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4)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64화(164/589)
< 164 : 충분한 기초 체력 >
나는 청와대를 나와 곧바로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급히 밴 플린트 장군과 논의해야 했다.
이제 미대사관에서는 내게 용건도 묻지 않았다.
전화가 있는 곳으로 바로 안내하는 것은 물론 편하게 국제전화를 할 수 있도록 따끈한 차까지 가져다주었다.
따르릉. 따르릉.
<헬로우.>
“접니다. 장군님.”
“조금 전 청와대와 협의를 마쳤습니다. 미국 부통령이 언제 한국을 방문할지 정해졌습니까?”
<글쎄. 아직까진 확정되지 않았지만 2월은 되어야 할 것 같군. 그래도 크리스마스 휴가가 끼어있으니 협의할 시간이 마냥 넉넉한 건 아니야.>
협의할 시간을 걱정하는 걸 보니, 벤 플린트 장군은 나와 입을 맞춰 일을 진행할 생각이었군.
뒤에서 지휘할 생각 말고 직접 와요.
“사전 협의보다 장군님과 낸시 여사가 직접 참석해주셨으면 합니다.”
<낸시는 몰라도 나까지 참석하라는 건가?>
낸시야 국방부 국제외교 담당이니 참석할 핑계는 차고 넘칠 것이다.
“예, 장군님이 필요합니다. 주한 미군 철수의 대가로 차후 5년간 매년 6억 달러의 특별 군사지원금을 요청할 생각이거든요.”
<좋군. 총 30억 달러라면 아무리 많이 깎아도 15억 달러는 얻어낼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내가 참석할 이유가 있나?>
“어마어마한 돈으로 무기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운용 기술은 물론, 기본적인 유지보수, 소모품 기술은 이전이 필요합니다. 장군님께서 미국 군산복합체의 대표로 참석하심이 어떨까 합니다.”
<방산 기술이전을 도와달라는 얘기군.>
밴 플린트 장군은 내가 원하는 바를 즉각 알아차렸다. 내가 거기에 명분까지 얹어드리죠.
“솔직히 기술이전이라 해도 그나마 최신 무기라 할 수 있는 건 M16뿐, 대부분 구식 병기를 유지보수 하는 수준이 될 겁니다. 전차나 군함에 대해서도 기본 운용 기술만 이전해주시면 됩니다.”
<유지보수 기술에 중점을 두자 이건가?>
“예, 그건 미국으로 봐서도 윈윈일 겁니다.”
<윈윈? 무슨 뜻이지?>
“한국뿐만 아니라 구식 미군 병기를 채용 중인 나라는 많지 않습니까. 그들에게도 누군가 부품을 공급해야 하는데, 그런 귀찮은 일을 우리나라가 대신해드리죠. 미국의 안보전략에 도움이 될 겁니다.”
처음 시작은 부품수출로 해도 된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우리나라도 독자 모델의 병기를 설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수출까지 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힘들 거로 생각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우리나라가 그걸 좀 더 빨리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론 미국의 방위원조를 줄이는 결과가 되겠군. 좋은 명분이야.>
“그렇습니다. 이제 일본대신 한국을 하청으로 이용해주시죠. 훨씬 경제적일 겁니다.”
이 정도면 밴 플린트 장군이 알아서 미국 군산복합체를 설득할 것이다.
사실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도 구식 병기의 유지보수는 딱히 돈이 안 된다.
신형 병기를 밀어 넣어야 떼돈을 버는데, 누가 구식 병기의 유지보수 따위에 신경 쓰고 싶겠나.
하지만, 우린 다르지.
아무리 미국에선 구닥다리 유지보수 기술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에선 기계산업 수준을 단기간에 급성장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미국 군산복합체가 쓰는 작업 메뉴얼에서 수많은 노하우를 얻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아주 좋군. 서로 합작하겠다고 난리겠군.>
“이번에 최대한 면허 생산, 부품 생산권을 얻었으면 합니다. 구식 병기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건 걱정 마. 닉슨 정부도 M16 수준의 면허 생산권은 줄 생각인 것 같으니까. 한국에서 적당한 합작사나 미리 정해놓도록 해.>
밴 플린트 장군은 내가 유지보수 합작사로 나서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솔직히 군산복합체는 미군을 뒷배로 가진 미국기업이나 돈을 벌 수 있지, 내가 방산 업체를 한다고 해서 떼돈을 벌 수는 없다.
