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6화(16/589)
< 016 : 울산 >
“축문!!!”
사회를 맡은 삼복이가 크게 소리쳤다.
우여곡절 끝에 거의 두 달 만에 초도 물량 20만 야드를 출하하는 날이었다.
일단 라자크의 물량만 쳐내면 나머지 물량은 다소 천천히 끊어서 출하해도 될 것이다.
미신이라 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출하 고사를 준비했다.
싱가포르에 초도 물량을 수출하면 큰 산을 하나 넘는 것이라 무조건 기념하고 싶었다.
하루 정도는 잔치를 벌여도 되지 않나 싶었다.
“대세 실업의 초도 출하를 맞이하여 맑은 술과 음식을 정성껏 마련하였습니다. 천지신명께서는 부디 흠향하시고, 여러 사람의 피땀 어린 정성으로 이루어진 대세 실업이 하는 일마다 큰 결실을 맺도록 도와주십시오.”
이 일대에서 제일 연장자인 황 영감님이 축문을 읽었고, 나는 향로 위에 막걸리 잔을 휘휘 돌려 고사상에 올렸다.
돼지 머리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삼복이가 제대로 된 돼지 머리를 사왔다.
역시 뭐든 맡기면 잘하는 친구라니까.
“대세 실업 훨훨 날게 해주십시오.”
나는 돼지 머리에 지폐를 꽂고는 절했다.
요즘 사람들 눈에는 우스워 보일지라도 이 시대의 구성원들에겐 중요한 일이라, 정성껏 절했다.
“대세 실업이 훨훨 날고, 혜성 나일론도 덩달아 날게 해주십시오.”
“하하하하하!”
“돈 꽂아야죠. 돈 안 꽂으면 무효입니다!”
황혜성 사장은 덕담과 함께 돼지 코에 지폐를 몇 장이나 끼워 넣었다.
그 뒤로 대세 실업 직원들이며, 주변 상인들도 연이어 절을 했다.
“트럭에도 배향!!”
“부디 무사히 도착하옵소서.”
나는 삼복이의 말에 따라 트럭 범퍼 앞에 북어를 굵은 명주실타래로 단단히 묶고, 막걸리를 바퀴마다 뿌리고, 보닛 앞에서 절을 했다.
“모두 트럭을 밀어주십시오!”
“무사히 잘 가라!”
“바다 무사히 건너라!”
나와 함께 직원들이 모두 트럭을 밀었다.
배기통으로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와아아아아!”
트럭들이 공장을 빠져나가자 환호성이 이어졌다.
트럭들이 몇 대나 줄지어 빠져나가는 모습이 꽤나 멋있었다. 30톤이 훌쩍 넘는 원단을 한꺼번에 출하하는 것은 60년대 성수동에선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일주일 뒤면 라자크가 물건을 받을 테고, 추가 물량이 미친 듯이 쏟아질 거다.
품질에 놀라고 우리의 생산력에 또 한 번 놀라 자빠질 테니까.
“귀때기는 사장님이 드셔야지. 남의 말 좀 들으라고 말이야.”
“아니지, 코를 잘라 드려야지. 돈 냄새 잘 맡으셔야 할 거 아냐.”
“볼때기 살이 최고지. 복 주머니잖아.”
트럭이 사라지자, 국밥집 아주머니들이 나서서 내게 머리 고기를 잘라줬다.
“다들 맘껏 드십시오. 술값 다 다 제가 냅니다.”
“와아아아아!!”
잔치가 시작되었다.
“우 사장님, 어째 수출만 하지 마시고 우리에게도 좀 팔아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수출 물량 대기도 빠듯해서요.”
“우 사장님, 이번 수출 끝나면 바터권 생기는 거 어디 파실 생각이십니까? 저희 쪽에 넘기시죠. 프리미엄 두둑이 챙겨드리겠습니다.”
“하하, 생각해보겠습니다.”
“우 사장님, 공장 불량품 저희들에게 넘기십시오. 태워버리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불량품은 전량 폐기가 원칙이라, 죄송합니다.”
고만고만한 업체 사장들이 찾아와서 내게 술잔을 청했다. 대부분 자신들에게 원단을 넘겨달라는 내수 업체였는데, 대충 좋은 말로 거절했다.
