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5)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5화(15/589)
< 015 : 첫 출하 >
“아뇨, 아뇨.”
“하하, 우 사장님도 한번 맛보세요. 어제 저녁 먹은 거도 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정말 별거 아닌 일인 양 날 놀려댔다.
“혜성아, 된 것 같다. 물에 풀고 불 지펴라.”
“예, 아버지. 불 세기 좀 봐주세요.”
황혜성 사장이 뜨끈하게 데워진 물에 염료를 풀고 원단을 투입했다.
그리고 가스버너에 불을 피워 드럼통을 데우기 시작했다.
“불 좀 높여라. 옳지… 옳지… 됐다. 5분만 더 데우다 다른 통으로 옮기면 될 것 같다.”
“그럴게요.”
황 영감은 뜨겁지도 않은지 드럼통 안의 물에 손을 집어넣고는 온도를 측정했다.
“저러셔도 되는 겁니까?”
“온도계가 있어도 굳이 저러시더라고요. 몸으로 느끼는 게 가장 확실하다면서요. 대충하는 것 같지만, 온도계로 재보면 각 드럼통의 온도는 정확히 20도씩 차이 납니다. 맨 마지막 통은 펄펄 끓으니까 100도인 게 당연하고요. 망고 색처럼 옅은 색은 100도에서 30분정도 두면 염색이 끝납니다.”
어설프고 위험해 보였지만 당사자가 너무도 태연해 내 걱정이 공연한 것인가 싶었다.
“30도 용액에서 전처리를 하고, 분당 2도로 온도를 높이면서, 최종적으론 100도의 용액에 30분정도 둔다는 말씀이군요.”
“우 사장님, 역시 똑똑하셔요.”
고작 드럼통 몇 개를 가져다 놓고 온도별로 공정 조건을 셋팅한 셈이었다.
솔직히 제대로 된 설비만 있으면 대량으로 염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끝인가요?”
“아니에요. 후처리 단계를 거쳐야 염색이 제대로 끝나는 겁니다.”
“후처리라고요?”
“염색이 끝나면 여기 증기탕에서 20분정도 둬야 합니다. 그래야 물 빠짐이 줄어들고, 원단 치수도 유지됩니다. 그 뒤에 원단의 보풀을 제거하면 작업이 끝납니다.”
증기탕이라니, 일종의 대형 스팀 다리미기로 원단을 펴주는 공정이었다.
증기탕엔 온도계가 달려 있었고 12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즉, 120도 포화 증기상태에서 열처리를 한다는 뜻이었다.
증기 처리라니, 열에 약한 나일론에 열처리를 할 수 있는 노하우였다. 대박 노하우였다.
‘설마 이걸 다 기억해 온 거였어?’
황 영감님은 온 몸에 고통에 가까운 기억을 빼곡히 새긴 채 현해탄을 건너 온 것 같았다.
**
“뭐하나? 이리 와서 살펴봐야지.”
“아, 예. 영감님.”
황 부자(父子)를 도와 원단의 전처리와 염색을 돕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어느새 황 영감님은 후처리까지 끝난 원단을 들고 나를 불렀다.
“어떠냐?”
“… 대단한데요?”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일론 특유의 매끈함을 유지하면서도 면처럼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염색은 단순히 옷감을 물들이는 용도가 아니라 촉감을 결정하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명한 노란 색깔이 너무 아름다웠다. 열대의 햇빛 아래 흠집하나 없이 잘 익은 망고를 보는 것 같았다.
“맘에 드나보구나.”
“그런데…”
나는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노란색은 더할 나위 없이 품질이 좋았지만, 녹색은 전혀 아니었거든. 뭔가 모르게 푸르죽죽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노란색은 괜찮은 수준이지만 숲 색은 마음에 들지 않겠지. 하지만, 지금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러시군요.”
녹색으로 염색한 원단은 색깔이 균일하지 않았다. 햇빛에 비춰보면 얼룩처럼 보였다.
“아버지, 짙은 색은 한 번 더 염색하면 좀 나아지잖아요.”