21세기에도 전차를 파는 방산 업체보다 승용차를 파는 회사가 훨씬 돈을 많이 벌지 않나.
“정부와 조율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하라고. 여하튼 내가 수행원으로 가긴 하겠지만, 협상 테이블에 직접 앉지는 않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밴 플린트의 성향이었다.
직접 나서기보다 언제나 중재자의 역할에 충실했고, 거기서 이득을 취했다.
“실무 협상은 제가 참석합니다. 대통령님이 직접 확답하셨으니, 절차상에도 문제없을 겁니다.”
<좋아, 코리아 빅맨이 허락했다면 문제없겠군. 협상 의제나 군산복합체 관련된 사항은 미리 비서실로 보내놓지.>
“감사합니다.”
이번 건으로 한국 정부는 물론 BR사도 크게 한몫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1월 말에 보자고.>
“아, 잠시만요. 한 가지만 더 확인하겠습니다.”
<음? 더 할 말이 남았던가?>
“부통령은 한국에 들렀다가 대만으로 가는 일정이겠지요?”
<그렇다고 들었어. 딱히 중국을 자극할 이유가 없는데 왜 굳이 방문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군. 낸시도 아무 말 안 하는 거로 봐서 그쪽도 사정이 있겠거니 짐작만 하고 있어.>
‘역시, 미국이 중국과 물밑 접촉을 원하는군. 원래 역사대로 저우언라이 4원칙이 발표되겠어.’
한편으로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 안심이 되는 묘한 기분이었다.
월남에서 미국 전쟁을 도운 나라와 교역하는 상사(商社)는 중국 시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외교 원칙으로, 우리나라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빌어먹을 협박이지만 나에게 기회를 줄 테니까 말이다.
여하튼 강대국이라는 놈들은 약소국에 대해선 자비가 없다. 미국 부통령이 굳이 대만을 방문해 중국을 자극하는 진짜 이유도, 중국과 얘기할 게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다.
그에 대해 중국은 대화라도 하고 싶다면 월남에서 일단 발을 빼라고 미국에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월남에 대규모 파병을 한 우리나라를 걸고 넘어진 거다.
한국이고 대만이고 아주 만만하다 이거지.
외교전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 중에도 매우 저급한 방식이라고 하겠다.
여하튼, 부통령이 우리나라를 들린 뒤에 대만으로 간다고 하니 저우언라이 원칙이 발표되기 전에 한미 협정이 먼저 타결되겠네.
“그럼, 1월 말에 뵙죠.”
<그래, 크리스마스에는 좀 쉬라고. 자네 같은 일 중독자도 없을거야.>
“한국 일 중독자는 크리스마스에 일하고, 설날에 쉽니다.”
<하하하.>
나는 전화를 마치고 성수동 본사로 들어가 빌 베인과 함께 자동차 산업 진출 계획을 논의했다. 주요 부품부터 완성차까지 아우르는 종합 자동차 공장을 목표로 말이다.
***
며칠 뒤,
눈 쌓인 거리에선 벌써 연말 분위기가 났다.
<속보입니다. 대한민국 육군이 돌격 소총, 기관총, 박격포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소식입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직접 시연에 참석하셨는데, 국산 병기의 성능에 아주 만족…>
<날로 심각해지는 북괴의 도발에 정부는 국산 병기로 예비군 전력을 보강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에 각처에서 방위성금을 모으고…>
이 시대 라디오에선 크리스마스 캐럴 대신 속보가 흘러나왔다.
특히 TV에서는 국산 박격포가 발사에 성공하는 장면이 끝없이 재방송되었고, 연일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의 인터뷰가 나왔다.