수출을 해야 달러가 모이고 달러가 모여야 회사를 키울 수 있다.
괜히 내수 물량을 공급했다간 나일론 원사 재료를 수입할 달러가 말라버릴 게 뻔했다.
‘달러가 입금되면 데이비드에게 차관부터 갚아야지. 그러면 완전히 선순환에 들어설 수 있을 거야.’
귀때기를 우물우물 씹으며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자니, 삼복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서로 잔을 가득 채웠다.
“좋은 날이네, 오늘은 좀 마실 거지?”
“그래, 삼복이 너도 고생 많았다.”
“뭔 고생, 솔직히 큰일은 찬수 네가 다했는데.”
“뭔 소리? 삼복이 네가 회사 등기, 샘플 발송, 회사 경리에다 수출입 선적 처리까지 다 했잖아.”
“시키는 대로 한 건데 뭐. 그것도 제대로 못 해서 원단이나 불태우게 만들고 말이야. 어후, 돈 아까워.”
“짜식, 아직도 아까워하냐? 그냥 잘되는 과정이라니까”
“하긴, 그 뒤로 우리 직원들 모두 네가 정한 품질기준에는 얄짤 없어졌지.”
내가 정한 품질 사양에서 벗어난 원단이 나오면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구 반장들이 밤을 새워 기계를 정비하고, 혜성 나일론도 같이 의논해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이물질 관리를 할 정도로 문화가 바뀌었다.
조를 정해 공장 청소를 했고, 실내화를 지급해 달라고 해서 경비로 지출했다.
기준을 정해놓으면, 모범생들은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는 법이다. 한마디로 내가 제대로 된 직원들을 뽑았다는 얘기지.
“사장님, 텔렉스 왔어요.”
“어, 미스 김.”
어디선가 미스 김이 마구 달려왔다.
서류 작성과 경리 업무를 돕는 여사원이었다.
“긴급이래요. 긴급!”
“긴급?”
딱히 긴급 텔렉스가 올 데가 없는데…
「수신 : 대세 실업) 찬수 우
발신 : 인도 상공연합) 압둘 라자크
1차 물량 잔금 입금 완료 : 13만 달러
긴급 추가 오더 : 30만 야드
요청 일정 : ASAP
요청 단가 : 65센트/야드
요청 모델 : 1차 물량과 동일」
“라자크가 입금을 해?”
“뭐? 벌써 돈을 받았다고?”
이럴 수가. 돈 받기 어렵기로 유명한 인도 상인이 물건을 받기도 전에 돈을 준다고?
게다가 추가 물량까지 주문해? 물량도 1차보다 더 많았다.
“사장님, 입금 확인했어요. 은행장이 직접 전화 왔어요. 13만불이나 맡겨줘서 감사하다고요.”
“우아아아아!”
“만세! 수출대금 벌써 들어왔데!”
“건배! 마셔!!! 마셔!!”
“만세!!!”
미스 김의 말에 삼복이를 비롯해 직원들이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입금도 그렇고, 제품을 받기도 전에 추가 발주를 한다고? 무슨, 이런 일이 있지?”
기쁘다 못해 어안이 벙벙했다.
우리 회사의 원단 품질이 끝내주긴 하지만, 라자크가 그걸 어찌 알고 추가 주문을 한 거지?
“사장님, 그뿐만 아니에요. 싱가포르에서 크고 작은 추가 주문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미스 김이 텔렉스 전문을 한 뭉치나 건네주었다.
“허헉!”
라자크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의 자잘한 고객들도 모두 추가 물량을 보냈다.
다 합치면 40만 야드는 훌쩍 넘어갈 것 같았다.
대박! 대박!
“우와, 이제 알겠다. 라자크씨가 항공편으로 샘플 보낸 거 벌써 확인했나 보다. 그런 거야!”
삼복이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런가?”
샘플을 봤다면 당연히 품질에 깜짝 놀랐겠지.
그 가격에 그런 고품질은 말도 안 되니까.
“이야, 찬수야. 너 정말 장사 잘한다. 천재야.”
“우아아아아! 사장님, 정말 대단하세요.”
모두가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라자크가 납품 여부를 불안해할까 봐 샘플을 미리 보낸 건데, 보자마자 추가 오더를 냈다는 건가?
