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I Became a Chaebol RAW novel - Chapter (18)
나는 이렇게 재벌이 되었다-18화(18/589)
< 018 : 고양이 모래 >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갈프사가 이곳을 버린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플랜트 배관이 군데군데 녹슬어 있었다.
정유 플랜트는 고온에서 동작하는 데다 유독 가스도 배출하기에 주요 부위엔 반드시 스테인리스 배관을 써야 하는데, 싸구려 강관이 아무데나 마구잡이로 쓰였다.
만약 증류탑(원유를 걸러내는 탑) 근처 배관에 이따위 싸구려 강관을 썼다면 대형 폭발로 공장 전체가 날아갔을 거다.
갈프사는 이 공장 건설이 날림 공사임을 깨닫자 제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신규 공장을 지어 옮긴 것이다.
“근데, 우 사장님. 미국 공장은 이렇게 강관으로 정유 공장을 만드나요?”
황혜성 사장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혜성 나일론에 있는 소형 중합로조차 스테인리스 배관을 쓰는데… 하는 표정이었다.
“그럴 리가요. 누군가 현장에서 스테인리스 배관을 바꿔치기한 거죠.”
“예에, 바꿔치기라고요?”
누구인지는 몰라도 자재를 빼돌린 것이다.
감리에 온갖 비리가 그득했던 60년대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런 공장이면 관급(官給) 공사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시공사가 공무원과 짜고 자재를 바꿔치기를 했을 거라는 말입니다.”
OB들이 전설처럼 말했던 60년대 관급 공사의 비리 현장을 직접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관급(官給) 공사란 말 그대로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사로 건설 자재를 국가가 제공한다.
OB들의 말로 60년대 건설사는 관급 공사에서 얼마나 자재를 빼돌리냐가 기술 경쟁력으로 여겨졌을 정도로 엉망이었다고 했다.
건물은 서있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기에 철근이며 배관을 빼돌리는 건 일상이었다고 말이다.
“미국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그런 부실 공사를 용납 한단 말입니까. 자칫하면 이 일대가 모두 불바다가 될 텐데요.”
“그러니까 관급 공사일 것 같다고 한 겁니다. 설계는 갈프사가 제시하고 공장 건설은 국내 업체가 맡기로 했겠죠. 국내 시공사나 공무원은 얼씨구나 하며 장난질을 친 거구요.”
아마도 갈프사를 처음 국내에 유치할 때 우리 정부가 공장 부지와 공장 건설을 특혜로 제시했던 모양인데, 이따위 부실 공장을 주다니 맛난 된장을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똥을 먹인 꼴이라 하겠다.
이래서 우리나라는 6, 70년대를 지나며 시공, 설계용역, 감리를 차례대로 분리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부실시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 돈이 걸린 문제에선 언제 어디서든 독버섯이 자라나기 마련이니까.
“어휴, 강관인 걸 숨기려고 단열재로 칭칭 감아놨네요. 스테인리스 배관처럼 눈속임하려고 말이죠.”
“그러게요. 그보다 서로 다른 재질의 배관을 용접한 것이 더 큰 문제에요. 이대로 두면 부식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하루빨리 강관을 다 뜯어내야 해요.”
퍽. 퍽! 텅. 텅.
나는 땅바닥에 나뒹구는 쇠 파이프 하나를 들고 배관을 두드려 보았다.
강관은 구멍이 뻥뻥 뚫릴 정도로 녹슬었지만, 스테인리스 배관은 맑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직까진 고쳐쓸 만했다.
무엇보다 증류탑은 꽤 멀쩡해 보였다.
아무리 도둑놈이라고 해도 증류탑 자재를 빼돌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 뜯어낸다고요? 우 사장님, 설마 여길 고쳐서 쓸 생각이세요?”
“못할 거 뭐 있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이 규모의 플랜트로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를 중합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연간 수백 톤, 아니 수천 톤도 문제없습니다.”
플랜트는 중후 장대한 산업이다.
생산 제품이 뭐든 간에 연간 1만 톤은 뽑아야 국제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60년대이니 수천 톤 정도로 줄여서 말한 거다.
