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5)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65화(165/589)
< 165 : 돈 밝히는 자 >
청와대 대회의실
“다른 쪽에서는 대통령 각하와 미 부통령이 환담 중인데, 우리는 계속 얼굴을 붉히는군요.”
나정렴 비서실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벌써 사흘째 특별 군사지원금을 놓고 줄다리기 중이니 지칠 만도 했다.
청와대에서 밤낮으로 오찬과 만찬 파티를 열었지만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나 실장은 난감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난 느긋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니까.
일정상 오늘 저녁이 마지막 만찬이었다.
닉슨 정부가 들어서고 처음으로 고위 관료가 해외 순방을 하는데,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원칙론만 발표하고 한국을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
닉슨 정부는 한국을 압박해 수긍시켰다고 언론에 떠들 수 있어야 외교적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최강대국 부통령이 동맹국을 방문해 공동성명도 발표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창피한 일도 없다.
심지어 닉슨 정부가 받아들 외교 성적표의 첫 칸에 기록될 일인데 말이다.
“아니 말씀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 합의가 되지요. 특별 군사지원금으로 자그마치 30억 달러를 요구하다니요. 사전 논의에서는 충분히 협의할만한 금액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 국무부의 리처드 차관은 급기야 소리를 버럭 질렀다. 사전 논의를 훌쩍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외교적으로 참사였다.
“일시금으로 30억 달러가 아닙니다. 5년간 매년 6억 달러입니다. 그 정도는 투자해야 주한미군의 공백을 막을 수 있으니 합당한 금액입니다. 사전 협의 때도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거고요. 설마 주한미군 7사단의 전력이 고작 1, 2억 달러로 메꿔질 거라 여기시는 건 아니겠지요?”
내가 리처드 차관에게 나지막이 대꾸했다.
우린 늘 제대로 말했어. 오해한 건 너희들이지.
내 말의 요지는 그러했다.
사흘째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기에 나 또한 지겹긴 매한가지지만, 외교에선 버티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그만 좀 하시죠, 여러분. 이젠 도저히 못 참겠어요. 욕이란 욕은 국방부에서 다 들을 테니 이쯤에서 정리하시죠.”
낸시는 미 국방부 국제외교 정책담당 차관이라는 길고 긴 타이틀이 적힌 명패를 흔들어댔다.
자신의 직권으로 이 협상을 정리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쌍방에서 진을 충분히 뺐으니, 낸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낸시, 결론 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뭘 정리하겠다는 겁니까?”
“그럼 리처드 차관이 정리하던지요. 부통령이 특사로 왔는데, 공동성명도 발표하지 못하고 이대로 대만으로 떠날 건가요? 아니면 대만 방문을 미루고 여기서 더 협상이라도 하실 겁니까? 백악관에서 어지간히 좋은 얘기가 나오겠군요.”
“어디 맘대로 해보십시오.”
낸시의 말에 미 국무부 차관이 맘대로 하라며 눈을 감았다. 말은 쏘아붙이든 했지만, 그도 이쯤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건 인정하는 꼴이었다.
“다들 주한미군 철수는 동의하잖아요.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로 특별 군사지원금을 지급한다는 것도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그야, 그렇지요.”
나와 리처드가 동시에 답했다.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것만 해도 상당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자, 그러니까… 우린 각자의 정부가 체면치레할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예요.”
“한국 정부는 5년간 매년 6억 달러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습니다.”
“말이 되는 소릴 하십시오. 5년간 매년 3억 달러, 그 이상은 절대 안 됩니다.”
“그만! 그만! 매년 6억 달러에 리베이트 3억 달러! 어때요? 각자 체면이 살죠?”
일단 우리나라가 6억불을 받고 3억불을 돌려주는 식이라는 거군. 낸시의 말에 리처드 차관의 표정도 살짝 밝아졌다.
“호, 3억 달러를 기술이전료로 되돌려받자는 뜻인가요? 그건 나쁘지 않군요.”
무기뿐만 아니라 기술도입도 돈이 드는 건 매한가지다.
