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53)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53화(153/589)
< 153 : 으쌰으쌰 >
삐이…삐비빅.
벌써 크랭크 축과 크랭크 스로우가 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서로 열을 주고받으며 온도 평형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단 차장, 설계도 위치 봐요. 어서!”
“예! 예! 2㎝만 더요! 더 밀어요! 아니, 위로도 5도! 5도를 꺾어야 합니다! 어서!”
크랭크 스로우는 위치와 각도가 맞아야 엔진의 피스톤과 연결했을 때 제대로 축을 돌릴 수 있다.
한 번에 잘 끼워야 하는 거다. 딱 한 번!
끼리…릭!
“됐어, 이제 돌려요!”
뭔가 끼어 맞출 때는 느낌이 올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러했다.
설계도에서 원했던 위치가 여기가 분명했다.
“끄아아악!”
“멈춰요!”
“으아아, 됐어요? 된 겁니까?”
어느새 커트 스코우 부사장도 힘을 쓰고 있었다. 알코올에 몸이 흠뻑 젖어 덜덜덜 떨면서도 제대로 되었는지부터 물었다.
‘사장님, 됐습니다! 정확히 설계도대로 조립되었습니다.’
단 차장이 연신 품에서 꺼낸 설계도를 가리키며 입만 뻥긋뻥긋했다. 나보고 자세 좀 잡으란다.
“이 정도도 제대로 못 하면 대세맨이 아니죠. 합격입니다.”
“우와아아아아!”
내가 합격을 외치니 숨죽였던 사람들이 그제야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이 맛에 일한다니까.
문제를 해결하고 느끼는 짜릿함이란 최고다.
“내가 된다고 했지! N2(액체질소)랑 알코올 가져오라고 할 때부터 딱 느낌이 왔다니까.”
“난 기름 끓이라고 할 때 느낌 왔는데!”
“일본 쪽에선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 죽는소리 하더니, 별거 아니네. 비법이 이거였군.”
“너 입조심해라. 우쭐해서 노하우 자랑하다가는 밥그릇 깨진다.”
“선배, 내가 앱니까? 내가 대세 들어오려고 전포동에서 얼마나 굴렀는데요.”
다들 크랭크 축에 한쪽 팔씩 척하고 걸치고 무게를 잡으며 농담을 해댔다.
말로는 별거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번 일을 같이했다는 걸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십 년쯤 지나면 수십 톤짜리 크랭크 축을 어깨에 얹고 열박음을 했다고 후배들 앞에서 거드름 꽤나 피우겠지.
“사장님, 정말 놀랍습니다. 이런 방법이 있다니요. 그것도 수작업으로…”
나는 연신 감탄하던 스코우 부사장을 구석으로 데려갔다. 혼낼 때는 부하 직원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하니까.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난관에 부딪히면 혁신으로 타파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같은 후발주자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스카우트 한 이유도 그 일을 그 누구보다 잘할 거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약속한 연봉은 몰라도 자리까진 줄 수 없습니다.”
“잘하겠습니다. 제 자존심… 아니, 제 명예를 걸고 제대로 하겠습니다.”
스코우 부사장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다짐했다.
이 정도 경고를 했으니 지켜보도록 하자.
아직 우리 대세 문화에 익숙하지도 않고, 이렇게 열정적인 직원들도 처음 보았을 테니까.
“젠장, 반나절이면 끝날 일을 며칠이나 사람을 괴롭히고 말이야. 날 밝으면 당장 서독 기술자랑 일본 기술자들 돌려보내라. 알았지.”
“예, 단 차장님.”
나와 스코우 부사장이 자리로 돌아오니 단 차장도 나름 자세를 잡고 있었다.
“단 차장, 이리 와봐요.”
“예, 사장님.”
“이왕 열박음 기법을 배웠으니 남은 부품도 설계도대로 잘 끼우도록 해요. 할 수 있죠?”
“물론입니다. 기회가 딱 한 번이니 연습 제대로 하고 덤벼들겠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여기 창고에 크랭크 축 전용 조립 라인도 꾸밉시다.”
“앞으로 쭉 조립을 우리가 직접 하는 겁니까?”
해야지. 나중엔 엔진도 국산화할 텐데 열박음 정도야 기본이지.