“아서라. 덧칠 염색을 한다고 우 사장 눈에 들겠냐? 손에 염색 좀 묻어난다고 원단을 불태운 사람인데.”
“그렇긴 하네요. 아쉽네요. 아버지의 그 찝찌름한 물질이 뭔지만 알아도 싹 해결될 일인데…”
“찝찌름한 물질이라고요?”
“예, 일본 합섬사(社)에서 농염(濃艶, 짙은 염색)을 할 때 첨가하는 비법 물질이라는데 도통 뭔지 모르겠어요.”
“이 놈아, 그만해. 언젠가는 내가 꼭 발견하고 말테니까.”
노란색처럼 옅은 색은 현재처럼 하면 되는데, 녹색처럼 짙은 색은 물질이 더 필요한가 보네.
지금 첨가하는 물질도 대단히 복잡하던데, 염색도 노하우가 대단하구나.
“황 영감님, 그 비법 물질이 어떤 식으로 찝찌름했나요? 제게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글쎄, 토할 것 같은 냄새에 맛을 보면 혀가 찌릿하고 콧김이 펑펑 쏟아지는 맛이라고나 할까?”
“콧김이 펑펑 쏟아지는 맛이라고요?”
어째 삭힌 홍어 맛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럼 혹시 암모늄 계열의 물질인가?
“그래, 일본 놈들은 그 비법 물질을 탈 때마다 코를 막곤 했지.”
“코를 막았다고요?”
일본인들도 냄새를 맡았을 정도면 별다른 보호 장구 없이 다뤘다는 말이지 않나.
암모늄 계열의 물질인 게 분명했다.
‘염색 약품으로 쓸 만한 암모늄 계열의 물질이 뭐가 있을까? 염화암모늄? 질산암모늄?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그걸 어찌 혀로 맛봐? 그럼… 혹시, 초산암모늄?’
초산암모늄이 떠오르자 눈이 번쩍 뜨였다. 아까 전 처리에서 빙초산을 쓰지 않았던가.
염색약품으로 초산암모늄을 쓴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저 잠시 약품 좀 살펴볼게요.”
“약품?”
“그 찝찌름한 물질이 뭔지 알 것 같습니다.”
“뭐라고?”
내 말에 황 영감은 내게 약품을 모아둔 찬장을 훅하니 열어젖혔고, 그 안에는 온갖 약품이 다 있었다.
‘있다! 재료가 있어!’
구석에 초산나트륨과 염화암모늄이 있었다.
나는 후다닥 사기그릇에 두 가지 물질을 천천히 섞어서 반응을 시켰다.
순도가 그리 높지는 않겠지만 노리끼리한 초산암모늄을 합성할 수 있었다.
온갖 화학반응을 꿰차고 있는 플랜트 업계 종사자로서 이정도 합성은 껌이다.
“으이? 냄새가 어째 비슷하다?”
“초산암모늄입니다. 이걸 염욕에 첨가하면 될 것 같은데요?”
“해보자. 어서 해보자.”
“예, 영감님.”
황 영감님도 감이 왔는지 그릇을 통째로 들고 염욕으로 달려갔다.
녹색 염료가 담긴 드럼통에 간장 타듯이 초산암모늄을 섞고는 쩝쩝하며 맛을 보기 시작했다.
“… 이 맛이야. 이 맛이라고!”
“아버지! 성공한 겁니까?”
“어허이, 아들! 진정해! 한번 해보자.”
황 사장마저 들뜬 표정을 하자 황 영감이 손을 내저으며 진정시켰다.
진정하라고 소리치는 황 영감님의 얼굴도 상기되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차분히 한숨을 내쉰 황 영감님이 직접 나무 주걱을 들고 염색을 시작했다.
드럼통을 거쳐 갈수록 숲 색의 발색이 달라졌다.
이전과 달리 쨍하게 색이 뚜렷해진데다, 균일하기까지 했다.
“헐, 염색 속도가 이리 빨라지다니…”
“아버지, 엄청난 발견이에요. 발색 보세요.”
“증기탕에 넣어봐라. 어서!”
“예, 아버지.”