게다가 기술이전비는 미 정부에서 정하기 나름이니, 3억불을 돌려받는 건 물론 그 용도조차 재량껏 요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는 좋군요. 그런데, 1차연도엔 6억 달러가 온전히 들어와야 합니다. 한국군 현대화 실적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개선되어야 공산권의 도발 억제력이 생기는 겁니다.”
“그… 그건…”
“좋아요. 국방부에서 1차연도는 6억 달러 전액을 지원하죠. 그 다음연도부터는 국무부가 챙겨요. 첫해에 너무 과하게 챙겨줬다는 욕은 우리 국방부가 들어먹을 테니까.”
낸시가 마치 판사처럼 자기의 명패를 탁자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을 막았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6억 달러를 지원받으면 미국 무기를 사는 데 쓸 테고, 그럼 돈은 고스란히 미국으로 되돌아가는 겁니다.”
내 말에 리처드도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던지 입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나쁜 거래가 아니었다.
첫해 6억불은 미국 내수 진작금이라고 해도 되는 것이었다.
“2차연도부터는 6억 달러를 지원하되, 그중 3억 달러는 한국군 현대화에 사용하고, 나머지 3억 달러는 기술이전료 명목으로 미국이 되돌려받는 것으로 합의! 합니다! 끝! 이제 정말 끝!”
낸시는 그간 빈칸으로 남았던 특약 조건과 서명란을 재빨리 채워 넣고는 합의서를 휙하고 탁자 중간에 내던졌다.
“이 정도면 저희 청와대 비서실이 책임지고 일 처리 하겠습니다. 각하께서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시도록 말입니다.”
나정렴 비서실장이 뒤이어 탁자 위의 합의서에 서명하며 박 대통령의 인가를 언급했다.
그러자 리처드 국무부 차관도 마지못한 듯 서명을 마쳤다.
원래 역사에서 15억불이었던 지원금이 18억불로 살짝 늘어났다.
늘어난 3억불은 대통령에게도 예상외의 돈일 테니, 자동차 공업 진흥기금으로 요청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방위산업 기술이전에 대해서도 매년 3억불이라는 담보가 있는 꼴이니,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야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뤄질 것이다.
미군 입장에서야 구닥다리 유지보수 기술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실정엔 아주 유용할 것이다.
솔직히 필드 매뉴얼과 기술교본만 잔뜩 얻어도 엄청난 기술자산이다. 전차와 군함에 대한 기술교본을 얻을 수 있다면 대박일 텐데 말이다.
어쨌든 찔러볼 구석이 생겼다.
“공동성명이야 한국 정부가 이미 만들어둔 게 있을 테니, 리처드 차관이 손 좀 봐요. 난 샴페인이나 한잔하고 쉬어야겠어요. 너무 힘들어, 너무. 어휴…”
낸시는 볼일은 끝났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만찬장으로 향했다.
“공동 성명서엔 미 7사단은 철수하고 미 2사단은 후방으로 이동하면서 한국군이 휴전선 경계를 책임지는 것을 명확히 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문구를 부드럽게 변경해보도록 하지요.”
리처드의 말에 나정렴 비서실장이 적당히 대처했다. 이때 우리나라야 한미 공동성명을 발표해도 TV 뉴스에 발표 장면만 나갈 뿐, 발표 내용은 정부의 보도지침에 따라 신문사들이 알아서 이것 빼고 저것 빼서 국민들에게 전달할 테니 딱히 문구를 수정할 필요도 없었다.
국가안보에 관한 한 언론도 함부로 말을 못 하던 시절이 아닌가.
“이제야 일이 끝났군요. 한국에 이렇게 고약한 협상가가 있을 줄 알았다면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겁니다. 미스터 우, 내가 꼭 기억하죠.”
리처드 차관이 내게 악수를 청했고, 내가 손을 맞잡자 우악스럽게 힘을 줬다.
“저는 공무원이 아니라 방위 산업체를 대표해 참석한 기업가일 뿐입니다. 원래 돈이나 밝히는 놈이라고 생각하시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나는 우악스러운 그의 악수에 오히려 정중하게 인사까지 더해서 감사함을 표했다.
