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7)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7화(17/589)
< 017 : 폐공장 >
비슷한 시각.
싱가포르, 아델피 호텔.
“어떻게 되었나?”
라자크는 자신의 오른팔에게 다급히 물었다.
“추가 주문 텔렉스를 타전했고, 은행에도 입금 확인을 하도록 했습니다.”
“기존 가격으로 추가 오더를 했다 이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물건을 받기 전에 추가 오더를 한 것이니, 무역 관례상 단가를 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라자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라자크님, 아무리 베트남에서 테러가 발생했다고 해도 너무 무리하시는 게 아닌가 합니다. 지금이라도 물량을 조금 줄이시는 게…”
“줄이다니, 더 늘려도 모자랄 판이야. 야드당 65센트에 이런 최상급 원단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라자크는 대세 실업이 항공편으로 보내준 원단 샘플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 말씀이 아닙니다.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팔아야 돈이 되지 않습니까. 추가 오더를 30만 야드나 하시니, 자칫하면 운영 자금이 말라버릴 수 있습니다. 최소한 1차 물량을 파신 뒤에…”
“아니,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야. 조만간 베트남산(産) 원단이 시장에서 사라질 거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게 뻔하지. 그 와중에, 대세 실업의 원단을 쥐고 있다면 야드당 1달러를 불러도 팔릴 거야. 최대한 긁어모아야 해.”
“베트남산 원단이 사라지다니요. 베트남 정세가 불안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만간 물건이 다시 풀릴 겁니다.”
비서는 우려를 표했다.
분명 미 대사관 테러는 큰일이긴 하지만, 베트남에서 그 정도 일은 다반사였다.
“어림없는 소리. 미군이 이제 전면전에 나설 거야. 베트남의 수출입을 모두 통제할 것이 뻔해. 그럼, 그동안 일제 원사를 밀수해서 원단을 만들던 베트남 상인들은 모두 망한 거야.”
“!!!!!!”
듣고 보니 그러했다.
동남아 전역에 만연한 밀수 무역이 베트남에서만큼은 힘을 못 쓰게 될 것 같았다.
미 해군이 밀수 선박을 용인할 리가 없었다.
베트콩에게 들어가는 군수물자일 수도 있으니 모든 상선을 철저하게 감시하게 될 것이다.
“미 대사관 테러로 일이 그렇게 되는군요.”
“그래, 사업을 하려면 뭐든 허투로 봐서는 안 되는 법이야. 예측해야 해! 남들보다 빨리!”
“명심하겠습니다. 어르신.”
“솔직히 이번 사안은 나도 의외야. 분명 미스터 우는 보기엔 애송인데, 실력은 대단하고 운까지 따르고 있어.”
“미스터 우는 절대 허투로 보지 않겠습니다.”
“당연하지. 그가 하는 사업엔 우리도 필히 끼어야 해. 그게 뭐가 됐든 말이지.”
“예, 어르신.”
“휴우, 하여간 일을 처리했다니 이제 좀 기뻐해도 되겠군.”
라자크는 평소와 달리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기분이 아주 좋을 때 하는 일이었다.
“더 부자가 되신 것 미리 축하드립니다.”
비서는 불을 붙였고, 샴페인 잔도 채웠다.
“그래, 하이스트리트 소매상들 단속 좀 해. 나 따라 대세 실업에 추가 주문한 녀석들 돈 좀 벌 게 될 거 아닌가?”
“적당히 세금을 거두겠습니다.”
비서의 말에 라자크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순익이 적어도 2배, 많게는 3배까지도 가능해.’
대세 실업의 원단을 확보하면, 동남아 의류 시장을 석권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보였다.
10년만 젊었다면, 음악을 틀어놓고 밤새도록 아내와 함께 춤을 즐겼을 터였다.
***
다음날,
나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반도 호텔로 향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베트남 특수(特需)가 밀려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느낌은 느낌일 뿐. 사실 확인을 해야 했다.
“데이비드!”
“어서 와요, 미스터 우.”
사무실 앞에서 데이비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21세기가 아니라서 미 대사관 테러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는 신문보다 데이비드 같은 정관계 인사를 통해 확인하는 게 더 정확하고 빠르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귀국하기 전에 만나고 싶었는데, 때마침 연락이 닿아서 다행입니다.”
“귀국하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어째 급하게 귀국하는 것 같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영전하는 느낌인데?
“고맙습니다. 어찌 되었든, 지금 중요한 것은 미스터 우의 예상이 맞았다는 겁니다.”
“제 예상이 맞았다고요?”
나는 짐짓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미국이 결국 베트남에서 전면전을 하게 될 거라고 말했었죠?”
“그랬죠.”
“어제 남베트남 미 대사관에 폭탄 테러가 터졌습니다. 외교관을 포함해 미국인 수백 명이 사망했죠. 이제 미국이 베트남을 그냥 두고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루비콘 강을 건넜군요.”
