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0)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60화(160/589)
< 160 : 그래도 낭만 시대 >
대세 조선
“골리앗 크레인은 볼 때마다 반갑군.”
‘대한민국을 세계로’라는 타이틀이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였다.
많은 사업장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다.
드넓게 바다로 펼쳐진 야드도 멋지고 말이다.
스코우가 부임한 뒤로 자재 야적장과 야드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깔끔해졌다.
이렇게 정리 정돈이 잘 되어있으면 자재 혼동으로 인한 불량이나 손실도 줄어든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스코우 부사장이 본관 정문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내가 정문을 통과한 걸 들었던 모양이다.
“수고 많아요. 유선으로 보고받았는데, 아직 기성금 요청 보고서가 올라오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의장 장착에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의장 장착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블록에 선행 장착된 의장의 위치가 잘못되어 최종 연결을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면 잘라서 붙이고, 짧으면 덧대서 붙이면 그뿐이다. 따라서 딱히 기성금을 요청하지 못할 정도의 불량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 그게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위치 수정 정도를 문제라고 하진 않을 테고, 설마 또 치수 오류인가요?”
“치수 문제는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해서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한국산 주조 밸브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연료, 스팀, 냉각수 할 것 없이 줄줄 새고 있습니다.”
선박은 움직이는 공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배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들어간다.
그런 배관들을 필요에 따라 온오프는 물론, 유량 조절도 해야 하기에 복잡한 형태의 밸브가 필요하다. 대부분 쇳물을 틀에 부어 주조법으로 만들기에 주조 밸브라고 부른다.
그다지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에 국산 밸브를 쓰도록 했는데, 그게 줄줄 샌다고?
나름 영세업체를 배려한다고 수입품 대비 납품가를 그다지 깎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뭐라고요? 주조 밸브가 샌다고요? 입고 검사도 안 한 겁니까?”
“검사 샘플은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양산으로 넘어간 자재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스코우 부사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업체가 품질팀에만 양품을 넘기고 양산에는 불량품을 섞어 납품했는지, 아니면 내부에서 누가 공모를 했는지 조사가 필요한 일이었다.
“불량률이 얼마쯤 됩니까?”
“… 25% 수준입니다.”
“25%라고요?”
어이없는 수준이었다.
불량률이 2.5%라고 해도 전체 밸브를 갈아야 하는 대형 사고인데, 25%라니 이건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불량품 어딨어요? 봅시다.”
“예, 사장님. 여기 있습니다.”
어디선가 단 차장이 밸브를 가지고 나왔다.
내가 보자고 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군요. 업체 선정을 어찌한 겁니까?”
눈으로 봐도 어이없는 수준의 품질이었다.
고무 O링(O-ring)을 끼우는 홈이 꺼칠꺼칠할 정도로 가공이 개판이었고, 주조 밸브와 강관이 맞닿는 부분이 휘어진 것이 평판도를 측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업체 선정을 할 때까지는 품질이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양산 주문을 하자 저급한 주물용 선철을 쓰고, 숙련공 대신 초짜를 쓴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출하 검사 성적서에 그냥 도장만 찍어서 납품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빌어먹을 놈들. 당장 협력업체 등록 해지하고 클레임 걸어요. 그리고 우리 품질팀도 감찰해서 이 업체를 봐준 직원은 모조리 해고하십시오.”
출하 검사를 거짓으로 꾸며?
원가를 절감해서 수익을 많이 남기는 거야 뭐라 할 거 없지만, 품질을 속이면 그건 사기다.
“사… 사장님… 우리 품질팀까지…”
“이게 실수로 보입니까? 이따위 불량도 사전에 걸러내지 못하면 품질팀이 왜 있습니까! 업체를 만나면 밥도 우리가 사주라고 영수증 처리까지 해주는데, 뇌물이라도 처먹은 겁니까!”
품질팀이 업체와 서로 작당하지 않고선 이런 물건이 입고되려야 될 수가 없다.
빌어먹을 새끼들.
26만톤짜리 유조선에 배관 압력이 얼마나 큰지 몰라서 사전에 걸러졌지, 선박 인도 후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우리 첫 배가 클레임을 먹었을 거다.
그럼 후속 계약이 줄줄이 취소되었겠지.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대한민국 조선 업계가 세계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일인데 시험성적서를 위조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장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대세 조선이 첫 번째로 건조한 선박부터 이런 초보적인 불량이 생기면 수주가 줄줄이 떨어져 나갈 겁니다. 결코, 가벼이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스코우 부사장이 보고서까지 지연시키며 이 문제를 붙들고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스코우 부사장이 직접 나서서 품질팀 혁신하십시오. 그리고 단 차장은 변 부장과 함께 납품 업체들 출하 시험서 모두 100% 재검증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기업은 죄다 손해배상 청구하고, 언론에도 알려서 업계에서 퇴출하세요. 앞으로 절대 그따위로 장사하지 못하게!”
“예! 알겠습니다.”
젠장, 부품 국산화를 너무 쉽게 본 건가?
납품 업체를 혼쭐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자칫 유조선 인도 시점이 뒤로 밀리면 안 되는데.