이 정도 악수 한 번에 18억불을 받아낼 수 있다면 몇 번이고 하지.
이제 남은 일은 비서실에서 알아서 할 거다.
박 대통령과 미 부통령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대만으로 떠날 때 화려하게 배웅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
***
청와대 영빈관 만찬장.
“표정을 보니 협상은 잘 된 것 같군.”
낸시를 뒤따라 만찬장으로 들어서니 밴 플린트 장군이 이미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아니, 누군 꾸역꾸역 일만 하는데, 수행원으로 와서는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거예요?”
“낸시, 왜 그래? 난 협상테이블엔 앉지 않기로 하고 한국에 들어왔다고. 안 그래, CS?”
“그렇죠. 회의 결과를 알려드리자면 특별 군사지원금은 매년 6억 달러, 2년차부터는 지원금 중 3억 달러를 기술이전비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밴 플린트에게 길고 긴 협상의 결과를 한 문장으로 말해줬다.
“하하, 1년차는 6억 달러를 다 챙기고 2년차부터 3억 달러를 되돌려줘? 15억 달러가 최선이라 여겼는데 3억 달러나 더 뜯어냈군.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밴 플린트는 대번에 계산을 끝내고 내게 건배 제의를 했다.
만찬장 입구에서 잭콕을 한잔 가져왔기에 기분 좋게 잔을 부딪쳤다.
“18억 달러나 뜯기다니, 낸시가 이런 협상을 할 때도 있던가?”
“뭐, 어쩌겠어요. 한국의 안보가 휘청해서 북한이 오판이라도 하는 날엔 동북아 전체가 고장나는데 말이에요.”
낸시는 결국 이리될 일이었다는 듯 샴페인만 홀짝거렸다.
“이참에 실버스타인도 한몫 챙기겠군. 한국으로 실어낼 물건이 아주 많아질 테니까.”
“BR사만 하겠어요? 군수품은 물론 기술이전비까지. 리베이트에서 10%만 떼도 그게 얼마에요?”
“탐나면 BR사로 입사해. 낸시 정도면 나처럼 고문 자리는 차지하고도 남을 거야.”
미국에서야 유력 정계 인사를 회사 고문으로 채용하는 경우는 흔하다 못해 당연하게 여겨진다.
“BR사같은 마초들의 집합소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알래스카 유전에 투자하죠.”
“다른 회사는 알래스카에서 죄다 성공하는데, 실버스타인의 탐사선만 실패했다더군. 잘 좀 하질 그랬어.”
둘은 서로를 깎아내리면서도 연신 건배를 했다.
이번 특별군사지원금은 둘에게도 꽤 괜찮은 장사였을 것이다.
“자, 이제 그만들 하시고요. 장군님, 이번 협상에서 이득을 보시는 만큼 기술이전 화끈하게 해주십시오. 믿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 하딘 단장을 한국으로 보내기로 합의했으니까. 공산주의자를 몰아내는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기술자이니 잘 활용해보라고.”
“하딘 단장이라고요?”
단장이라고 하는 걸 보니 일련의 조직을 보내줄 생각인 모양이다.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처(ARPA) 소속 전문가야. 팀원으로 총포, 탄약, 항법 및 사격통제장치, 로켓, 통신 기술자들이 즐비해.”
“어머, 또 남자들끼리 무기 얘기나 하겠군요. 나는 이만 쉬어야겠어요.”
“들어가요. 낸시.”
“미국에서 보자고, 낸시.”
낸시는 우리가 무기 얘기를 시작하자마자 휙하니 숙소로 돌아갔다.
그녀에겐 대만 문제가 훨씬 중요할 것이다.
대만을 방문함으로써 중국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이번 순방의 주된 목적이니까 말이다.
“여하튼, 국방 걱정은 그만하고 자네 얘기 좀 해봐. 이번 일로 보상은 챙겨야 할 것 아닌가.”
“이번 일로 자동차 산업에 진출할 생각입니다. 세금 우대나 관세 혜택을 주겠지요.”