예상대로 일이 터졌다.
아직 국내 신문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데이비드가 말했으니 확실했다.
‘이래서 주문이 폭주했던 거야!’
추가 주문이 쏟아졌던 진짜 이유였다.
원단 생산지로 각광받던 남(南)베트남은 산업 구조를 완전히 달리하리라.
미군의 통제로 수출입이 생명인 섬유업은 죽을 수밖에 없고, 미군 지원 중심의 군수 관련 사업만이 흥하리라.
“비극이지만 어쩔 수 없지요. 여하튼, 그대의 우려처럼 전면전 리스크가 현실이 되었으니, 미국의 인플레도 곧 현실로 나타날 겁니다.”
그뿐이 아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의 여파로 전격적으로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질 테고, 한국군이 본격적으로 베트남 전에 참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찌 그리 잘 아냐고?
1965년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로 1.5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차관이 들어왔고, 대한민국 정부는 그 돈을 울산 석유화학 단지에 올인 했으니까.
전생에 플랜트 업계에서 일했기에 그 정도 역사는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석유화학단지에 차관을 올인 했던 것은 대박 중의 대박이었다.
“인플레 보고서는 미 정부에 전달하셨습니까?”
“물론이죠. 한 달 전에 보냈는데 반론에 부딪히긴커녕, 미래를 예언한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 정부에서 빨리 귀국하라고 야단입니다.”
데이비드는 감격한 듯 내 손을 두드렸다.
이제 미국 본토로 가면 석학 대접을 받는 것은 물론, 정계며 경제계에서 엄청난 러브콜을 받게 될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그럼, 세계은행 사절단은 누가 챙기게 되는 거죠?”
“후임자가 챙기게 될 겁니다. 헌데, 그것보다 미스터 우에게 더 중요한 뉴스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뉴스라고요?”
“세계은행 사절단에 미(美) 상공부 소속의 동아시아 차관 담당자도 합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 일이 그리되었군요.”
원래 역사에선 미 상공부에서 직접 담당자를 파견했었구나.
‘그래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1.5억불이나 되는 차관에 합의할 수 있었던 거네.’
미 상공부에서 인원을 파견했다는 말은 한미 간의 물밑 접촉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전개였다.
미국은 베트남에 전투 병력을 파병해줄 우방국이 절실했고, 한국은 외화벌이는 물론 주한미군 감축을 막기 위해서라도 파월을 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이니 각 실무자들은 한미 정상회담 전에 물밑에서 쟁점 사항을 협의하고, 사전답사도 마쳐야 했던 것이다.
“휴우, 미스터 우에겐 조금 아쉽게 되었습니다. 원안대로 세계은행 사절단만 왔다면 울산 석유화학단지 건설에 참여했을 텐데 말입니다.”
“아쉽지만, 할 수 없지요.”
아쉽긴 뭐가 아쉬워.
원래부터 석유화학단지 프로젝트에 직접 끼어들 생각 따위는 없었다.
내가 아무리 21세기 플랜트 전문가라고 해도, 울산 석유화학단지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가진 것도 없이 도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세계은행 사절단의 자문 역할을 핑계로 설계 용역을 따내는 것이 최선이었을 거다.
그럼 돈은 좀 벌지 몰라도 기회비용을 날려버리는 셈이었다.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 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세계은행사절단 대신 미 상공부와 다리를 놓아주겠습니다.”
“무척 감사하지만, 제가 좀 자신이 없군요. 세계은행 사절단이면 몰라도 정치인들은 조심스러워서 말이죠.”
이 시대의 정치권력과 가까워지는 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자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나로선 딱히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수출만 신경 쓰는 가장 큰 이유였다.
정치권에서 아예 멀어질 순 없겠지만, 외압을 견딜만한 덩치가 될 때까지는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미스터 우, 이번에 미 상공부가 파견한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대단한 사업가라 당신에게 통 큰 투자를 해줄 지도 모릅니다.”
데이비드는 진심으로 날 도와주고 싶어 했다.
내 덕분에 몸값이 하늘을 찌르게 된 것도 있지만, 내게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낀 것 같았다.
“정치인을 통한 투자는 아직은 부담스럽습니다. 그 대신 갈프사와 다리를 놓아주실 수 있습니까?”
대단한 사업가라고 해서 조금 마음이 흔들렸지만, 다시 마음을 잡았다.
굳이 변수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내 계획대로 가도 확실히 재벌이 될 수 있었다.
“… 갈프사가 더 나은 이유가 있습니까?”
“전 화학섬유를 취급하는 장사꾼이니까요. 화섬 원료는 나프타이고, 석유 화학단지가 커진다면 갈프사 같은 정유 회사가 나프타 사업을 좌지우지할 테니까요.”
“나프타 사업권을 노리는군요.”