우리 셋은 최종적으로 증기탕에 옷감을 집어넣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찌나 궁금했던지 옷감의 열처리가 끝나자마자 식히지도 않은 원단을 꺼내 들었다.
“앗, 뜨거!”
“아버지, 뜨거운데도 염료가 안 묻어나요.”
“염색이 균일하고 반짝임도 좋네요.”
“채도가 아주 좋구나. 최상품이다.”
“동의합니다. 이건 최상품이에요.”
“이야야아아아!!!”
“만세!! 만세!!!”
나와 황혜성 사장은 서로 만세를 부르며 펄쩍 펄쩍 뛰었다. 정말이지 완벽한 품질이었다.
나일론이 아니라 실크라고 해도 될 정도로 최상품이었다. 21세기 최첨단 자동화 설비로 뽑아낸 원단처럼 보였다.
“으흐흑… 으흐흑…”
황 사장과 나는 좋아서 뛰는데, 갑자기 황 영감님이 원단에 얼굴을 푹 파묻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버지, 왜 울어요? 멋지게 성공했는데.”
“어르신…”
“으흐흑, 고맙네. 우 사장, 정말 고마우이.”
밑도 끝도 없이 고맙단 말만 되풀이했다.
정말이지 이 비법 물질을 밝히려고 노력해왔던 모양이다. 황 영감님이 소원을 풀었나보다.
“왜 우세요? 이제 떼돈 버실 일만 남았는데요.”
“… 돈 따윈 필요 없어… 이거면 됐어. 나는 이거면 됐다.”
황 영감은 불쑥 머쓱해졌던지 뒤로 돌아서 이거면 됐다는 말만 반복했다.
“황 사장님, 염색 부탁드릴게요. 야드당 얼마로 쳐드리면 될까요?”
“우 사장님한테 무슨 돈을 받아요. 실 값만 받아도 충분합니다. 염색은 서비스로 해드릴게요.”
“아뇨, 약품 값은 챙겨드려야죠. 야드당 5원 드릴게요.”
“헉! 5원씩이나요?”
야드당 5원이라고 해봐야 야드당 2센트로 안 되는 비용이다.
내가 야드당 65센트에 파니까, 이 정도 품질의 염색이라면 2센트는 당연히 지불해야지.
“아버지, 우 사장이 염색비로 야드당 5원이나 쳐준답니다. 염색 설비도 제대로 갖출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 좋으냐? 금방 부자 되겠네, 이 놈아.”
황 사장이 부자 되면 황 영감님도 부자 되는 거 아닌가? 꼭 남의 아들 부자 되는 것처럼 말했다.
“아버지가 더 좋으신 거 아니에요? 방금 전에 감격해서 울었잖아요.”
“내가 언제 울었어? 그냥 눈에서 눈물이 난 거다. 늙으면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따가워지고 그런단 말이다.”
“아, 예. 그러시겠죠.”
“쓰읍. 이 놈이.”
둘은 아주 죽이 잘 맞았다. 부자지간인데도 왠지 잘 어울리는 선후배 동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황 사장님, 오늘부터 염색 맡기면 되죠.”
“그럼요! 얼마든지 가져오세요.”
“아들, 직원 더 뽑아야겠구나.”
“예, 아버지.”
나에게도 든든한 협력 업체가 생겼다.
삼복이 녀석, 돌아오면 엄청 구시렁대겠네.
전문가가 옆에 있는 줄 모르고, 엉뚱한데 돌아다녔다고 말이다.
****
3월 말,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이 빨리 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겨울이 언제 지났지? 할 정도로 사방에 개나리가 피고 있었다.
“구 반장들. 이번 달 월급이에요.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여공들에게 월급을 나눠주고 반장들에게도 월급 봉투를 건넸다.
2월 중순에 공장 인수가 완료되었기에, 3월달 월급이 제대로 된 첫 번째 월급이라고 하겠다.
“각자 명세서 확인하고요.”
“아니! 이렇게나 많이.”
“많은 게 아니라 정확하게 계산해 준겁니다. 명심해요, 야근 수당으로 챙겨준 게 아니라 초과 생산에 따른 인센티브라는 거.”
“예, 압니다. 인센티브.”