여하튼, 청와대 비서실은 이번 병기 시제품으로 큰 고비를 넘긴 모양이다.
“사장님, 청와대 비서실에서 찾아오셨습니다.”
“비서실에서요?”
아직 본격 논의를 할 때가 아닌데 말이다.
지금은 미 부통령과 의제 선정을 놓고 정부끼리 조율하고 있을 때인데…
“우 사장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염원철 수석비서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얼마 전까진 살이 홀쭉하게 빠졌던 양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동글동글해져서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바쁘신 분께서 직접 오시다뇨. 절 부르시지 그러셨어요.”
“에이, 저보다 열 배는 더 바쁘신 분이신데 제가 찾아와야죠.”
혼자 다니는 걸 보니 아직 석 차관보같이 마음에 드는 후임을 찾지 못했나 보다.
하긴, 좀 마음에 드는 후임 공무원들은 죄다 온갖 산업체 현장에 투입되었겠지.
이 시대의 공무원들은 21세기 공무원들과는 상당히 다른 것 같았다. 최소한 상공부 출신의 공무원들은 말이다.
“여하튼, 우 사장님. 제가 이렇게 뜬금없이 찾아온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궁금합니다. 뭔데 그러십니까?”
설마 아세아 자동차가 벌써 매물로 나왔나?
“제가 이번에 새로이 자동차 국산화 5개년 계획의 추진 위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아니네. 하긴 지금 정부에서 그걸 처리하기엔 눈앞에 있는 주한미군 철수 건이 너무 크지.
그 협상이 끝난 뒤에야 아세아 자동차가 수면 위로 올라올 거다.
“지금도 중화학공업 추진 위원장이신데 또 감투를 쓰셨단 말입니까?”
하여간 청와대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다.
대통령도 이 양반에게 감투를 씌우는 걸 참 좋아한다니까. 둥글둥글하니 잡음 없이 일을 잘 처리하니 그런 모양이다.
“제가 이래 봬도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회사였던 시발자동차의 공장장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상공부 공무원이 되었을 뿐이지요.”
“아, 그러십니까?”
원래 염원철 수석이 자동차 회사 출신이구나.
어쩐지 기계에 대해선 꽤 알더니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었군.
“제가 나름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의 산증인입니다. 허니, 이번 일도 잘 도와주십시오.”
“하하하, 그래야죠.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기승전 도와달라는 말로 끝나는군.
어쨌든 잘 됐다. 염 수석이 내 편을 들어준다면 비서실 전체가 나를 미는 격이지.
“각하께서 제게 자동차 국산화 5개년 계획을 세워서 가져오라지 않습니까. 5년 뒤에는 순수 국산 기술로 된 국민차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염 수석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대통령에게 국산화 100%라는 바람을 집어넣은 게 아니냐면서 말이다.
이 사달을 책임지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여하튼 대통령도 대단하네.
벌써 국민차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양반의 머릿속엔 어떤 미래가 그려지고 있는 걸까?
“다들 국산화 100%는 허튼소리라고 하겠죠?”
“… 그럼요. 그보다 대세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겠다고 하면 야단법석이 날 것입니다. 안 그래도 신진 자동차 사장은 국회의원들 등에 업고 상공부 장관에게 삿대질까지 하는 양반인데, 가만있을 리가 없습니다.”
은연중에 염 수석은 비서실이 대세의 방패가 되어줄 명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증거를 보여주긴 해야겠네.
“어떤 야단법석이 날려나 모르겠지만, 국산화 가능성의 증거를 물으신다면 보여드리죠. 원효로에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원효로라고요?”
“거기 자동차 엔진 재생공장이 많습니다. 가시면 볼 게 아주 많을 겁니다.”
나는 내수 시장은 딱히 기대하진 않지만, 같이 일할 납품 업체에 대해선 계속 조사를 하고 있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내가 직접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우수한 부품 공급업체를 발굴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거든.
그러다 보니 원효로에 자동차 부품업체가 밀집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길로 염원철 수석비서관과 함께 원효로로 향했다.
