도 원래 역사대로였고 말이다.
‘어? 수성산요전기 합작사? 수성이 전자산업에 진출해?’
신기했다. 원래 역사가 그런가?
이때 벌써 수성이 전자부품업계에 진출하다니, 반도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건가?
원래 역사든 아니든, 이상하긴 했다.
수성은 일본에서 조선소 차관을 빌렸지 않나.
당연히 그 대가로 설계, 시공, 기술용역까지 쪽쪽 단물을 빨릴 테니, 신사업을 시작할 자금 여유가 있으려야 있을 수 없을 텐데.
조선소 비용은 나조차 버거울 정도인데 말이다.
나야 멕시코 올림픽으로 대박이 나서 조금 여유가 생겼지, 신디케이트 차관만으로 조선소를 완공하려고 들었다면 신형 골리앗 크레인을 들여오는 것만으로 내 유동자금은 바닥을 드러냈을 거다.
“뭐야? VLCC 3척을 고작 8천만불에? 이런, 수성이 미쳤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후속 기사에 일본에서 8000만불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주를 올렸다고 자랑스레 적혀 있었다.
비전문가인 기자야 대박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업계 사람이면 이마부터 짚었을 수주액이었다.
보아하니, 조선소 건설도 조금 지연시키고 수주액도 덤핑 쳐서 그 돈으로 전자산업에 자금을 대려는 것 같았다.
오일쇼크 이전에 유조선 인도를 끝내야 와중에 강판값이라도 건질 텐데, 자칫하다간 조선소를 완공하자마자 좌초할 수도 있겠는걸?
그렇다고 내가 수성을 불러 미래를 알려줄 수도 없고 말이다.
21세기에서 큰 먹거리가 되는 전자산업을 하겠다는데 내가 어찌 말리나.
솔직히 내가 봐도 전자산업에 진출하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나야 지름길을 아니 느긋할 뿐.
여하튼 여론몰이는 대단했다.
금양 계열인 국제일보는 수성산요전기 합작사 설립은 중복 투자라며 난리법석이었고, 수성 계열인 중도 일보는 새로운 수출기업의 탄생이라며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중도일보는 박 대통령의 차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전자공업증진은 필수라며, 은연중에 3선 개헌까지 지지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서 청와대에 줄도 서고, 중복 투자에 대한 비난도 잠재웠군.
역시 수성답다.
“이거, 흘러가는 모양이 재밌게 되었는걸. 지켜볼 게 하나 늘었어.”
나는 주요 기사를 마저 훑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직원들 마중을 나갈 시간이었다.
휙하니 항구로 향했다.
부두에서 바람을 쐬고 있자니 저 멀리 대세 해운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울컥 반가움이 몰려왔다.
“어서 와요. 웰컴 투 인도네시아!”
나는 입국 절차를 밟으러 들어가는 배를 향해 손을 마구 흔들어주었다.
< 149 : 대세 목재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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