“당연하죠. 오늘처럼 수작업할 수는 없을 테고, 인프라를 만들어야죠. 크랭크 축을 수직으로 세우고, 거기에 부품을 끼워야 합니다. 크레인도 설치하고 하려면 3층 높이의 건물을 만들어야겠죠.”
“… 사장님, 건물을 세울 게 아니라 도크처럼 지하로 파면 안 됩니까? 그럼 공사가 훨씬 쉬워질 것 같은데요.”
“으음?”
뭐야? 훨씬 편할 것 같은데? 천잰데?
놀라웠다. 단 차장이 21세기 인간인 나도 생각하지 못한 인프라를 생각해냈다.
“스코우, 어때요? 이게 우리 직원들의 아이디어 수준입니다.”
“대단합니다. 저도 아이디어를 보태보죠. 지하로 파면서 중간에 계단처럼 단차를 만들어놓으면 작업이 더 편해질 것 같습니다.”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네요.”
우리는 즉석에서 수첩에 설계도를 그려갔다.
역시 무슨 일이든 집중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샘솟기 마련이다.
“잊지 말고 이번 기회에 모든 도면을 SI 단위계로 통일하십시오. 최종 도면은 스코어 부사장 결재를 득하도록 하고 말이죠.”
“예, 사장님.”
“스코우, 덴마크식으로 자재 관리를 해서 로스가 많이 줄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 조선소엔 미숙련공들이 많으니 중간 관리자들이 기술적으로 잘 지도할 수 있도록 생산 설계도를 만들어 주십시오.”
나는 잘한 건 그것대로 인정해주고, 필요한 업무 지시도 따로 했다.
능력도 있고 경력도 훌륭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스코우도 우리 조직에 스며들어야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 짧은 사이 스코우의 태도가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열박음을 함께하면서 뭔가 느꼈던 모양이다.
직원들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던지 스코우를 바라보는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역시 사람은 밥을 같이 먹든지, 어려운 일을 같이하면 친해지게 마련이다.
“그건 그렇고, 귀국한 첫날부터 날 이렇게 녹초로 만들어도 되는 겁니까?”
“으하하하, 사장님. 사과드리는 차원에서 제가 소주를 살 테니, 안주를 사십시오. 어떠십니까?”
“좋은 생각인데요?”
교대 시간에 와서 주간 근무자들을 이렇게 괴롭혔으니 마땅히 대가는 지불해야지.
“들었지! 내가 술을 사고 사장님께서 안주를 사신단다. 안주빨 엄청 세워도 돼.”
“오랜만의 회식인데 고기로 조질까요?”
“와아아아! 사장님, 멋쟁이!”
“역시 단 차장님이 나서니까 고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네. 천재라니까.”
“존경해라, 새끼들아.”
힘 좀 쓰라고 아까까지 서로를 디스하던 직원들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거리로 나섰다.
“스코우 부사장도 갑시다. 늦었지만 환영식 겸입니다.”
“하하, 파티에 초대해주시는 겁니까?”
“스코우 부사장도 낀답니다. 같이 갑시다.”
“와아아아아! 법인 회식이다!!”
직원들은 대번에 나와 스코우 부사장을 어깨에 걸치고 회사 밖으로 마구 뛰어갔다.
“야, 조립 1팀 붙어라! 오늘 고기 먹는다!”
“와아아아!!!”
회사 정문을 통과했을 때는 인원이 세배는 불어 있었다. 뭐 어떠랴? 직원들 고기 사줄 돈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소주에 고기를 구우니 그제야 귀국한 게 실감이 났다.
***
“대세 조선을 위하여!”
“대세 조선을 위하여!”
나와 스코우 부사장은 연신 술을 부어댔다.
둘 다 별로 취하지도 않았다.
나야 무슬림 지역을 거쳐오느라 그간 오랜 금주를 했고, 스코우 부사장도 북유럽 사람답게 워낙 주량이 센 것 같았다.
“사장님, 사업상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죠? 말씀하십시오.”
“여태 수주를 받은 게 그리스에서 발주한 26만톤 유조선 2척이 전부이지 않습니까?”
“현재로선 그렇죠.”
부산 영도 지사에 맡긴 초계함이 있긴 한데, 그건 딱히 수주로 넣지는 않았다. 울산 조선소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일 테니까.