“아니, 원효로에 이런 골목이 있었습니까?”
염 수석은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신기해했다. 사방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이들이 온갖 자동차를 수리하고 있었다.
전포동 철공소 거리 못지않게 활기찬 곳이다.
“자동차 계열화 정책을 편 뒤로 이곳에 자동차 수리점이 몰려들어 이리되었다고 하더군요. 여기 터줏대감은 저기 원효 보링 공장입니다.”
“저기를 보여주시려고 하셨군요.”
염 수석은 골목 끝에 있는 제일 큰 공장의 간판을 가리키며 대번에 알아차렸다.
“예, 자동차 부품 국산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원효보링’은 엔진 재생공장이었다.
고장 난 엔진을 수리하는 것은 물론, 미군이 버리고 간 엔진을 분해해서 쓸만하게 만드는 곳이다.
솜씨가 하도 좋길래 처음 봤을 땐 나조차 신기할 정도였다.
“안녕하십니까, 박 사장님.”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우 사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별일은 아니고, 이쪽 분께 엔진재생 공장이 어떤 곳인지 보여드리고 싶어서 말이죠. 한번 둘러봐도 되죠?”
“물론이죠. 제가 직접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원효보링 사장은 하던 작업을 멈추고는 공장 견학을 시켜주었다.
공장은 대형 철공소 정도의 크기라 돌아보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고, 이미 분해된 엔진 실물이 이곳저곳에 잔뜩 깔려 있어 설명하기도 편했다.
“이게 재생용 엔진을 분해한 실린더 블록입니다. 오래된 실린더 헤드를 연마하고, 실린더 구멍은 보링과 호닝을 해주고, 밸브시트나 기타 마모된 부분은 죄다 다시 재가공하면…”
보링은 뚫린 구멍을 정밀하게 연삭해서 넓히는 작업이며, 호닝은 가공된 표면을 매끈하게 연마하는 작업이다.
염 수석은 예전에 자동차 회사의 공장장답게 연신 감격한 표정으로 박 사장의 설명을 들었다.
재생공장마저 예전의 시발자동차 공장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실감했을 것이다.
“이렇게 가공된 엔진 블록에다 연마한 부품을 끼워 조립만 하면 신품이나 다름없는 엔진이 되는 겁니다.”
박 사장은 신나게 설명했다.
내가 데려온 염 수석이 큰 고객이라도 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번 돌려보실 수 있겠습니까?”
염 수석이 박 사장에게 요청했다.
“물론이지요!”
박 사장은 대번에 조립 완료된 재생 엔진에 시동을 걸었고, 부릉거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엔진이 씽씽 잘도 돌아갔다.
“박 사장님, 이 공장에 엔진 주물만 갖다 주면 엔진을 만들 수 있지요?”
“아유 그럼요, 우 사장님. 엔진 블록만 있다면야 이 공장에서도 하루에 수십 대도 만들지요.”
나는 확인차 질문을 했고, 박 사장은 내 질문에 가슴까지 텅텅 치며 자신만만해했다.
그 말에 염 수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작은 공장에서 하루에 수십 대를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엔진이 별거입니까? 기계만 몇 대 보강하고 공장만 조금 확장하면 하루에 100대도 가능하죠.”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염 수석을 조용한 곳으로 끌고 갔다.
“이게 우리나라 부품 업계의 현 주소입니다. 기능은 충분하죠. 엔진 주물, 부품 소재, 그걸 가공할 수 있는 기계 등등 기초 체력이 없는 겁니다.”
“기능은 충분하다고요?”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을 보고 제일 처음 축구 기술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 뒤 기초체력과 조직력에 중점을 가해 월드컵 4강까지 올랐고, 그 뒤론 월드컵 16강은 곧잘 올라가지 않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감한 시설 투자이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내가 자동차 산업에 출사표를 던지는 이유였다.
오일쇼크가 터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서, 북미 시장을 공략해야 했다.
< 164 : 충분한 기초 체력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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