“자동차까지?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조선이나 건설은 워낙 경기를 많이 타기에 안정적인 수익처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꾸준하게 성장하는 사업 말이죠.”
“하긴 철강 사업을 하면서 조선과 자동차를 병행하면 그보다 좋은 건 없지. 그런데 기술 개발은 해두긴 한 건가?”
밴 플린트도 일리는 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힘들어서 그렇지 자동차 사업에 성공만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사업은 없다.
솔직히 건설 시장을 뚫으면서 조선, 각종 플랜트, 자동차까지 들고 들어가는 전략은 신규시장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전략이지 않은가.
“일단 국산화 40% 수준으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디젤 엔진은 어느 정도 진전을 보았기에 트럭이나 지프로 시작해서 나중엔 건설 중장비도 노려볼 겁니다.”
“잘하면 나중엔 중장비는 대세 제품을 사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런 전략이라면 이번 한국군 현대화 프로젝트가 아주 적격이겠군.”
“이번 프로젝트가 적격이라고요?”
“이런, 몰랐나? 대통령이 콕 짚어서 새로운 항목을 집어넣었어. 군용 트럭을 국산화하자고 그러던데, 그거로 시작하지 그래.”
어라, 대통령이 내 생각을 해준 건가?
여하튼 군용 트럭을 국산화한다면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지. 그러고 보니, 아세아 자동차가 군용 트럭 전문이기도 했었지.
군용 트럭을 명분으로 잡으면 아무리 기존 업체가 반대한다고 해도 내가 아세아 자동차를 인수할 수 있겠네.
이 시대에 국가안보를 위한다는 명분보다 앞서는 게 뭐가 있겠나.
“정말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감사합니다.”
“설마하니, 이게 자네에게 줄 선물이 될 줄은 몰랐군. 받아.”
밴 플린트가 007 가방을 쑥하니 내밀었다.
“뭡니까?”
“돈뭉치는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군수용품 유지보수 매뉴얼이야. 잘 찾아보면 군용 트럭 스펙과 유지보수 매뉴얼도 있을 거야.”
“그걸 제게 주신다고요?”
잠깐, 잠깐… 군용 트럭 스펙이라고?
그럼 군용 지프차나 중형 트럭에 대한 스펙도 있다는 말이잖아? 이럴 수가!
“불법은 아니니 안심해. 이미 한국에 기술이전 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한 항목이니까. 원래는 성명서가 발표되면 바로 넘겨주려고 했는데, 시간만 조금 뒤로 미루지. 자네가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 뒤에 넘겨도 별달리 문제없을 테니까.”
밴 플린트는 내가 부품 유지보수 매뉴얼만 들여다봐도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차축 소재 스펙이나 엔진 부품 유지보수 체계만 알아도 지프와 트럭 국산화는 훌쩍 빨라질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되겠어요.”
오히려 미 육군의 군용 스펙(MIL. Spec)을 민간 자동차에 바로 채용하면, 내구성 측면에서 엄청난 오버 스펙이니 적당히 걸러야 할 것이다.
어쨌든, 세계 어디에 갖다 놓아도 우리 자동차가 퍼지는 일은 없을 것 같군.
“도움이 된다니 내가 더 기쁘군. 이번에도 서로 윈윈이 되는 건가?”
“윈윈이 아니더라도 장군님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밤은 호텔보다 영빈관에서 보내시죠. 조선소도 한번 보시고요.”
나는 생각난 김에 영빈관으로 초대했다.
이제 영빈관 본관도 거의 마무리단계이고, 별관인 한옥은 이미 잘 마무리가 되었다.
“늘 얘기하던 그곳인가? 자네만의 영빈관을 보고 싶긴 하군.”
“지금 당장 모시죠. 딱히 이제 여기서 할 일도 없지 않습니까. 나머지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러자고. 술도 정치인과 멀리 떨어져서 마시면 더 맛있는 법이지.”
“가시죠.”
나와 밴 플린트는 곧바로 울산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술을 마시는데, 2차는 해야지.
< 165 : 돈 밝히는 자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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