“조선소의 특성상 일감을 모아두지 않으면 업무 효율은 물론, 자금 운용도 곤란해집니다.”
“그건 그렇죠. 그런데, 우리 조선소에 수주를 줄 미친 선사가 또 있을까요? 리바노스 유조선 인도 후에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요.”
2척중 1척만 인도해도 발주는 쏟아질거다.
가격대비 품질이 월등할 테니까.
“이제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은 갖췄으니 발주를 해도 미쳤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수주를 받아오면 어떨까 합니다.”
“일본 선사가 발주한다고요?”
21세기 LNG선이라면 몰라도 이 시대의 일본 선사가 우리 대세에 발주할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을 괜히 갈라파고스 사회라고 부르겠나.
그들은 철저하게 내부 기업만 이용한다.
우리가 가격 경쟁력이 있어 회사 오너가 발주를 하겠다고 나서도, 부장급 실무자들이 죄다 반대를 하기에 하려야 할 수가 없다.
“일본 선사가 아니라 홍콩 해운사인 월드와이드 쉬핑사(社)의 발주 물량입니다. 개인적으로 알아보니 23만톤짜리 유조선 2척을 가와사키 조선소에 맡겼는데, 대기 물량이 너무 많아 인도 시점이 엄청나게 뒤로 밀렸다고 합니다.”
월드와이드 쉬핑사(社)라면 홍콩의 선박왕 CY 퉁 회장의 회사잖아?
그리스 리바노스나 오나시스의 동양판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 대고객의 물량까지 인도 시점을 못 맞출 정도면 대체 얼마나 수주 물량이 많은 거야?
“얼마나 뒤로 밀렸다는 겁니까?”
“최소 5년 뒤라고 했다더군요. 선사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계약일 겁니다. 지금 치고 들어가면 저희가 수주를 따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조선업계에선 잔뼈가 굵은 양반이라, 이래저래 안테나가 많은 모양이다.
조선소 사업이 원래 화주, 해운사, 타 조선소의 인맥을 통해 수주를 따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어떤지 알겠군요. 월드와이드 쉬핑사가 우리에게 직접 수주를 주지는 않을 테니, 가와사키를 통해서 수주를 이전받자는 거군요.”
“예, 그렇습니다. 가와사키 기술자가 작업 감독을 하고, 품질 보증을 한다면 연결 수주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쪽도 대형 고객을 놓칠 수는 없는 법이지 않습니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가와사키도 월드와이드 쉬핑사(社) 건의 인도 시점을 마냥 미룰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긴 우리도 가와사키 중공업의 부품을 일부 쓰고 있고, 직원들 연수도 거기서 시켰으니 연결 고리가 있긴 하군요.”
“예, 그렇습니다. 시도해 봐도 되겠습니까?”
일종의 가와사키 하청 사업인 셈인데, 호경기 때는 조선사끼리 흔히 있는 일이었다.
“뭘 신경 써야 하는지 아시죠? 가와사키쪽에서 설계도를 받아서 그들 부품으로 작업하면, 고생만 냅다 하고 수익은 거의 없다는 거 말입니다.”
일본 기업이 하청을 줄 때 잘 쓰는 방법이 있다. 설계상 특정 부품의 라이선스가 어느 회사에 있다는 이유로, 해당 부품을 자신들이 찍어준 회사에서 사도록 종용하는 것이다.
입찰 경쟁이 안 되니 비싼 가격으로 살 수밖에 없고, 그 커미션은 일본 원청이 먹는 식이다.
“알고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저희의 독자적인 설계도로 작업하고, 부품도 될 수 있으면 국산이나 공개 입찰로 조달하겠습니다.”
‘될 수 있으면’이 얼마나 될 수 있을까?
그래도 수주는 받으면 좋은 거 아닌가?
좀 고민스럽긴 했지만, 일단 선가를 보고 판단하면 될 것 같았다.
23만톤급이니 척당 3000만불만 받으면 내 철강 자재를 쓰면 흑자를 남길 수 있다.
“선가는 얼마라고 합니까?”
“척당 2700만불 근처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총 3척에 8000만불로 하자고 말입니다.”
훗, 5년 뒤로 미룬 이유를 알겠군.
선가를 너무 후려쳤네.
지금이 극 호황기임을 모르나?