“헉! 폴리에스터까지요? 그것도 수천 톤이요?”
“상상해보세요. 나일론도 이리 장사가 잘되는데 폴리에스터를 만들면 어떻겠어요? 눈덩이는 굴리면 굴릴수록 커지는 법입니다.”
내 말에 황혜성 사장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의 눈에도 이곳 플랜트가 은빛 실을 마구 토해내는 것이 보이는 모양이다.
“아아… 아아… 그… 그렇긴한데, 여기는 기름을 뽑던 공장이 아닙니까? 화학 섬유를 중합하려면 무엇보다 중합로가 깨끗해야 하는데, 기름투성이인 배관을 어찌 씁니까?”
정확한 지적이었다.
정유 플랜트를 재활용하는 게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노동력이 넘쳐나는 60년대 대한민국 아닌가.
모조리 뜯어서 샌드 블래스터로 조지고, 비누로 씻어내고, 걸레로 깨끗하게 닦아내는 극한의 노가다가 가능한 시대다.
“샌드 블래스터를 만들면 되죠.”
“샌드 블래스터요?”
“모래 분사기에요. 에어 컴프레서에 노즐을 달아서 모래를 분사하는 겁니다. 기름 찌꺼기 정도는 단박에 긁어낼 수 있죠.”
나는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주었다.
“이런 아이디어가.”
황혜성 사장은 그림을 보자마자 이해했다.
샌드 블래스터를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하지만, 선박 페인트도 벗겨낼 정도로 강력한 기계다.
굳어있는 기름 찌꺼기 따위는 단박에 날아간다.
“황 사장님, 저랑 일을 좀 나누시죠. 전 갈프사 지사장을 만나러 갈 테니, 이 근방 철공소를 섭외해서 모래 분사기 좀 만들어주세요. 용접 기능공도 섭외해주시고요.”
“용접 기능공도 모집하라고요?”
“당연하죠. 일당은 최소 500원은 챙겨 줄 테니, 최대한 베테랑 위주로 모아주세요.”
“정말 일하는데 거침이 없으시군요.”
이게 다 운용자금이 넉넉하니 가능한 일이다.
싱가포르에서 13만 불이 입금된 데다 데이비드가 10만 불을 나중에 갚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싱가포르에서 추가 주문이 쇄도하고 있으니 더욱 문제없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죠.”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면 이곳 울산 석유화학단지에는 투자금이 봇물처럼 밀려들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폐공장도 주목받게 될 터이니, 내가 먼저 선점해야만 한다.
“이 큰 공장을 인수할 생각을 하시다니, 통은 정말 크십니다.”
황혜성 사장은 다소 우려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망할까봐 걱정되세요? 염려 마세요. 갈프사는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제발 이 공장 가져가라고 할 거니까요.”
나는 갈프사를 꾈 무기를 이미 생각하고 왔다.
그 와중에 이 폐공장을 봤을 뿐이다.
역시 뭐든 일하기 전에 현장답사부터 해야 한다니까. 사업에서 정보는 생명이나 다름없다.
“… 저… 정말 그렇게 되는 겁니까?”
“두고 보세요. 자, 서두르죠. 어서요.”
“예, 사장님.”
나와 황 사장은 곧바로 헤어졌다.
황사장은 철공소 골목으로 향했고, 나는 차를 몰고 공단 외곽으로 향했다.
이처럼 확장세에 있는 공단 외곽에는 골재상이 있기 마련이고, 내가 갈프사를 꼬드길 물건도 골재상에서 취급한다.
‘여기 골재상이 그 자재를 취급할까?’
내 운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였다.
**
「울산 골재」
“쉽게 찾았네.”
차를 몰고 공장 외곽으로 나가니 골재상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사장님, 계십니까?”
나는 거침없이 사무실로 직행했다.
“어서 오십시오. 찾으시는 게 뭡니까?”
“여기 활성백토 있습니까?”
“활성백토요?”
“벤토 말입니다.”
“아!! 벤토요? 있죠.”