“마셔! 마셔!!”
“그래, 그래. 다들 마셔요. 마셔!”
“만세! 대세 실업 만세!”
“만세! 만세!”
나도 기쁘게 만세를 외쳤지만, 이상하긴 했다.
라자크만 회신이 왔다면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다른 싱가포르 소규모 고객도 추가 발주를 냈다고?
그들은 샘플도 못 봤을텐데?
‘설마, 베트남에서 그 사건이 터진 건가?’
막걸리를 넘기다 불쑥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에서 사달이 나면, 동남아에선 단박에 원단 공급량이 줄어 가격이 폭등하게 되어 있다.
그 사달이란 정확히 말하면 베트남에서 일어나는 미 대사관 폭발 테러였고, 미 외교관을 포함해 미국인이 수백 명이나 죽었기에 미군이 베트남에서 전면전에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확한 일자는 몰랐지만, 그 테러가 1965년도에 일어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사건이 지금 일어났나?
하긴 원래 역사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1965년 중반쯤 성사되니, 미 대사관 테러가 지금쯤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었다.
아니, 테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컸다.
제품 요청 일자를 ASAP(가능한 한 빨리)라고 했으니, 동남아 상황이 아주 급한 게 분명했다.
정확한 건 확인해 봐야겠지만, 일단 추가 수주 물량부터 대응해야 했다.
“삼복아. 추가 물량을 석 달 안에 쳐 낼 수 있겠어?”
“턱도 없어. 기존 오더도 겨우 쳐낼 판이야.”
“반장들이 품질 스펙 확실하게 꿰찼잖아. 여긴 그들에게 맡기고, 너는 밖으로 돌아다니며 하청 업체만 추가로 개발하면 되지 않겠어?”
“음, 어찌어찌하면 원단 생산은 될 것 같아. 하지만, 원사 수급과 염색 하청은 절대 안 돼. 우리 기밀이잖아.”
“혜성 나일론에 캐퍼 좀 늘리라고 하지 뭐. 돈 없다고 하면 우리가 좀 투자하면 되는 거고.”
“이야, 우리 돈 많네요. 사장님.”
“삼복아, 농담 아냐. 이제 수출 실적 생겼으니 수출 신용장으로 은행에서 돈 빌릴 수 있잖아. 돈이 더 필요하면 바터권도 프리미엄 받고 팔면 돼.”
“어, 그러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늘어나는 물량에 맞게 생산 능력을 적기에 늘려야 한다.
그래야 경쟁자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클 수 있는 거다.
하물며, 혜성 나일론은 대세 실업의 계열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나.
혜성 나일론에서 내게 노하우를 모두 알려줬고, 생산한 원사는 내가 몽땅 가져오니까 말이다.
“뭐여? 우리 공장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어서 오세요. 영감님.”
“내 잔도 한잔 받으셔야지. 안 그런가, 우 사장.”
“영감님께서 주시는데 당연히 받아야죠.”
“건배!”
황 영감님은 나와 건배하고선 막걸리를 단숨에 비웠다. 분명 칠순이 다 되신 것 같은데, 정말 정정하시단 말이지.
“말해봐. 내가 뭘 하면 되는지.”
“공장 좀 늘려주세요.”
“허, 얼마 전에 늘렸는데 또 늘리라고?”
“이왕이면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춰주세요. 염색 라인은 폐수 처리 시설도 제대로 갖추시고요.”
“허, 폐수 시설까지? 대체 얼마나 크게 확장해야 하는 건가?”
“지금보다 열 배는 해야죠. 월 200만 야드?”
라자크가 이리 반응할 정도라면 기본 고객은 확보한 거다. 이제 동남아 시장은 기본으로 두고 미국을 뚫어야지.
아니, 정확하게는 베트남 특수였던 미군 군복 시장을 뚫어야지.
원래 역사에서는 일본 회사가 해당 특수를 누렸지만, 이번 역사에서는 내가 압도해 버릴 테다.
그러려면 생산 캐퍼는 미리미리 채워놔야 했다.
막상 오더가 떨어져도 제때 쳐내지 못하면 품에 뛰어든 고기를 놓치는 꼴이었다.
“찬수야! 200만 야드라니.”
“… 자네…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삼복이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황 영감님도 우려 섞인 질문을 했다.