월급봉투를 받아본 반장들이 제일 좋아했다.
나는 야근을 최대한 줄이는 대신, 초과 생산분에 따른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택했다.
삼복이가 장비 1대당 평균 4000야드를 뽑는다고 했기에 초과 생산량을 정하기 쉬웠다.
그렇게 인센티브를 주기 시작하니, 직원들이 장비를 좀 더 빨리 돌리는 방법과 잔 고장으로 멈추는 일이 없도록 유지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다른 회사보다 야근은 훨씬 적게 하면서도 생산량은 외려 많았고, 당연히 받아가는 월급도 많았다.
굳이 기계 앞에서 시간을 때울 필요도 없었고, 기계가 고장 나면 즉각 대응했다.
“제발 일요일은 돌아가면서 좀 쉬어요. 사람 몸은 무쇠가 아니라니까.”
“쉬긴요, 사장님. 젊을 때 열심히 벌어야죠.”
“그래도 하루에 8시간은 자야지. 회사 밥도 공짜인데, 꼬박 꼬박 챙겨먹고요.”
이들은 일도 일이지만 밤에는 야간 대학에 다닐 정도로 열성이었다.
“아휴, 다들 뭔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해. 어여들 마당으로 나가, 출하식해야지.”
“예, 부장님.”
삼복이가 2층으로 올라와 반장들을 몰아냈다.
반장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월급봉투를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고, 단추까지 꼼꼼히 잠그고는 2층 다락방 사무실을 벗어났다.
“출하식 준비 다 됐어?”
“응, 다 됐어.”
“하청업체 물량 들어왔어?”
“다 들어왔어. 근처에 있는 신신, 신왕, 한일은 물론 부산에 있는 삼우제직이랑 한창합섬 물량까지 모두 들어왔어. 도합 20만 야드! 어후, 힘들었다.”
“사내 녀석이 그 정도로 뭐가 힘들어? 돈 벌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나는 짐짓 어깨를 으쓱거렸다.
솔직히 나도 힘들었다.
“그 정도? 너무 한 거 아니냐? 품질 관리 부족하다고 마당에 드러눕고 원단 불태우고 업체 사장 부른 게 어디 한두 번이야?”
업체 사장 앞에서도 돌아가면서 원단을 불태웠다. 그 정도 자극 없이는 인식이 바뀌질 않았다.
“품질 검수는 다 끝냈지?”
“어라, 말 돌리는 거 봐라.”
“시험 성적서 체크 했냐고 묻잖아.”
“그래, 다 했다. 늘려보기, 찢어보기, 세탁하기, 비틀어 짜기, 문질러보기 등등 네가 원하는 실험이란 실험은 다했어. 솔직히 하면서도 이게 뭔 짓인가 할 정도야. 으휴.”
원시적이지만 효과적인 품질 관리 방법이었다.
갖은 지랄을 했던 덕분에 내가 원하는 대로 시험 성적서도 받아 볼 수 있었다.
시험 성적서를 주는 하청업체하고만 거래했다.
하청업체 쪽에서도 까다롭긴 해도 나와 거래하는 게 손해는 아닐 거다.
하청업체에 나일론 원사를 파운드당 58센트로 일제보다 2센트나 싸게 공급했고, 원단 단가도 시중보다 5%나 비싸게 쳐줬으니까.
모든 게 혜성 나일론이라는 협력업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혜성 나일론에도 내 도움이 컸다.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한 것은 물론, 내가 보유한 달러로 나일론 원료를 사올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황 영감님이랑, 황혜성 사장은 왔어?”
“벌써 기다리고 있다. 어서 나가서, 축문 읽고 술잔 올려.”
“그래.”
삼복이는 내 등을 떠밀며 앞마당으로 향했다.
그곳은 벌써 잔치 분위기였다.
“우 사장님 오신다!”
“와아아아아!”
“우 사장님, 이리 오세요. 이리.”
정말이지 상다리가 휘어져라 화려한 고사상이 차려져 있었고, 혜성 나일론의 황 영감님이 갓을 쓰고 축문을 들고 있었다.
< 015 : 첫 출하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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