벤토나이트는 국어로 순화하면 활성백토로 불러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거의 벤토라고 부른다.
벤토의 쓰임새는 매우 많아서, 시멘트나 도료에 첨가제로 쓰거나, 도자기, 공업 폐수 응결제, 토양 개량제, 양털 표백제, 심지어 21세기엔 고양이 화장실 모래로 사용하기도 하는 소재다.
일반적으론 특수 모래로 쓰이는 소재지만, 정유 산업사(史)에 한 획을 그은 소재이기도 하다.
60년대 말, 벤토를 원유에 섞어 정제하면 휘발유며 경유 추출 효율이 10% 이상 증가한다는 걸 발견하게 되거든.
벤토가 정제 효율을 높이는 촉매였던 거다.
물론, 그 뒤로 효율이 더 좋은 실리카 알루미나로 대체되고, 21세기에는 극한의 효율을 보이는 제올라이트라는 희토류 물질로 완전히 대체된다.
21세기엔 벤토가 고양이 화장실 모래로만 인식되는 이유라고 하겠다.
즉, 내가 벤토를 갈프사에 미끼로 던져준다고 해서 내 미래에 부정적인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다. .
외려, 내가 제올라이트 특허를 출원하면 우리나나 정유 기술이 21세기에 세계 탑5가 아니라, 미국 과 함께 선두 경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나 있죠?”
“10톤쯤 있습니다.”
“10톤이라…”
10톤이나 있다고?
“최근 벤토를 쓰던 도자기 업체들이 우르르 망해버렸지 뭡니까. 쯔쯧, 요즘 누가 도자기를 쓴다고! 다들 스뎅으로 바꾸는 마당에…”
60년대는 60년대네.
도자기 그릇보다 스테인리스 그릇이 더 고급품으로 인식되다니 말이다.
여하튼 내 운이 하늘을 뚫으려나 보다.
벤토가 이렇게 남아돌다니 말이다.
“요즘 벤토 가격이 어찌 됩니까?”
“키로에 20원입니다.”
“그럼, 키로에 10원 하시죠.”
“무슨 그런…”
“10톤 모두 사죠. 10만 원 드리면 되죠? 일단 계약금으로 만원 드리죠.”
“헉!”
난 5백 원짜리 지폐 20장을 세어 건넸다.
이럴 땐 만 원짜리나 하다못해 천 원짜리 지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9만 원은 어음으로 드릴 테니, 벤토는 방수포로 덮어 놓으세요. 어음 진위는 대세 실업에 직접 전화하거나 그것도 못미더우면 은행에 직접 가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골재상에게 내 명함을 건넸다.
“어… 어디로 배달하면 되는 겁니까?”
“필요할 때 내가 실어갈 테니 걱정 마세요.”
괜히 배달을 시켰다가 내가 벤토를 매입한다는 정보가 퍼질 수 있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한 포대는 미리 가져가도 되죠?”
“얼마든지요. 계약금을 만원이나 주셨는데요.”
골재상 사장은 내가 벤토를 몽땅 매입하자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공손히 대했다.
“키로당 10원짜리 벤토가 더 있으면 추가 구매하죠. 10원보다 비싸면 필요 없고요.”
“아이고, 벤토가 더 필요하세요? 그럼 제가 좀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수고해주세요.”
골재상은 나를 벤토를 매점매석해보려는 놈으로 생각했던지 살짝 비웃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 이때 벤토는 하등의 쓸모없는 소재였지.
부디 계속 그리 생각해줘.
“벤토를 촉매로 바꾸려면 황산이 필요한데, 어디로 가면 되지?”
나는 차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벤토를 촉매로 만들려면 물과 황산을 섞어서 휘휘 저어야 했다.
그래야 특수 모래에 불과한 벤토 알갱이가 제주도 현무암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서 원유와 반응성이 엄청 좋아지거든.
21세기라면 황산 따윈 화공약품 전문점을 찾으면 그뿐이겠지만…
“아하! 도금 공장!”
60년대가 아닌가.