“그 정도 규모는 자신 없으세요?”
“그게 아니야. 월 200만야드 수준이면 이 정도부지로는 턱도 없어. 원사 생산만 해도 월 300톤 이상이어야 한다는 말일세.”
300톤이라니 나도 놀랍긴 한데, 계산해보니 맞는 말이다. 이번에 원단 20만 야드를 출하하는데 총 중량이 30톤이 넘지 않았던가.
“땅 크기가 안 되는 건가요?”
“그보다 그 정도 규모라면 아예 석유 화학단지 근처에 공장을 제대로 짓는 게 낫지. 굳이 원료를 멀리 실어 와서 중합할 이유가 뭔가?”
“!!!!!”
오, 이래서 원래 역사에선 혜성 그룹이 70년대 초 대구로 회사를 옮겼던 거구나.
가까운 울산 석유 화학단지에서 원료를 쉽게 실어 올 수 있으니까 말이지.
아니지, 이번 역사에서는 대구 대신 울산이지.
석유 화학 단지에 처음부터 터를 잡으면 되잖아.
아직 단지가 완성되기 전이니까.
‘가만, 가만… 울산에 나일론 공장을 세우면 플랜트잖아. 그럼, 굳이 나일론 공장으로 한정 지을 필요 있어?’
플랜트 형 공장이라면 내 전공이다.
이왕 플랜트를 지을 거면 나일론 중합에 그칠 것이 아니라, 더 고급 섬유도 뽑아야지.
솔직히 내 지식이라면 나일론보다 폴리에틸렌이나 폴리우레탄을 뽑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대세 건설 플랜트 사업부 시절에 주야장천 지어댔던 플랜트가 아니었던가.
“황 영감님, 제가 아드님 좀 빌려가도 됩니까?”
“우 사장이 혜성이를 빌려간다고?”
“삼복아, 내가 한두 달 자리 비워도 수출 전선 문제없지?”
“뭔 말이야? 물량이 폭주하는데 사장이 자리를 비우면 어째? 추가 주문 들어온 거 안보이냐?”
내 말에 황 영감님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삼복이는 울상이 되었다.
“추가 주문이 들어왔으니까 그러는 거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어.”
삼복이가 우는소리를 해도 맡겨야 한다.
나 없어도 이 정도 생산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야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우 사장님, 하늘을 날아오르신다고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어디선가 황혜성 사장이 다가왔다.
“황 사장님, 어서 오세요. 저랑 울산 가실래요?”
“울산요?”
“울산에 큰 공장 하나 지어보는 거 어때요?”
황혜성 사장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리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찬수야, 뭔 소리야? 우리 회사가 여기에 있는데 혜성 나일론이 울산으로 옮기면 어째?”
“공장이 여기에만 있으라는 법이 어디 있어? 회사가 커지면 울산이든 어디든 가야지.”
“하긴, 네가 하는 걸 보면 200만 야드가 아니라 천만 야드도 팔겠다.”
삼복이가 할 수 없다는 듯 막걸리를 퍼마셨다.
“허허, 이 부장. 우리 둘이서 어찌어찌 버텨보자고. 보아하니, 우 사장이 또 뭔가 큰일을 벌일 것 같으니 말일세.”
황 영감님이 껄껄 웃으며 삼복이를 다독였다.
여기 공장에 전화도 있겠다, 간혹 유선으로 업무를 챙기면 될 일이다.
“우 사장님, 그런데 물주는 누굽니까? 새 공장 지으려면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닐 텐데요.”
황혜성 사장은 물주가 울산에 있다는 의미로 알았던 모양이다.
하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물주야 내려가서 찾아야죠. 우리 기술을 보여주면 누구든 투자할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
“이놈아, 찡그리지 말고 우 사장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옆에서 잘 보필하란 말이다.”
황 영감님이 황혜성 사장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건배하시죠. 울산이든 어디든 따라갑니다.”
“따라오세요! 건배!”
“위하여!”
“위하여!”
이때는 무슨 건배를 하든 위하여를 외쳤다.
뭘 위하는지도 모르지만 다 같이 건배했다.
‘중공업을 위하여!’
나는 속으로 혼자 중공업을 외쳤다.
제대로 누려보자, 베트남 특수!
< 016 : 울산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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