“예, 그렇습니다.”
“해볼 만한 사업이긴 하군요.”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 만한 사업이 아니라 꼭 해야 했다.
원래 역사에서는 갈프사가 산업은행과 함께 나프타 공장 건설에 투자했다.
경영권을 쥐었던 갈프사는 나프타 사업권을 일본 회사에 팔아버렸지. 국내 기업은 나프타 사업을 운영할 기술이 없다는 명분이었다.
그 때문에 산업 은행은 닭 쫓던 개가 되었고, 일본 회사가 나프타를 이용해 온갖 석유 제품을 생산해 대박치는 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있는데 그 역사를 반복할 이유가 없다.
내가 집어 삼키면 국부 유출도 막고, 나도 부자가 되고 일석이조 아닌가.
“갈프사 한국 지사장을 만나기만 하면 사업 제의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우 사장이 그걸 원한다면야. 아! 좋은 수가 있어요. 울산 시청이 세계은행 사절단을 위한 환영회를 여는데 갈프사도 참석하지요. 내가 미스터 우를 환영회 명단에 올려놓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그래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죠.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나야말로 미스터 우에게 큰 도움을 받고 귀국합니다.”
“귀국하기 전에 한잔하셔야죠. 빌려주신 10만 불도 갚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쉽지만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군요. 10만 불도 쓰실 만큼 쓰시다가 여유가 되실 때 갚으십시오. 후임 사무관에게 인계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데이비드 이 양반, 정말 내게 엄청난 호의를 가지게 된 것 같았다.
미국으로 돌아간다니 아쉽긴 하지만, 미국 본토에도 연줄이 하나 생긴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겠다.
****
며칠 뒤, 울산 공단
나는 삼복이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황혜성 사장과 함께 새벽부터 차를 몰아 울산으로 내려왔다.
세계은행 사절단 환영회 초대장도 잘 챙겼다.
환영회에 참석하기 전에 현장답사부터 할 생각이었다. 갈프사를 제대로 꾀려면 현장부터 파악해야 하는 법이니까.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공단 부지를 돌아보면, 어디에 나프타 공장을 세우는 게 가장 효율적인지는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야, 울산이 성수 공단보다 더 크군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황혜성 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울산이 지방 촌구석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원유가 대부분 여길 거칩니다. 성수 공단에 비할 바가 아니죠.”
“그렇군요.”
아무리 60년대 중반이라고 해도 갈프사가 정유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정유업은 대표적인 시설 산업이라 유조선이 정박할 항만시설은 물론, 유류 창고와 각종 정제 관련 공장 등이 필요하다.
일명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이다.
‘초창기 울산이 이런 모습이었구나.’
다른 이유였지만, 나도 좀 놀라긴 했다.
기껏 해봐야 허름한 공장 수십여 채가 전부인 이곳이 21세기에는 연 매출이 100조를 넘는 아시아 최대 화학 산업단지로 성장한다니 말이다.
“실례합니다. 여기 갈프사 공장이 어디죠?”
“길 건너편 공장부터 갈프사 공장입니다.”
“예에? 저기 폐공장 말씀이신가요?”
길 건너편 공장은 공장이 아니었다.
입구에 X를 크게 그어놓은 폐공장이었다.
“예, 항구 쪽에 신규 공장을 지어서 옮겨갔지만, 저 공장도 갈프사가 주인이긴 하지요.”
“아, 말씀 감사합니다.”
행인이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항구 쪽으로 가야 하나 보죠?”
“아뇨, 황 사장님. 이 공장부터 돌아봅시다.”
황혜성 사장은 바다 쪽으로 발길을 돌리려 했지만 나는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예에? 버려진 공장을 왜 보시죠?”
“그러니까 보고 가야죠.”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런 곳이 있었을 줄이야.’
갈프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공장부터 지을 생각이었는데, 잘하면 그 수고를 확 줄일 수 있겠다.
자동차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똥차라도 기존 차를 수리해서 타는 게 훨씬 쉬우니까 말이다.
공장의 뼈대만 멀쩡하다면 새로 짓는 것보단 백배 천배 빠를 것이다.
“어후, 배관에 구멍이 숭숭 뚫렸네요.”
“그러네요.”
정유 회사 배관이 녹이 슬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심장은 더욱 쿵쾅거렸다.
모든 배관이 녹슨 게 아니었으니까.
「For Sale」
안으로 들어서니 입구에 공장 판매 푯말까지 꽂혀 있었다.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다.
‘대박! 대박! 진짜로 팔려고 내놨어!’
기분 좋다 못해 소름이 돋았다.
정말이지 내게 60년대는 환상적이었다.
21세기 시각으로 보니 땅바닥에 돈이 널려 있었다. 이 폐공장은 마치 동네 헌책방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은 느낌이었다.
< 017 : 폐공장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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