그런데 어째 수성 쪽에서 받은 선가와 정확히 일치했다. 아무래도 일본 조선소들이 내세우는 시리즈 선박인 모양이다.
시리즈 선박이란 하나의 설계도에서 파생된 비슷한 계열의 선형(船型)이다. 보나 마나 일본 내수 기업의 부품을 쓰라고 하겠군.
일본 조선소로선 설계도와 부품을 한국에 팔아먹고, 기술 유출은 최소화할 수 있는 선박이다.
브로커가 스코우에게 의도적으로 은근슬쩍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겠다.
“제안 자체는 좋습니다. 다만 방법은 달리합시다. 내가 직접 월드와이드 쉬핑사와 척당 3000만불로 협의해보겠습니다. 그 이하로 고집하면 깨끗하게 손 텁시다.”
“아… 그리 하시겠습니까.”
다소 의외였나 보다. 가와사키의 기술 감독을 배제하는 모양새니까 말이다.
“스코우. 앞으로 선가가 박한 일본보다, 선가 비싼 유럽 선사를 쑤셔보십시오. 만약 VLCC급에 선가가 3500만불 정도면, 유럽 조선소의 기술 감독은 물론 기술 용역도 체결하겠다고 말이죠.”
“아… 예, 해보겠습니다.”
“물론, 그런 수주를 따오면 연봉과는 별도로 인센티브가 있다는 건 아시죠?”
“예에? 인센티브라고요?”
어쩐지 표정이 별로이더니 몰랐군.
“인센티브는 연봉 계약서가 아니라, 대세의 사규에 명기되어 있습니다. 기본이거든요.”
“하하하, 제가 아직 모르는 게 많군요.”
우리 대세는 월남 건설을 기점으로 인센티브 제도를 명확히 했다.
목숨 걸고 일을 하는데 처자식 먹여 살릴 걱정은 없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일한 대가는 반드시 지급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회사를 위해 몸을 내던지고 동료끼리 으쌰으쌰를 하는 거다.
여하튼 좋은 대화였다.
스코우의 눈빛이 대번에 달라졌다.
스코우는 기술 지도보다 이렇게 수주를 따오는데 활용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야 유럽 시장 공략이 쉽진 않겠지만, 몇번 성공하면 유럽 선사가 스스로 우리 대세 조선을 찾게 될 것이다.
“여태 사규도 읽지 않았다는 겁니까? 벌주! 세잔 연속으로 마셔요!”
“네! 마시겠습니다. 벌 받겠습니다!”
밤늦게 회식이 이어졌다.
오늘은 나도 진짜 취할 정도로 마셨다.
***
다음날,
“아이고, 머리야… 어깨까지 쑤시네.”
깨고 보니 사원 숙소였다.
3층 맨 끝방은 내 전용이기도 했다.
여독이 안 풀린 상태에서 회식했더니 온몸이 쑤셨다.
나는 직원들이 안 보는 비상계단을 통해 숙소를 빠져나가 차에 올랐다.
기 비서는 익숙하게 내가 즐겨 가는 목욕탕부터 들렀다. 땀을 쫙 빼고, 근처의 중국집에서 칼칼한 짬뽕을 들이키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이게 좋긴 한데, 영빈관 건설을 서둘러야겠어.”
솔직히 리바노스의 스위스 클럽을 떠올리면, 이건 하늘과 땅 차이 아닌가.
나야 고깃집에서 회식하고 이런 식으로 해장한다지만, 계약하러 온 글로벌 고객들을 동네 목욕탕으로 안내하고 동네 중국집에서 식사를 대접할 순 없지 않나.
“기 비서, 영빈관 진행 상황부터 살피러 갑시다.”
보고서로만 보고받고 여태 확인까진 못했다.
“예, 사장님.”
영빈관은 대세 조선소가 내려다보이는 야산에 건설 중이었다.
고객들이 조선소 현장을 방문하는 시간을 단축하고 체류 기간에 완벽한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다.
계약식, 착공식, 진수식, 명명식, 인도식 등등 인맥질을 중시하는 조선 산업의 특성상 손님 대접이 정말 많거든.
호텔에 모셔다 놓고 계약만 하면 끝인 일반적인 산업계의 손님맞이와는 전혀 다르다.
< 153 : 으쌰으쌰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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