대표적인 공해 산업으로 21세기엔 전문 업체의 영역으로 들어갔지만, 지금은 조금만 찾아보면 도금 공장은 손쉽게 찾을 것이다.
이정도 발품으로 갈프사를 꼬드길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역시 21세기 기술이 좋아!
***
갈프사 울산 공장 정문.
「갈프 오일」
주황색 태양 마크를 로고로 쓰는 기업.
세계 7대 메이저 석유 회사로 돈 되는 곳이라면, 아시아든 중동이든 가리지 않고 정유소부터 세우고 보는 기업이다.
“휴우, 침착해. 우찬수!”
나는 갈프사 정문에서 심호흡부터 했다.
벤토에 황산을 끼얹어 촉매를 만든다고 시간이 좀 걸렸지만, 환영회까지는 시간이 충분했다.
여기 지사장을 만나기 전에 놓친 게 없는 지 생각부터 정리해야 했다.
사업은 언제나 구조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특히 투자금을 얻거나 합작 프로젝트를 하려고 할 때는 말이다.
“갈프사… 갈프사… 시작이 어쨌더라?”
나는 기억부터 더듬었다.
갈프사는 우리나라 정유업계에 있어 애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유업계의 최초 투자자로 수많은 외국 회사들이 한국에 투자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한 선구자였지만,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빨대를 꼽고 돈을 쪽쪽 뽑아간 회사거든.
“갈프사가 이때쯤 투자를 결정하긴 했겠지? 그러니까, 환영회에 참석하는 거 아니겠어?”
울산 시청이 겉으로는 세계은행 사절단을 환영한다고 파티를 열지만, 실상은 미 상공부 파견자와 갈프사 둘 다 있는 자리에서 울산 석유화학 단지의 투자금을 최종 조율하려는 목적일 것이다.
원래 역사에서 갈프사는 울산 정유 시설에 2500만불, 이때 환율로 약 68억원의 차관을 제공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울산 정유 시설에 투자한 돈이 25억 정도였으니까, 일개 미국 회사가 우리나라 정부보다 3배 가까이 투자했던 셈이었다.
공식적으로야 상업 차관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지분을 얻기 위한 투자금에 불과했다.
갈프사는 그 돈의 대가로 한국석유 공사의 지분 50%에 경영권까지 거머쥐었고, 대한민국의 석유 사업을 멋대로 좌지우지했으니까 말이다.
국제 유가를 핑계로 각종 석유 제품 판가를 한번에 400%씩 올리기도 했고, 울산 공장의 나프타 사업권을 일본에게 넘겨주는 만행도 저질렀다.
원유 수송, 정유, 석유 제품 분배에 이르기까지 석유 사업에 관한한 대한민국에선 독점이나 다름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2500만불 투자는 본사에서 결정 되었을 테니, 한국 지사장의 재량권은 250만 불 정도가 되겠군.”
지사장의 재량권은 언제나 본사의 1/10 정도 되니까 말이다.
결국 250만불 이내에서 폐공장과 나프타 사업권을 퉁칠 수만 있다면, 한국 지사장과 딜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250만불에 폐공장에 나프타 사업권까지 가져온다라…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긴 하네.”
운영 자금이 20만불 남짓 있는 놈이 250만불 짜리 딜을 하려고 하다니 우습긴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런 플랜트 사업은 내 전공 분야인데다, 나프타 사업권과 폐공장까지 얻어내면 양쪽 날개로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을 것이다.
나프타 사업권을 확보해 온갖 화학 섬유를 뽑기만 하면 돈을 미친 듯이 벌게 될 것이다.
심지어 정의로운 일이기도 했다.
갈프사는 6~70년대 온갖 갑질에다, 80년대 초 우리나라를 떠날 때도 주식 처분으로 1000억이 넘는 수익을 챙겼다.
초기 투자금의 14배를 회수한 격이었다.
IMF 런스타 못지않은 원조 먹튀이니, 내가 갈프사를 조일수록 국부 유출이 줄어드는 셈이다.
“가자!”
한방 크게 땡겨 보자!
< 018 : 고양이 모래 > 끝
ⓒ 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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