“스코우, 대책은 있습니까?”
전체 밸브를 모두 갈아야 하는 일이었다.
선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각방으로 수소문했더니 다행히 인천제철에서 중고 밸브를 대량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중 치수에 맞는 걸 골라서, 급한 작업부터 하고 나머지는 부품을 수입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인천 제철에 중고 밸브가 있었다고요?”
“인천제철이 고선박 해체 업체로부터 고철을 받아 쓰는데, 여태 쓸만한 부품은 아까워서 모아뒀다고 하더군요. 이삼복 상무님께 감사드립니다.”
뭐야, 삼복이가 밸브를 모아두고 있었어?
하긴 그놈은 뭐든 쟁여 놓여 데는 재주가 있지.
대세 1호가 태평양을 건널 때도 조명탄을 잔뜩 쟁여놔서 나도 살았고 말이다.
“상황이 최악은 아니군요. 다행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때 고선박 해체도 했군.
하긴 고철 수요가 많으니 고선박 해체가 돈이 되긴 할 것이다. 21세기엔 인도나 할법한 일인데, 이 시대엔 인도나 우리나라나 GNP가 비슷하겠군.
아니, 우리가 더 열악한가?
“사장님, 주조 밸브를 비싼 수입품에 의존하는 것도 그렇고, 앞으로 사업성을 봐도 그렇고 직접 만드시는 건 어떻습니까?”
잠시 생각을 하고 있자니 스코우 부사장이 제안을 해왔다.
“직접 만들자고요?”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습니다만, 주조 밸브는 노동집약적 산업이고 기술 난이도가 높지 않으니 한국산이 제격입니다. 굳이 수입품을 써서 돈과 시간을 버릴 이유가… 이번 한 번이야 그런다 쳐도 말입니다.”
역시 스코우 부사장은 자재 관리엔 진심이었다.
뭐,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주물용 선철이야 인천제철에서 만들면 되고, 소형 용광로는 제작이 그다지 힘들지 않다.
앞으로 배를 한두 척 만들 것도 아닌데, 밸브 정도는 직접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공급이 넘치면 수출도 할 수 있고 말이다.
“좋은 생각입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죠.”
“예, 사장님.”
대세 정공에서 시도하면 될 것이다.
대세 정공은 품질 시험에 대한 개념이 확실한 데다, 전포동 출신의 숙련공이 다수 포진해 있는 터라 주물도 능숙하게 다룰 것이다.
웬만한 일은 다 해봤을 사람들이니까.
그러고보니 대세 정공은 만능 공장이네.
“그럼 주조 밸브 문제가 해결되면 배를 띄울 수 있는 겁니까?”
“예, 다른 의장이나 항해 기자재는 문제없습니다. 내년 2월 말이면 1호 유조선을 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년 2월 말이라, 몇 달 안 남았군요.”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그때면 조선소 공사도 모두 마무리되니 준공식도 함께 하시죠. 하하.”
준공식과 첫 번째 명명식을 동시에 하는 회사가 이 지구상에 처음 태어나겠군.
“내년 3월 1일에 명명식을 할 테니 꼭 시간을 맞춰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년 3월이면 드디어 조선소에서 첫 배가 나오는 것이다.
첫 인도를 완료하면 본격적으로 수주가 몰려들 것이다. 지금도 야드가 북적거리지만, 앞으론 더욱 북적거릴 것이고, 도크 개수는 더 늘어나겠지.
물론 명명식 후에 시험 운전을 거쳐 선주의 이런저런 수정사항을 반영하면 공식 인도 시점은 5월쯤 되겠지만 그건 하면 되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건조해낸 유조선이 될 것이다.
21세기에도 VLCC를 건조하려면 10개월은 걸리는데, 60년대에 불과 1년 반 만에 만들었다는 건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기관실과 항해 장치도 한번 봅시다.”
“셋업 중이니 감안하시고 봐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나는 스코우 부사장과 함께 기관실과 선교를 돌아보며 기자재를 점검했다.
돌아보니 내년 3월 명명식을 장담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거의 모든 부품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항해 기자재가 일제 수입품들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현재로선 하는 수 없었다.
부품 국산화는 우리의 숙제라고 할 것이다.
다른 나라가 거의 100년에 걸쳐서 이룩한 산업화를 우리는 전쟁을 겪은 지 채 20년도 안 돼서 이만큼이나마 쫓아온 것도 기적이다.
이 시대 한국인들은 자기 능력의 120%… 아니, 150%씩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순조롭군요. 고생 많았습니다.”
“솔직히 900톤짜리 골리앗 크레인이 있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물건입니다.”
스코우 부사장은 골리앗 크레인을 툭툭 치며 대견해 했다.
“세계 1등이 되기 위해 더 투자할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제안하십시오. 같이 합시다.”
“예, 사장님.”
이제 대세 조선에 녹아나기 시작한 스코우 부사장을 뒤로하고 나는 서울로 향했다.
본사로 가는 길에 인천부터 먼저 들렀다.
3주 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테니, 그 전에 챙길 곳은 챙겨야 했다.
***
인천 제철.
“삼복아! 뵈스트 공장장!”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어서 와라. 귀국했다고 하길래 환영회라도 해줄까 했더니 금방 창원으로 갔더라. 어째 같은 땅에 있어도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드냐.”
“뭐, 요르단과 바레인에서 많이 봤으면 됐지. 그것보다 파이프는 잘 만들고 있냐?”
나는 업무부터 챙겼다.
혹시나 여기서도 대세 조선처럼 품질 문제를 겪고 있나 싶어서 말이다.
“저기 출하 창고에 쌓여 있는 거 안보이냐? 이 몸이 손수 하나하나 두드려보고 확인한 놈이다. 전혀 문제없다.”
“어라, 저건 뭐야? 강관이 아니라 콘크리트관 같은데?”
창고 밖 야적장에는 콘크리트관이 잔뜩 쌓여 있었다. 요르단에서 주문한 건가?
“요르단에서 주문한 상수도관이야. 사막에선 강관보다 콘크리트관을 써야 수명이 보장된다고 하더라고. 겉보기는 저래도 내부에 강관이 들어가 있고, 철선도 엄청나게 감았어. AWWA Spec(미국 수도협회 규격)을 따른 거라 아주 튼튼하다.”
“이야, 요르단 정부가 돈 좀 썼는데?”
“난 상수도 파이프가 저리 비싸고 복잡한 놈인지 처음 알았다. 여하튼, 돈은 좀 된다니까 기분은 좋다.”
삼복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은 안 했지만, 와중에 BR사 품질팀을 패스했다는 말이지 않은가. 고생 꽤나 했을 것이다.
“여하튼 수고했네. 요르단 정부가 그렇게 주문을 했으면 우리야 고객이 원하는 대로 납품해야지. 우리보다 사막을 훨씬 더 잘 아는 사람들인걸.”
“그럼. 참, 바레인 수리 조선소도 궁금할 것 같아서 말해준다. 어제부로 계약이 최종 성사되었다. 3년 계약에 총사업비 9000만불이다.”
“… 9000만불?”
어후, 상상 이상의 사업비인데?
역시 나이프 왕자가 주선한 수의 계약다웠다.
보아하니, 차후 확장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네.
“게다가 일괄 계약이 아니라, 3년 연차 계약이다. 인플레를 따져서 매년 추가 공사비를 요구할 수도 있으니 우리 완전히 노났어!”
“이야, 역시 대세 그룹 넘버 2다운데?”
연차 계약이라니 아주 좋았다.
달러가 연일 빌빌거리고 있으니, 매년 재계약할 때마다 최소 5, 6%는 더 받을 수 있을 거다.
“이래서 내가 없으면 일이 안된다고 한 거야.”
삼복이의 으쓱거리던 어깨가 아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난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뵈스트 공장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뵈스트 공장장, 이제 공장이 거의 다 셋업이 된 것 같군요. 수고 많았습니다.”
“저야 사장님 말씀대로 투자를 집행했을 뿐입니다. 이제 투자도 어느 정도 끝났으니, 내년부터는 연간 생산량이 100만톤을 돌파할 겁니다.”
“드디어 우리나라에 연간 100만톤짜리 제철소가 탄생하는군요.”
“그렇습니다.”
뵈스트 공법이 엄청난 효율을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똑같이 투자했어도 기존 공법이었다면 생산량은 불과 50만톤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원래 역사에선 포항제철이 연간 103만 톤으로 생산을 시작하는데 인천제철이 먼저 100만톤 고지를 찍었다.
물론 포항제철도 뵈스트 공법을 적용했으니, 거기도 200만톤쯤으로 시작할 것이다.
“아, 그리고 내가 주문했던 주물용 선철과 특수강은 어찌 진행되고 있습니까?”
강원도 삼화제철에서 가져와 셋업한 첫 번째 고로는 워낙 용량이 적어서 주물용 선철만 생산해도 될 것 같았다.
“그건 내가 말할게. 주물용 선철이야 그냥 쇳물에 페로실리콘(철, 실리콘 합금)을 첨가하면 되는 거라 별문제 없는데 특수강은 논의가 필요해.”
삼복이가 훅하고 끼어들었다.
“기술적인 논의야? 경영적인 논의야?”
“둘 다야. 시장에 괜찮은 업체가 나와서 인수를 했으면 해.”
창원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인수 얘기가 나오네. 살짝 경기가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역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가 불황이면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쉽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군.
게다가 3선 개헌으로 인해 통화량이 증가했고 그동안 누적된 차관의 원리금 상환 시기마저 다가오고 있으니 더욱 상황이 좋지 않았다.
12%를 넘던 경제성장률이 6%대로 떨어지는 걸 불황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시대엔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의 물가상승)이라고 느끼겠지.
21세기 인간인 나에겐 여전히 낭만 시대로 보일 뿐이지만 말이다.
“괜찮은 업체가 어딘데?”
“풍신금속이라고, 특수강, 비철 금속 전문 업체인데…”
< 160 : 그래도 낭만 시대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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